교권(magisterium, 敎權)
개념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에서
빌려왔다. 내가 교권 개념을 굴드와 완전히 똑같이 쓰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굴드는 “도덕의 교권”과 “종교의 교권”을 동의어로 쓰는데 이것은 혼란만 부추기는
것 같다. 종교는 과학의 교권에도 참견하고(신이 인간을 비롯한
온갖 종을 현재의 상태대로 창조했다고 보는 창조론), 도덕의 교권에도 참견한다(십계명).
과학의 교권에서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려고 하고, 도덕의 교권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따진다. 보통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지만 나는 수학을 과학의 교권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정치 철학(어떤 정치 체제가 바람직한가)이나 경제 이데올로기(어떤 경제 체제가 바람직한가)를 도덕의 교권에 포함시킨다.
도덕의 교권에서 가치 또는 도덕을 다룬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헷갈리기 쉽다. 윤리학은 가치 또는 도덕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윤리학은 도덕의 교권에 속하는 것일까? 절반만 그렇다.
윤리학을 도덕 심리학(또는 도덕 사회학)과 도덕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도덕 심리학에서는 왜 인간에게는
양심이나 죄책감이 있는지, 왜 인간이 대체로 도덕적으로 사는지, 왜
도덕 규범을 어기는 사람은 비난과 처벌을 받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따라서 가치와 도덕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 도덕 철학은 어떻게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지 따진다. 따라서 도덕의 교권에 속한다.
진화 윤리학은 일종의 도덕 심리학이며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 진화
윤리학에서는 양심과 죄책감과 관련된 기제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한다.
윤리학을 도덕 심리학(기술descriptive
윤리학)과 도덕 철학(규범normative 윤리학)으로 나눌 수 있듯이 경제를 다루는 학문도
경제학(기술 경제학)과 경제 이데올로기(경제 철학, 규범 경제학)로
나눌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경제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한다.
경제 이데올로기는 어떤 경제 체제가 바람직한지 따진다. 마찬가지로 정치를 다루는 학문도
정치학(기술 정치학)과 정치 철학(정치 이데올로기, 규범 정치학)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경제학과 정치학은 과학의 교권에 속하며 경제 이데올로기와 정치 철학은 도덕의 교권에
속한다.
과학과 관련된 모든 것이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
윤리 중 적어도 일부는 도덕의 교권에 속한다. 예컨대 “과학 연구를 위해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규범은 도덕의 교권에 속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도덕이나 가치를 다룬다고 해서 곧 도덕의 교권에
속하는 것도 아니며 과학과 관련 있다고 해서 곧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교권을 나눌 때에는
어떤 명제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명제의 성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
명제가 현상을 그냥 설명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사는 것이 또는 어떤 체제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따지려고 하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도덕 철학, 규범 윤리학 등 이 글에서 쓰이는 개념들을 학자마다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런 개념들을 일일이 다 정의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문맥을 보고 거의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