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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라의 백두대간.(제1구간)
*산행기간 : 2004.6.8~6.10
*산행코스 : 백무동,천왕봉,세석,벽소령,화개재,노고단,종석대,성삼재.
*산행일정 : 6월8일. 익산-백무동-천왕봉-세석산장(1박)
6월9일. 세석산장-벽소령-노고단산장(2박)
6월10일. 노고단산장-종석대-성삼재-익산
* 준비물 : 배낭(60+10),텐트(2인용),벨트쌕,배낭커버,침낭,메트리스,버너(GAS),코펠,
헤드램프,손전등,디지털카메라,예비배터리,스틱한쌍,시에라컵,GAS
판쵸우의,디지털녹음기,스푼셋,선글라스,귀마개,한방파스,고어자켓,등산복상하여벌,속옷,양말,세면도구
모자,휴지,즉석국,3분짜장,생수,쌀,라면,김치,소주,행동식,물티슈,육포,발목보호대,지도,나침반,기타.
*산행기
배낭꾸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예사롭지 않으면 또 어떠하리..
몇 해 동안을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야 칼을 빼어들었는데 그냥 거둘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는것이었다.
사무치게 고대하고 꿈에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항상 가실줄을 몰랐던 백두대간에 대한 열망을
식히고자 배낭에 꾸역꾸역 등산용품을 담아가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흘려본다.
배낭패킹을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지리산 언저리에 가 있는듯 머릿속은 온통 지리산의 비경들로
가득한 느낌이다.
지금껏 떠돌이처럼 이산 저산 싸질러 다니기만 했지,정녕 의미 있는 산행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년이면 마흔이라는 나이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인생의 내리막을 걸어야 할텐데 돌이켜보면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이 그렇게 살아온 인생밖에 되지않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백두대간 종주를 해보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백두대간 종주야말로 돈이 많아서 해결하는 것도 아니요,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돈과 권력이 있다한들 할 수 있는게 아니고 각 개인의 순수한 의지와 인내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고행의 길이지 않나 싶다.
삼십대를 보내면서 천왕봉 표지석을 쓰다듬고 사십대를 맞으며 저 멀리 진부령 표지석 앞에서 멍에와도 같은
배낭을 홀가분하게 벗어 내리고 그간 걸었던 대간의 뒤안길을 생각하며 한 잔 술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다.
백두대간.
남들은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고 꼼꼼하게 점검하며 대간 산행을 한다는데 나는 성격 탓인지 몰라도 인터넷에
떠있는 대간 선배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대충대충,그때그때 해당구간의 산행기 몇 편 읽어보고 지도 한 번 보고
오르다가 맞으면 가는것이요, 아니 맞으면 돌아서 다시 가고 하는 산행을 계획중이다.
이 글을 본 어떤 이들은 백두대간 알기를 뒷동산 산책 가듯이 한다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백두대간
종주도 굴곡 많고 곡절 많은 우리네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너무 틀에 박히고 심리적인 강박이 가해지는 산행은
지양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어쨌든 백두대간 종주 산행용 배낭은 모두 꾸려졌다.
겁없이 선뜻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파키라의 백두대간 종주의 서막이 오르게 된 것이다.
파키라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2004년6월8일.
배낭을 체중계에 올려보니 22Kg이 약간 넘는다.
대간용 텐트를 새로 구입해서 함께 넣었더니 배낭무게가 보통 무거운게 아니다.
출발전 계획 때문에 2박 3일 동안 천왕봉에서 여원재까지 1~2구간을 동시에 마칠려고 조금 무리해서 배낭을
꾸렸더니 출발하기도 전에 심리적인 중압감을 전해온다.
차를 가져갈까 하다가 산행 후 회수하기가 귀찮을 것 같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아내의 걱정어린 표정을
뒤로 하면서 택시에 올라 익산 터미널로 향한다.
택시 운전사 양반이 배낭을 보더니 “보따리 싸서 어디 피난 가시우?” 한다. 그렇다.
피난이라면 피난일수도 있을것이다. 각박하고 복잡한 이 세상살이 자체가 전쟁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전쟁을 피해서 2박3일이라는 짧은 피난을 가고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내리니 백무동 주차장 앞이다.
올 1월 2일에도 왔었고 2월 어느날 눈이 엄청 내린 날에도 왔었고 또 지난달 중순에도 아내와 함께 왔었던 곳이 바로
이곳 백무동이다.
올해만 벌써 네번째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셈이다.
느슨하게 매었던 등산화 끈을 바짝 당겨서 조이고 주능선쪽을 바라보니 흐린 날씨 때문인지 온통 허연 구름 뿐이다.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 쉬고는 심호흡을 깊게 하면서 출발하니 11시 30분이다.
매표소를 지나 하동바윗길과 한신계곡 갈림길에서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한바탕 비를 쏟아부을 기세다.
속으로 투정을 부려본다 ‘에이 대간 첫 날인데 지리산 삼신할미가 심통을 부리시는구먼’ 하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내 부덕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고 말아버리는게 더 속이 편하지 않나 싶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하동바윗길 숲으로 들어서니 바로 된비알 길이다.
배낭의 어깨누름이 척추를 지나 발끝까지 전해지는 느낌을 참아가며 한 걸음씩 내딛는데 아직 몸이 안풀려서인지 보통 힘이 드는게 아니다.
하긴 요즘은 운동도 안하면서 허구헌날 술질이니 이제 늙어가는 몽뚱이가 지리산 오름길에 쉽게 적응하기가 만무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본다.
하동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니 뒤따르던 사람들이 먼저 간다는 인사와 함께 나를 추월해간다.
날씨가 점점 어두워 지면서 안개인지 이슬비인지 모를 비에 온 산이 천천히 젖어든다.
배낭에 방수커버를 씌울까 하다가 이정도 비에 젖으면 얼마나 젖겠나 싶어서 그냥 가기로 하고 다리를 건너니
급경사 오르막이 어서 오라는 듯 나를 환영하는데 조금 기가 죽는다.
아직도 산에 적응이 덜된 몸뚱이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등로 옆의 말발도리 꽃은 새하얀 꽃잎에 빗방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활짝 웃으며 지나는 산객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주는 듯 하다.
13시 정각 참샘에 도착하니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낮선 공사장이 돼버린 광경이다. 없었던 컨테이너가 있고 비상용
구급함은 저 너머로 팽개쳐져 있는 모습이 영 볼썽사나워 눈쌀을 찌푸리고 만다.
그래도 참샘 물맛은 변치 않았으리라 기대하며 한 모금 마시고는 빈병에 물을 채워 걷다보니 어느덧 소지봉에 오른다.
이번 산행에서 여느 지리산 산행과는 판이하게 더 힘들어 하는 나를 느끼며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정각이다.
부슬거리던 비가 주룩주룩으로 바뀌면서 지리산 특유의 변화무쌍한 기상 상태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비도 내리고 배도 고프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취사장으로 들어가 라면 하나에 햇반 하나를 꺼내고 버너에 불을 댕긴다.
물을 끓이며 밖을 내어다 보니 장터목대피소의 빨간 우체통이 빗속에서 고즈넉하게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간 저 우체통에 엽서를 넣어봐야 할텐데…
라면을 먹는데 뭔가가 허전하고 서운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서 생각해보니 아뿔사 이슬이를 안꺼낸 것이 아닌가.. 부리나케 꺼내어 뜨거운 라면과 함께 몇 모금 마시니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전해진다.
비에 젖어 지친 몸뚱이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었으니 서둘러 백두대간 기점인 천왕봉에 올라야 할텐데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 배낭에서 고어자켓을 꺼내 입고 배낭은 커버를 씌워서 취사장에 두고 밸트쌕에
카메라만 넣고 스틱을 쥐고 제석봉 가파른 길을 올라 천왕봉을 향한다.
제석봉. 개인적으로는 지리의 여러 봉우리 중에 제석봉을 가장 좋아한다.
현재의 모습은 도벌꾼들의 만행에 의해 황폐화된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화상을 입고도 수십년 온갖 풍상에도 의연하게
버티고 서있는 고사목을 보노라면 숙연해지는 느낌마저 드는게 사실이다.
특히 오늘같이 비라도 내릴지라면 제석 그 특유의 황량함과 을씨년스러움이 정감으로 변모해 지나는 산객들의 시선을 이끈다.
오후 5시 조금 못 돼 천왕봉에 오른다.
평상시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천왕봉이 사람 한 명 없는 평온을 만끽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에 젖어 외로이 서있는 천왕봉 표지석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라는 문구는 언제봐도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하며 표지석에 양손을 얹고 대간 종주 무탈하게 이룰수 있게 해 주십사 하고 마음속으로 치성을 드리고 장터목
대피소로 발걸음을 돌린다.
천왕봉부터 시작하는 백두대간 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다시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서 잠시 산행 일정을 생각해보니 빗속에 굳이 무리해서 여원재까지 가야할 절박함을 느끼지
못해 산행계획을 수정한다.
물론 고집을 부려서 가자면 갈수야 있겠지만 처음부터 무리해서 가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걸 깨달을 때 까지는 적잖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막상 계획을 수정하고 나니 약간의 허탈감도 느끼지만 그보다도 배낭속의 텐트가 더 원망스러워진다. 2구간도중 하루는
야영계획을 세우고 힘들게 지고 왔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버리지도, 사용치도 못하고 산행 내내 양 어깨를 괴롭히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비는 계속 이어진다.
대피소를 나서는데 몇 몇 젊은 친구들이 힘내라고 격려의 인사를 보낸다. 고맙다는 답례를 해주고 연하봉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대간 종주 첫날의 비는 줄기차게도 내리며 무거운 몸을 더욱 더 무겁게 만든다.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 쪽으로 가는데 아직 채 지지않은 얼레지가 비에 젖어 초라한 몰골로 떨고 있는 모습인데 그 고유의
보라색만은 선명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촛대봉에 힘들게 오르니 비와 안개사이로 세석 대피소가 언뜻언뜻 그 모습을 내 비친다.
대피소에 인터넷 예약도 안하고 가는 길인데 혹시라도 침상 여유가 없어서 밖에서 잠을 자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최악의 경우를 가상해보니 결론은 취사장이나 복도나 기타 비만 피할곳이라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맺음한다.
19시 40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내 몰골을 보니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모습이다. 다행이 침상 배정을 받고 배낭을 선반에
올리고 마른옷과 식사 준비물을 챙겨서 취사장으로 내려간다.
밖엔 아직도 비가 부슬거리는데 눈앞의 코펠에서는 북어국이 보글거리고 그 옆 시에라컵에는 언제봐도 정겨운 이슬이가
이슬처럼 영롱한 자태로 담겨져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 고생한 피로가 싹 씻은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식사와 소주를 함께 하면서 ‘내가 왜 이고생을 사서 하지? ‘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떠
오르지 않는다.
그냥 산에서 마시는 소주 한 잔이 좋아서 그 맛에 오르려니 하고 얼버무리면서 혼자 씩 하고 웃고 만다.
즐거운 세석에서의 산상만찬을 즐긴후 휴지로 설거지를 한후 식수대에 내려가 수건에 물을 적셔서 대충 몸을 닦아내고
마른옷으로 갈아입으니 날아갈듯한 기분이 된다.
지친 몸뚱이를 침상에 눕혔으나 여러 사람들의 소음으로 인해 잠이 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사람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부시시 눈을 떠서 시간을 보니 새벽 두시 반이다. 다시 잠을 잘려고
했으나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렸해진다.
할 수 없이 화장실이나 다녀올려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기가 막힌 밤하늘의 별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말 그대로 별천지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나 고운 밤하늘의 별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없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부슬거리는 비를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하였건만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지리십경의 하나인 벽소명월 못지않게 아름다운 세석의 밤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중일기의 변화무쌍함을 또 다시 실감할
수밖에 없다.
어제 종일토록 빗속을 걷게 만든 지리의 날씨가 나에게 미안함을 느꼈는지 생각치도 못했던 별밤을 선 보이며 보상을 해주는듯 싶다.
6월9일 05:30. 세석의 아침을 맞는다.
즉석 미역국에 햇반 하나 훌러덩 벗겨넣고 까실한 입맛을 달래려니 그 맛이 ‘영 아니올시다’ 이다.
어찌하겠는가.. 오늘도 종일토록 지리를 누빌려면 뱃속이 든든해야 하거늘 하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속을 채운다.
07:00.세석대피소를 출발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새벽하늘의 그 청명함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있는 모습이다.
대피소를 뒤로하고 힘찬 걸음질을 하다보니 어느덧 영신봉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영신봉에서 한숨을 돌리는 순간 지리산은 나에게 또 다른 비경을 선사한다.
자욱한 안개가 사라지는 듯 싶더니 가야할 주능선 저 멀리로 여인네 궁디 같은 반야봉의 정상부가 구름위로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란 내 짧은 필설로는 감히 형용하기가 불가능 하리라 생각되어 어찌 표현을 해볼수가 없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이름모를 새소리가 귀마저도 즐겁게 해준다. ‘금상첨화’ 라고나
할까…
08시 40분에 칠선봉에 도착하니 자욱했던 안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천왕부터 노고단까지의 지리의 주능선이 파란 하늘에
마루금을 긋는 장관을 연출한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는 일곱선녀는 눈에 띄지않는다. 내 공덕이 부족한 모양이려니..
지리산을 걷는다. 백두대간을 걷는중인 것이다.
예전의 지리산 종주 산행이나 지금의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나 똑 같은 지리산을 걷고 있지만 마음가짐은 예전의 그 마음이
아닌 뭔가 더 특별함이 있고 더 깊은 의미가 있고 굳은 각오로 똘똘 뭉쳐있다는 생각을 하며 지리의 산길에, 백두대간의
산마루에 푹 빠져든다.
09시30분에 덕평봉 아래 선비샘에 도착한다.
소금장수의 전설을 생각하며 샘 위에 묻혀 있다는 옛날의 한 천민에게 허리를 숙여 물을 받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리를 뻗었더니 한 숨 푸욱 자고만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세석에서의 밤이 피로를 채 풀어주지 못한 요인이 커서 그럴것이다. 어쩌겠는가 또 다시 걸어야만 하는 몸인데..
벽소령을 향해 걷다보니 대피소 약 1KM 정도 못 가서 음정쪽으로 내려가는 예전의 군사 작전도로 초입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잡초가 무성해서 길다운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는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 소탕을 위해 차량이 이동했을
정도로 넓은 길이었을텐데 하고 생각하니 결코 유쾌하지 못했던 한국의 근대사가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는듯 하다.
10시50분에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해보니 밤새 몸서리 칠 정도로 들끓었던 산객들은 모두 떠나고 산중 대피소 특유의
한가함과 고즈넉함을 자아내는 모습이다.
대피소의 한 직원은 카메라를 들고 대피소 주변의 야생화를 촬영하느라 사람이 오가는것도 모르는듯 한 모습이다.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울어대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귓전에 와 닿는다.
물 한 모금 하고 빨간 우체통 옆을 스치며 형제봉을 향한다.
12시10분. 형제봉에 오르니 장쾌한 주능선의 조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란히 서 있는 형제바위가 어제의 비에 깨끗하게 몸단장을 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아주 기분 좋게
다가온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오니 더위가 시작되어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끼며 명선봉쪽으로 향한다.
형제봉에서 명선봉 아래 연하천으로 가는길은 제 아무리 힘이든다 한들 이겨낼수 있다. 연하천 산장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명선봉 산삼 썩은, 그 시원한 연하천 샘물에 항상 몸을 담그고 산객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차디 찬 캔맥주가
바로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을 갈망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걷다보니 주목 군락지 보호 철조망이 양쪽으로 나를 반긴다. 연하천 산장이 지척이라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13시 정각에 산장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하고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다.
마땅한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서 샘터 위 나무그늘에 큼직한 돌맹이 하나 엉덩이에 깔고 라면 물을 끓이며 고무통에 담겨있는
맥주를 보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저걸 그냥 라면 먹기전에 작살을 내버려? 아님 식후에 시원하게 즐길까나..’ 답은 후자로 결정하고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뱃속에서 라면만 밀어 넣을거냐고 앙탈을 부린다. 어쩔수 없이 배낭에서 이슬이를 꺼내어 라면에 첨부하니 그제서야
뱃속이 흐뭇해 하는 느낌이다.
역시 산중에서의 라면에는 소주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홀로 오찬을 즐기는데 아래쪽 아줌마들이 이것저것 싸온 도시락을
드시면서 부러운듯한 눈초리로 라면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나는 아줌마들의 도시락이 훨씬 더 맛나 보이는데… 쩝.
물통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어 3000원을 계산하니 500원을 더 달랜다. 작년까지 3000원이었는데 올해부터 500원이 인상
되었댄다.
하긴 대피소 사용료도 오른다던데 이것저것 다 오르겠지 하고 계산을 마치고 맥주를 소중하게 배낭에 담고 토끼봉 오름
계단에 발을 올리며 시간을 보니 14시 정각이다.
토끼봉 오르는데 배낭의 어깨누름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배낭을 버릴수도,땅바닥에 주저앉을수도 없는 노릇이라는걸 알고있는 나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쉼으로서 스스로를 달래고
또 마음의 채찍질을 해가며 토끼봉을 향해 오름짓을 이어간다.
15시 30분.토끼봉 오름구간을 마무리 하고 연하천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려 했으나 쉴만한 마땅한 그늘이 없어서 화개재
쪽으로 내려가니 적당한 장소가 나온다.
행여나 맥주가 뜨뜻해지면 어찌하나 하고 염려했었는데 생각보다 시원한 맛이 많이 살아있다.
돌덩이에 앉아 배낭에 기대어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캬~’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그래 이 맛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수 있으리오.. 맥주캔을 꼭 붙들고 한층 가까워진 반야봉을 조망하노니 더 이상 뭐가 부러울소냐, 지금 순간만은
돈도 명예도 필요 없으니까 시원한 캔맥주나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안주로 육포를 씹는다.
술을 다 마시고 일어서는데 함박꽃 한 송이가 화사하게 피어 있어서 카메라에 살포시 담아본다.
다시 배낭을 둘러매고 화개재를 향해 내려가는데 마주오는 사람중에 어디서 본듯한 아가씨가 있어서 생각해보니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확인결과 검은별의 지리산 사이트의 주인인 검은별이라는 아가씨가 맞다.
스치면서 인사를 나누고 검은별이라는 아가씨를 생각해보니 지리산 매니아중의 매니아라고 평가할수 있을만큼 지리산에
푹 빠져있는 그런 아가씨이다.
그의 인생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보며 화개재에 도착하니 시계는 16시 20분을 가르키고 있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데 저 멀리서 헬기 한 대가 날아와서 뱀사골 산장위를 맴도는 모습을 보고 사고가 났나 하고 자세히
보니 뱀사골 산장에 물품을 공수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모든 물품들을 반선에서 지고 올라왔는데 요즘은 헬기
운반이라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해본다.
삼도봉이 나를 기다린다 생각하니 벌써 종아리에 쥐가 나는듯한 느낌이 든다. 공포의 계단이라 불리우는 화개재?삼도봉
구간 나무계단이 사람들의 다리힘을 어지간히 빼어 놓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첫 걸음을 계단에 올리고 다짐을 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계단수를 세고야 말것이라고.. 여지껏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한 번도 제대로 세어 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정확하게 세어보리라.
다 올랐다. 성공했다.
정확하게 551계단이다.
숫자에 정신을 집중하고 오르다보니 별로 힘든줄 모르고 계단 구간을 마무리한다.
17시 정각에 삼도봉에 도착해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를 왔다갔다 해본다.
정상에 설치된 금속 삼각 조형물의 끝부분은 왜 그리도 만지작거리는지 햇빛에 반사되어 광채를 발하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임걸령쪽으로 진행하니 노루목 삼거리에서 반야봉이 유혹을 한다.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반야봉이 어디 가는것도 아닌데 다음에 오르지’ 하고 외면을 하면서 임걸령을 향해 줄달음질 친다.
사실 반야봉은 작년 여름에도 올랐고 올 2월 29일 빗속에서도 올랐기 때문에 큰 아쉬움 없이 지나칠 수 있는 것이다.
17시50분에 임걸령 샘에 도착해 지리산 최고의 물맛이라는 샘물을 한 바가지 그득 담아 마시고 얼굴과 목에 말라붙어
있는 소금가루를 닦아내니 상쾌하기 그지없는 느낌이다.
18시05분.피아골 삼거리에 도착하니 또 다시 다리의 무거워짐을 느낀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듯한 느낌도 전해오지만
어찌 해야 할 방안은 없다. 계속 걷는수밖에..
6시 30분에 돼지평전에 도착해 노고단쪽을 보니 안개 자욱한 서쪽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꿩대신 닭이라고 반야낙조 대신 노고단 낙조라도 볼수 있으려나 하는 희망을 가지며 힘든 발걸음을 계속 내 딛는다.
19시10분.드디어 노고단 안부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노고단 안부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지금껏 걸어온 주능선쪽을 바라보니 비록 안개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 있는 천왕봉도 나를 보고 ‘수고 했노라’ 하면서 위로의 말을 하고있지 않나 싶다.
원래 오늘 목표는 최소한 만복대나 정령치까지 가서 하룻밤 야영을 한 후 내일 새벽에 고리봉을 시작으로 여원재까지
2구간을 마칠 생각이었는데 계획 수정으로 인해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유하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서 좋다.
19시30분에 노고단 대피소에 내려오니 한산하기 짝이 없는 대피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취사장에서 밥을 하고 마지막 남은 이슬이와 노고단에서의 밤을 함께 한다.
대충 정리하고 자기전에 커피 한 잔 사 들고 대피소 앞에서 내일 오전에 올라야 할 어둠속의 종석대를 바라보며 기분좋은
한숨을 내쉬어본다.
6월10일 07시00. 노고단 대피소의 여유있는 침상에서 아침을 맞는다.
어제 세석에서의 차렷,부동자세의 잠자리를 생각하면 여기는 최고급 호텔에 견줄만할 정도로 편안하고 여유로운 잠자리였다.
식수대 옆에서 치약 없는 칫솔질과 비누 없는 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밥을 할까 했으나 귀찮다는 생각이 훨씬 더 지배적이라는 판단으로 과감하게 아침을 생략하고 대피소를 나선다.
종석대 들머리를 향해 성삼재 ? 노고단길을 내려가는데 수학여행을 온듯한 학생들의 인파가 길을 가득 메우고 올라온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됨을 느끼며 ‘왜 그럴까?’ 하는생각을 해 본다. 하긴 이 몰골을 하고 지나치니
안 쳐다보면 오히려 더 이상한거지..
산에 오르기 사흘 전부터 면도를 아니했으니 수염은 산적 수염이요, 매고있는 배낭은 머리위로 올라올 듯 커다랗지요, 발에
물집이 잡혀서 약간이지만 절뚝거리기까지 하니 어린 학생들 눈에는 눈요기 감으로 충분하고도 남을지니…
코재를 지나 종석대 들머리 목책 앞에 서서 망설인다.
커다란 천에 입산금지라는 시뻘건 글자가 인쇄되어 나의 기를 죽여놓는다.
이곳을 무수하게 지나간 선배 대간꾼들이 외치던 비애라는 말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해야 하는데
어쩔수 없이 행해야만 하는 순간인 것이다. 잠시 사주경계를 한 후에 학생들의 눈초리를 나몰라라 하고 목책 옆으로 몸을
돌려 숲속으로 부리나케 숨어든다. 뒷통수가 간지럽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다.
종석대를 오르지 아니하고 성삼재로 바로 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앞서 불법 산행을 감행한다.
종석대 오르는 길, 이 길은 걷는게 행복하다고 느껴질만큼 편안하고 부드러운 길이다.
뒤돌아보니 노고단 대피소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느낌에 대피소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하지말라는 것은 안해야 하는데…..
어제까지의 피로감은 노고단 대피소에 모두 내려놓고 와서인지 가뿐한 몸으로 종석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니 대간
1구간을 마쳤다는 성취감에 도취되는듯한 느낌이 든다.
성삼재 주차장 쪽으로 내림길을 걷는다.
노고단 오름길 화장실 맞은편으로 내려서니 시계가 오전 열시 정각을 가르킨다.
화장실에서 땀을 씻어내고 사흘동안 나를 도와준 스틱을 접어서 배낭에 매달고 구례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만복대 쪽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린다.
‘대간 2구간이여 조만간에 너를 찾을것이다’ 라고..
처음 계획한대로 2구간까지 가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1구간을 끝낼 수 있게 도와주신 지리산
삼신할미께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고 싶다.
버스가 왔다.
시암재를 지나 구례로 내려가며 천은사 매표소를 보면서 관리공단에 속으로 욕을 해댄다.
국립공원 입장료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시정할 생각을 전혀 아니하는 불한당 같은 X들이라고….
구례에서 전주를 거쳐 익산 집에 도착하니 오후 시간이다.
가족들의 반겨줌을 받고 샤워를 하고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제 겨우 1구간을 마쳤으니 진부령까지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오지만 전혀 기분나쁜
답답함이 아니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행복해야 할 길을 생각하면 ‘ 어 휴~~~’…
오랜만에 집에서 먹는 저녁식사다.
오늘따라 아내가 끓여준 된장국이 유난히 맛있다.
※ 묵은내 나는 산행기 올리라고 해서 한번 올려 봅니다.
다음카페 *홀산* 첫빳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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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년이면 마흔이라는 나이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돌이켜보면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이......그래서 결심한 것이 백두대간 종주......." 어쩜 그렇게 나랑 똑같은 심정으로 백두대간을 시작했으까이... 묵은 산행기 잼나게 읽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