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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지맥 (鳶飛枝脈)
백두대간 봉화산(△919.8m) 북쪽 1km 지점. 전라북도 장수군,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의 꼭지점이 되는 약 945봉에서 남동방으로 전북과 경남도계를 따라 분기하여 임천(臨川)이 남강에 합류하는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다.
88고속도로와 24번국도 팔령재를 건너고, 삼봉산(1,186.7m)에서 동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임천 건너편의 지리산 주능선과 나란히 달린다. 북쪽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멋진 조망대가 아닐까. 지맥상 최고봉은 삼봉산이지만 삼봉산 이름의 중복성을 피해 연비산을 택한거 같다.
(봉화산~1.0~분기봉)
분기봉(945봉)~3.7~옥잠봉~2.8~88고속도로~4.1~연비산~1.8~오봉산~3.0~팔령~4.8~삼봉산~4.7~지안재~4.6~팔두재~5.0~화장산~3.7~임천 /38.2km
연비산842.8 오봉산879 삼봉산1186.7 화장산586.4
25000지형도 index
연비지맥 1구간
2012.3.4. (일)
산길 : 봉화산~팔령
거리 : 15.4km
구간거리
분기봉(945봉)~3.7~옥잠봉~2.8~88고속도로~4.1~연비산~1.8~오봉산~3.0~팔령 / 15.4km
Cartographic Length = 22.9m / Total Time: 09:10
(봉화산임도 접근 5.0km, 지맥17.9km)
인사이동으로 근무형태가 바뀌는 바람에 산행일정도 따라 맞춰야 한다. 주말이 따로 없이 근무가 돌아가니 누구와 함께 가자는 소리는 아예 못하고 주중이든 주말이든 비는 시간 이용해 나홀로 가는 수밖에 없다. 한 주일간 비번도 없이 뺑뺑이 돌린 후에 첫 번째 맞는 비번이다. 그것도 일요일 하루.
누구는 먼데부터 정리를 해야 나중에 힘이 덜 들지 않겠냐 하더라마는 내 인생사 어찌될 줄 누가 아노? 나중은 나중이고, 가까운데 먼저 손이 닿는다. 그러다 보니 완주한 지맥을 대간, 정맥별 폴더로 나누어 정리해 보니 한남, 금북, 금남에 딸린 지맥은 하나도 손을 못 댔다.
남한 산경도를 펴놓고 집에서 가까운 순서로 검색을 하니, 연비가 포착된다. 들머리 접근을 보태면 40km가 넘어 빠듯하게 두 구간이 되겠다. 토요일 저녁에 출발도 가능하지만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일요일 새벽에 나섰다.
06:20 봉화산 임도
07:00 백두대간
07:23 봉화산
07:47 지맥분기봉
08:24 ×765
09:49 옥잠봉
10:33 비조재
11:02 88고속도로
11:32 ×641
11:53 배골고개
12:16 진양치
12:56 연비산
13:25 ×822
14:14 오봉산
15:30 팔령재
짓재
04시 집을 나섰다. 네비에 ‘흥부마을’을 찍으니 전국에 세 곳이 나온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있는 흥부를 선택하니 195km에 요금은 7천원이라네. 참 똑똑하구만. 누구 말을 빌리자면 ‘마누라 보다 나은 여자’다. 요금까지 대신 내주면 아예 데리고 살겠구마는...
논스톱으로 달렸더니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성리 짓재마을 어디쯤 차 대놓고 걸어 올라갈 여산이었는데, [봉화산 철쭉군락지] 표석 옆으로 올라가다보니 산꼭대기까지 가겠다. 마을 상단에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통과해 계속 올라가다가 치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고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지점까지 차를 들이 밀었다.
분기봉 최단 접근로는 부동마을 위쪽 부동제에서 오르는 임도도 있으나, ‘추억의 백두대간’을 양념으로 가미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해서다.
임도에서 보는 봉화산
임도에서 대간 마루금으로, (계속 가면 봉화산 지나친다)
봉화산 임도
해발 652m. 짓재마을 앞 751번 도로에서 1km 조금 더 된다. 임도는 계속해서 봉화산 바로 아래까지 이어지고 바닥이 조금 높은 차라면 충분히 갈수 있겠다만 택시로 차량 회수를 고려하면 여기까지도 과하다.
우중충한 날씨에 막 밝아지는 시점이라 해드랜턴을 켜도 별반 다름없다. 백두대간 능선 바로 아래라 바람을 직접 맞지는 않는다만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차 바퀴자국이 찍혀있는 임도바닥에 고인 물은 언 것도 있고 안 언 것도 있으니 0도 근처인 모양이다. 임도는 오른쪽으로 크게 돌았다가 다시 붙는다. 봉화산 정상부가 보인다.
백두대간
주차 지점에서 2.4km에 38분. 임도가 백두대간 마루금에 가장 근접하게 붙는 지점에서 능선으로 붙었다. 수레길 같은 흔적이 있으나 나무가 들어차 길은 없다. 그래도 잠깐 이다. 3분만에 대간 마루금에 올라서니 고속도로 같은 길이다. 바닥이 살짝 얼어있어 바스락거리며 밟힌다.
다리재
지도에 표시된 ‘꼬부랑재’는 어딘지도 모르겠고, ‘다리재’는 고개가 아니라 봉우리다. 좌우로 [복성이재 / 봉화산]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봉화산이 쳐다보이고 아래쪽 마을도 넓게 보이지만 먼데 산은 구름이 낮게 깔려 알아보지 못하겠다. 지리산도 백운산도 모두 구름 속이다.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우측 높은게 고남산...?)
지형도의 다리재 [복성이재-봉화산]
백두대간 진행시 봉화산
봉화산
봉화산 (919.8m △함양23)
예전에 (9년 전이니 예전 맞나?) 대간하면서 올라설 때 봉화산은 전체가 붉은 산이었는데 지금은 몰아치는 세찬 동풍으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겠다. 막 피기 시작한 철쭉터널 사이로 천방지축 폴짝 거리던 남희가 있었는데... 9년 전이면 나 또한 아주 팔딱거리던 4학년 아니었나? 봉화산에서 9년의 시간을 더듬어본다.
2등삼각점이 있고 지명에서도 그렇듯이 봉수대 모형도 만들어 놨으나, 옛지도에는 지명표기가 없다. 옆에 있는 안내문에도 북으로 장안산과 남덕유산 기백산, 남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펼쳐진다고 했으나 오늘은 아영면 일대와 북쪽 속금산 정도만 보인다.
북쪽. 구름 쓴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연비지맥이 분기한다
임도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곳. 철쭉 행사장
임도
봉화산 북쪽 능선도 전체가 억새와 철쭉밭이다. 5월이면 울긋불긋 꽃동네가 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몰아치는 바람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내려가다가 왼쪽 임도에 내려서니 바람이 없다. 임도와 능선이 나란히 가다가 야영면에서 올라 온 임도가 서편 장수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넓은 광장이다. 팔각정이 있고 철쭉제단으로 보이는 넓은 돌판이 있는걸로 봐서 철쭉축제가 열리는 곳이겠다.
무명봉 (945봉) : 연비지맥 분기봉이다
지맥분기점
철쭉광장에서 5분 올라서면 [무명봉] 간판이 있는 945봉이다. 간판에는 현위치 고도를 870m로 표기했지만 너무 야박하다. 지형도를 봐도 GPS를 봐도 945m 정도다. 이제 백두대간과 이별하고 새로운 지맥을 시작하게 된다. 월경산에서 내려온 전북과 경남의 도계를 따라가는 연비지맥이다.
동쪽으로 내려가는 지점은 945봉 정점 몇걸음 전에 우측으로 팻말이 걸려있고 리본도 여럿 달려있다. 뚜렷한 길 흔적이 없어 전지가위 뽑아들고 잡목을 밀치며 내려가니 그런대로 흔적 있는 길이 있다. 전지가위 도로 말아 넣었다. 대간 능선에는 바람이 거세더만 비탈로 내려서니 바람이 없다.
마구잡이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비탈이다. 10분 가량 내려가니 첫 안부인데 우측 사면으로 돌아가는 수레길 흔적이 있어 혹시나 싶어 따라 들어가다 보니 트랙과 자꾸 벌어진다. 되돌아 왔다. 지맥은 안부에서 정면으로 살짝 올라선 봉에서 왼쪽으로 틀어지고, 수렛길은 곧장 직진하더라.
왼쪽 꺾어 약 200m 후에 다시 우측으로 꺾는데 간벌목이 아주 지저분하게 널려있어 능선을 고수할 수도 없고, 우회하려니 잡목이 빽빽하고 이래저래 고약하다.
닝기리~....
765봉에 와서야 벌목이 없어지고 날등이 살아난다. 왼쪽은 아주 절벽이나 다름없는 날등에 굵은 소나무 행렬이 이어지는 봉우리다. 765봉을 내려서면 멀리까지 조망도 트이고 살짝 내려앉으니 바람도 없어 아침을 먹고 간다. 구상리 부동마을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임도가 내려다보인다.
765봉에서 보던 세모꼴로 발딱 선 봉우리가 아주 못되게 보이더만 막상 올라보니 별거 아니다. 고도는 비슷하다. 내려서면서 벌목에서 해방이 되나 싶은것도 잠시, 이제는 가시 잡목이 달라든다. 이리저리 피해 돌아가다가 우측에 공터가 보여 빠져 나가니 묘터다.
생긴거는 빼쪽해도 별거 아니더라.
옥잠봉으로 내려가는 지맥능선
아영면
720쯤 되는 봉에 올라서니 문패없는 묘가 있고 아영면 일대가 조망된다. 석축으로 둘레를 쌓고 관리도 꾸준한데 비석은 세우질 않았다. 이 일대에 묘는 비석을 세운게 거의 없다. 이것 또한 지역별 특색인가 보다. 진도나 화원에서 본 묘 들은 한결같이 ‘봉분보다 비석’이었는데 여기는 비석에는 관심이 없고 봉분이 우선이다.
전라일보사의 [전라북도 경계밟기] 리본이 보이더니 경상남도 의회의 [우리도 경계일주] 작은 깃발도 걸려있다. ‘너그가 하니 우리도 한다’가 아니라 ‘우리道경계’라는 말이다. 잡목은 여전히 길을 막아댄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도계능선이다
×720봉 오름길에 접어들면서는 능선 전체에 간벌목이 덮혔다. 남아있는 소나무에 [숲가꾸기 사업] 패찰이 붙어 있는데 무슨 숲가꾸기 사업을 이따우로 하는지 모르겠다. 우측으로 피해 올라서니 ×720봉은 펑퍼짐한 봉우리이고 올라서자 말자 우틀 꺾어 내려간다. 다음 봉우리 역시 벌목이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옥잠봉은 이름만 그럴듯 하고,
옥잠봉 (705m)
펑퍼짐한 봉우리에 솔갈비 깔린게 한뼘은 되어 푹신한 양탄자를 밟는 듯하다.
바람이 엄청 불어 재치는데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라 으슬으슬 추워진다.
오전에는 이 정도라도 봤다만...
비조재 건너편 677봉인데... 빼먹고 질러갔다
옥잠봉에서 내려오다가 가시나무를 이리저리 피하다보니 오른쪽으로 벗어난다. 뚜렷한 능선이 아니라 어디가 마루금인지도 분명치 않다.
왼쪽으로 방향을 고쳐잡아 내려가니 수렛길이 넘어가는 안부고개이고 우측 비탈은 과수원 흔적이 남아 있다.
왼쪽은 경상도에 오른쪽은 전라도인데, 전라도쪽만 엉망이다. 현재도 작업중인지 기계톱 소리가 들린다. 어느 기관인지 몰라도 숲가꾸기 사업 좀 제대로 해줬으면 고맙겠다.
덤불을 피해 우왕좌왕 하던중에 바닥에 깔려있는 녹쓴 철조망에 발이 걸려 제대로 자빠링 한번 먹었다. 밤송이가 널려있는 밤나무밭이고, 우측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올라선 봉에는 역시나 문패없는 묘가 있고, 내려가면서 우측에 터진데가 보여 빠져나가니 과수원이다.
과수원 주인아저씨와 귀농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제대로 된 길이 없어 과수원 안쪽으로 내려섰는데, 사과나무 전정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나 그렇듯, 남의 땅에 침범한 상태라 욕 먹을까봐 눈치부터 보는데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건내온다.
제주에서 이주한지 한 5년 된다면서, 제주에 밭을 10만원(평)에 팔고 여기 밭을 4만원에 샀다고,
다른데서 본 사과밭과 다른 모양이라 이것저것 물어봤다. 부사 사과로 '밀식재배' 방식이고 아영면 일대 기온이 일교차 10도 정도로 사과 재배에 적합하다네. 고도를 보니 500 정도라 낮은 지대는 아니다.
또 사과밭 1000평에 3000만원 매출을 냈고, 사과 한주에 10만원 정도 나온단다. 파이프를 세우고 관수시설에 투자비가 쏠찮게 들었겠다. 귀농에 관심이 있어 한참동안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비조재
비조재(520m)
전라도 밤골에서 경상도 구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전라도는 시멘포장이고 경상도는 흙길이다. 수레길 따라 올라가니 지도에 없는 못이 있다. 비가 오는 줄 몰랐는데 저수지 수면을 보고서 비가 내리는 줄 알았다. 물방울이 떨어져 둥근 파문이 생긴다.
비조재에서 마루금(도계)은 ×677봉까지 올랐다가 다시 U턴 하다시피 내려오는 그림이라, 평소 잘 안쓰던(!) 축지법 한수 뽑기로 한다. "삼각형 두 변의 합은 다른 한변 보다 길다"는 피타고라스 선생의 정의로는 양이 안차고,
"ㄷ자의 한쪽 변은 다른 세변의 합보다 윽쑤로 짧다".... 조은말씀.
축지법 신공
지도에는 없는 비조재의 저수지
저수지 윗쪽을 가로질러 바로 건너갔다. ×677봉 찍고 내려왔으면 4-50분 걸릴 일을 10분만에 조져버렸다. 옆꾸리 전법을 구사하여 가로질러 마루금에 복귀하니 고속도로 차소리가 들리고, 밤골마을 농로를 따라 내려가니 88고속도로다.
88고속도로
왼쪽 저 아래에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육교가 보인다만, 웬만한 국도보다 못한 고속도로라 건너 가는데 전혀 문제될게 없다. 건너편 둔덕을 올라서니 국도인지 지방도 인지 37번도로가 지나간다. [매치마을] 표석과 버스정류장이 있다.
매치 Bus Stop
좌우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건너편 산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에는 덤프트럭이 흙을 가득 싣고 들락거린다.
왼편 집은 경상도댁이고 오른편 집은 전라도댁이라.... 연비지맥 마루금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시멘트길 따라 끝까지 올라가니 임도는 우측으로 넘어가고 묘 뒤쪽 산길로 올라간다.
산길에 붙자말자 급비탈로 쳐 올리고 20분간 낑낑대며 올라갔다. 우측사면으로 희미한 길이 보여 몇발 들어가보니 질러가는 길이 아니라 골짝으로 들어가는 방향이라 도리없이 치고 올랐다.
×641
×641봉 올라서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후덜덜덜~~~
덜덜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니 길은 점점 뚜렷해지면서 이런 길 상태는 오늘 끝 마치는 팔령까지 이어진다.
×641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500m 내려 온 지점에서 우측 비탈로 꺾인다. 직진 길이 더 뚜렷해 까딱하면 직진할 뻔 했다. 우틀해 내려가면 다시 벌목작업중인 능선이다. 굵직굵직한 소나무를 잘라 모아놓고 산판도로까지 나있다. 산판로는 우측 아랫마을로 내려가고 왼쪽 벌목지로 올라가니 능선 끝지점 묘 있는데까지 벌목 판이고, 묘에서 좌틀하면 다시 솔갈비 깔린 길이다.
숲가꾸기 사업이 아니라 숲조지는 사업이다.
학생김해김공 (1834~1888)
석관으로 된 김해김공 비석을 보니 生 1834에 卒 1888년이니, 19세기 사람이다.
배골고개
우측 배골로 넘어가는 고개. 왼편에 리본이 걸려있지만 우측으로 비켜 임도따라 올라간다. 벌목작업 하면서 낸 산판도로다.
뻘밭이다.
물 젖은 땅이 질퍽거리며 신발에 흙이 한 웅큼 달라 붙는다. 배골마을에 절집같은 기왓집이 여러채 보인다. 너저분한 벌목 잔해를 우측으로 피해 오르고, ×568봉에 올라서니 비로소 벌목은 끝이고 다음봉에서 우측이 아영면에서 인월면으로 바뀐다.
솔갈비가 푹신하게 밟히는 능선길에 앞에 보이는 연비산은 구름속에 들어가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얼반 죽겠구나 싶었는데 정말로 반은 죽었다.
구름속 연비산
진양치 (570m)
지형도에 晉陽峙라 표기된 데는 고개가 아닌 능선이다. 울긋불긋한 비닐인지 천막인지 무당집의 잔해인지 쪼각들이 널려있다.
잡목도 벌목도 없는 호젓한 능선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연비산 안부에는 윤활유 깡통이 버려져 있다.
연비산
연비산 (842.8m △운봉23)
길고 지루한 비탈길을 꾸준하게 오른다. 고도를 올릴수록 구름속에 잠기면서 시계는 거의 없다. 빗방울이 날리는듯 하다가 싸락눈이 내리고 정상에 올라서니 제법 굵은 눈이 펄펄 날린다. 2등 삼각점이 있고 바로 앞에 묘 하나 있는데 문패는 없다.
현행 국토지리정보원 25000지형도에는 ‘연봉산△842.8m’ 이고, 좀 오래된 5만 지형도에는 鳶飛山 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鳶峰') 鳶솔개 연, 飛날 비. 연비산이다.
국토지리원 고시
행정구역 |
전라북도 |
지명종류 |
산 |
고시지명 |
연비산 |
표기지명 |
연비산 |
유 래 |
영남과 호남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는 유명한 산으로서 산 형이 연비예천한 것 같다 하여 연비산이라 하며 속칭 솔비산이라 하기도 함. |
박성태님께 여쭤보니,
"함양군 백전면 소재 연봉산(1961.4.22 고시)은 연비산으로 변경 고시(2002.1.5)되었는데 지도 표기가 잘못된 것이고..."
연비산이 맞다는 말씀이다.
연비산에서 내려서고 동쪽으로 ×822봉 곰실재쪽으로 무심히 오르다가 우측 갈림길을 놓치고 그대로 올라갔다.
×822 정점까지 오르기 전에 우측으로 갈라진다. 도계능선인데 모자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채 오름에 열중하다보니 옆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못봤다. 뒤돌아 내려와 들어가니 묘 하나 있고 능선이 뚜렷하게 살아난다.
[지리산낙농협동조합육성우위탁사업장] 가는 길
고갯길 (650m)
뭔 사업장 이름이 이렇게나 긴지. 지형도에도 글자 몇개 빼먹고 "지리산낙농협육성우위탁사업장"이라 적혀있다. 우측이 지리산 거시기사업장으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라. 정면 둔덕으로 올라서고 살짝 넘어가니 다시 홈통같은 고갯길인데 사람이 다닐 길은 아니다.
앞 둔덕을 올라서니 아주 넓은 공터는 헬기장 같은데, 보도블록이 여기저기 보인다만 풀만 잔뜩 우거졌다.
헬기장
다시 상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지형도를 봐도 연비산보다 더 높다. 이제부터 일반 산악회 리본도 여럿 보이고 길은 한층 뚜렷하다. 급비탈길과 바윗길에는 굵은 로프가 메여있다.
한 고비 올라설 때마다 멋드러지게 보이는 전망바위가 자주 나온다만 눈에 보이는건 허연 구름뿐이라. 아쉽다~!
빡센 비탈이 다하고 잠시 평탄하다가 다시 쳐 올린다. 보이는게 없으니 더 죽을 맛이다.
오봉산(상산) 오름
조망 좋다... 닝기리~
옥녀봉 갈림길
팔령에서 오봉산을 올라 옥녀봉쪽으로 가는게 일반적인 산행코스로 보인다. 옥녀봉(802m)은 동쪽 3.2km 거리이고 나무 계단으로 된 등산로가 열려있다. 오봉산 정상은 우측(서)으로 0.1km, 올라 온 쪽으로는 [웅곡1.4km]를 가리킨다마는 웅곡은 함양읍인데 그쪽에서 올라 온 길은 보질 못했다.
오봉산 (상산)
오봉산 (879m)
역시 지형도에는 霜山(상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연비산처럼 '오봉산'으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정상석에 오봉산이고 옆 안내문에는 상산에 대한 설명이 있다. 조망은 4통8달 하겠으나 구름 없을 때 이야기이고 지금은 말짱 개털이다만, 좋게 생각해서 거저 신선이 된 기분이라 하자.
<함양지명유래>
오봉산 五峰山 [異] 상산(霜山), 서리산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이다 고도:879m. 남쪽으로 서룡산·삼봉산·법화산 줄기와 마주하였다. 옛 문헌에는 상산(霜山)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지역주민들은 ‘서리산’이라고 불렀음이『조선지지자료』에 의하여 확인된다. 그리고 남원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라고 하여 오봉산이라고도 불렀다. 2009년4월부터 국토지리정보원의 고시로 상산에서 오봉산(五峰山)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과『천령지』에“ 상산은 군 서쪽20리 지점에 있다. 여러바위가 다투듯 빼어난데 형상이 칼날같다. 산 밑에 골이 하나 있는데 홍무(洪武) 경신년(1380), 왜적을 정벌할 때에 병기를 저장했던 곳이다”라고 기록 하였다.『 함양군지』에서도 “백운산이월경산을 지나 남쪽으로 내달려 이 산이 되었다. 산 위로는 장단(將壇)과 수치서(竪幟處)가 있고 산 아래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어 일명 둔기(屯基)라고 한다. 우왕6년(1380)에 이성계가 왜군을 정벌할 때 이 골짜기에 병사를 감추어 왜장 아지발도를 죽였다”고 덧붙여 기록하고 있다. 『영남지도』(함양), 『조선지도』(함양), 『광여도』(함양), 등의 여러 군현지도에서 상산이 표기되었다.
정상석 안내판 모두 경남 함양제품이다.
전북과 도계에 위치하지만 전북에서는 신경 끊었나 보네. 건너편 삼봉산이 마주 보일 장면이다만 바로 옆에 있는 봉도 희미하게 윤곽만 겨우 드러난다.
요런 봉우리가 다섯이라 오봉산이라는데...
하산길로,
계속해서 이정표에 오불사가 표시되어 있는데 정작 지도에는 없으니 어디 있는 절인지 모르겠네.
왼쪽 [오불사1.2km]는 무시하고, 정면 [팔령3.1km]쪽이 지맥이다. 올라가면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풍광 한다마는...
"절로 가면 절이고, 일로 가면 지맥이다... 아흐~~!"
×875
올라서면 작은 헬기장 모양의 동그란 공터다.
무심히 내려가다가 우측 위 능선에 보이는 이정표가 있어 올라가보니 여기가 지맥이다.
"언제 갈라졌노... 못봤는데?"
왼쪽 사면길은 오불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정표에 써진 [오불사능선로] 방향으로 다시 고쳐잡아 이어간다.
이 계단이 없을 때는 어떻게 올라갔는고? 옆으로 돌아갔나...?
갈림길, 우틀~!
갈림길
남서방향으로 계속 가는줄 알았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으로 살짝 굽어 진다. 이정표가 없으면 거의 직진할 장면이다
직진[팔령산성]이 아니고, 이정표 뒤쪽 [영선사·인월, 팔령입구]이다. 싸락눈이 모자에 따닥거린다.
긴 능선길에 고도가 좀처럼 죽지를 않고 오르내림이 계속 이어지니 마음만 바쁘고 걸음은 더 지친다.
오봉산 하산 40분 만에 비로소 왼쪽(남)으로 꺾는 지점이다. 정면은 인월 자래리로 가겠고, 지맥은 뚜렷한 왼쪽 내림길이나, 오히려 여기서는 어긋나지도 않겠다. 아주 급한 비탈길이 물을 먹고 진탕이라 함부로 밟지를 못하겠다. 전에 산불이 났던지 황량한 일대에 작은 묘목이 심어져 있는데 굵직한 소나무 하나는 산불은 용케 피했는지 살아 있긴 하다만 허리를 다쳤나 보다.
아가들 보살피는 엄마 소나무 (산불지대)
성산고개
묘를 통해 내려가니 우측 밭을 통해 성산마을이 보이고, 전라도 성산에서 갱상도 팔령으로 넘는 고개에는 이정표가 있고, 정면에 산성같은 돌담이 보인다. 우측 마을로 빠질려다가 산성인가 싶어 올라간다.
팔령산성
성벽같기도 하고, 산성인가 싶어 돌아보니 규모도 작아 이게 성인가 싶지 않다. 빙 둘러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비가 오는데도 농부는 지게로 비료를 나른다.
우측에 아담한 못이 보여 일부러 내려가봤다. 성산지에 발을 담근 정자는 흥부각이다. 흥부마을 간판도 있다.
인월 성리마을에도 여기저기 '흥부마을'을 표기한 안내문이 눈에 띄였고, 여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원 인월면은 흥부 출생지이고 아영면에는 흥부 비석이 발견되었느니 하면서 서로 자기네 면으로 흥부를 끌어 들인다.
내 기억에는 흥부전 첫 머리가 "경상, 전라, 충청 어름에..."로 시작되는데, 그렇다면 현재 백두대간 삼도봉이 바로 그 동네가 되는디,
흥부가 언제 남원으로 이사를 왔는가? 남원골 온 천지가 흥부 나와바리다. 놀부마을은 왜 없는지 몰라....
성산지, 흥부각
흥부에게 타작할 논이나 있었나...?
박 쪼개고 출세한 다음 귀농한 곳인가...?
능선따라 내려가니 [함양 팔령산성] 안내문이 있다
오봉산과 삼봉산 사이의 안부인 팔령은 교통 요지이므로 방어선 구축이 필요했을 꺼라.
육군병장 출신도 이 정도 통빡은 굴린다.
24번국도 팔령
팔령 (490m)
24번국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팔령마을이라 '팔령'이 되었나 보다. ‘팔랑치’하면 바래봉에서 서쪽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라, 이곳과 이름이 혼동 된다.
대동여지도에 八良峙 (팔량치)로 표기되어 있는데, 문경새재, 죽령, 추풍령, 육십령과 함께 팔령은 영남지방을 다른지방의 생활권과 연결하는 주요 통로중 하나다. 다른 고개는 모두가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이나 팔령은 연비지맥이다. 추풍령, 육십령에서 내려 온 백두대간 고개는 여원재 인데 여원재는 양쪽 모두 전라도땅이고, 道를 가르는 고개는 이곳 팔령이다. 팔령이 영남의 울타리가 된 연유는 여원재보다 높아서 일까...
<함양군 지명유래>
팔량재 八良- [異] 팔량치(八良峙), 팔량령(八良嶺)
군의 함양읍과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고도513m. 연비산과 삼봉산 사이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전라북도의 남동 산간지역과 도의 북부 산간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팔량관(八良關)이 설치되어 관문 역할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과『천령지』에“ 팔량현은 군 서쪽30리 지점에 있다. 전라도 운봉현 경계로서 요충지대이다. 고개위에 신라 때 옛 진터가 있다”라고 적었다. 『함양군지』에는“상산(霜山)이 남쪽으로 내달은 것이 이 고개이다. 전라도 운봉현의 경계이자 요해처이다. 고개 위에는 신라시대의 옛성(壘]이 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팔량재를 통과하는 24번국도가 동쪽으로 함양·안의安義)를 거쳐 거창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운봉을 거쳐 남원에 이른다. 팔량재라는 명칭은 마한의 마지막왕이 행궁을 삼아 최후의 항전을 벌인 무대가 운봉 일대인데 8명의 뛰어난 병사가 지켰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성산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만 버스를 타서 될 일도 아니라 인월택시를 불러 봉화산 임도로 올라갔다.
22,000원 달라는데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만 임도 꼭대기까지 올린 값이라 치자.
택시 기사님이 안내해주는 인월 지리산장 목욕탕에서 씻고, 함양-산청-의령국도를 따라 설렁설렁 넘어 왔다.
국도가 시원하게 뚫려있어 함양에서 단성까지는 고속도로 탈 일이 없어 보인다.
전라도와 경상도 (동서) 화합을 비는
정부시책에 적극 동참하는 흥부씨... 출산 보조금만해도 얼마냐?
다음구간 삼봉산 들머리
비 맞은 중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