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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 뭐가 되었든 한북 오두지맥 1구간
분기점(한강봉과 챌봉 사이)-꾀꼬리봉(380m)-말머리재(39번 도로)-441.2m-기산보루성(△530m)-계명산(직전)-마루금 우회-
도솔암-보광사-됫박고개(367번 도로)-시립묘지-30oo부대 길-박달산 허리)-달구니 고개(포장도로)-삼각점 깃대봉-△168m-
석불입상-양지동 고개(78번 도로)-부대-시멘트도로-기독교 묘지-파주 오산산업단지-56번 도로-s교회기도원 공원묘원-부대-
공원묘지 도로-천주교 공원묘지-도내리 고개(78번 도로)-△46.8m-경의선 철로 1번 국도
도상거리 : 23.5km
소재지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장흥면, 고양시, 파주군 광탄면, 조리읍, 월롱면
지형도 : 영진 지도
◁개 요▷
신산경표가 발표되면서 예전 한북정맥상의 한강봉(476m)에서 챌봉(516m)사이의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가며 계명산-
박달산-월롱산-기간봉을 거쳐서 현재의 전망대가 자리한 오두산(119m)에서 곡릉천 으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5.70km의
능선을 새로운 한북정맥이라고 하고, 또는 오두지맥이라고도들 한다
까짓! 그 지명이 무슨 문제겠는가! 아주 엉터리 지명만 아니라면 말이다
너도나도 마루금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간다하니 나도 한번 짬이 날 때 가볼 뿐이다
말머리재는 송추에서 백석 가는 버스가 있는 것 같다
차량으로 이동하며 지나가는 버스를 보았는데 번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택시를 이용한다면 제법 요금이 나올 것 같은 거리라고 생각된다
정맥 분기점을 지나고 송추 유스호스텔의 말머리재에서 기산보루성 봉우리를 오르고 고령산 분기점 까지는 일반 등산로가 펼쳐져
있으니 방향만 생각하고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만 공군부대의 정상을 직접 지나지는 않고 앵무봉으로 우회했지만 다른 마루금 지날 때 처럼 그런 방식으로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됫박고개부터 본격적으로 군 시설물, 작전 길, 공원묘지를 가르는 마루금은 지형도에 마루금을 확신을 가질 만큼 제대로 그었다면
(방향을 믿을 만큼) 그 마루금에 나침반에 의한 방향만 제대로 따른다면 무덤에도 족적이 있고,
군부대 나 훈련장 일대는 당연히 오랜 기간 군인들이 다져놓은 족적들이 다져져 있다
물론 중간 중간 헷갈리는 곳은 있겠지만 말이다
상당한 도로와 임도 군 작전 길, 공원묘지 진입로 및 그로 인해 생긴 임도 및 산판 길이 계속 이어져 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마루금만
제대로 그었다면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순전히 고도의 독도에 의존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런 날은 선답자의 족적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짧은
구간에도 엄청난 시간을 소요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선답자 들은 표지기 남발은 자제해주기를 바라고, 지금도 남발된 것 같다
언급했듯 됫박고개 까지는 별 걱정 없이 진행될 것이고 무덤을 지나 오른 No70번 송전탑 인근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능선을 따르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이 후 박달산을 향한 내리막과 부대를 지나고 마루금은 박달산 정상은 오르지 않으니 그 점을 명심하고 오르든지 말든지 인데,
문제는 박달산 오르기 전 방향이 꺽이며 진행하다가 달구니 쪽 무덤지대와 공장지대로 방향을 확 바꾸는 지점에서 독도주의 할
일이다
이 후 양지말 고개까지는 후기를 숙독하면 문제가 없을 듯싶다
양지말 마을 뒤 부대철조망을 끼고 오른 봉우리에서 고목나무가 있는 공터의 공장(?)이 있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기 전의 꺽임봉
에서 주위를 할 일이다
파주출판단지 및 금식기도원 일대를 지나는 것은 후기를 숙독하면 문제가 없다
60xx부대 철조망을 따르다가 천주교 묘지지대로 내려설 때의 우측으로 뚝 떨어져 내리는 마루금 찾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마지막 46.8m봉 직전의 넓은 공터 헬기장에서 인공수로 공장지대로 내려설 때 독도 주의다.
◁산행 후기▷
2007년 2월 19일 (월) 설 연휴기간 날씨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와 맑음
홀로산행
-한북정맥 분기점-
애당초 이 능선에 대한 관심과 계산조차 없었다
짧은 설 연휴기간에 서울의 남쪽은 교통대란인 것이 뻔하니 서울 북쪽으로 산행을 계획하다보니 어차피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이니
평소 생각지도 않고 가기 어려운 이곳을 생각하게된다
사전에 확대된 1/5만의 지형도에 마루금을 긋는데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몇 몇 군데는 거의 어려울 정도지만 선답자 들의 흔적도 이용해 보기로 하면 문제없을 것 같다
18일이 설날이니 17일과 19일에 걸쳐서 끝내버리려고 했던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쨋건 연휴라는 부담감이 없는 탓인지 17일 폭음 후 늦잠에서 깨어나니 산행은 날 새고,
핑계 김에 결혼해서 처음으로 설 제수 장보기도 같이해보고 밤도 치고 집에서 뭘 도와준답시고 어슬렁거리다가 고소한 음식 냄새에
동해서 또 몇 병 마시고 잠자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설날 또 마시고 자고 마시고 자고를 거듭하니 몸이 상당히 둔해진 느낌이다
“송추유스호스텔”이 자리한 말머리재 까지는 아내가 태워다 주고, 도착이 07시56분이다
역으로 한강봉 쪽으로 빠르게 오르는데 주위는 자욱한 안개로 조망이 없고 볼품이 없다
08시09분에 도착한 한강봉과 챌봉 사이의 분기점에 도착하니 요란스럽게 한북정맥과 도봉지맥을 안내하는 친절한 산악회의 표시
들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산에서는 산 그 자체만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하여튼 원 한북정맥이든, 도봉지맥이든 오두지맥이든 ... 그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땅의 마루금을 한번 이어가보며 직접
확인하는 그런 것들이 내게는 중요하다는 생각,
◁한강봉과 챌봉 사이 분기점에는 조금은 요란스럽다▷
-기산보루성-한강봉이나 챌봉을 올라가서 다시 역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2000년3월 어느 날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만족하며
다시 서쪽을 바라보며 올라온 길을 가기로 한다
08시13분 안개가 자욱하고 별로 보이는 것이 없는 가운데 서쪽으로 내려선다
서울 인근이 여느 산들같이 때 국물이 흐르는 듯, 새카맣게 찌들은 참나무들이 안개 속에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그런 평범한 능선이다
출발 5분 후 살짝 오른 평범하고 공터의 봉우리가 “꾀꼬리봉”으로 표기된 곳인 모양인데 그냥 스쳐지나가기 딱 좋은 그런 곳이다
하기야 바로 아래 말머리재인데 대수랴!
08시21분 조금 전 차에서 내렸던 말머리재로 다시 내려서고 전면의 유스호스텔 정문 좌측의 턱으로 오르니 자연스럽게 건물 뒤의
좁은 능선을 따르게 되며 건물 뒤 가파른 곳으로 올라서니 도로에서 5분 후 봉우리 하나에 올라선다
살짝 내려섰다가 폐타이어들의 군사 시설물이 보이는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서 공터같은 봉우리로 올라선 곳이 △441.2m 정상으로
판단되지만 삼각점 확인은 하지 못하고 내려서니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08시34분)
대체적으로 안개 때문에 아래는 아예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저 앞으로 큰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내려서고 2분 후 오름길이 시작되고 밧줄도 걸쳐있는 오름길을 오르니 공터에 구덩이가 파여진 봉우리에는 “현 위치 헬기장 →
기산보루성”을 가르키는 팻말이다 (08시42분)
다시 내려서면 평탄한 길이고 7분 정도 올라서니 석축이 쌓여있는 해발 530m의 기산보루성 이다(08시52분)
◁말머리재 건너편으로 유스호스텔이 보이고, 아래 사진 441.2m봉 정상이다▷
◁기산보루성 정상과 삼각점▷
◁서쪽으로 게명산이 보이고, 아래 사진은 동쪽 뒤돌아보니 안개 속에 좌측 한강봉이 가늠된다▷
-수리봉 분기점-양주시 전지역에 분포된 28곳의 보루성중의 하나인 기산보루성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출토된 토기들로 보아서 삼국시대
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봉화를 피웠던 봉수대로 활용했지 않을까하는 추측도 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계속 사용
되었던 흔적이 있다한다
“문산467 1992년 재설”의 삼각점도 있지만 지도상에서 삼각점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포근한 날씨에 가벼운 겨울 복장을 하고 있지만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니 반소매로 갈아입고 뒤돌아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지만 안개
속에 보이는 것은 없고 진행할 서쪽으로 계명산의 군 시설물들만 바라 보인다
09시03분 “기산보루성“의 봉우리를 출발,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곧 평탄해진다
연휴 이틀 동안 폭식과 폭음으로 둔해진 몸이 완연한 것이 걷는 것이 불편할 정도이니 나도 이제 절제하며 계획된 생활을 해야지
더 오랫동안 산행을 할 수 있을까!!!
평탄하게 걷다가 마지막 2분 정도 오른 09시14분 오른 곳은 남쪽 “수리봉“으로 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인데 안개로 보이는 것은 없고
”전망대 가는 길” 팻말만 보인다
우측(서쪽)으로 내려서면 아래쪽으로 안개가 자욱해서 꼭 깊은 호수 속으로 쳐 박히듯이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분지 같은 내리막으로 내려서서 안개 속을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에 반소매 차림의 팔에는 붉은 색의 소름이
돋아있다
◁안개의 늪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아래사진은 올라선 전망대 바위▷
-앵무봉-남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은 바뀌고 약 10분 정도 오르니 바위로 이루어진 전망대에 오르니 계명산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깝지만 바위
절벽 아래는 안개로 보이는 것이 없다 (09시28분) 노송과 어우러진 바위지대를 내려서니 능선은 키 큰 진달래 군락들이 펼쳐지면서
군사지역임을 알리는 89xx부대장의 경고문들과 지뢰표시들이 보여진다
7분간의 오름이 이어지면 계명산 분기 헬기장에 올라서는데 좌측의 마루금에는 공군부대가 자리하고 선답자들은 통과할 수 없으니
우측의 앵무봉쪽 에서 보광사를 거치는 우회 길을 가도록 권하는데 그동안 마루금을 이어가면서 이 보다 더한 부대들도 숱하게 통과
했는데 여기는 안되는 이유가 뭘까? 하면서도 괜스레 엉뚱하게 시간을 낭비하면 오늘 목적한 월롱 인근의 1번 국도까지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계명산 정상 쪽으로 향하던 발길을 그냥 앵무봉 쪽으로 돌려버리고 만다
억새와 참나무들이 어우러진 공터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7분 정도 가파르게 오르니 앵무봉 정상석 과 군 시설물이 서있는 봉우리이나
북쪽 몇 걸음 저쪽의 헬기장이 더 높게 보여서 올라보지만 북쪽의 기산리나 광탄쪽 아무 곳도 안개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쪽으로 지나온 기산보루성 봉우리와 살짝 한강봉 일대가 보이지만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다
09시57분 앵무봉 정상석이 서있는 봉우리에서 조금 전 헬기장 분기점에서 올라서며 우측으로 보았던 사면 길로 내려서니 2분만에
곧 다시 헬기장이 나타나고 남서쪽 지능선을 타고 5분 여 내려서다가 좌측의 사면으로 꺽어간다
◁들어오지 말란 말이야.... 계명산 정상과 앵무봉 분기점 헬기장▷
◁좌 계명산 장상과 우 앵무봉 정상이 올려 보인다▷
◁앵무봉 정상과 뒤돌아본 지나온 기산보루성 정상부와 능선▷
10시06분 사면으로 1분도 채 휘어지지 않아서 도솔암을 지나려니 불심 깊은 아주머니 한분이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막 산을 내려선다
어차피 이 구간은 마루금과 상관없이 진행하는 것이니 방향이니 이런 것들을 볼 것 없이 뚜렷한 길을 따라 내려서니 최근에 도솔암을
오르는 길을 닦는지 넓게 파헤쳐진 길이 펼쳐진다
대중과 같이하는 불교가 되려면 세속으로 내려오면 될 것이고 그냥 예전부터 산중턱에 수행 정진하던 작은 암자가 있었다면 그저
불심 깊은 신도들이야 힘들여서라도 찾을 것인데 여기저기 자꾸만 파헤쳐지는 것이 안타까워 개인적인 생각으로 궁시렁 거려본다
파헤쳐진 길이라서 그랬을까!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등산객들이 그대로 올라가면 되느냐고 물어오기도 하고,
하지만 반소매 차림의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지 힐끗거린다
10시18분 급격하게 골자기로 내려서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보광사 경내로 내려선다
보광사는 신라 진성왕 8년(894년) 왕명에 따라 도선에 의해 비보사찰의 하나로 창건되었다 하며 당시 국가의 비보사찰로서 한강
이북의 6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215년(고종 2년) 원진국사가 중창을 했고 또 법민 대사가 불보살 5위를 봉안했으며,
계속해서 1388년(우왕 14년)에는 무학 왕사가 삼창했다함,
조선시대에 들어 임진왜란 때에 사명 유정이 이곳에서 승병 3천명을 거느리고 권율과 함께 왜군에 대항하면서 전소했으며,
이때 많은 시체가 이곳에 쌓였으므로 지금도 피밭골 이라고 불린다함,
1622년(광해군 14년)에 설미, 덕인 두 스님이 함께 중건했으며 1634년(인조 12년)에 범종 봉안 불사가 이루어 졌다함,
1667년(헌종 8년) 지간, 석련 두 스님이 대웅보전, 관음전, 등을 재건하는 등을 중수했다하며,
서기 1740년(영조 16년)에는 부근에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 임금을 낳은 숙빈 최씨의 묘인 소령원이 가까운 관계로 절을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아 대웅보전,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했다고 함,
◁도솔암▷
◁보광사 일주문▷
-됫박고개-
많은 음식점들과 차량행렬이 잦은 길을 따라서 나오니 일주문을 지나서 광탄과 고양을 잇는 367번 도로에 나선다 (10시26분)
마루금을 따르지 않았으니 좌측 고양시 방면의 도로를 따라 고개로 오를 수 밖에 없다
차량행렬은 상당하고 반소매 차림의 도로를 걷는 배낭 멘 사람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10시35분 됫박고개에 올라 한 쪽에 자리한 찻집 아주머니의 배려로 작은 물 한통을 얻는다
막걸리 두통과 찐계란 네 개가 전부인데 물조차 준비해오지 않을 정도로 우습게 알았다
됫박고개는 생모인 숙빈 최씨의 원찰을 자주 찾던 영조 임금의 이야기가 남은 곳이라 한다
영조가 다니기 쉽게 '더 파 낮추라' 해서 '더 파기 고개'였다가 뒤에 '됫박처럼 가팔라' 됫박고개가 되었다는데 영조는 매월 초
됫박고개를 넘어와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이러한 효심의 증거가 될 만한 것이 보광사 곳곳에 남아 있는데 대웅보전 오른쪽 둔덕에
어실각 에는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다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3분간 지체하고 절개지 우측으로 올라서니 바로 묘지들이 펼쳐진다 지도를 보면 능선 남쪽 저 아래가 용미리
서울 시립묘지가 펼쳐진 곳이다
바야흐로 오늘 구간 계속되는 공원묘지들과 군부대들이 펼쳐지는 서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묘지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오르는 마루금은 고개에서 6분 후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길과 만난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배낭을
내리고 처음으로 막걸리 한잔과 찐계란 하나를 먹으며 힘을 비축하며 가야할 지도도 숙지하며 11분이 소요된다 (10시55분 출발)
◁됫박고개▷
◁고개를 오르면 묘지대가 펼쳐진다▷
-박달산-
좌측으로 오르는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오르면 3분 후 좌측으로 버린 임도를 다시 만난다
다시 임도를 버리고 3분을 더 오르니 역시 임도를 만나고 이번에는 북서쪽 임도를 따른다
우측 아래로 보광사 일대와 그 뒤로 앵무봉과 계명산 시설물이 보이는 가운데 능선의 날등을 좌측으로 두고 임도를 5분 여 따르면
No 70번의 송전탑의 공터가 나타나면서 그 직전 임도는 좌측으로 흘러간다
임도는 아니지만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은 군 작전 길일 것이다
2~3분 후 내리고 오르면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길은 좁아지면서 교통호들이 나타나고 “2분대 3분대”의 팻말들이 보이면서 북쪽으로
마루금은 이어진다
잠시 후 다시 북서쪽으로 꺽이면서 내려서다보면 전면 멀리 보이는 산은 박달산으로 보인다
11시21분 북서로 꺽이며 잠시 후 진행방향 봉우리로 올라서보니 녹 슬은 모형미사일이 있고 마루금은 봉우리 직전 좌측으로 꺽이며
내려서는데 잠시 후 아주 평탄하고 좋은 길이다
미사일 봉에서 5분정도 내려서니 헬기레펠 훈련장을 지나가고 우측으로 30xx부대 철조망을 끼고 전면의 박달산을 바라보며 내려간다
그리고 4분 후 내려선 곳은 부대 후문이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대로 진입하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고 전면으로 오르면
곧 좌측에서 올라온 군 훈련용 황토 길을 만난다
좌측으로 수류탄 투척장 등 훈련장을 끼고 황토 길을 오르면 곧 넓은 황토 길을 좌측으로 버리고 30xx부대의 목책과 철조망을 끼고
전면의 박달산(369m)을 보며 오른다
◁군시설물이 자주 나타나고 70번 송전탑을 지난 헬기장이다▷
◁모형미사일과 레펠 훈련장을 지난다▷
◁부대 입구의 도로와, 아래사진 좌측 임도를 버리고 목책을 따르면 박달산 오름이다▷
커다란 봉분의 嘉善大夫 무덤을 지나고 부지런히 진행하려는데 일련의 남녀 중년 산행객들을 만난다 이런 산에서의 만남이라
“마루금 타세요? ”
물었더니 됫박고개에서 시작해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일산의 팀이라기에 잠시(5분소요)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진다 (11시41분)
박달산 정상을 향해서 오르려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는 것은 굳이 마음에 끌리지 않는 이 구간 에다가 눈으로 보이는 일대의 산들이
다 그렇고 그럴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판단 때문이다
북서쪽으로 향하던 발길을 좌측 남쪽으로 틀어 가는데 저 아래서 조금 전 헤어졌던 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것은 아닌데
들려온다 ??? ... 나 표지기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 싫어해유 ... 그 분들은 이 뜻을 알거다
노간주나무들이 제법 보이는 봉우리에서 남서쪽으로 오르는데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큰 칼을 들고 있어 속으로 깜짝 놀라며
인사를 하고는 달려간다
11시51분 봉우리에 오르고 남서쪽으로 내려서니 우측 아래로 파란색 지붕의 공장들이 보이는데 잠시 후 내가 지나가야할 방향이다
봉우리에서 5분 후 진행방향을 버리고 우측(서쪽)으로 공장들을 내려 보며 내려서면(독도주의) 봉분들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무덤
들과 다른 큰 무덤들이 좋은 석물들과 함께 보인다
명절 끝에 찾아온 몇 가족들이 놀라지 않게 큰 기침을 하면서 지나가고 곧 송림으로 들어서니 족적은 희미하고 주위에 쓰레기들이
널려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공장지대의 시멘트 길을 따를까 하다가 송림의 정통(?) 마루금을 택한 것이 곧 거름으로 쌓아놓은 가축 분뇨 냄새가
진동하는 밭 사이에 무덤도 있는 지대다
◁가선대부 무덤을 지나가고▷
◁분기점서 내리면 무덤지대 지나서 그냥 공장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도 될 것 같다 저 앞으로 마루금의 산이 보인다▷
-달구니 고개-
역시 조금 전 우측의 공장지대 시멘트 길을 따를 것을 그랬나 밭이 끝나니 폐 자재들이 쌓여진 공장 마당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고
곧 황소 같은 개가 끈을 끊고 달라 들것 같이 날뛰는 공장 마당을 빠져나오니 공장지대 시멘트 길이며 “코리아 무대(주) ”장지산 길“
팻말이다 도로가 나타나고 전면 우측으로 “한식부페” 간판이 보이면서 동남아계 노동자들도 보이고,
“달구니“도로를 건너서 전면 좌측 “한신 콤푸렛서” 공장을 끼고 전면으로 보이는 산을 보며 지나는데 여기저기 개짓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린다 공장 뒤로 들어서니 쓰레기와 개집이 보이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을 지나서 빨리 지저분한 숲으로 오른다 초반 잡목과
가시들이 있지만 좌측으로 무덤들이 나타나면서 곧 좋은 길이 나타나고 잠시 후 우측에서 돌아온 길 들이 보인다
12시15분 무덤 지대를 오르다가 햇볕이 잘 드는 무덤 앞에 앉아서 막걸리 한잔과 찐계란 하나로 힘을 비축하며 지도도 숙지하고 시간
을 보내며 보자니 宗氏의 조카뻘 돌림자의 비석이 보여서 혼자서 킬킬 대다가 12시22분 출발이다
4분 후 무덤 끝나고 참나무 노간주나무 숲으로 들어서 오르면 통나무 훈련시설을 지나고 12시30분 깃대와 군 시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로 오른다
북쪽으로 광탄 시가지가 보이고 봉우리 우측(북서쪽)으로 2분 정도 진행하니 우측 아래로 거대한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내려다 보인다
다시 좌측으로 틀어 내려서면 통나무 훈련시설을 지나며 오르면 철 깃대와 훈련용 시멘트 표석이 있는 봉우리다 (12시36분)
우측 아래로 채석장을 바짝 끼고 내려간다
◁달구니 고개, 오렌지 지붕 파란 공장 사이로 진행한다▷
◁철 깃대의 공터 봉우리에 오르면 가야할 능선이 보이고, 아래 진온 능선도 보인다▷
◁채석장은 필요하지만 산을 가다가 보면 언제나 흉물스럽다, 아래 철깃발의 봉우리▷
-용미리 석불입상-
12시41분 교통호가 파지고 “요망수준”의 팻말의 봉우리에서 단단하게 다져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각개전투 훈련장을 지나서 송림의
오름이 시작된다
페 타이어들로 만들어진 각종 훈련장은 송림 아래로 이어져 있으며 2분 정도 오르면 “구급법”의 팻말의 공터를 지나고 가파르게 2분
정도 더 오르면 “서울413 1990년 재설”의 삼각점이 설치된 △163m봉 정상인데 우측 아래로 녹 쓴 철조망과 폐 초소가 보인다
서쪽의 송림으로 내려서다가 폐 무덤을 지나고 남서쪽으로 바뀌는데 금방 진행 마루금의 좌측으로 바위와 어우러진 무엇이 보인다
바로 용미리 석불입상이다
이 석불입상(보물 제 93호)은 높이 17.4m로, 천연암벽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과 머리, 갓을 따로 얹어놓은 불상이며 그 모습이
우람하고 웅장하다
원립 모자를 쓴 부처는 남자, 방립 모자를 쓴 부처는 여자로 전해지는데, 고려시대 선종이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차에 후궁인
원신궁주가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사는 사람들인데 매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가 이상해서 왕께 고하자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 알아보니 장지산 아래
에 큰바위 두개가 나란히 서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고 전해지는
데 이 같은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기자전설(麒子傳設)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1995년에 발견된 명문으로 인해 이 석불입상이 고려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1465년(세조11년)에 국왕(세조)과 왕비(정희황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한 것임이 밝혀졌다
이 쌍석불은 웅장한 크기에 비해 신체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등 서투른 조각수법으로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토속적인 얼굴과 자연스러운 미소가 정겨운 모습이다
◁군 훈련용 길이라 너무도 뚜렷하다▷
◁삼각점과 폐 초소건물▷
◁용미리 석불입상▷
-양지동 고개-
사진을 찍느라고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며 4분 지체,
다시 우측의 마루금으로 올라서서 북서쪽으로 내려간다
석불입상 아래 자리한 용암사는 들리지도 않고 그대로 내려가는 것이 후회스럽다
바로 오랜된 석물의 무덤을 지나는데 자연석의 오래된 비석의 한쪽 면에는 총탄자국이 있어 아마도 6.25 한국전쟁 때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2~3분 걸려 내려서면 우측 아래로 절개지 그물망을 잡으며 내려서면 “삼진콘크리트(주)” 공장 내부로 내려서고 도로를 따르면
곧 양지동 78번 도로를 건넌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동남아 쪽으로 보이는 근로자의 모습이 이제는 수도권 인근의 마루금을 타면서 낮 설지 않은 모습이고
건너편 양지가든 옆의 슈퍼로 들어가서 캔맥주 하나를 마시는데 아주 어린 고양이 새끼 5마리가 앙증스럽기 짝이 없다
무슨 동물이든지 새끼 때는 저리도 예쁜데하며 사진을 찍는데 고양이 5남매의 기구한 사연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다는 고양이 남매
들은 태어난지 이틀 후 생매장 당할 처지였다는데,
새끼 놓은 어미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서 이틀 동안 소식이 없다가 인근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가
매장하려가는 새끼들의 소리를 듣고는 나타나더란다
병원으로 데려가도 다리를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젖 때문에 주사도 못 맞고 깨끗이 씻어주기만 하고 영양분을 생각해서 생선만
먹였더니 오로지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서 헌신을 하더란다 제 편하겠다고 요즘 같이 자식 버리고 집 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 새삼 새끼를 건드려도 어찌하지도 못하는 어미 고양이가 대단해 보인다
703번 서울역-광탄 간의 버스가 지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끊어서 타는 사람들은 참고하면 될 것 같고 맥주를 마시고 아주머니와
고양이들과 작별하며 13시18분 출발이다
◁총탄 자국의 비석을 지나면 바로 삼진콘크리트 공장을 지나간다▷
◁양지동 고개와 이 안내판 옆으로 지나간다▷
◁그 놈들▷
용미1리, 6010부대101대대 표시판의 도로를 따라 우측의 부대 정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붙으니 곧 부대 철조망이다
철조망을 우측으로 끼고 따르니 곧 양지말 마을이 보이고 밭을 끼고 마을길로 내려서면 철조망 좌측으로 오렌지색 지붕의 농가를
끼고 산으로 오르니 개를 키우는지 여기저기 개짓는 소리가 요란하다 (13시26분)
곧 “부대전술훈련장” 간판과 함께 송림으로 오른다
뒤돌아보면 부대 뒤로 지나온 아스콘 공장 뒤 봉우리와 더 멀리 박달산 능선들이 보인다
5분 여 오르면 교통호들 파여진 황토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살짝 향하다가 남서쪽으로 내려서고 2분 정도 가파르게 올랐다가 우측으로
꺽어 아주 짧게 오르면 다시 공터 봉우리다
13시41분 봉우리에서 북서쪽으로 내려가면 “부대전술훈련” “크레모아조작” “지뢰 및 부비츄렙” 등의 타이어 지역을 지나고 몇 걸음
내리고 오르다가 봉우리를 오르기 전에 좌측의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우측으로 비슷하게 능선이 흐르는 것으로 보여
지지만 그 능선은 곧 이어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도주의)
이 후 능선은 북, 북서, 북동으로 지그재그로 평탄하게 이어지고,
13시55분 우측(북동)으로 지능선 갈림길도 보이면서 저 멀리 78번 도로 건너 쪽으로 사적제323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명장이던
“윤관장군 묘역”정도로 판단되는 곳도 보인다
잠시 후 T자 삼거리에서 좌측(서쪽)으로 꺽이면 2분만에 오르고 내려서면,
14시05분 지도상에 표시도 없는 시멘트 도로에 내려서는데 큰 고목이 서있다
우측으로 녹 쓴 철문의 넓은 공터에 컨테이너와 작은 건물들이 보인다
◁민가와 철조망 사이로 오르면 군 훈련 시설을 지나 오른다▷
◁이 지역을 독도주의 지역이고, 아래사진은 내려선 고목나무 시멘트 길▷
-파주오산 출판단지-
다시 전면으로 오르자니 조금 전 공터 건물 더 아래로 “우진화학”간판의 공장도 보인다
5분 만에 오르면 “대부지 경계“노란 표시와 무덤지대 봉우리다
북쪽으로 넘어서면 공원묘지들이 펼쳐지고 내려선 잘록이에는 철문 하나가 막고있고 우측으로 바짝 치고 올라온 공장 건물도 보이고,
좌측 아래로는 부대가 있는지 함성이 들려온다
철문을 지나서 오르면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를 우측으로 버리고 교통호를 따라 오르고 거의 북쪽이다 다시 내려서면 잘록이 임도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임도를 버리고 묘지대 꼭대기로 올라서면 방향은 북쪽에서 다시 서쪽으로 바뀌면서 지나는데 조상들의 묘를
찾아온 가족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내려서다가보니 능선 좌측 저 아래 잘 조성된 납골당 3기가 보이고 곧 소나무들을 최근에 벌목해
놓은 곳을 지나는데 아마도 뭔가 공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얼마 후 무엇인가 조성되면 이 내용과도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북서쪽으로 향하면서 3분간 벌목지대를 지나니 곧 송림으로 내려간다
부드러운 송림을 따라서 3~4분 정도 진행하다가 내려서니 전면에 “삼조인쇄” 공장이다 (14시34분)
연휴인데도 일들이 밀렸는지 공장가동소리가 들리고 창문으로 일하는 직원도 보인다
지도상의 “파주 오산지방산업단지”로 보이며 이곳부터 마루금은 출판단지 조성을 하면서 훼손되어 전면으로 보이는 도로를 따라서
“동원로“가 지나가는 삼거리까지 가야한다
도로를 따르다가 인쇄공장 맞은편의 쉼터가 있어 의자에 앉아서 막걸리 한잔과 계란 하나로 요기를 하며 조금 전 처음이자 마지막 본
無心이 의 표지기가 생각나서 전화도 해본다
매번 하는 소리지만 후답자들을 위한답시고 너무 많은 표지기를 붙이는 것은 공해에 앞서서 찾아가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지도와 나침반을 보는 즐거움도 빼앗는다 제발!
14시43분 휴식터를 출발해서 그냥 도로를 따라 다시 산행 아닌 도보 행을 시작한다
◁묘지지대 잘록이 철문과, 아래사진 좌측으로 납골당이 보이면서 내려간다▷
◁벌목지대를 내려서면 파주인쇄단지가 펼쳐진다▷
◁도로를 따르는 마루금은 오산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기도원-도로를 따르며 7분 후 차량통행이 아주 많은 58번 도로상의 “동원로” 표지가 붙은 곳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바로
전면의 둔덕으로 오를까 해보니 철조망이 있다
좌측으로 인도를 따라 진행하면 금방 “최자실 금식기도원, 영산 수련원 공원묘지” 입구다
차량통행이 빈번한 기도원 입구의 도로를 따라가다가 기사식당에 잔치국수 등이 보여서 들어가 보니 밥 밖에 안된다니 시간도 걸릴
것 같고 그리 끌리지 않아서 그냥 가기로한다
한참을 가다가 기록을 하려고 메모지를 찾으니 없다 ... 에구! 이걸 어떡하나! 식당으로 달려 가보니 있다
다행이다 돈 잃은 것보다 더한 아쉬움이 잠깐 동안 머리를 혼미하게 한다
s교회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엄청난 차량행렬과 산재한 건물들을 보니 새삼 그렇다
주차장 인근에서 서쪽 묘지지대 위의 정자가 자리한 봉우리를 향해서 묘지 중앙의 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우측의 무덤 한 쪽에 무언가
먹다가 체해서 토악질을 하는 듯 악~악~대는 괴성이 들리길래 바라보니 어느 여신도가 계속 내지르는 무슨 행위(?)이다
(전위행위 ???) 묘지 여기저기서 상당히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니 여느 기독교 공원묘지와 다른 느낌이다
정자를 지나서 봉우리에 오르니 좌측으로 더 높은 곳이 보여서 올라보지만 마루금과 상관없고 가야할 능선은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눈에 들어온다 (15시08분)
묘지지대라서 그런지 노간주나무들이 유난히 많은데 지도와 나침반을 보며 다시 숙지한 후 15시14분 내려서니 바로 잘록이 좌측으로
공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폐유 통들과 기름들로 마루금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냄새까지 진동이다
◁기도원으로 따르다가 묘지 위 정자가 있는 봉우리로 오른다▷
◁기름으로 오염된 마루금▷
-천주교 공원묘원-
곧 60xx부대 철조망이 이어지면서 북쪽으로 철조망을 끼고, 우측으로 무덤을 끼고 진행하면 15시19분 부대 후문인지? 철문이 나타
나며 우측으로 부대접근을 우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임도가 나타나며 건너서 다시 철조망을 좌측으로 끼고 서쪽으로 오름 길이다
후반부라서 그런지 오름에 힘이 조금 드는 느낌이고 후문에서 9분 정도 올라서니 우측으로 능선이 보이지만 볼 것도 없이 그냥
철조망을 따르는데 저 아래 공원묘지들이 광활하게 보이고 송전탑들도 많이 보여진다
그러나 15시35분 만난 철문이 후문으로 보여지고,
15시42분 서쪽의 해를 보며 오르다보니 우측(북쪽) 아래로 공원묘지들이 보이면서 마루금은 그 쪽으로 이어지는데 진행하던 쪽 멀리
높은 아파트들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금촌읍 쯤으로 짐작된다 7분 후 우측 북쪽 공원묘지 쪽으로 급하게 내려서니 넙은 비포장 길이
나타나고 다시 오르는 곳도 여전히 천주교 공원묘지가 이어진다 2분 정도 북쪽으로 오르다가 좌측의 서쪽 묘역을 따르다보니 어느새
북서쪽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묘지 철조망 너머로 뚜렷한 임도와 능선이 이어가는 것이 보이지만 그어놓은 마루금은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도내리
“도감골”로 흐르는 능선인 모양이다
15시59분 철조망 철문 인근의 경주 김공 무덤에서 기록 및 지도도 숙지하며 3분 지체,
남서쪽으로 잠시 이어지는데 조금씩 지치는 느낌이다
2분 후 광산 김공 바오로“ 무덤에서 숲길로 들어서며 무덤은 끝나는가 했으나 두 군데의 무덤을 더 지나고 숲으로 들어서며 오름이다
◁부대 철조망을 따른다▷
◁철조망을 버리고 저 앞으로 펼쳐진 무덤지대를 지나야한다, 비포장 길을 지나 오르고▷
◁마루금이 묘지대인지 묘지대가 마루금인지!!, 저 무덤에서 숲으로 들어간다▷
-46.8m봉-
16시09분 전면의 벙커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서보지만 마루금은 정상직전의 우측(북쪽)의 사면 같은 숲길로 평탄하 듯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이 능선은 오늘 산행 전체에서 가장 산 능선다운 포근하고 나무도 많고 군부대와 묘지도 없는 .... 때 국물에 찌들지 않은
나무들 하며 ... 산 다운 느낌이나 .... 곧 도내고개를 지나는 차량소리로 그런 느낌도 잠시 다
16시23분 군 시설물이 자리한 도내리와 영태리를 잇는 도로상에 내려서니 좁은 도로임에도 차량 통행이 빈번하고 도로 좌측 영태리
방향으로 “금광비철금속”간판이 보인다
도로를 건너면 우측의 능선을 두고 바로 아래로 이어진 넓은 軍 도로를 따라 오르면 넓은 공터의 “병력하차” 팻말과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곳에서 남은 막걸리로 간식 및 휴식이다
16시34분 출발, 우측의 능선을 생각하고 전면의 넓은 길을 마다하고 우측으로 올라보니 군 시설물의 봉우리에서 북서쪽을 내려다
보니 넓은 들판과 월롱 쪽이 가늠된다
좌측의 조금 전의 휴식 장소에서 보았던 전면의 넓은 길로 올랐어도 될 곳으로 넓은 길을 따르니 곧 아주 넓은 공터의 헬기장이다
능선은 좌측으로 발달된 것 같이 보이지만 북서쪽 아래 교통호를 건너서 사면 같은 능선으로 내려서면 선답자 들의 표지기들이 달려
있고 누렇게 말라죽은 미국자리공 지대를 지난다
5분 정도 부지런히 내려선 42분 송림 아래 산판길이 나타나며 숲을 벗어나니 우측 저 쪽으로 영도초등학교로 짐작되는 학교 건물도
보이는데 좌우로 논들이 펼쳐져 있어 아무래도 잘못 내려선 것으로 보여진다
◁벙커 봉우리 오르기 전 우측으로 내려간다, 아래사진 도내고개 뒤 저 길을 따른다▷
◁병력하차에서 막걸리 마시고, 아래사진 올라서면 월롱 쪽 들판이 광활하다▷
◁이 헬기장에서 독도주의, 아래사진은 마루금을 벗어나서 우측으로 영도초교가 보인다▷
-그리고 산행 끝-
그러나 저 건너 전면으로 보이는 낮은 산은 분명 △46.8m봉으로 보이니 미심쩍어 하면서도 꼭 무슨 둑방 길 같이 이어진 양쪽의 논을
끼고 전진하니 길을 건너는 것 까지는 좋지만 △46.8m봉 정상 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조금 전 임도까지 내려서기 전에 좌측으로 이어가든지 임도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면 마루금으로 분명 이어갈 것
이 틀림없고 육안으로도 보여진다
그렇지만 그냥 △46.8m봉으로 오르는 것은 어차피 낮은 봉우리를 올라서 역으로 밟아보자는 것이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역으로 내려서서 17시09분 인공수로가 허공에 있고 정상적인 마루금 진행 방향에서 좌측으로 공장들과
시멘트 도로가 보이는 곳은 쓰레기들과 냄새가 나는 곳이다 잡목들을 헤치며 올라서면 조금 전 역으로 내려설 때도 보았지만 녹색의
천막과 그물들이 있는 지역을 지나서 오르면 군부대 철조망이다
삼각점은 부대 안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부대 철조망을 좌측으로 끼고 진행한다
17시19분 부대 후문이 나타나며 우측으로 길이 있고 철조망 인근은 깨끗히 조성되어 있고 송림들이 이어져있다
잘 조성된 송림은 각개전투장 으로 그런 것이고 17시24분 시멘트 길을 만나면 전면에 “삼광산업” 공장이다
철조망은 시멘트 길 좌측으로 이어지니 좌측으로 휘어지며 오르는 시멘트 길을 따른다
◁수로와 공장이 있는 길, 아래사진 지나 오르면 천막이 있고▷
◁군부대 철조망과 각개전투 훈련장을 지나간다▷
◁삼광산업 공장앞에서 좌, 군 철조망 우, 공장을 끼고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른다▷
◁제일테이프공장을 지나면 저 아래 승일콘크리트로 내려간다▷
◁이 곳을 지나면, 아래사진 신성레미콘을 가로고 1번 국도가 보인다▷
◁경의선 철도를 건너면 1l번 국도를 지나온 것이다 오늘산행 끝▷
좌측 철조망 우측 공장지대의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누현1길” 이다
17시29분 29대대 정문을 좌측으로 하고 시멘트 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는데 (주)제일테이프산업, 일산폐차산업 을 지나서 고개
위로 오르면 (주)승일콘크리트 정문을 좌측으로 두고 우측 저 쪽으로 (주)소성금속 간판이 보인다
17시33분 “위전3리” 표석을 지나면 도로를 가르고 건너편 “신성레미콘” 공장을 가로지른다
여기서 무슨 공장 무슨 마을지대 운운을 하는데 실제 날씨가 맑아 시야가 터지면 비록 공장이 있든, 마을이 있든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맞춰보면 눈으로 마루금이 가늠된다는 것이다
레미콘 공장을 벗어나면 잡풀들이 자라난 공터 저 편으로 1번 국도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도로 아래로 콘크리트 시설이 있으며
당연히 중앙 분리 벽까지 있는 준 고속도로나마찬가지인 1번국도를 직접 지나지 못하고 그 아래 경의선 철길을 건너고 철로 좌측을
따르니 “초계탕 막국수” 간판이 보이면서 그 쪽으로 올라서기가 쉽다
인근의 좁은 시멘트 길을 통해서 조금 전 경의선 철도를 건너기 전의 1번 국도 옆으로 바짝 붙어서 확인을 한 후 이곳에서 오늘의 산행
을 접기로 한다
전방부대 지역만 아니라면 서울에서 먼 곳도 아니니만큼 그냥 랜턴을 켜고 진해앟고 싶지만 그래야 부대들로 인해서 진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두산 전망대도 당연히 진행하지 못할터, 새삼 17일 한 구간을 진행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저 아래 GS 주유소에서 1번 국도를 역으로 0.5km 정도 진행하니 월롱역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이며 9017번 좌석버스로 50분 후
불광역 인근에 도착하고 도로가 막혀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귀가한다 나머지는 일요일에 하기에는 억울한 구간 같고,
평일 날 한가할 때 한나절 잔행해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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