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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지맥 (遊峰枝脈)
낙동정맥 고라산에서 갈라져 나온 (보현지맥-) 팔공지맥이 팔공산 정상(비로봉)에 이른 다음 동, 서 양갈래로 산줄기를 나누는데 팔공지맥은 서쪽 가산을 향해 달리고 여기서 동쪽으로 갈라지는 산줄기가 신산경표의 유봉지맥이다.
팔공이나 유봉지맥과는 별도로 팔공산의 주능선인 이 산줄기는 서쪽 한티재부터 동쪽 갓바위(관봉)까지 잇는 팔공산 종주코스, 또는 가산에서 초례봉(지형도에는 초래봉)까지 ‘가팔환초’라는 이름으로 산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산줄기 이기도 하다.
비로봉에서 갈라져 나온 유봉지맥은 동쪽으로 주능선을 따라 3km 가량 달리다가 주능선에서 빠져나와 북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지형도에 ×997봉으로 표기된 이 봉우리는 현지에서는 신녕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쪽은 대구광역시 (동구)이고 북쪽으로 보면 왼편은 영천시 신녕면, 오른쪽은 청통면을 나누는 삼면봉이기도 하다.
잠시 북동진 하다가 전반적으로 남동방향으로 달리면서 위로는 신녕천을, 아래로는 청통천을 가르며 신녕천이 금호강을 만나는 영천시 오수동 금호강변에서 마감하는 33.7km의 산줄기다.
지맥상에 이름이 있는 봉우리는 팔공산권을 빼면 ‘봉화산’만 3개에, 지맥 끝부분에 유봉산이 전부이고 대왕산(×174.8), 삼모산(×254)은 지맥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 있다.
유봉지맥은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산줄기가 되는데, 이 몸 태어나신 ‘출생지’가 바로 대왕산 아래 봉수마을이다. 영천군 청통면 보성동 봉수. 청통국민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도시로 나갔다. 내 기억속의 월부령은 ‘달부낭’이었다. ‘낭’이 무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만 현지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달부낭에는 문디이들이 애기들 간을 빼먹으려고 숨어 있었고, 신학천은 물이 조금만 불으면 건너지 못하는 개울이었다.
너무 어릴적 마을을 빠져나와서 인지 누구처럼 지게지고 산에 나무하러 간 기억은 없지만 큰 못(거적지)둑에 소 풀어 놓고 사촌 형, 오촌아재들과 놀던 추억은 삼삼하다. 굵다란 버드나무를 단숨에 잘라내 발스케이트를 만들어 주던 한 살 터울의 오촌아재는 옆집 동무나 다름없었는데 내가 군대 갔다오니 먼 하늘로 가버리고 없었다. 같이 고추 내놓고 코 흘리며 놀던 동무들도 봉수마을에는 한 넘도 남아있지 않다. 다 어디서 뭐하고들 사는지...
구간거리
팔공산~3.1~관봉갈림(×997)~8.2~구디티~4.5~봉화산(×164)~2.0~대왕산~1.7~월부령
월부령~4.1~우천리고개~3.1~사일온천~3.7~봉화산(△276.8)~1.6~땀고개~0.7~유봉산~1.0~신녕천 / 33.7km
주요봉우리
봉화산×164 봉화산△291.3 봉화산△276.8 유봉산(△240.6)
유봉지맥 1구간
2012. 07.28 (토)
산길 : 분기봉~월부령
사람 : 조진대부부, 무심이, 산타래, 조은산
거리 : 19.5km
(접근 : 치산계곡 수도사~4.7~신녕재)
팔공산~3.1~관봉갈림(×997)~8.2~구디티~4.5~봉화산(×164)~2.0~대왕산~1.7~월부령 / 19.5km
Cartographic Length = 23.9km Total Time: 11:30
06:30 수도사
06:50 공산폭포
08:14 신녕재
08:40 ×997 (신녕봉)
09:00 코끼리바위봉
09:32 ×984
10:50 부귀사 안부
11:28 △화북457
12:36 구디티
14:05 구디티 출발
14:15 △199.6m
14:50 넓문이고개
15:45 후곡 고개
16:17 아스팔트 도로(성동고개)
17:10 대왕산
18:00 월부령
덕산지맥에 연이어 조진고문님, 무심이님, 산타래님과 함께 발을 맞춘다. 맨날 숟가락만 들고 펴놓은 밥상에 꼽싸리 낀 민폐를 조금이나마 만회해 보려 이번 산행 저녁밥은 내가 챙겨갔다. 마누라한테 특별히 부탁을 넣어 옻닭으로 준비를 했는데 막상 펴 놓고보니 마침 오늘이 중복이라, 개 대신 닭이지만 고문님은 개를 못(안)잡수시니 시의적절하게 찬스를 잘 잡은 셈이다. 큰 놈으로 세 마리를 잡았는데 강촌 동장님까지 와도 여섯명이서 다 못 먹을만큼 양이 충분했다. 그 죽으로 다음날 아침까지 해결했고, 다들 맛있게 잘 드셨다고, 마누라 요리솜씨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금요일 퇴근하여 마누라가 준비해놓은 닭고기와 육수 등을 아이스박스에 넣고 얼음을 틈이 없도록 채워 넣었는데도 불안하다. 요즘 날씨에 한낮을 잘 버텨 줄런지, 이 아이스박스가 제대로 만들어진 물건인지 걱정이 된다.
평소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 신대구고속도로를 타고 청통IC에 내리니 요금이 무려 12,000원이 나온다(백양터널-동대구-청통). 경부선을 탔을 경우와 비교하면 두 배가 더 된다. 산행 마치고 영천IC에서 경부선을 타고 오니 5,200원이다. 더런 놈의 민자고속도로, 다시 가나봐라~!
구디티로 바로 가봐야 잠 잘 일밖에 없어 청통국민학교로 바로 갔다. 옛 추억을 그리며 교정에서 한 박하려 했으나 대문이 잠겨있다. 쪽문은 열려 있지만 차는 들어 갈 수 없다. 도리없이 구디티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으나 차창을 다 닫으니 더워서 자지를 못하겠고, 텐트 칠만한 자리는 없다. 근방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라 -북쪽 임도로 들어가니 구제역으로 처치한 가축 매몰지- 별 수 없이 청통면으로 도로 나와 면사무소 주차장 바닥에 텐트를 치고 잤다.
토요일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바로 차를 몰고 구디티로 가니 무심이님은 윗쪽 고갯마루에서 차박을 한 모양이다. 무심이님은 차박 노하우가 있어 창문에 모기장을 치고 잔 모양이라. 저녁에 보니 고문님 역시 차에 모기장을 치더라. 나만 몰랐다.
구디티 지형이 묘하다. 무심이님이 고갯마루에 자리를 잡은것도 그렇지만 언뜻 보면 고갯마루가 마루금 같이 보이나 동쪽 아래 삼거리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삼거리 여기가 마루금이 된다. 향을 만드는 ‘조양향당’ 공장이 정확하게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다.
빵 하나 먹고 있으니 고문님과 사모님, 산타래님이 새벽길 달려 도착한다. 내 차와 무심이님 차를 여기다 두고 고문님 차로 신녕면을 지나 치산계곡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주차비 2000원 지불하고 수도사 주차장에 차를 넣었다. 새벽이니 헐렁하지 오후에는 계곡 전체가 난리 북새통이라 차를 겨우 뺐단다.
당초는 유봉지맥 들머리를, 전에 팔공지맥하면서 빼먹은 공군부대 정문에서 비로봉-동봉 구간 땜빵도 할겸해서 공군부대 정문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서 시작할 여산이었으나. 무더운 날 조금이나마 거리를 줄이기 위해 신녕재로 오르기로 했다. 팔공산 주능선은 누구나 한 두어 번씩 걸어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비로봉에서 신녕재까지 2.7km는 건너뛰게 되고, 공군부대 돌아오려면 시간은 1시간은 더 써야되지 않을까 싶다.
결과론으로 보더라도 철조망으로 둘러싼 비로봉을 찍느니, 팔공산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공산폭포를 보고 치산계곡 탐방이 차라리 백번 잘한 일이었다.
06:30 수도사(357m)
신라시대 원효대사와 자장율사 두 스님이 ‘금당사’란 이름으로 창건하여 조선 중기에 와서 수도사로 개칭했다는 천년고찰 치고는 규모가 아주 단촐하다. 일주문도 따로없고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법당과 요사채가 전부인 듯한, 대웅전은 불사(공사중)이다.
‘팔공산 수도사’라는 명성과는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한 이 절은 그러나 우리산꾼들의 관심사 내지는 논란꺼리중 하나인 문화재관람료를 일찌감치 폐지한 절이라 하니 더 돋보이기 까지 한다.
2009.08.12.. 영천시에 따르면 시는 그동안 관람료 징수 문제로 갈등을 빚은 수도사 문화재관람료를 최근 관할 사찰인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측과 협의하여 관람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도사는 영천시 신녕면 치산계곡을 통해 팔공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고찰로 조선조 숙종30년(1704년)에 제작된 수도사 노사나불괘불탱화(보물 제1271호)에 대한 문화재관람료를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조계종 종단에서 받아 왔었다.
자동차는 여기까지. 시멘트 포장된 임도는 공산폭포까지 계속 가지만 허용된 진입은 수도사까지다. 절 뒤로 올라가면 [팔공산도립공원 종합안내도]가 있다. 수도사에서 올라가다 공산폭포 지나면 진불암을 거쳐 동봉으로 오르는 길과 신녕재로 곧장 오르는 길이 갈라지는데, 우리가 말하는 신녕재는 ‘도마재’로 표기되어 있다. 좌우튼 신녕재로 오르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생각이다. 수도사를 깃점으로 우측 진불암으로 올라 신녕재에서 내려오는, 혹은 거꾸로 하든지 원점회귀 코스로도 적당해 보인다.
06:50 공산폭포 (454m)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따라 수도사에서 1km 정도 올라가면 공산폭포를 만난다. 생각 같아서는 홀라당 벗어 던지고 폭포 아래로 뛰어 들고 싶지만, 물가로 접근을 막고 있다. 높이 30m로 팔공산에서는 가장 큰 폭포란다.
공산폭포 바로 위쪽에서 임도는 끝이다. 언제 들어온 건지 용감한 아반테 한 대 주차해 있다. 좁은 길이 시작되면서 바로 우측으로 개울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있는데 진불암으로 해서 동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다. [신녕재2.9km / 진불암1.7 동봉3.4km]
7분 더 올라가면 계곡 합수점에 진불암 갈림길이 하나 더 나온다. 신녕재는 왼쪽이다. [修道寺]라 새긴 대리석 말뚝이 있고 받침이 떨어진 [시녀재 2.4lm] 팻말이 바닥에 놓여있다. 긴급구조 말뚝 [가-02]이 이어지는데 신녕재에 20번까지 국립공원과 달리 100~200m 간격으로 촘촘히 박혀있다.
07:08 물이 흐르는 계곡 우측으로 길이 이어지다가 물길을 건너가는 지점에서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배낭 내리고 쉰다. 세수도 하고 허기도 채우고, 볼 일 있는 사람 볼 일도 보고
계곡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좋다. 30여분 오르다보니 물길 전체가 암반인 곳이 있다. 각도가 조금만 더 섰더라면 충분히 폭포 칭호를 부여했겠다만 와폭이라기엔 물이 너무 약하고 바위 위를 구르는 물이 옥구슬처럼 보인다. 해발 800대에 물이 흐르는게 신기하다 했는데 신녕재 직전 900m까지 물이 보인다. 비가 온지도 꽤 되었는데 지형도에 표기된 물길 그대로다.
다리 건너면 진불암으로 간다
신녕재
08:14 신녕재 (950m 도마재)
긴급구조 [가-19] 말뚝을 지나고 하늘이 보일 무렵쯤에 불각시리 지난 일이 생각이 난다. 아마 2005년이지 싶다. ‘부산山사람들’이 팔공산 종주를 한답시고 대구로 갔는데 산사랑 형님이 봉고차로 다비사까지 택배를 해주셨고, 가산산성으로 올랐다가 한티재 지나 동봉에 오르니 대구산사람들이 커다란 냄비에 선지국을 데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피케이와 산길로의 안내를 받으며 피아노바위도 타고 팔공 주릉의 숨은 코스 구석구석 짚어가매 신녕재에 이르니 봉봉님과 육호가 시원한 수박과 캔맥주를 미끼로 그물을 쳐놓고 있었다. 그 때 신녕재에서 몇발 내려왔던 약수터가 바로 여기라.
봉봉 육호 피케이 & 수박 캔맥
오늘 막상 올라와보니 짧은 걸음이 아닌데 한 여름날 우릴 위해 그 큰 수박을 몇 개씩이나 짊어지고 이 길을 올랐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육호는 이미 이 세상에 없고 봉봉님께 전화를 눌렀으나 신녕재는 불통지역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곳 없구나... 수도사에서 4.7km에 1시간50분 결렸다.
대구매일신문의 팔공산하 (http://www.imaeil.com/palmount/index.php?page=news_30)를 보면 우리가 올라 온 골짜기가 ‘민비골’이고, 현재 신녕재라 부르는 여기는 ‘도마재’. 실제 신녕재는 동쪽 유봉지맥 능선상에 있는 코끼리바위 지난 안부를 말하는것 같다. 이정표 표기가 신녕재이니 그리 적는다만.
팔공산 주능선상의 고개로 남쪽으로 넘어가면 동화사폭포골, 동쪽은 갓바위(4.6km)를 거쳐 환성산, 초례봉으로 가고, 서쪽은 동봉(2.6km)으로 간다. 비로소 유봉지맥 마루금에 오른 셈이라. 자리잡고 앉으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준다. 허리띠 풀고 느긋하게 좀 앉았으려니 고문님 왈, 추워서 못 있겠다, 고만 가잔다.
08:40 ×997 (신녕봉)
신녕재 바로 윗봉이라 신녕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400m에 8분 거리다. 대구시(동구)와 영천시 신녕면, 청통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 되고 주능선 현위치번호 [045] 표지목이 있다. 오늘 구간 뿐만 아니라 유봉지맥 최고봉이고 이제 내려가면 300m 되는 봉우리도 없다. 봉우리 정점에는 바위가 있고 바로 북으로는 절벽이라 왼쪽(서)으로 돌아 내려간다.
주능선에서 갈라지는 북쪽길로 들어가면 주능선 보다야 못하지만 길은 뚜렷하나 울창한 숲속이라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이 뚝뚝 떨어지는 내리막이다.
급하게 미끄러지듯 내렸다가 다시 올라서면 서편으로 조망이 트여 비로봉이 보이는데 구름뭉치가 비로봉을 감싸 삐죽 솟은 방송국 철탑만 보인다. 구름이 걷히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꼭대기 바위에 올라서면 조망은 더 크게 열린다. 북으로 곧 넘어갈 코끼리바위봉과 왼쪽으로는 갈모봉과 청석배기봉이 솟아있고, 동쪽으로는 갓바위(관봉)도 보인다.
신녕봉
코끼리바위봉
코끼리바위 (우측)
09:00 코끼리바위봉 (985m)
직전봉에서 보던 코끼리바위는 정작 가까이 붙으면 식별이 안된다. 오만 형상의 바위가 엉켜있어 어느게 그건지 알수도 없고 암봉은 위험해 보여 왼쪽으로 난 옆길로 돌아간다. 바위벽 옆으로 바짝 붙어 겨우 한 사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라 상당히 까다롭다.
09:32 ×984
우측으로 꺾이는 봉우리. 동쪽으로 뚫린 조망으로 관봉쪽 능선이 보인다. 그 뒤로 희미한 봉우리는 환성산인가? 가봤어야 알재.
×984봉에서 동으로 가다가 다시 북으로 방향이 바뀌는 봉우리(960)에서 잠깐 지도상 면계선과 벌어지는데 지형도 읽기가 상당히 난해하다. 지도를 보고 나름대로 그은 트랙(면계와 일치)인데, 그 트랙대로 가자면 우측 계곡 아래인 것이다. 트랙과 벌어져 길을 잘못 든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른 길은 없는 능선인 것이다.
팔공산 비로봉
09:46 갈림길
왼쪽으로 능선이 분기하는데 현지에서 말하는 청석배기봉과 갈모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다. 이 능선을 타고 끝까지 가면 치산리 입구로 떨어지겠다. 잠시 더 가다가 우측으로 꺾이며 길은 서서히 내려앉는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20여분에 넓직한 숲속 공터가 나오니 너나 할것없이 배낭 내리고 앉는다. 빵을 먹고 커피도 타 마시며 20분간 쉬었다 간다. 고도는 700으로 떨어졌다.
길 옆에 포개진 바위가 있는데 위에 얹힌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것 같이 위태롭게 보이나 건드려도 꿈적도 않는다. 내려가니 왼편으로 나무 없이 마사토 바닥이 훤히 드러난 비탈을 지나가며 치산리로 뻗는 청석배기봉 뒷모습이 보이고 10분 더 내려가면 줄줄 미끌리는 마사토 바닥이다. 왼편 아래로 부귀사 절이 보이고 스피커를 통해 염불소리가 크게 들린다.
코끼리바위봉
관봉 (갓바위)
부귀암
부귀암 안부
10:50 부귀사 안부 (520m)
×564봉 직전의 안부로 희미한 길이 좌우로 나있다. 왼쪽은 부귀사이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거조암으로 가겠다. 거조암(居祖庵)은 본사인 은해사보다 먼저 창건된 절로 국보 14호인 영산전 안에 각기 모습이 다르게 조각된 500나한상이 있어 나한기도도량으로 알려져 불자들에게는 꾀나 유명한 절이라 마눌님 택배도 두어번 한거 같다.
한 가운데 박힌 대리석 말뚝에 왼쪽으로 [부귀사 10분]이라 새겨져 있다. 앞에 쳐다보이던 ×564봉은 우측으로 질러가게 하니 개그프로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564봉을 넘어온 안부에서 산길은 크게 우측으로 꺾이면서 남동방향이 된다.
11:20 용인이공묘를 지나 내려오니 황토물이 가득 담긴 산돼지 목간통이 있고 여기저기 파헤친 흔적이 보인다. 길이 잠시 지저분해졌다. 거조암 바로 뒷 능선인데 절은 보이지 않는다.
11:28 △화북457
2004재설인데 내 지도에는 아무표기가 없다. 오래된 5만 지형도에 △416.3 표기가 있으나 위치는 지나온 뒤쪽이고, 여기 고도는 353m이 찍힌다. 잠시 후 산길은 왼쪽으로 U턴하듯 굽어지는데 여기도 질러가는 길이 있다. 그늘에 앉아 쉬었다 간다.
청통면계와 함께 가는 산길은 S자를 그리며 북으로 가다가 다시 구디티 방향으로 돌아간다. 왼쪽으로 도는 지점에서는 왼쪽 사면으로, 오른쪽으로 틀면 오른쪽 사면길 찾기 바쁘다. 마루금을 외면하고 용당골쪽 사면으로 질러가다 묵은 임도를 찾아낸다.
고운 잔디가 깔린 넓은 三山義城金公묘터를 지나고 10분 후 ×227봉 아래 십자가 그려진 성도, 권사묘에서 마루금은 신녕면계를 왼편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벌어진다. 강철 와이어로 만든 올무를 하나 걷어내고 천룡정사 방향의 능선으로 오르면 천주교 묘역이다. 뚜렷한 길이 없어지고 산길이 어수선해 방향잡기가 까다롭다.
구디티
12:36 구디티 (155m)
청통면 신원리에서 신녕면으로 들어가는 도로인데 고갯마루는 마루금이 아니고, 고개 동편 아래쪽 삼거리가 마루금이다. 삼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향을 만드는 ‘조양향당’ 공장이 바로 마루금이다.
점심은 차를 타고 신녕면에 가서 사먹기로 작전을 짜 차를 여기다 둔 것이다. 고문님 차로 신녕면으로 들어가 장터에 허름한 식당에서 정식을 먹었는데 오이냉국에 조미료를 얼마나 퍼부었는지 오이맛은 없고 미원맛만 나온다.
고문님과 무심이님이 수도사로 차 회수하러 간 틈을 타, 칠성마트에서 얼음 한 봉지와 꽝꽝 얼려놓은 2리터 생수를 한 병 샀다. 얼음은 아이스박스에 보충했고 생수는 오후산행 내내 아주 요긴하게 잘 먹었다. 마트에서 파는 얼음은 냉동기계로 더 저온에서 얼렸는지 집에서 얼린 물 보다 훨씬 오래갔다.
14:05 구디티 출발
사모님(최기사님)은 여기서 산행 끝이라 차를 몰고 월부령에서 만나기로 하고 남자들끼리 출발이다. 조양향당 앞길 건너 밀양박공 옆으로 올라가면 그런대로 뚜렷한 길이 나온다.
△199.6m
14:15 △199.6m
잡목으로 둘러싸인 봉우리에 기반은 다 뭉그러져 번호를 알 수 없는 삼각점이다. 잔봉을 두 개 더 넘고 호암동 안부에서 우측 마을로 내려간다. 안부 건너편 덤불이 너무 빽빽해 잠시 우회하자 하며 마을로 내려갔는데 광대정마을에서 마루금에 붙기가 더 난해해져 × 185봉을 생략하고 넓문이고개까지 마을길을 따라 가기로 한다.
마을길을 따라가니 축사가 많이 있는데 얼마나 더운지 축사 천장에 대형 선풍기를 달아놓고 돌리니 그 선풍기 아래쪽에 소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다. 소나 사람이나 시원한 바람 좋아하는건 마찬가지다.
넓문이못
넓문이고개 = 늘미고개
14:50 넓문이고개(125m)
넓문이 못 둑 느티나무 아래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다 모인거 같다. 하기사 이렇게 찌는 날 방에 앉아 있을 어른이 누가 있겠노. 청통에서 신녕으로 넘어가는 919번 도로는 차 통행이 많다. ‘늘미기사식당’이 있는데 진작에 알았으면 여기서 점심을 먹을걸 그랬나. 메뉴가 보신탕과 오리불고기다.
땡볕 아래라 건너편 들머리가 어딘지 찾아 볼 여유도 없이 장수가든 식당 왼쪽 뒤를 절개지로 뚫고 올라섰다. 덤불을 이리저리 헤치며 왼편으로 붙으니 묘가 나오고 길 같은게 나온다. ‘대한민국무공국가유공자 김해배공’ 왼쪽으로 올라가는 마루금이다. 200쯤 되는 첫 봉을 다 못 오르고 퍼질러 앉는다.
15:25
200이 겨우 넘는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꺾이는데 통나무를 걸쳐 의자를 만들어 놨다. 그냥 지나가려는데 고문님은 만든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앉아줘야 된단다. 지도상 ‘장성백이’ 바로 아래로 벌어진 틈으로 신녕천과 중앙선 철도가 보인다.
우림농장
후곡고개
15:45 후곡 고갯길
시멘트길이 지나가는 고개. 牛林농장이 있는데 글자 그대로 소들로 빼꼭하다. 바람 시원하게 불어주는 고갯마루에 한참을 앉았다가 또 산길을 외면하고 마을탐방에 나선다. 청통면 계지리 후곡마을을 지나 성동마을 앞 도로에서도 신녕천을 건너가는 용내교 직전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따라 들어갔다.
이 일대는 유달시리 소를 많이 키운다. 그래서인지 온 동네마다 소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기저기 축사마다 한우가 가득찼고 축사마다 대형 선풍기를 돌려대니 그 소리도 만만찮다. 유봉지맥의 첫 번째 봉화산(×164)은 마을에서 눈으로 더터보고, 계지1리 경로회관에 들러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수돗물로 머리통을 식혔다.
봉화산(×164)
16:17 아스팔트 도로
성동마을 앞을 지나는 2차선 도로다. 고개 정점에서는 역시나 마루금으로 붙는 구멍이 보이지도 않고, 계속 길을 따라 넘어가고 용내교 직전에 우측 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길이 있다.
시멘트길은 능선에서 마루금과 만나고 좌틀해 끝까지 올라가면 폐 시설물인데, 대문은 기둥만 남았고 안쪽에는 정수장이었던지 큰 수조 같은게 여럿 보인다. 마루금은 대문 기둥 앞에서 우측으로 들어간다.
×166봉을 지나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214.2봉 옆을 지나 또 모두들 자리깔고 앉길래, 대왕산을 다녀올 요량으로 먼저 출발을 한다.
대문 기둥 우측으로 들어간다
대왕산 (어지럽다)
17:10 대왕산 (×174.8)
지형도의 소수점 표기는 삼각점일 경우에 그러하고 ×표기는 소수점이 없는게 일반적인데 소수점 있는 봉이라 혹시나 삼각점이 있을까 여기저기 찔러봐도 삼각점은 없는거 같다. 잡목이 빼꼭히 들어 차 괜히 왔다 싶은 봉우리다. 아무 볼 것도 없는 포졸같은 대왕산이다. 갈림길에서 왕복 800m에 20분 걸렸다. 대왕산에서 곧장 가면 거적지(우리는 큰못이라 불렀다)로 내려가 봉수마을 길 따라 가면 월부령은 잠시인데,
대왕산에서 돌아 나오니 모두가 지나갔다. 이제 내려가면 월부령이려니 싶어 헥헥거리며 부지런히 쪼차 갔는데 가도가도 나올 생각을 않는것이 2km 거리라. 마음만 급했다.
우측으로 절골을 휘돌아 ×166봉에 이르니 산을 깎아 운동장만한 공터를 만들어 놨다. 월부령을 지척에 두고 산길은 얼마나 지저분하게 벌목잔해가 널부러져 있던지 막판에 생고생을 했다. 이리저리 피하다 보니 자꾸 우측으로 쏠려 억지로 왼쪽으로 붙으며 내려오니 월부령이다.
길이 없다
월부령
18:00 월부령(120m)
청통면에서 군으로 나가는 신작로다. 예전 내가 살 때는 하루에 버스 두 번 지나가고 물론 포장도 안되었다. 군에서 올라 온 버스가 달부낭(월부령)을 넘어가면 준비해 찻길로 나가 기다린다. 면에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기 때문인데, 대다수 어른들은 영천장에 걸어 다녔다.
봉수마을에서 30리길 영천이라 했었는데 오늘 도상 거리를 재어보니 12km 조금 못된다. 당시는 중학교도 영천에만 있어 중학교 진학을 하면 걸어가거나 자전거로 통학을 했었고, 버스를 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청통국민학교, 책상 없이 마룻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던 1962년도 이야기다.
건너편 임도에서 기다리는 최기사님(사모님) 차에 타고 구디티에 차를 회수해 나오면서 계지2리 경로회관 수돗가에서 몸을 씻고 사일온천으로 넘어간다. 사일온천 넘어 임도에서 야영할 계획이었으나 접근이 만만찮아 사일온천 입구에 넓은 공터가 있어 자리를 잡았다.
19:00 사일온천
우천에서 금호읍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온천이다. 온천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만 예전 기억으로는 고개 넘어있는 풍락지를 ‘사일못’으로 불렀는데 현재 지도에 ‘사일’이라는 명칭은 사일온천과 사일교회만 보인다.
여름철 차박 준비물
중복날 옻닭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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