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나눠 쓰기 등 기업 편법요인 사라질 듯
실명제 폐지 '진일보'…한도 폐지하는게 맞다
지난 2004년 기업의 소비성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접대비 실명제가 5년만에 폐지된다.
기획재정부는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기업의 영업활동 규제 완화를 위해 '접대비 지출내역 보관제도(접대비 실명제)'를 내년 1월말 전격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2004년 1월 국세청의 '접대비 업무관련성 입증에 관한 고시'로 규정된 이 제도는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 지출하는 접대비에 대해 업무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지출증빙을 기록·보관토록 의무화한 제도다.
그러나 접대비 실명제를 피해가기 위해 기업들이 '카드 나눠 쓰기' 등 편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잦았고, 50만원으로 규정된 한도 역시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결국 정부는 사실상 실효성 없는 기업규제였던 접대비 실명제를 폐지하는 등 진일보한 '기업친화' 정책을 추진키로 했지만, 접대비 관련 핵심 규제로 꼽히는 비용인정 한도규정은 유지키로 해 논란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다.
□ '접대비 실명제' 왜 폐지되나?= 접대비 실명제는 정부가 기업의 소비성 지출을 막겠다는 취지로 2004년 1월 도입했다.
당시 제정된 국세청 고시에 따르면 기업이 접대비로 50만원 넘게 쓰면 ▲접대일자·금액 ▲접대장소·목적 ▲접대자의 부서명·성명 ▲접대상대방의 상호 등을 기록해 보관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접대를 하는 기업이 접대 상대방의 인적사항 등을 기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카드를 나눠서 결제하는 등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접대비 실명제를 피하기 위해 소액 분할결제나 기업간 카드교환 사용 등 변칙적으로 운용되는 문제가 있었다"며 "기업의 소비성 지출을 억제하자는 취지는 좋았지만, 사실상 기업을 탈세범으로 만드는 불합리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많아 폐지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재정부는 내년 1월말까지 국세청 고시에 대한 근거규정이 들어있는 법인세법 시행령(제42조의2)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접대비 실명제를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 실명제 폐지로 '접대' 늘어날까?=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되면서 기업들이 실제로 얼마나 늘릴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기업 접대비 사용금액은 지난 2003년 5조682억원, 2004년 5조4373억원으로 증가하다가, 실명제 시행 이듬해인 2005년 5조1626억원으로 주춤했다. 그러나 2006년과 2007년에는 5조7482억원, 6조3647억원을 기록,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접대비 실명제가 잠시 효과를 거두는 듯 했지만, 이후 증가추이를 보면 접대비 지출을 억제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접대비 실명제 폐지로 인해 기업들의 실무적인 부담은 적어졌지만, 접대비에 대한 손금불산입 한도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기업 접대가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접대비 규제가 완전히 풀어진 게 아니라, 기업들이 잘 지키지 않는 등 현실성 없는 부분을 개선한 것"이라며 "손금불산입 한도가 남아 있어 소비성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기업들이 편법을 동원해야 하는 불편함만 사라졌을 뿐, 스스로 법인세를 더 내야 하는 손해를 감수하고 접대비를 더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 실명제 폐지는 '진일보'‥비용한도규정은 여전히 '불합리'= 기업 입장에서는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되는 것이 분명 기업 규제완화 차원에서 진일보한 정책이지만,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해주는 한도규정은 아직도 여전히 큰 규제에 속한다.
현재 접대비는 연간 1200만원(중소기업은 1800만원)과 매출액의 일정비율(0.03%~0.2%)을 곱한 금액만 비용으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손금불산입된다.
연매출 100억원인 중소기업이 쓸 수 있는 접대비는 3800만원, 매출 10억원 기업의 접대비 한도는 200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대 빈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세법상 한도규정에 발목이 잡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기 힘들다는 불만이 많다. 접대비 한도가 남는 대기업에 비해 정작 접대를 해야 할 중소기업들이 적은 한도로 인해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
또한 기업회계기준에서 모두 비용으로 인정되는 접대비를 세법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분명 정부의 규제다. 비용으로 쓰고도 인정을 못 받는것은 매우 억울한 일이다. 물론 그만큼 법인세를 더 내야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한 기업 관련 조세전문가는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손금불산입 한도 때문에 영업활동에 제약을 받기는 마찬가지"라며 "이제는 기업들도 투명해졌고, 몇몇 부도덕한 기업들을 이유로 전체 기업의 접대비 손비인정한도를 제한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만큼 한도규정을 아예 없애는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