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의 창건시기는 신라 진평왕(眞平王)때 창건자는 원효이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절에는 보물이 제법 많다.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낙보전(極樂寶殿)이 있다.
고려 말 나옹선사가 이 절에 기거하면서 많은 이적을 행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의 영릉의 원찰이 되면서 깊은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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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창 박부자는 남편이 홍성에서 인백기념관을 하고 있어 우리 동창들을 벌써 몇 차례나 초대해 주었고 그럴 때마다 점심 대접도 거하게 해 주었답니다.
올해는 작년에 동창의날 행사로 한 15일간의 미국 크루즈여행과 서부여행 사진을 거창하게 전시해 주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몰랐답니다.
그리고 점심잔치도 훌륭하게 제공해 주었구요.
누가 어디에서 우리를 이렇게 훌륭하게 빛내 준단 말입니까?
와! 와! 와! 우리는 모두들 대단히 감동 받고 행복해 했지요. 어린애들처럼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래서 더욱 젊어지고 아름다워지는 우리 진명 50회 ! 진명여고 50회 동창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