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문우회= <시조문학 2009.여름호,P:201~208)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소가야 그산하- 장청 (시조시인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거던 꽃에 들어 자고가자
꽃에서 푸대접 하거던 잎에서나 자고가자.
작자 미상의 이<청춘곡>은 버스에 오를 때 떠 오른 옛 시조다. 2009.4월 18일 오전 9시 서울 종합 운동장 앞에서 시조문학 문우회 약 30여명의 시인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지방시인 30여명은 별도 참석) 좌석에 앉다보니 김해석 시인의 곁자리었다. 이미 회수가 넘었는데도 싱싱한 봄버들 같은 시조를 쓰고 그녀의<첫사랑>이 일역되어 해외에서도 인정 받는 것을 축복 해 주었다.
이미 여정을 답사한 이수용 사무국장이 최근 입원해거 저승사자 손목을 잡고 온 사람같지 않게 일정을 소개하고 구국한 상황에서도 시정을 놓지 않고 펴 낸[피안의 메아리]를 돌리고 있어 시조문학 문우회 회장 김준 시인의 인사.우리나누리 전무 정재열 간사가 일정표를 나누어 주었다.
버스가 돌케이트를 벗어나자 김밥과 올방개묵, 산나물, 음료수가 몫몫으로 나뉘어 졌다 필자같이 제몸 하나만 달랑 끌고 온 것이 아니라 노을재 최언진 시인이 직접 뜯어 삶아 무친 산나물과 내 도토리 묵이나 메밀묵 창포묵은 먹봤지만 말만 듣던 올방개묵은 난생 처음이었다.
애주가로 자타가 공언하는 김준박사는 김밥 나누어주는 고동우 시인과 안주로 오징어구이를 나누어 주는 정재열 시인의 든든한 어깨가 보기 좋았던지 "여행에 곡차는 빠질 수없지 자~ 들자구" 하며 종이컵을 높이 들었다.
너무 이른 시각아라 미쳐 조반을 들고 오지 않은 사람도 있고 점심 일정이 1시 30분으로 잡혀 있어서 시장끼를 느낄가 봐 베푼 이<아름다운 소행>으로 노을재 시인의 볼우물이 돋보인 시간 이었다.
아흔 한살의 배위홍 여사가 노익장의 본보기를 보였고 나중에 동참한 일행까지 숙박조 편성 명단(존친생략 무순)이 아래와 같다.
-명단 생략-
옆으로 흘러가는 좌우위 산능선과 아직도 갖가지 꽃을피우고 있는 산록의 자태가 과연 금수강산 이었고 무주쯤 오자 덕유산 자락이 신선의 어께를 닮아 있어서 앞자리 유강 고두석 시인에게 말을 걸었더니 "과연 산격이 얼쑤신데!!"하고 감탄한다.
에세이의 비조몽테뉴 가라사데 "진저리 쳐지는 존재 존재가 되지않기위해서는 기쁨을 퍼 주고슬름을 털어라" 그 처방전이 여해이다.
신혼여행이 이래서 생겼고. 보고 먹고 마시는데 중점을 두면 관광이고. 보고 먹고 마실 뿐만 아니라 생활의 재 발견에 역점을 두면 기행이다. 이탈리아 여행 프랑스 기행에 볼프강 꾀퇴 같은 우람한 문호의 밑걸음이 되고 죽장에 삿갓 쓰고 이나라 방방곳곳 고린내를 풍긴 김삿갓의 풍자시가 그래서 이구에 화자되는 것이 아닌가.
도란도란 두런두런 자리마다 이야기 꽃이 피고 가끔 호탕한 웃음소리도 나는 걸로 보와 고독의 방석에 앉아 껄껄대며 머리속에 묻어 있던 궁둥이에 신바람이 들락거리는 모양세다. 진주 촉석루 정문 앞에 도착하니 김정희 시인이 마중나와 있었다.
진주같은 시조로 그녀의 은희색 한복처럼 곱게 살아온 고아한 품격이 한떨기 옥잠화 같았다. 진주 일신 갈비집의 고기가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마냥먹는 시인들 덕에 김시인은 지갑이 억울 했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후덕하신 인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시조문학문우회에서 매년 시화전을 개최 하는데 작년에 도봉산 시화전.내장산 시화전에 이어 올해는 고성 시화전으로 시작 되었다.
서울남산. 경주남산처럼 고성에도 남산이 있어 그 남산 공원 숲속에 마련된 시화전을 소가야 시조문학회 김홍래 초대 회장님.
김숙선 회장님. 정정배 사무국장님 이하 소가야 시조문학회 회원들의 안내를 따라 삼삼오오 흩어져 감상하고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가야와 발해는 아직도 풀리지않는 역사의 비밀이 많다.
낙동강 하류 변한에서 나라를 세운 가야는 일세기 열두 부족의 연맹체가 단합하여 육가야로 통합된 나라다.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 고성의 소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합천의 고령가야. 가 그것인데 고령가야가 아닌것이 이상했다. 왜 하필 소가야시조문학회로 명명 햇을가 하다보니 고성보다는 옛스럽고 역사의 향기를 떨쳐내 버리기 아까워서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높을 고를 쓴 강원도 고성(高城)은 첩첩 산중인데 굳을고 고성(固城)은 바닷가 반도다. 와도(臥島) 자란도(紫蘭島)에 사람이 살고
21개의 무인도가 병풍처럼 펼쳐져 남산공원에서 둘러 보니 만개한 연꽃 모양새가 한폭의 대형 동양화를 방불케 하였다,
사적 120호의 내산리 고분.119호의 송학도 고분.얼마전에 발견된 공룡 발자국이 알려져 공룡엑스포가 장관인 것을 감안 할때 옛것을 내세워 먹고 살게되니 입안에(口) 옛것(古)을 넣게 되는 게 아닌가? 뼈다귀와 발자국 그걸 관광자원으로 삼아 마산 충무 김해와 동등한 위상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역력 했다.
식당이자 강당인 회의장에서<시조란 무엇인가?> 김준 박사의 강의는 시조의 요체를 갈피하여 시조시인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드러냈고. 다음번엔 좀 더 나은 강사를 초빙할 예정이란 겸양으로 독장치지 않겟다는 여유가 멋있었지만 "이거 술잔을 앞에 놓아 침을 삼키기 어려운데 더 하면 주책이라 하겠죠?하며 덩치와 다르게 휘답을 치는 재치가 미소를 자아냈다. 밥상 머리 인지라 애초에10명쯤 하려던 시 낭송은 소가야에서 김분옥. 이수경. 이상진. 시인이 문우회에선 고두석. 김해석. 김순금. 시인이 애송하는 것으로 그쳤다. 낳기도 힘이 들지만 기르기가 힘든 법! 타고난 목청에 가락을 얹어 얼마나 정성을 들였기에 저 경지에 이르렸을까? 입이 즐겁기 전에 귀가 즐거웠으니 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 피레네 산맥의 로망이 연상되었다.
저녘은 소가야 시조문학회 에서 부담하였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박종대 시인이 그 작달막한 키와는 다르게 우렁찬 목소리로 건배를 외첬고 마른논에 물 부어대듯 주거니 받거니 주석은 무르 익어 가기 시작 했다, 일단 주석에 앉으면 인격 미달은 보와 줄수 있지만 주량 미달은 고생이 작심하다. 치기호지 천진난만 기성천외의 회오리 바람만 불고. 맨정신으론 낯 뜨거워 내 뱉지 못하던 일들이 망아지 처럼 뛰어나와 쌍소리조차 맛깔 스러운데 워낙 문사철(文史哲)에 익숙한 분들이라 군자연 숙녀연 하는것이 미흡 햇던지 전정배 시인이 지하 단란주점으로 이끌었다.
그때 까진 이 글을 쓰리라곤 예상을 못햇기에 마음먹고 마시고 지껄이고 터놓고 웃고 노래하고 비볏기에 지금 생각 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잠자리에서는 코를 심하게 골고 잠고대까지 곁들었다니 함께 잔 분들은 또다시 동침을 하지 않으려하지 싶다. 하긴 객고를 남자끼리 푸는 호모가 아닌 이상 차라리 홀로 자는 것이 내 적성에 맞다.
익일 아침 9시 공룡엑스포 행사장으로 꽤 오래 걸어갓다. 나쁜 친구라도 먼저 배반할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라는 춘천의 최용철시인과 필자는 에쎄와 라이락의 듀엣으로 이번 여행이 무사하기를 빌며 자주 향불을 피웠는데 김홍래 시인이 동참하여 원시인 대접 받는 애연가의 설음을 달래는 맛이 고즈억하기 짝이 없엇다. 후리후리한 키에 서글서글한 마음씨의 쾌남아 정정배 시인은 자그마한 키의 아내와는 천생 배필임이 드러난 것은 손에 깃발을 들고 "이거 놓치지 마시고 잘 따라들 오십시오" 짓든 생글 웃음이었다.
공룡의 화석이 처음 발견된 것은 1882년이 었다. 처음엔 그져 도마뱀 정도로 알았으나 20세기에 들어 연구가 본격화 되자 파총류이면서 고양이 정도의 작은 것부터 코끼리의 수십채 이르기 까지의 그 크기가 다양햇다는 것이 밝혀 졋다.
대부분은 초식성이지만 육식성으로 성질이 흉폭한 것도 있다. 깊은 호수와 해양으로 부터 공중에 이르기 전 지상을 휩쓸며 번성하던 모습이 4d애니매이션으로 꾸며져 이십분 동안이나 특수 안경을 쓰고 감상하는 동안 그 큰 입을 벌리고 확 덮치는 바람에 옆자리의 장지성시인 "아이쿠 간 떨어 질번 햇네" 하고 익살을 떨었다.
시, 시조. 수필. 소설문학의 전 장르에 기량을 들어낸 서라벌 예대의 장지성 아우님은 고향 영동에서 과수원을 가꾸며 영동뿐 아니라 충북의 터줏대감으로 고향사랑과 문화 배양에 힘쓰는 혜르만 햇세나 타고르 냄새가 나는 시인이다. 옆자리에서 앉아 감상한 경북 영주 전선구 시인은 사군자를 치는 조계숙씨가 아내로 조평진 시인 함세린 시인과 더불어 그 먼길을 자가용으로 달려오는 성의를 보였다, 파충류 같은 용반류와 조반류로 나뉘는데 네 발로 걷는냐 두발로 걷느냐가 기준이다,
오후 한시경 다시 진주로 와 유유히 흐르는 남강이 내려다 보이는 촉석루에 들렀다. 우뚝할 촉(矗)에 돌석(石) 전망이 빼어난 곳에서 진주성을 함락하여 기고만장한 적장을 깍지 껴 끌어안고 강물로 뀌어든 주논개(朱論介) 의 사당이 있는곳이다. 우리나라 삼대 누각의 하나로 동시 오고간. 남북 사건.처마 높이 30퍽 지붕 높이 40척의 합각 지붕의 목조 건물로 고려, 조선시대 수비처인 남장대가 있었던 자리다. 그 규모가 웅장하고 그 경관이 빼어난데다가 충절의 기개까지 핵심이 되니 수주 변영로 시인이 거나하게 술 한잔 걸치고 "아,강남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흘러라"하고 기셨으리아.
그 의암에서 사진 한장 찍고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버스에 올랐다. 얼굴도 서로 익혔고 오가는 정도 트일만큼 트여 이병필 출판사 사장의 사회로 정재열 문우회 간사가 박자를 넣어 심명을 돋우었다. 도개비 국물이 들어가면 원숭이도 춤을 추듯이 과목한
모상철 시인이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 하자 분위기가 고조되어 이구동성 노래를 따라 부르고 흔들리는 차 속이라 전문가에게 실례인줄 알지만 유강 고두석 시인의 창을 청해 듣고 나도한번 불어 보리라 정재열 시인도 하모니까를 멋들어지게 연주하며 상경하느 참에 죽전 휴계소에서 간단하게저녁 식사를 하는데 미식가인 김회장이 구운 꽁치를 들기에 오늘 그냥 혜여져서는 안되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엑스포 도자기전시관에 마련된 소가야시조시인들의 시가 아로 새겨진 도자기. 그 뜻 깊은 시화전을 다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만큼 엑스포 행사장의 규모가 크고 다양 한데 다가 미리 자세한 안내가 안되어 있었던 탓이다. 촛점이 여긴데 필자가 미안해서 한마디 했더니 김숙선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것을 개최하기 위해 마음 고생이 컷던 김홍래 시인이 그 애로사항을 목이메여 말을 해 올때 저 나이에 저 열정이 어디서 나왔을까 감명이 컸다.
고성이 또하나 유명한것은 고성 농요인데 모짜기. 모심기. 타작. 삼삼기. 논매기. 물래질. 철 따라 이어지는 농군의 애환이 실감나게 끌려 나간다.
엑스포 웰빙 농사등은 그것을 시각화 했는데 그 농요를 듣지를 못해 아쉽고 자방루가 있고 연화산 품에안긴 고즈넉한 옥천사 그 약수를 못 마신것도 그러하다.
이 기행을 위해 익산의 신길수 부회장이 쾌적한 금 일봉은 아주 요긴했다. 참석을 못하는 대신 그리 마음 쓰는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숨어 묵묵히 시조문학문우회 뒷 바라지를 한 소가야 맴버들 김홍래 시인을 필두로 김숙선.정정배.전갑열.박연순.이수경. 이상진 시인등 소가야 분들의 건투를 빈다.
시조문학이 170호 까지 나오는 동안 그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월하 리태극 박사의 시조에 고나한 일괄된 열정과 넉넉한 인덕의 향기가 주춧돌임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신춘문예 출신이든 문예지 출신이든 적어도 시조 시인 이라면 한덩어리로 뭉쳐야만 옹졸에서 벗어나 한국 문인협회 위상이 설것이다. 타 장르에 비해 젊은층이 적은것이 현대 시조단이 안고있는 고민중의 하나다,
정정배. 한휘준. 정재열. 고동우. 시인이 동참하고 온갖 뒤처리에 마음을 쏟고 애쓰는 모습은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김준 회장. 이별필 사장 정재열 전무. 장청이 사인방이 아직도 미달인 주량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다가 기어코 한잔 꺽어 대미를 장식 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