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2일(일) 저녁. 마음이 설레기도 하면서 어깨가 점차 무거워짐을 느낀다. 처음 맡은 학년부장. 그것도 6학년 부장. 첫 대사업인 수학여행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짐을 챙겨두고 샤워를 한 후, 이러저리 뒤척이다 새벽 두 시경에야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아침 4시 59분. 5시에 맞춰둔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내 자신도 신기하게. 빨리 준비를 하고 밥 한 술 뜬 후, 차를 몰고 여명을 깨며 2단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5시 45분. 벌써 학교를 향하는 발걸음들이 보인다. 다소 들떠 보이기도 하고, 추워도 보인다. '날씨가 꽤 쌀쌀한 걸..., 날씨가 많이 도와줘야 할텐데...' 이런 저런 걱정을 앞세우고 들어선 교문. 아이들이 몇 보였다. 바람도 불고 날이 차서 아이들을 현관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교실로 들어가 찬찬히 하나하나 오늘, 내일 일정을 챙겨보았다. 어느새 시간은 6시 20분을 향하고 있다. 서둘러 1층 현관 앞으로 가보니 어느새 구름처럼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운동장을 메우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갑자기 어린이공화국 대통령 상원이가 작은 메모장을 내밀며, "선생님, 오늘 아이들 앞에서 선서를 하고 떠나겠습니다." 한다. "그래? 방송은 준비됐니?" "네" 잠시 후 마이크를 들고 상원이가 다시 나타났다. 어김없이 오늘도 방송이 심술을 부렸다. 어찌어찌 하여 십여 분 후에 방송으로 아이들을 모은 후, 45분쯤 선서를 할 수 있었다. 어린이공화국을 한 후, 어쩌면 처음으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는 순간이었다. 내 가슴에 감동이 한 순간 휘몰아쳤다. 이제 준비가 다 된 건가?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학부모님들의 뜨거운 환송 속에 교문을 나섰다. 4호차에 올랐다가 1호차로 갈아타느라 출발부터 좀 분주하다. 처음부터 뭔가 꼬이는 느낌. 잘 할 수 있을까? 잘 될거야. 잘 될거야. 이런 자기 주문 속에 차는 출발했다. 서울까지 가는 내내 학습 모드로 우리 반 아이들을 고문한다. 서울까지 가는 경로를 백지도에 그리고, 기행문 쓰는 방법도 일러 주었다. 문경새재를 지나면서는 우리나라의 경동성 지형에 대해서도 알거나 모르거나 마구 들이부었다. 좀 무리한 계획이다 싶다. 이때 어디선가 이인희 선생님이 나서신다. 예의 그 발랄함으로 아이들을 한 순간에 광란의 도가니탕으로 만들어 버리신다. 역시 대단하시다. 신숙자 교감 선생님도 15세 소녀로 돌아가 즐겁게 어울리신다. 담임 교사의 권위를 버리고 나도 신나게 놀아댄다. 놀이가 그저 즐거움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나는 몸소 깨닫고 살아온 터라, 누구보다 즐겁다. 아이들이 서서히 공동체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서울이다!"하고 외쳤다. 그 외마디 탄성에 모두들 일순간 촌놈들로 돌아간다. 연이어 감탄사들이 터져나온다. "역시 서울이다." "한강이다." 서울에 압도당하는 아이들. 이건 아닌데 싶다. 서울의 오늘과 어제, 서울의 장단점을 5학년 때 배운 '도시의 생활 모습'이라는 단원의 내용을 인용해 되새겨주었다. 아이들이 서서히 이성을 찾는다.
경복궁 앞에 도착하니 이런, 하필 광화문이 공사중! 해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왠 에러... 광화문이 아닌, 민속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섰다. 멀미로 길거리에서 토하는 아이를 보았다. 안쓰럽다. 아이들이 건강했으면... 정문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어렵사리 제일 큰 전각인 근정전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옛스런 한복을 입은 궁녀 차림의 여인들을 보았다. 오, 경복궁도 좀 노력하는 걸. 근정전 앞에서 기념촬영부터 했다. 이런 수학여행에는 동행한 사진사를 위해 기념촬영부터 해주는 센스. 꼭 필요하다. 한 귀퉁이로 아이들을 물리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본 근정전은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웅장해보였다. 품계석과 옥좌, 일월오악도, 지붕의 잡상, 공포, 십이지신상 등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조선시대 근위병들의 행렬을 재현한 듯한 한 무리의 행진을 구경하였다. 경복궁도 많이 좋아지고 있군. 시간이 없어서 광화문 앞의 근위병들을 구경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1반은 구경했다고 한다. 5반은 경회루까지 추가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보았단다. 아이들에게 좀 미안해지는 대목이다. 내 머리 속에 온통 점심을 어디서 먹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복궁 주차장에 차 뒤에서 궁색하기 그지 없는 점심 식사를 하였다. 말 그대로 떼우기다. 근처 할머니들의 돼지 고기 굽는 냄새가 너무 식욕을 자극한다. 오늘 따라 돼지고기 주물럭이 왜 그리 맛있어 보이는지.(결국 수학여해 뒷풀이로 돼지 고기 제육볶음을 먹었다.) 경복궁에서는 근정전 하나로 조선시대 정치의 근본이 된 유교 정신을 건축물을 통해 발견하도록 안내하였다. 의외로 아이들이 잘 찾아냈다. 왕과 신하가 다니는 길, 서는 자리 등이 다르다는 것을 통해 유교의 근본 정신인 군위신강, 군신유의, 충을 발견한 것이다. 이 정도면 의미 있는 시간 투자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커서 어떤 유적지에 가서도 그것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과 그 이유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유적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죽고 말이 없지만, 그 아이디어는 현재진형인 것이다. 그것을 알고 볼 수 있어야 진정한 답사꾼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쉬고 즐기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고생이었다고 회생한다. 왜 그럴까? 유적과 유물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이 고되게 느껴지는 것은 문화재를 죽은 무생물로 냉냉하게 대하였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서서 문화재를 통해 과거 조상들의 정신을 공감해볼 때에만 문화재는 진정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수학여행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이 점을 깨닫게 해 주고 싶다. 절반의 성공은 확보한 듯하다.
강화도로 향하는 버스 안. 시각은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다. 일정에 차질이 없어야 할텐데... 이번 수학여행의 또다른 목적인 여행지에 대한 올바른 지역성과 바람직한 장소감을 형성시키기 위해 서울에 대한 5행시 짓기를 했다. 1행은 장소의 이름, 2행에는 장소의 유명한 것, 3행에는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일, 4행에는 장소를 꾸미는 말, 5행에는 장소의 지형적 특성을 넣어 그 장소의 지역성과 장소감을 형성시키는 활동이다. 아이들의 시작 수준이 꽤 높다. '서울아, 너무 높지 마라. 서민들 힘들다.' 이런 표현도 나온다. 물론 내가 좀 거들어준 것이지만. (나중에 뒷풀이에서도 이 활동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의미 있었다는 반응이 있었다.) 좀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강화도에 들어섰다.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씩씩댄다. 왜? 이번 수학여행 여정 때문이다. 기사들이 보시기에 이번 코스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길이 있는 대로 코스를 잡으면 일정도 단축하고 기름도 절약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빙빙 돌아돌아 지그재그로 답사를 진행하느냐는 것이다. 교감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시대의식 발달 단계를 고려해서 시대순을 돌고자 한 의도를 헤아려 줄 것을 부탁하신다. 굳은 표정의 우리 1호차 캡틴 기사는 고인돌 유적지에 도착해서도 화가 덜 풀린 듯 괜히 애꿎은 다른 기사들에게 성을 내신다. 내 맘이 조마조마해진다. 이인희 선생님이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가와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주신다. 배려의 화신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살만한 것이리라. 신교감 선생님도 기사들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신다. 너무나 고맙다. 부장이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하고 계신다. 문제해결력이 탁월하시다. 어떻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원리를 꿰뚫고 계신다. 신교감 선생님과 한 차에 타게 되어 처음에는 좀 불편할 줄 알았는데, 역시 오만한 편견이었다.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을 등록되어 있는 유명한 유적이다. 세계에 있는 고인돌이 총 6만기 정도인데, 그 중 반인 3만기 정도가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다니, 가히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라 할 만하다.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게 뭔가? 63빌딩? 월드컵 경기장? 한강? 비교 우위에 있는 경복궁과 종묘, 고인돌, 팔만대장경판, 석굴암과 불국사, 수원성 등 이런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우리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종묘는 주차장이 좁아 아예 가보기도 어렵고, 고인돌 유적지는 아직 조성이 덜 되어 허허벌판에 고인돌 1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나마 팔만대장경판과 석굴암, 불국사는 사정이 좀 낫다 싶다. 그러나 아직은 문화재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부족하기 그지 없다. 경복궁만 해도 옥좌에 올라보고 싶은 대중들의 욕망을 헤아려 궁밖에 체험장을 만들어두고 단체관람객들을 위한 식사장소도 준비해둘 수 있을텐데. 너무나 권위적인 문화재다. 언제쯤이나 그런 즐거운 투어가 가능할까? 북방식 고인돌의 형태를 한 거대한 고인돌에 대해 설명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이런 저런 질문들과 답변도 이어진다. 진정한 산 공부의 시간이다. 현호를 고인돌 밑에 들어가게 했다. 실험맨인 셈이다. 유적이나 지형의 사진을 찍을 때는 기준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세워두어야 그 크기나 폭을 어림할 수 있다. 볼펜도 하나 놔두었다. 하나하나 교대 송교수님께 배운 것을 적용해본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논다. 처음으로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선생님들의 표정도 부쩍 밝아졌다. 전등사로 향하면서 숙소에 전화를 해 저녁 식사 시간을 예약했다. 주차장에 내려 올라가니 전등사의 아담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세 번째. 그런데 전등사에 들를 때마다 그 아늑함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들뜬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린 후, 하나하나 유적과 유물에 대해 설명을 한다. 전등사에서는 미술과 단원 내용과 관련지어 자연환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물을 찾아보게 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게 해주는 것을 두 가지 찾게 하였다. 삼성각과 나녀상, 중국종에 이르기까지 많은 보물들이 이 작은 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은 전등사의 큰 매력이다. 색색의 연등까지 있어 더욱 아름다워보인다. 아이들이 이 자연과 그에 적응해서 만들어진 조형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삼성각에 오르니 강화해협이 눈 앞에 들어온다. 또 한번 마음이 탁 트인다. 역시 강화도에 오길 잘했다 싶다. 아이들과 함께 종교와 종파를 떠나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 예를 갖추었다. 네 지붕 밑 나녀상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이 발견하고 신기해한다. 나녀상의 전설은 시간이 없어 설명하지 못하였다. 학교에 가서 들려주어야겠다.
드디어 숙소로 향하고 있다. 작년, 재작년 숙박지였던 강화남산유스호스텔의 안 좋은 추억이 올해는 제발 재현되지 않아야 할텐데... 답사를 다녀온 두 선생님들께서 너무 좋은 곳이라고 만족해하셔서 기대가 된다. 시골길 같은 비포장로를 지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바다의 별'에 아이들을 내리게 하였다. 경천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후기 천주교가 보급될 시기에 내세운 사상이 아마도 '경천애인'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경천관, 애인관의 이름이 붙었나보다. 서둘러 아이들을 강당에 모아 운영진에서 설명을 하고, 한 반씩 식사를 하게 하였다. 예약된 메뉴와 조금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할만한 수준의 식단이다. 하루 종일 떠드느라 배가 어지간히 고팠나보다. 더 먹으려다 참는다. 아이들 표정에서도 만족스런 식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 교감 선생님의 권유로 아이들 사이에 끼어 밥을 먹으니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커 보인다. 선생님들은 관행에 따라 별식을 먹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더 거리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모든 권위의 권자를 박차고 진정한 민주적 리더쉽을 갖추어야 할 때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을 거부하거나 화를 낸다면 시대정신에 동참할 수 없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 무식해서. 둘째, 무능해서. 셋째, 무시해서. 이 중 가장 고치기 힘든 것이 무시하는 태도다. 사소한 것은 무시하더라도 시대의 문화를 선도해야 할 교사로서 민주적 리더쉽을 이런저런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성장하지 않는다.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확인하고, 또 확인시켜주지 않는 교사는 기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수업 전에 다 배우고 익힌 것을 수업 중에 확인시켜주는 식의 수업은 사실 무의미한 것이다. 지식적이든, 기능적이든, 가치태도적이든, 무엇 하나라도 수업 전보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도출해내야 비로소 수업을 통해 교육을 하는 것이다. '대다수 교사들의 관심은 대부분 수업에 있다. 교육에 있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번 수학여행에서 나는 아이들이 인터넷이나 사전 학습을 통해 보고 들은 것들을 현장에서 단순히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현장 조사 학습, 즉 수업을 통해 지식, 기능, 가치태도적인 면에서, 국어과적으로, 미술과적으로, 사회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코스와 학습지, 교사 자료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오늘 밤 선생님들의 반응이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자기 방으로 향했다. 이벤트 시각은 8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역시 예상대로 안에서 새던 바가지들이 말썽이다. 창밖 베란다를 통해 다른 방으로 이동을 시도하는 어처구니들까지 있다. 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한다. 위기다. 기동타격대의 긴급 출동. 얼마간의 얼차려로 단번에 범인들의 제압하고, 방을 순찰하며 혹시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이제야 안정을 되찾는 숙소. 오늘 밤에 아이들이 제발 일찍 자주어야 할텐데, 벌써 걱정이 앞선다.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운영진과 이런저런 계약서를 주고받은 후, 강당에 들어섰다. 벌써 좌중은 사회자의 진행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 뒷편에 자리를 하고 이벤트를 함께 즐겼다. 코요테의 '만남' 노래를 재미있는 율동에 맞춰 불렀다. 만남. 나에게 좀은 특별한 노래다. 그 시절, 그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잠시 옛 생각이 빠져있던 나를 깨운 것은 "각 반의 선생들의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는 사회자의 일성이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 뒷 좌석으로 돌아왔다. 이번 이벤트의 대부분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각 반 대표를 뽑아 이런저런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익숙하게 본 게임인데 강당의 음향과 조명, 스크린 시설 등이 완벽해서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의 하일라이트 선생님들이 대표로 경기에 참여한다. 만보기 머리띠를 두르고 학급을 위해 갖은 동작으로 만보기의 수치를 높이기 위해 뛰신다.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을 수가. 아이들, 진행자, 선생님들,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죽는다. 바닥에 나뒹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7반 선생님의 익살스런 손동작에서는 눈물까지 쏙 빠질 정도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 차례. 이번에 1등을 해야 우리 반이 1등이 된다고 한다. 부담 20000배 증가. 사회자의 시작 신호에 따라 나는 정신 없이 아이들 말로 OTL자세를 한 채, 쉴 새 없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내가 흔들리는 건지, 세상이 흔들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만"하는 소리가 들렸다. 골이 흔들린다. 세상도 따라 흔들린다. 결과는? 우리 반이 1등. 1분에 무려 73회를 흔들어댔다. 건우는 무려 81회. 모두들 경악한다. 차 안에서 놀이에 참여하는 자세를 선행학습한 우리 반은 게임 내내 적극적으로, 또 협동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러나 몇몇 학급의 일부 아이들은 게임에 무관심하거나, 그저 지켜만 본다. 관객형인 것이다. 가끔은 사회자를 향해 불온한 손동작을 해대는 아이들도 보인다. 사회자를 많이 해본 나로서는 무척 화가 났다. 다행히 사회자가 재미있는 말로 경고를 준다. 이번 이벤트의 사회자는 진행을 참 깔끔하게 잘한다. 수학여행비의 부담을 감안하여 1시간만 계약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이벤트가 끝나고 사회자, 그리고 운영진 대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숙소에 대한 우리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목소리들을 전했다. 내일 코스에 대해서도 협의를 했다. 협의 중에 내일 코스에 무리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코스대로라면 이인희 선생님 발표 시각에 맞춰 대구에 도착하려는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듯하다. 계획을 서둘러 수정하였다. 작년처럼 역시 강화읍에서 가깝고 교통과 주차 사정이 좋지 않은 고려궁지를 일정에서 뺐다. 문화유산해설사들이 걱정이다. 연락처라곤 협회 전화번호 뿐인데. 전화를 걸었다. 역시 부재중이다. 지난 토요일에 문화유산해설사협회에 전화를 해서, 회장님 휴대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는데 협회로 전화하라고만 하고 끊은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일인 듯해서 더 독촉하지 못한 나의 실책이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전화해서 해설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겠다. 드디어 아이들과 일전의 시간이다. 어떻게든 자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어떻게든 재우려는 선생님들의 한판 승부. 자, 과연 이번 승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남학생 숙소에 가서 10시 50분에 점호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11시. 모두들 잠자리에 누워는 있다. 근데 영 잘 기색이 아니다. 일단 철수. 12시. 이제 본격적인 제압의 시간. 자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 방에 가서 얼차려를 준다. 이제는 자겠지? 왠걸. '이제는 선생님들이 다시 오지 않겠지?' 하는 눈치빠른 아이들 덕분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서로 휴대전화로 욕설을 주고받고. 심지어 다른 방에 가서 린치를 가하는가 하면, 한두 학생들이 다른 아이들을 못자게 일부러 떠들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다시 이어지는 얼차려. 주먹쥐고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 몇 차례하면, 요즘 초등학생들은 거의 넉다운이다. 도저히 안되서 내가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위층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듯, 이인희 선생님 앞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단체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복도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만이 흐른다. 이제는 됐다 싶다. 여자 선생님들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짧은 반성회의 시간. 신 교감 선생님만 홀로 두고 온 것이 죄송스럽지만, 이런 것이 또 수학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아이나 선생님이나 윗사람 눈을 피해 즐기는 음식과 담소는 어찌 그리 달콤한지. 반성회에서는 자화자찬이 쏟아졌다. 작년의 반응과는 판이하다. 2년 연속 같은 선생님들이, 비슷한 코스로 여행을 온 것이 첫번째 성공의 이유. 신교감 선생님과 이인희 선생님의 도움, 그리고 아이들의 적극적인 학습 참여 태도가 두번째 이유. 그 외에도 자세한 자료집과 새롭게 추가된 새로운 학습 활동, 사전학습 실시, 예비 답사 등 수많은 변수들이 잘 들어맞아 성공적인 수학여행, 현장 조사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낭보들이 내귀를 즐겁게 한다. 이런 선생님들과라면 6학년을 더 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다들 6학년은 이제 그만. 반응이 썩 좋지 않은걸. 다시 숙소로 향하는 길에 맑은 밤공기와 아늑한 하늘의 별들, 달을 보며 자연에 가까이 있음을 깨닫는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 나로서는 언제나 자연을 닮은 사람이 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좋다. 너무 좋다. 이 상쾌함. 바로 이런 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리라. 시각적으로뿐만 아니라, 후각, 청각, 미각, 촉각까지 내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어떤 이는 느낌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만난다고 한다. 그래, 아이들에게도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자.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지 않도록. 자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세상과 온몸으로 만나고, 자연과 온몸으로 하나되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들자. 수학여행 첫날밤은 이런 아름다운 다짐과 함께 깊어만 간다. 어디선가 소쩍새만이 슬피 운다. 소쩍, 소쩍...
수학 여행에서 얻은 경험들을 교실 속에서 재구성해 보았으면 한다. 그 과정은 경험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때 경험은 유의미한 경험으로 바뀌고, 경험이라는 맥락에 토대한 지식이 구성된다. 맥락적 구성과 능동적 구성이 된다. 더불어 경험이라는 삶에서 지식이 파생되고, 그 지식은 다시 삶으로 되돌아간다.
학습자의 스키마라든가 맥락 등을 토양으로 구성된 기호에 의해 사물을 파악하고, 해석하고, 그 결과와 의미들을 타자들과 의사소통하는것이 바로 '능동적' 이고 '의미있는' 학습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호화와 의사소통을 교육적으로 조정하고 운영해 나가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교실에서 현장 조사 학습 계획을 수립하며,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수준에서 가치와 가능성이 큰 의문을 선별하여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9개 반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고, 줄인다고 줄였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처음의 목적을 여하히 달성키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에서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 못지 않게 버스 안에서 본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학생들의 기행문도 앞으로 몇 편 올려볼 생각입니다.
첫댓글 본 글을 학교홈페이지에 올렸다가 교장선생님께 핀잔을 맞았습니다. 너무 솔직하여 해석상 오해가 있다고... 그래서 자문애에 올려봅니다.
수학 여행에서 얻은 경험들을 교실 속에서 재구성해 보았으면 한다. 그 과정은 경험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때 경험은 유의미한 경험으로 바뀌고, 경험이라는 맥락에 토대한 지식이 구성된다. 맥락적 구성과 능동적 구성이 된다. 더불어 경험이라는 삶에서 지식이 파생되고, 그 지식은 다시 삶으로 되돌아간다.
네, 교수님. 머리가 아둔하여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교실에서 수학여행에서의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게 하고, 그 의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해보겠습니다.
현장학습에 나가서 보고 듣는 것들-비단 '현장학습'에만 국한되는 부분은 아니겠지만-은 그저 '보고 듣는' 수준에서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기호와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습자의 스키마라든가 맥락 등을 토양으로 구성된 기호에 의해 사물을 파악하고, 해석하고, 그 결과와 의미들을 타자들과 의사소통하는것이 바로 '능동적' 이고 '의미있는' 학습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호화와 의사소통을 교육적으로 조정하고 운영해 나가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맥락성있고 유의미한 기호로써 사물을 인식하여 지식을 구성하고 그 결과로써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도 함께 제기해 봅니다.
교실에서 현장 조사 학습 계획을 수립하며,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수준에서 가치와 가능성이 큰 의문을 선별하여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9개 반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고, 줄인다고 줄였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처음의 목적을 여하히 달성키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에서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 못지 않게 버스 안에서 본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학생들의 기행문도 앞으로 몇 편 올려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