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보낸 한철 - 랭보
- 고아들의 새해 선물 -
1.
방안은 온통 어둠에 싸여 있고, 두 어린아이의
애처롭고 다소곳한 밀어가 들려올뿐,
길게 드리어진 백색 커튼 자락이 흔들리고 있는 주변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꿈의 무게로 인하여 두 사람의 이마는 수그러지기만 하다.
밖에서는 작은 새들이, 추위때문에 서로 몸을 비비대면서.
회색빛 하늘을 향하여 차마 무거운 날개를 날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소년은 깊은 안개를 몸에 휘감고,
눈의 옷섶을 길게 끌고 가면서
눈물로 가득히 고인 눈으로 미소 짓기도 하고,
또한 오들오들 떨면서 노래 부르기도 한다.
2.
흔들리는 커튼 아래 자리잡았던 두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캄캄한 밤에 하듯 나직한 목소리로 소근거린다.
그들은 마치 멀리서 들리는 소근거림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이따금 새벽을 알리는 쾌종 시계가 유리 덮게 안에서
언제까지나 울려퍼지는 드높은 금속성 소리의 밝고 되풀이되는
음향에 놀라 몇 번이나 몸을 떤다.
게다가 방안은 얼음처럼 차갑다..
침상 주위에 헝크러진 것들은 흡사 상복 같은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숨결을 가득히 불어 넣는다.
한차례 방안을 휘둘러 보면, 무엇이 부족한가를 우리는 알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자애로움에 넘친 미소로, 자랑스런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어쩐일인지 어머니는, 밤이 되면 혼자서 열심히 잿속에서 꺼져가는 불을 살리면서,
화로의 불을 일으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어린이들 몸 위에 모피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구나' 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들지 않도록
북풍을 막는 문을 꼭꼭 닫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름다운 새들이, 나무가지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한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부드러운 침상은 어머니의 꿈이어늘, 어쩐일로 , 이 둥지에는 깃털도 없고
따뜻함도 없는가.
어린아이들은 추워서, 잠못이루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사나운 삭풍에 얼어붙은 둥지란 말인가.
3.
벌써 눈치챘으리라 짐작하지만, 이 어린아이들은 고아입니다.
집안을 온통 다 찾아보아도 어머니는 안계시고,
아버지도 어딘가 멀리 떠나버렸었다.
할수 없이 한 늙은 하녀가 두 어린아이를 돌보아주고 있는 것이다.
작은 두 어린아이만 얼어붙은 듯한 이 집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아들은 겨우 네살..
그런데 두 어린아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무언가 즐거운 추억들이, 마치 기도하면서 손가락
끝으로 굴리는 염주알처럼 천천히
조금씩 눈을 뜨는 것이다.
아, 얼마나 좋은 아침이었는가. 선물이 있었던 그날 아침은,
밤 사이, 두 어린이는 각각 받게 될 선물을 생각하면서 잠 못 이루는 것이다.
금종이 은종이들로 싼 과자랑, 장난감이랑,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이 소용돌이 치기도 하고
발을 굴리면서 춤추는 것을 보게 되는가 하면,
금방 커튼 밑으로 몸을 숨기도 하고, 다시 또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묘한 꿈도 꾸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활짝 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욕심스럽게 입술을 삐죽히 내밀고, 졸리운 눈으로 부비면서,
헝크러진 머리를 그대로 한 채, 축제일 처럼 즐겁게 반짝이면서,
작은 맨발로, 마루바닥 위를 가볍게 발소리를 내면서,
양친이 계신 방 밖에까지 와서는 가만히 문간을 만진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부모에게 인사말을 올린다...
잠옷 바람으로
되풀이되는 입맞춤.. 거칠것이 없는 기쁨이로다..
4.
아..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몇번이나 되풀이 되었던 그 말은 ..
그러나 어찌하여 이렇게도 변해버렸단 말인가.. 그 옛날의 이 집은..
난로에는 그토록 많은 장작들이 진홍빛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고풍스런 방안은 온통 구석구석까지 빛나고 있다.
큰 난로 에서 올라오는 진홍빛 불빛의 반사가 니스칠을 한 가구들 위에서
춤추는 것이 즐겁기 그지 없었다.
찬장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았다. 자물쇠가 없었던 큰 찬장..
찬장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자물쇠가 없었던 찬장의 목재로 된 내부에
잠자고 있었던 신비로움을 두 어린아이는 몇 번이나 꿈꾸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귀기울였다.. 활짝 열린 자물쇠의 깊은 내부로부터
들려오는 막연한 즐거운 비명 소리에...
양친들의 거실은 , 지금은 텅 비어 있구나..
분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없구나..
양친은 없고 난로도 없고, 소용없는 열쇠도 없다...
그러므로 입맞춤도 없고, 뜻하지 않은 선물도 있을리 없다...
일년의 시작이라고 하는 이 새날이 두 어린아이에게는 얼마나
쓸쓸한 날이겠는가...
완전히 슬픔에 젓은 두 어린아이들이 푸른 눈에서는 쓰디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 떨어지고, 그들은 다함께 중얼거렸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실까..]
5.
이윽고 어린아이들은 슬프게 잠들었다.. 얼핏들여다 보고,
그대는 말하리라..
울다가 잠들어버렸노라고..
잠든 그들의 두 눈까풀은 눈물로 부르터 오르고,
숨소리도 고통스러운 것 같구나..
어린 아이들은 너무나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보다..
그러나 요람속 천사들이 내려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거기에다 즐거운 꿈을 갔다 놓는다.
반쯤 열린 그들의 입술에는 미소가 감돌고.
중얼거리려는 듯 움직인다.. 들거운 꿈 때문에..
둥글고 작은 팔을 앞으로 쭉 내어밀고, 잠을 깼을 때의 귀여운
모습으로 입맞춤을 받으려는 시늉을 하고 이마를 내밀고 있다..
꿈 속의 그들 어린 아이들의 눈길은, 지금은 조용히 안정되고,
그들 두 사람은 장미빛 천국에서 잠들어 있노라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난로에는 빨간 불길이 타오르고 .. 불꽃은 즐겁게 노래한다..
창 너머에는 아름답고 푸른 하늘이 있었다..
자연은 눈뜨고 빛은 취하고 있었다..
반라의 대지는, 소생을 기뻐하고,
태양의 입맞춤으로 하여, 환희로 몸을 떨고 있구나..
지금 이 고풍스런 방안에는 모든 것이 따뜻한 진홍빛으로 물들고
상복 따위와 같은 것은 , 그 어느 곳에도 흐뜨러져 있지 않다..
문밖의 삭풍도 지금은 잠들어버리고,
어린 아이들은 기쁜 나머지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저기, 어머니의 침상 가까이 ,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으며,
저기 커다란 융단 위에는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흑요석과 자개였다..
검은 빛과 흰 빛으로 아로새긴
은으로 만든 두개의 비였다..
검게 테두리를 한 , 작은 유리의 관이 장식되어 있었고.
금으로 새겨진 두글자가 있었다..
[우리들의 어머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