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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장르적 특성과 시조부흥운동
이 봉 수
1. 문제의 제기
초.중.고 교과서에서 시조가 사라져 가고 있다. 1906.7.21일 ‘大丘女史’(성명미상)가 대한매일신보에 “血竹歌”를 발표한 것을 현대시조의 최초발표로 보아 2006년은 현대시조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7월 21일을 ‘시조의 날’로 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현행 제7차 교육과정(1997.12.30일 고시)에 의한 초.중.고교 국어 교과서에서 시조가 종전 6편에서 2편으로 줄어들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그나마 다음 교육과정 개정 때에는 아예 없어질 운명에 있다.
형식이나 내용, 그리고 융통성에 있어서 세계 어느 나라 정형시 못지않은 우수성을 갖추고, 민족의 얼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시조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시조의 앞날을 우려하고 정부의 시조진흥책을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시조는 국민과 정부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실이 되었을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현란한 시청각 영상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디지털 대중문화시대에 깨알 같은 인쇄매체는 흥미를 잃고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소설, 희곡등 산문은 영화나 드라마로 변형되어 전파되고 간결한 운문은 그나마 읽히기는 하지만 틀에 갇힌 정형시보다는 쓰기 쉬운 자유시가 시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시조는 변방으로 밀리게 된 것이다. 또한 현대시조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일반인들은 시조라 하면 고시조만 생각하고 현대시조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 네이버, 엠파스등 주요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도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구분하지 못하고 시조를 [고전문학]으로 분류해 놓고 있어 현대시조를 장막으로 가리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의 개인 시조사이트들은 백가쟁명으로, 시에 대한 이론적인 바탕이 없이, 현대시조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정제되지 아니한 자기 사견을 늘어놓고 독자 특히 어린세대를 오도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도 볼 수 없는 시조를 인터넷에서 이해하려는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장애물로 등장한다.
(3) 기성 시조창작계(시조시인)와 시조비평계(문학평론가, 각종심사위원)에서조차 현대시와 시조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시조의 장르적 특성을 무시한채, 스스로 시조정형을 깨고 자유시 흉내를 내어 인기를 얻으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중 시조쇠퇴의 가장 큰 원인은 위 (1)항에 있지만 그 원인을 극복하지 못하고 교과서에서조차 사라지게 된다면 그 책임은 두말할 것 없이 (3)항 현역 시조시인, 평론가 및 심사위원들에게 있다.
고시조와 자유시의 중간에서 고시조와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자유시가 따라오지 못하는 문학적 특성을 살려 현대시조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확고한 영역 즉 문학적 장르를 확립함으로서 시조가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시조의 장르적 특성
현대시조의 장르적 특성은 고시조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시조의 그릇에 현대시를 담은 것이 현대시조이기 때문이다.
고시조는 신라의 향가(鄕歌)에서 싹이 틀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여 , 고려중기의 장가(長歌)로 형식이 정제되고, 고려말기에 정형이 잡힌 시조가 다수 출현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글창제에 힘입어 가사(歌辭)와 더불어 시가문학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조는 한민족의 3.4조 어법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수사(修辭)형식이며
간결하고 소박한 취향을 가진 선비들의 서정을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한글창제 이후에 악곡(唱)을 곁들여 번창하고 700년을 이어온 민족의 정형시가 되었다. 즉, 우리민족의 어법에 가장 잘 맞는 시가형태이기 때문에 정형이 확립된 것이다.
시조의 주류는 평시조로서 그 형식적 특성은
(1)한 수(首)가 3장(章)으로 구성되고, 각장은 2구(句)로 각 구는 2마디(음 보)로 구성된다. 즉 3장,6구,12음보의 구조이다.
(2)한 음보는 3또는 4음절이 주를 이룬다.
(3)시적 반전을 일으키고 변화를 주기 위하여 종장 첫마디는 3음절, 둘째마 디는 5음절(최대 8음절까지 허용)의 시어를 사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임진왜란과 양대 호란을 겪고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농경사회, 양반사회의 전유물인 평시조는 상경사회, 서민사회에 부응하는 사설시조에 자리의 일부를 내어주게 되었다. 사설시조는 전아(典雅)한 평시조의 분위기를 탈피하여
직설적, 폭로적, 풍자적, 비속적, 해학적, 유희적 언어를 동원하여 세속(世俗)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렇다고 형식을 무시하고 마구 내 뱉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이 자유시와 확연히 구별되는 장르적 특성이다. 사설시조는 평시조보다 다양한 창(唱)으로 낭송된다.
사설시조의 형식적 특성은
(1) 평시조와 같이 1수가 3장으로, 각장은 4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사설시조 의 마디는 평시조와 같은 음보마디가 아니고 같은 의미로 뭉쳐진 일단의 글(의미마디)이다.
(2) 2음보씩 묶어 리듬을 주고 연속적으로 사설(辭說)을 엮어 간다.
(3) 종장은 평시조와 같은 구조로 시적 반전을 일으킨다.
한 편, 고시조가 형식을 제공한 것이라면 자유시는 내용을 제공하여 현대시조의 장르적 특성을 이루게 한다.
현대인이 고대의 의상을 입고 고대인과 같은 행동과 생각(시상)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조창을 벗어내고 순수문학의 읽는시로 남게된 현대시조는 20세기 문예사조와 창작기법을 따를 수 밖에 없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주정주의에서 벗어나 20세기 주지주의, 모더니즘, 포스터모더니즘을 수용하고 다양한 창작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이 점은 자유시와 일치한다.
21세기를 맞아 영상문화의 급속한 발달과 인터넷, 게임, 휴대폰, 카메라 등 무한대한 디지털문명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독서를 멀리하게 하고 난삽한 자유시를 싫어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자유시의 지나친 자유추구와 혼란에 식상한 독자들은 리듬과 형식이 안정되고 간결한 정형시를 다시 찾게 된다. 시조시인 중에도 세계적으로 정형시는 점차 사라져간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일본의 ‘하이꾸(俳句)’가 한 글자의 가감도 허용하지 아니하는 완벽한 정형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기는커녕 미국, 유럽 등에 수출되어 세계적 정형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간결한 정형 때문이다.
우리의 시조는 정형시이면서도 음보율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한두 자의 가감이 허용되는 융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우수한 정형시이다. 또한 일본의 ‘하이꾸’에 비해서 표현 영역도 훨씬 넓다.
평시조는 초.중장에서 3,4조의 음보로 리듬을 타고 작은 파도를 거듭하다가 (起,承), 종장에 가서 대 반전을 일으켜 3,5로 솟구치고 4.3으로 단호하게 마무리 짖는(轉,結) 멋진 구조를 자랑한다.
사설시조도 3,4조의 음보로 초.중장을 엮어 나가다가 종장에서 반전을 일으키는 것은 평시조와 다를 바 없다.
3. 시조부흥운동
갑오개혁(1894~1896) 이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현대시조의 모습을 보이다가 1926년에는 국민문학론자들의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발간되었으며, 육당에 의해서 노래하는 시는 읽는 시로 바뀌고,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는 단형, 중형, 장형시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가 하면, 장별 구별 배행도 생기게 되었다.
두 번째로 1950년대 국가적 위기를 맞아 민족문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욕구가 강해져 시조부흥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고 이후 자유시로부터 시조를 굳건히 지켜내는 보루가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시조는 국민과 정부로부터 홀대를 받는 문학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세 번째로 시조부흥운동을 벌려야 할 시점에 봉착했다.
앞으로의 시조부흥운동은 시조를 선도하는 기성 창작계와 비평계가 먼저 장르적 특성을 살려 시조의 정형을 확립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시조시인들은 시조가 정형시임을 소홀히 하고, 또 정형시로서는 단조롭고 융통성이 없어 문학적 한계가 있는 것으로 단정하고, 나아가 그로 인하여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일부러 변형을 일삼고 자유시를 흉내 내는데 급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조의 정형성을 가볍게 여기고 현대성만 중시하여 자유시에 가까운 형식시험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인양,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선구자인양 하는 것이 도리어 시조를 외면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1) 시조의 장르적 특성이 3장인 것을 망각하고 양장시조 또는 단장시조를 쓰는 시조시인,
(2) 평시조에다 사설시조를 섞어 넣거나 족보도 없는 문구를 무질서하게 넣어 옴니버스시조라고 시조장르를 스스로 파괴하는 시조시인,
(3) 3장 6구 12음보의 수(首)를 무시하고 장의 구별 없이 6행시, 9행시를 쓰고 새로운 시도인양 자유시독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시조시인,
(4) 어느 모로 보아도 시조라고 볼 수 없는, 여행사의 관광 안내문 같은 글, 또는 음수율은 고사하고 음보율 마저도 무시한 완전한 자유시로 보이는 글을 써 놓고 사설시조라고 우기는 시조시인,
(5) 시조의 장르적 특성을 무시한 채 3행시의 종장 첫3자만 써 놓고 시조라고 우기는 시조시인.
그 형태를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시인들이 한편으로는 시조평론도 하고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문예지에 등단심사를 하고, 최고의 문학상 시상심사를 하는 현실이니 시조가 올바르게 자리를 잡을 수가 있겠는가?
자유시와 같은데 시조라고 하니 일반인이 어리둥절하고 시조를 구별할 기준이 없으니 시조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어린 학생들이 이런 시조시인에게 시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장르적 특성을 다 허물었으니 대답을 못할 것이다. 만약 억지 대답을 한다면 자기기만이요, 사회적 장애물에 불과할 것이다.
국민의 무관심과 정부의 시조홀대정책을 탓하기 전에 시조인들이 먼저 각성하여 시조정형을 지키는데 힘을 모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시나 고시조가 흉내 낼 수 없고 시조만이 할 수 있는 장르를 확실히 지키며 그에 따른 우수한 작품을 생산하고 보급하면 독자들이 스스로 시조를 찾고 저변인구가 확대되어 정부가 홀대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시조 비평계의 노력이 앞서야 한다. 시조장르를 훼손한 작품을 여과 없이 호평하거나, 등단시키거나, 시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비평계는 최소한의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시급한 평가기준을 제시해 본다,
(1) 시조의 정형을 훼손하거나 상실한 작품은 혹평을 가하여 도태시키고 각종 심사대상에서 제외시킨다.
(2) 시조의 내용은 문학성을 제1의 평가요소로 하고 시대성을 반영하여 19 세기적 시상과 작법을 배격하고 20세기 또는 21세기에 부응하는 작품을 우대한다.
(3) 미적인식이 없이 쓴 작품, 숨어 있는 시적인 세계를 들추어 내지 못하는 작품, 누구나 즐겨 쓰는 비슷한 작품, 특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혼자만 의 작품, 서술적인 산문에 불과한 작품 등은 낮은 점수를 준다.
4. 평가의 실례
이상의 논조에 기초를 두고 근래의 신인작품을 평가한 실례를 든다.
(1) 동아일보 07년 신춘문예당선작에 대하여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이 민 아
무제치늪* 골짜기에 사나흘 내린 눈을
녹도록 기다리다 삽으로 밀어낸다
사라진 길을 찾으려 한삽 한삽 떠낸 눈
걷다가 밟힌 눈은 얼음이 되고 말아
숨소리 들려올까 생땅까지 찧어본다
삽날은 부싯돌 되어 번쩍이는 불꽃들
성글게 기워낸 길 간신히 닿으려나
내밀한 빙판 걷고 먼 설원 헤쳐가면
삽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결빙에 맞서왔던 삽날이 손을 펴고
쩌엉 쩡 회색하늘에 타전하는 모스부호
마침내 도려낸 상처 한땀 한땀 기워낸다
*무제치늪 : 울산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鼎足山)에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습원(高層濕原). 6000여 년 전 생성됐으며 지금도 수많은 습지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심사위원 심사평 (발췌)
심사위원 : 이근배 (시조시인)
신춘문예를 의식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며 앞서 달려오고 있었으나 의욕과 실험정신을 완성도 높게 채우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또한 시조는 시각적 형식미에서 자유시와 식별시켜야 함에도 의도적으로 구와 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표기법을 쓰는 유형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가 자유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내재적 의미의 농축에 힘써야 하고, 글감잡기에서 형상화까지 치밀하게 결구(結構)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이민아)는 순수한 원형을 지닌 눈이라는 오브제에서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도려내는 메스를 잡는 손이 능숙하다. 계절성을 띤 소재이면서 일상에서 끄집어내기 어려운 시의 줄기를 찾아가는 생각이 살아 있다. 명사 ‘삽’을 거듭 쓰는 것과 새 맛내기가 덜한 점이 있으나 발상의 깊이가 있고 감성의 칼끝에 날이 서 있어 시조에 한 몫 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필자의 종합평 :
종래 신춘문예당선작을 보면 자유시의 흉내를 내어 형식을 파괴하는 것은 예사이고 이질적인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결합하여 옴니버스시조니 뭐니 하며 새로운 시도라고 억지를 부리며 당선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심사위원의 그릇된 시각으로 인하여 많은 응모작이 시조 정형을 벗어나 변질되어 왔고 신춘문예를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는 세태로 말미암아 시조는 기형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번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은 시조형식을 잘 갖추고 내용도 충실한 시조를 당선작으로 뽑아서 시조의 제 모습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내재적 의미의 농축에 힘써야 한다”는 심사위원의 시각에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도 신춘문예를 통하여 올바른 시조의 모습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당선작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는 평범한 직장주변에서 한 폭의 예술세계를 빚어낸 작품이다.
[삽날은 부싯돌 되어], [삽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회색하늘에 타전하는 모스부호]등 시인의 눈으로 발견해 낸 형상들을 독자에게 잘 전해 주고 있다.
[모스부호]는 영어 표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몰스부호]가 더욱 귀에 익은 말이 아닌가 싶다.
(2) 부산일보 03년 신춘문예당선작에 대하여
노을
반영호
저/
피 토하며/ 꺼져 가는/
운명을 보라/
애절함이/ 분노처럼/ 끓어/ 넘치는/
차라리/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장엄한 이별/
저토록/
처절한/ 아픔을/ 어이하리/
저토록/
처절한/ 사랑을/ 어이하리/
해질녘/
붉은 물결에/
꽃그늘로/ 지는 바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 장순하 . 최승범
자유시적 수법 시조 영역 넓혀
“근래에는 시조 정형에 아주 어긋나는 작품, …, ….들은 현저히 줄어 들었다…그 중에도 반영호의 <노을>은 해설적 형상화적 일반적 시조 작법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해변의 저녁노을을 표현했다……이런 자유시적 수법이 시조의 표현 영토를 넓히는데 일조가 되리라고 기대하면서도 시조는 정형만이 아닌 시조 특유의 분위기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맛과 멋이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함께 생각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필자의 종합평 :
현대시조는 “현대 한국형 정형시”라고 가장 쉽게 정의할 수 있다.
3, 4, 3, 4 3, 4, 3(4), 4 3, 5, 4, 3 이 형식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인가? 그 음수만 맞추면 자동적으로 율이 맞게 되어 있다. 음성학적으로 한국어는 3,4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조정형은 하루아침에 어느 유명한 시인이나 학자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한국의 오랜 역사와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저절로 만들어 진 것이다.
신라 향가, 백제가요, 고려가요 등은 그 시대에만 맞기 때문에 그 시대에서 끝나고 후세에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였지만, 시조는 3,4조 리듬을 반복하다가 3,5로 솟구치고 4,3으로 끊는 맛이 좋아 정형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시조를 자유시의 부류에 접목 시키려는 시조인이 있고 맹목적으로 그에 추종하는 사이비 시객이 있어 시조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있음은 경계하여야 할 일이다.
근자에 신춘문예에서조차 시조의 본질을 왜곡하고 정형시를 모르는 대중을 오도하며 정형을 파괴한 작품을 등단시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위 당선작에 대하여 필자가 억지로 음보를 맞추어 /을 쳐 보니 시조 정형을 거의 상실했다. 3,4조 음보율은 간데없고 수(首)와 장(章)의 구분도 없다.
혹평을 한다면, 위 심사평이 과연 시조심사위원의 글인지 의심스럽다.
시조정형에 어긋나는 작품이 줄어들어서 좋다는 듯이 하면서 정형에 어긋나는 작품을 뽑아 놓고, “해설적 형상화적 일반적인 시조작법을 완전히 배제한” 작품을 시조당선작으로 뽑았다. 일반적인 시조작법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말인지, 형상화적인 것과 이미지와는 어떻게 다른지, 이미지를 자유시적 수법이라고 단정하고 지금까지의 시조에는 없었던 것처럼 해설하고 있다.
또 당선작이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표현되었다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형상화(이미지화)된 것은 한군데도 없고 화자의 흥분한 감정 분출만 있는 진술에 불과하다.
한편, “자유시적 수법이 시조의 표현 영토를 넓히는데 일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누가 시조를 자유시처럼 쓰고 영역을 넓히라고 하였는가?
“정형만이 아닌 시조 특유의 분위기에서 우러나오는 맛”이란 무엇이며 당선작이 시조 특유의 맛이 있는가?
노을 = 운명, 이별, 아픔, 사랑,
초점도 없고 내용도 없는 관념의 나열이다. 상투적인 문구들뿐이다.
어떤 미적인식이 있는 작품인지, 독자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지 의문이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심사평을 해놓고 함량미달의 자유시를 신춘문예 시조당선작이라고 뽑아 놓았는데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3) 중앙일보 05.9월 시조백일장 당선작에 대하여
(장원)
밑줄 긋기
송옥선
오래전에 읽었던 책갈피를 들추다가
밑줄에 갇혀 누렇게 뜬 낱말들을 만났다
흐르르 꿈부스러기가 날아오를 것만 같다
밑줄로 묶인 것들은 모두가 그리움이다
너무 아파 남겨지고 가슴벅차 붙박인 것
이제는 풀무질하여 새털처럼 가벼워진 것
오늘은 어디쯤에 뜻 깊을 밑줄을 긋나
속마음을 비울수록 곳곳에 울림이 있어
차라리 가슴 복판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 김영재, 이지엽
장원으로 선정한 ‘밑줄긋기’는 묘사에 이은 시적 진술이 뛰어난 작품이다. ‘밑줄로 묶인 것들은 모두가 그리움이다.’ 라는 해석적 진술은 낯익으면서도 새롭다. 각 수의 종장 처리도 유연하다.
필자의 종합평 :
원작중 [책갈피]는[책장과 책장사이]이므로 맞지 않다. [책장을 들추다가]로 하면 뜻도 선명하고 3,4조 율격에도 더 맞겠다. 첫째수 중장[밑줄에 갇혀] 둘째수 초장[밑줄로 묶인]은 중복이다. 첫째수와 둘째수를 묶어 6행시로 한 것은 시조정형이 아니다. 그 외의 모든 시상과 표현은 아주 좋다.
심사위원 심사평중 [장원으로 선정한]은 [장원으로 선정된]이라야 옳다.
(차상)
그믐달
강현남
입은 옷 훌훌 벗고
하늘 숭숭 뚫은 나무
지붕 없는 까치둥지엔 소식 하나 집 떠나서
목을 뺀
기다림이 혼자
휜 가지 잡고 있다
심사위원 심사평 :
차상의 ‘그믐달’은 겨울나무가지 끝에 걸린 그믐달을 마치 집을 떠나보내고 자식을 애절하게 기다리는 어머니로 환치시키고 있는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단수인데도 배경이나 행간에 많은 의미를 함축해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필자의 작품평 :
비교적으로 시조형식에 충실하며 장의 구분을 흩뜨리지 않으면서 행을 적절히 변형함으로서 의미의 강조와 전달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
[하늘 숭숭 뚫은 나무]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숨어 있는 세계’를 시인의 눈으로 들추어낸 것으로, 절창이다.
(차하)
단풍나무
윤경희
옷이며 패물이며 가진 것 다 벗는다
직립의 햇발들이 내 뼈를 훑고 있다
서서히 빨려 들어가듯 혈관들이 숨을 쉰다
빈뜨락에 못다 새긴 그리움들 떨어진다
이승의 그 끝으로 붉은 손을 흔든다
천천히 뜯겨져 가는 가을어귀가 시리다
심사위원 심사평 :
‘단풍나무’는 둘째수 종장이 여운을 잘 살려내고 있지만 각 장의 연결이 똑똑 끊어지고 있는 점, 4행과 5행의 육화되지 못한 거친 표현들이 눈에 거슬렸다. 분발을 바란다.
필자의 작품평 :
각행의 무게를 똑 같이 하여 나열한 1연 6행의 자유시이다. 시조는 수(首)의 구분이 분명하고 장(章)은 무게를 달리해야 한다. 시조당선작으로서는 크게 미흡하다.
시의 전편에 흐르는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고 초점이 없다.
심사위원 종합심사평 :
두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전략-
하나는 다른 측면이지만 단시조 창작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시조가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장르이고, 이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길은 단시조다. 일본의 하이쿠가 세계적인 장르가 된 것을 눈 여겨 보자. 시조는 하이쿠에 비해 융숭한 맛과 깊이를 창조할 수 있는 폭넓은 그릇을 가졌다. 단시조 창작이 자유자재로 된다면, 응당 그 이후에 연시조와 사설시조로 폭을 넓혀도 좋으리라.
필자의 한마디 :
[시조가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장르]라는 근거는 시조정형에 있다. 차하당선작과 같이 정형을 훼손한 작품을 선정해 놓고 위와 같은 심사평을 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4) 중앙일보 06.5월 지상백일장 장원작에 대하여
(장원)
여름
김 주용
옹송옹송한 기분으로 살피꽃밭 곁 따라 걷다
샘바리 마냥 덜퍽진 꽃들 부러워 나도 몰래
바듬히 입술 내밀고 비뚜로 서서 흘기고 말았다.
꽃송이 하나 둘씩 돌라방쳐 가슴에 안고
노랑, 분홍, 자주 꽃잎 더금더금 덧게비치면서
애처럼 나뱃뱃한 얼굴 성긋벙긋 웃으며 논다.
꽃들 얼굴 봄이 단장시켜 댕가리진 지 옛날이고
조각보 마냥 꽃잎 덧대 여름의 연 만드는데
꿀벌이 둘레 춤추며 부스댄다고 부르댄다.
심사위원 심시평
심사위원 ; 이한성, 이정환
장원을 차지한 김주용(성균관대 독문과 3년)의 '여름'은 말 그대로 괄목할만 하다. 백석의 시나 조운의 시조를 떠 올리게 한다. 우리 고유어를 살려 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놀랍기까지 하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말들을 행간에 적절히 녹여 표현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샘발이' ' 덜퍽진' '바듬히' '돌라방쳐' '더금더금' '나뱃뱃한' '댕가리진' '부스댄다''부르댄다'등 우리말이지만 낯선 낱말들을 적재적소에 놓아 독창적인 작품울 빚은 점은 주목을 요한다.
*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깜짝 놀랄 수준"이라며 월별 백일장에서 이토록 주목받은 작품은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손민호 기자 인터뷰)
필자의 종합평 :
[옹송옹송한] [살피꽃밭] [샘바리] [덜퍽지다] [바듬히] [돌라방치다] [더금더금] [덧게비] [나뱃뱃한] [성긋벙긋] [댕가리지다] [부스대다] [부르대다]
위 단어들을 사전을 찾지 않고 바로 알 수 있는 독자가 몇명이나 있을까?
대부분 현대어에서 사장된 단어들이다.
사전의 깊숙한 구석에서 거미줄이 주렁주렁한 단어를 찾아내어 우리말을 애용하는 체 하는 작자나 그런 작품을 우수하다고 선발하는 심사위원이나 현대시를 왜곡하는 사람들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시는 심사위원들이나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시의 주인은 독자이지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독자를 위해서 일하는 서비스맨일 뿐이다.
현대문학은 문자 그대로 현대적이어야 한다. 고시조를 써 놓고 독자들이 싫어한다고, 탓하는 것은 독선이며 오만이다.
사장된 어휘를 쓰는 것도 고시조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독자를 무식하다고 탓하며 억지로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으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시어는 보통어, 살아 있는 현대어라야 하며 대다수의 현대 한국인이 쓰는 언어라야 한다.
소수가 쓰는 은어, 비어, 현대어가 아닌 고어,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 아닌 사장된 단어, 특수분야의 전문용어, 외국인이 쓰는 어슬픈 한국어 등은 시어로서 적합하지 않다.
또 원작은 제목과 본문이 어울리지 않는 것을 심사위원들이 모르고 있다. 여름은 잎의 계절이지 꽃의 계절이 아니다.
<개작>
여름
몽롱한 기분으로 꽃밭 길을 따라 걷다
샘나고 탐스런 꽃들 부러워 나도 몰래
삐죽이 입술 내밀고 비켜서서 눈 흘기고 말았다.
꽃송이 하나 둘씩 몰래 훔쳐 가슴에 안고
노랑, 분홍, 자주 꽃잎 조금씩 덮어 가며
애처럼 천진스런 얼굴 싱글벙글 웃으며 논다.
꽃들 얼굴 봄이 단장시켜 깜찍해진지 옛날이고
조각보 마냥 꽃잎 붙여 여름의 연 만드는데
꿀벌이 둘러서 춤추며 부스럭거린다고 떠들어댄다.
원작을 보통어로 고쳐 본 작품이다.
이와 같이 쓰면 원작보다 예술성이 떨어지는가? 읽기가 어려운가?
심사위원들은 원작을 "말 그대로 괄목할만 하다" " 놀랍기까지 하다"고 극찬하며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말들"을 쓴 것을 "높이 사고 싶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의 그릇된 안목을 지적한다.
(5) 시조문학 07여름호 게재작품에 대하여
새벽
심예란
(연변작가협회 회원)
까만 밤을 닦아내며
새벽이 휘파람 분다
나무잎들 부채질에
어둠이 털린다
새들은
해살 물어다
지붕우에 늘인다
필자의 작품평 :
날이 밝아 오는 새벽, 미풍이 불어 상쾌하고 햇살이 퍼지면서 새들이 하루 일을 시작하기 위하여 분주하다. 우리가 평범하게 되풀이 하는 일상 풍경의 한 장면이다.
이런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단수로 압축하여 아름다운 시적 세계를 펼쳐 보이는 솜씨가 놀랍다.
작자는 연변조선족 시인으로 현대 한국어에 미숙한 점이 보이나 의미전달이나 시상의 전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새벽이 열리는 무형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새벽을 의인화하여 [새벽이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며 밤의 어둠을 닦아내고 있다]고 하며 남이 보지 못하는 숨어 있는 세계를 시인의 눈으로 보고 이를 드러내어 독자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한편, 나뭇잎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부채질하여 어둠을 걷어내고, 지붕위의 새들은 햇살을 한 알씩 물어다 지붕에 펴고 있다고 한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이미지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나무잎]은 [나뭇잎]의 북한어임으로, 현대 한국시에서는 [나뭇잎]으로 표기하고, [해살]은 [햇살]로, [지붕우에]는 [지붕위에]로 표기해야 할 것 같다.
5. 맺는 말
현대시조는 탄생 100년 만에 장르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영상문화와 디지털문명의 급속한 확산에 원인이 있지만, 시조창작계와 비평계의 안이한 태도로 시조 정형을 지키지 못하고 장르적 특성을 살리지 못한데 근본책임이 있다.
모든 시조인은 시조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을 즉각 중단하고, 품격 높은 한국정형시를 부흥시키는 운동에 동참하여, 자유시에 내어준 자리를 되찾아 초.중.고 교과서에서 위상을 살리고, 국민 애송시로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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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소감
본지가 제정한 제 65회 신인상 작품모집에 응모한 이봉수 시인의 [평론] <현대시조의 장르적 특성과 시조부흥운동>을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어려운 때에 시조평론을 해 보겠다는 그 뜻을 높이 본 것이다.
시조문학 정립에 이바지하심을 기대하는 바이다.
- 장순하. 김보한. 허 일. 선정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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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에 매력을 느끼고 애독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시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이에 대한 선명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것이 명작 시인가?” 하는 의문에 이르면 더욱 어렵다.
“시인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숨어 있는 시적인 세계를 발굴하여 독자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미적 감각이 있는 시를 써야 한다.”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다.” 이런 명제를 충족시키며 시를 쓰기란 정말 어렵다.
이에 더하여 시조는 정형률까지 갖추어야 한다.
오늘날 시조가 널리 읽혀지지 않고 일반인의 관심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미력하나마 시조가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막아 보고자 독자의 입장에서 시조단에 대한 평을 해 보았다.
정제되지 아니한 글을 당선작으로 대접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이를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문학공부를 해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한다.
(2007. 10. 22)
* [ 새시대시조] 07.겨울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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