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목마을 가다
김종만
3월의 마지막 날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일기예보는 최고온도 14도를 예고하였다. 최근 봄을 맞이하며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날이 될 것 같아 마음도 훈훈해진다. 습관적으로 창문에 쳐 놓은 블라인드 끈을 아래로 잡아당기자 창밖엔 옅은 안개 빛깔의 여명이 오고 있었다.
이른 새벽 비둘기가 여러 마리가 모였다 헤어지고 한 쌍의 비둘기는 기와지붕 위를 사뿐사뿐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닌다. 우리 집 길 건너편 높은 건물 가운데 아담한 기와지붕의 단독주택이 몇 채 남아 있고 지붕 모양이 건축물을 증축하였는지 여러 모양의 사각형 지붕은 비둘기 놀이터가 되어 모처럼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겨울에 보이지 않던 비둘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었다.
이럴 땐 집주인 아낙의 진풍경이 벌어진다. 마당에서 보이는 비둘기를 쫓기 위하여 긴 매미채를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흔들어 보지만 비둘기들은 지붕 중앙으로 잠시 몸을 피해 버린다. 그래도 집주인은 시골에서 새떼들을 쫓아본 경험의 지혜로 장대를 마구 흔든다.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추운 겨울에 어디에 있다가 봄이 되어 비둘기가 다시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는 새 쫓는 모습에 잠시나마 어린 시절 참새와 허수아비가 정겨웠던 시골 모습을 떠올리며, 메뚜기잡이와 강가에서 물장구치든 개구쟁이 친구들의 그리운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예년에 비해 긴 겨울을 보낸 나는 잠시나마 서울을 탈출하고 싶었다.
오늘은 친구 부부와 넷이서 충청도 바닷가로 주꾸미축전에 가기로 한 날이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경기 충청지방을 몇 번이나 함께한 절친한 친구 부부와의 동행이다. 그래도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구로동에 도착하여 친구와 합류하고 서부간선도로로 접어들자 차들이 저속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조금 지나자 차들이 정상 속도를 유지하며 바다 위 건설된 높은 교각의 서해대교를 만난다. 서해대교는 높이와 길이에서 서해안 고속도로의 중추적인 교량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겨울철 강풍이 불 때면 차들이 바람을 받아 휘청 휘청하는 전율과 김장감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어 핸들을 꽉 잡곤 했었다. 대교를 바로 지나면 행담도 휴게소가 바다와 인접해 있고 사방이 터져 있어서 답답함을 털어 버린다.
휴게소에 가면 내가 꼭 찾는 과자가 있다.
나는 호두과자를 참 좋아한다. 호두과자는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맛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호두과자는 역시 전통의 천안휴게소의 명물 호두과자가 최고인 것 같고, 금산휴게소의 호두과자는 인삼의 고장답게 인삼 맛이 나서 좋고, 강원도 호두과자는 조금은 두터운 감자 느낌의 맛이 난다. 요즈음은 동네에도 호두과자 전문점이 생겨 호두과자를 살 수 있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우리는 커피 한잔과 호두과자의 맛을 음미하며 휴게소를 나와 송악IC를 30여 분을 지났을 즈음 필경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필경사는 일제치하 저항시인이자 소설가인 심훈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가 살고 있던 송악면에 내려와 1934년 초가지붕의 아담한 한옥으로 직접 설계하여 집을 짓고 필경사로 명명하고 농촌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한 장소이며 심훈의 짧은 생애(1901. 9.12 ~ 1936. 9. 16. 35세)의 자필 원고와 저서, 그 당시의 신문 등이 상록문화관에 전시되어 있었고 암울했던 시대 배경과 표현의 자유시대에 글을 배우는 내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승용차가 다시 고대 산업공단에 접어들자 높은 굴뚝 여기저기서 흰 연기로 파란 하늘을 찌르고 새로운 철강 메카인 철강 산업단지가 평택바다 인근에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평택은 수도권의 지리적 이점과 평택항이 확장 개발되고 용광로의 열을 식히기나 생산된 철을 가공하기 위하여 많은 물이 필요하기에 바다 주변에 건설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일반인들은 철강 하면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을 연상할 것이다.
물론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은 단일 공장 규모와 철강 생산 능력과 품질은 세계제일의 철강회사임은 틀림없겠지만, 그것으로는 철강이 부족한가 보다 생각해 보았다.
승용차가 석문방조제에 들어서자 석문호수 오른편에 길게 들어선 콘크리트 보가 가려져 있어 답답함을 느낀다. 지루함도 잠시 방조제를 빠져나와 대로를 향해 달리자 조그만 어촌마을인 장고항은 출렁이는 넓은 바다와 어선들이 보이며 잔잔한 파도만 있을 뿐 아직은 평일이라 그런지 상춘객은 없고 한적하다.
이제 몇 분 후면 목적지인 왜목마을에 도착한다.
왜목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일출, 일몰, 월출 광경을 한 장소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포구가 독특한 지형으로 해변이 남쪽으로 길게 뻗어 충청남도 서해의 땅끝 마을처럼 되어 있고 특히나 해안은 동쪽을 향해 툭 튀어나와 바다 건너편 육지가 멀고 수평선이 동해안과 같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왜목마을의 일출은 한순간 바다가 황토 빛으로 물들고 거대하고 긴 불기둥을 만드는 반면, 소박한 일출을 연출하고, 일몰은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서서히 빛을 감추면서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검붉게 물들이며 바닷속에 잠겨버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 왜목마을을 네 번째 찾았다. 특히 연말연시에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으며 수 년 전보다 변한 게 있다면 허름한 단층건물 몇 동에서 삼사 층의 건물로 늘어났고 해안가를 잘 정비해 아름다운 산책로를 나무로 만들고 곡을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해변 야외 강당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는 새 건물이 아닌 기존의 허름한 건물의 음식점으로 들어가 주꾸미 샤브샤브를 주문했다. 1 킬로그램에 오만 원이란다. 인터넷의 가격동향은 삼만 오천 원인데 비싸다고 하자 주인 남자는 가격이 많이 올랐단다. 그래서 덜 싱싱한 것 몇 마리 더 넣어서 많이 달라고 부탁을 해 보았다. 그래서일까? 주인장은 많이 드렸다며 조금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 왔다. 소주 두 병을 나누어 마시고 주꾸미 먹물이 터져 국물이 검어졌을 때 사리를 넣어서 검정 국수로 점심을 마무리하고 인접한 석문산 (79m) 정상에 올랐다. 멀리 보이는 장고항과 국화도 그리고 파란 바다 위의 조각배들의 모습은 한편의 풍경화를 보는듯 했다.
해안으로 다시 내려와 바닷가를 산책하며 서해의 쌉쌀하고 싱그러운 봄바람을 가슴에 담아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아쉬운 귀경길에 올랐다. 2011. 0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