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크 담요를 9만 5000원에 돈 바꿔 나 홀로 숍에 전용 하숙방을 차리고 첫 날
밤을 맞으려니 감개무량합니다. 마음 한 쪽에 나이 오십에 하숙이 웬 말 이냐고
초를 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징역도 살았는데 혼자 사는 놈이 기숙사에
산다 생각할 랍니다. 고아라 나오는 “응사1994“을 보다가 내 추억 록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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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졌습니다. 연대기 순으로 보면 ”응사1988”이 선방되어야 하는데, 2015 판
“응답하라1988“은 ”응사”의 후속 작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제게 노스텔지아를
불러일으킨 것은 응사이나 응쌍팔로 인터셉트합니다. 그 시절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다섯 가족의 좌충우돌 스토리인 “응사1988“은 봉황 당 골목에서 함께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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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고 있지요. 저는 86년 아시안 게임을
군대에서 치렀고, 88올림픽을 서울 방학동, 그것도 안 방학동에서 보았습니다.
응사, 응칠, 응쌍팔시리즈는 성동일 역도 탐나긴 하지만 안 방학동 당구장 시절25살
청년으로 타임머신을 탈 작정입니다. 버스는 쌍문동 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2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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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번이 다녔습니다. 슬리븐 운동화, 청청패션, 워크 맨, 소머즈, 왕 조현, 소피마르소,
레미턴 스틸, 톰크루즈, 리차드 기어, 리키즈 언더블럭, 영웅본색까지 아, 나의 아날로그
시대여! 이상은이 "담다디"를 열창했고,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순돌이 엄마 대박
작 "한 지붕 세 가족“ 김 미화 김 한국의 ”순 악질 여사“까지 대한민국은 아직 oecd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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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도 못 꺼냈지만 사람사는 재미나 경기는 좋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큰누나와 엄마랑
셋이서 지하 단칸방에 살다가 입대를 했는데 제대를 하고 와보니 아버지와 진호만
담양에 남겨두고 식구들이 모두 이사를 와있었습니다. 복학을 해야하는데 돈이 있어야
복학을 하지요. 보라(류혜영)는 서울대 수학교육과 2학년이니까 당시에도 저는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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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쳐다봤을 것입니다. 가시나 성격은 가칠하지만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있으니 제가
점찍어 놔야겠습니다. 못된 언니 보라는 과연 미친뇬입니다.
공부 못하는 막내 노을(최성원)이는 공부만 못하는 게 아니라 뭐하나 잘하는 게 없네요.
빨강양말”로 단칸방 신세를 면한 성동일이 놈 응사에서 완전 대박쳤습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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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졌지만 당시 가장이 한일 은행 대리면 중산층인데 드라마에선 서민층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디테일한 고증이 좀 아쉽습니다. 차라리 은행원 말고 경찰관으로 설정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덕선이 엄마(일화)는 제 마산 여자의 로망을 그대로 이어갑니다.
얼굴도 괜찮고 말투도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박 원숙과 김 현식 씨처럼 잉꼬부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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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런하길 바랍니다. 응쌍팔의 주인공 덕선(헤리, 걸스데이)은 캐스팅부터 말이 많았는데
연기를 아주 잘합니다.“진짜사나이 여군 편”에서 애교 질로 떴지만, 응쌍팔이 끝날 때
쯤이면 국민 여배우로 완전 스타덤에 올라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 이유는 공부를 못하고 예쁘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백치미가 대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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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선을 둘러싸고 정환, 선우의 삼각구도가 궁금해집니다. 정환이 아버지 김 성균은 응사
에서 학생으로 나왔는데 응쌍팔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면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아니, 연기만 잘 하드만 왜들 성균 이를 씹는지 모르겠습니다. 극중 금성전자 대리점
사장인데 실은 돈은 대리점해서 번 것이 아니라 아들이 복권에 당첨 돼서 졸부가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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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생활용품은 럭키 금성이 1빠였습니다. 삼성보다 가전제품 값이 더 비쌌다는
말입니다. 성균이 엄마 라미란 양 연기 감칠나네요. 배역도 캐릭터도 제맘에 쏙듭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살작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월드콘보다 100원이 더 비쌌지요.
제가 제대를 하고 1년 후에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마스코트 호돌이에 오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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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한 로고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바브라스트라샌드의 "우먼 인 러브" "모나코"가
구로 공단 음악다방 DJ의 단골 오프닝 맨트로 깔리면 할 일 없이 타다닥 성냥각을 돌리며
시간을 죽였습니다. 저는 그때 영등포 어느 음악 다방으로 친구 민기랑 번질나게 다녔고
당구장에서 마이클잭슨의 문-워크를 따라하면 "빌리진"이 카페트에 꼬여 벌러덩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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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담배 내기 당구, 라인 볼, 제대 당구를 치면서 없는 돈 수없이 갖다 없앴습니다.
제대만 하면 뭐든 할 줄 알았는데 1년을 빌빌대며 백수 생활은 하던 나는 어쩌다보니
시간 때우기로 다니던 2층 스포츠 당구장에 보증금 없이 세만 내는 당구장을 하게 됩니다.
당시 신창동에 “샘표 간장”이 있었고 안방학동에는 “태평양”이 시내버스 표지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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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었는데 우리 당구장을 오려면 태평양 패션을 지나 원 약국에서 내리면 됩니다.
우리 가게 근처에는 도깨비 시장이 있었고 구두 공장들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9시에
문을 열면 구두 방 팀들이 와서 100넣고 하는 블록 깨기 게임기를 돌렸고 게임비가
아마도 200원 정도 되었습니다. 다이는 항상 꽉 찼는데 다이가 고작 5대 밖에 없어서
집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2015.11.24.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