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이다. 암벽을 뚫은 통문으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境界關門)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 이 굴이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뚫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통문 동쪽은 본래 무풍현(茂豊縣), 서쪽은 주계현(朱溪縣)의 땅이었는데, 조선시대에 합쳐서 무주현(茂朱縣)이라 하였다. 무풍현은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으로 경덕왕 때 무풍현으로 고쳐 개령군(경북 김천)에 소속시켰고, 주계현은 백제의 적천현(赤川縣)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단천현(丹川縣)이라 하다가 고려시대에 주계현으로 고쳤다.
이와 같이 통문을 경계로 한 동 ·서 두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판도와 문물이 다른 지역이었던 만큼, 600년이 지난 지금도 통문을 경계로 언어 ·풍습 등에 차이가 있으며, 사투리만으로도 두 지방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 나제통문은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의 경승지이기도 하다. 현재 덕유산(德裕山)국립공원 경역(境域)에 들어 있다.
첫댓글 라제통문은 작은통문으로 삼국시대 국경지기도 하였지만
신라와백제간 문물을 교류하던곳으로도알려졌있고
통일의문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요즘!드라마 제왕에꿈 최수종역 신라대왕과
의자왕의딸 비화공주 설화도 라제통문에 얽혀있는걸로보아 삼국시대때 이미 통문은 있었다고 볼수있으며
다만! 일제시대 우리내 지하자원뿐만아니라 모둔! 농작물을 자기네땅으로 보다쉽게 이동하기위해 더욱 크게!
뚫었다고 보면 될것같습니다
역사와 문화 아품을 고스란이 간직한 무주의 유형문화제라 할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