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새는 정말 살아있다
-심상우 창작동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그네가 멈췄다.
바로 조금 전 그네를 타던 아이들이 3동 아파트 모퉁이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이들이 신 나게 타고 놀다 간 텅 빈 그네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도도새도 지금은 텅 빈 그네 같은 게 아닐까!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닐 거야!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도 많이 있을 수 있어!’
그러면서 나는 며칠 전에 만난 도도새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그 새를 만난 건, 여름방학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네 번째 맞이하는 여름방학이라 별달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짝으로 어울려 다니는 지민이, 대훈이와 헤어져 우리 집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한쪽에는 내가 다녔던 혜성유치원이 있다. 유치원 담장에는 나지막하게 철망이 쳐 있고, 철망 위에는 넝쿨장미가 긴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무성한 장미 잎들 속에 더러 늦게 핀 빨강장미꽃이 있는 걸 보고 걸었다.
“우큐콸걀 칼걀돌두, 칼걀돌두!”
유치원 담 안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였다. 유치원 담 안쪽에서 토끼와 닭과 거위를 키우고 있는 건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본 것들이었다.
토끼는 언제나 조용하고, 닭이 내는 소리야 꼬꼬댁거리는 것이고, 거위도 꽥꽥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게 뭔 소리지?’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유치원 문을 슬쩍 밀었다. 내가 다닐 때도 낮에는 유치원 문을 쉽게 열 수 있었다. 나는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참 우스꽝스럽게 생긴 새 두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닭은 물론 아니고, 거위도 아니다. 오리도 아니었다. 칠면조 비슷한데 날개가 거의 없었다.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두 마리가 똑같이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되똥거리다가 딱 멈추고 다시 똑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헉! 혹시 도도새?’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직이 중얼거리자, 새들이 고개를 또다시 되똥거렸다.
“우큐콸걀 칼걀돌두, 칼걀돌두!”
좀 전에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그 소리를 냈다. 새는 나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는 새들 앞으로 좀 더 다가갔다. 나는 손을 내밀어 새의 대가리를 만졌다.
그러자 새는 되록되록한 눈을 치켜뜨더니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눈꺼풀을 내리깔며 슴벅거리다가 눈을 감았다.
‘아아! 이건 정말 굉장한 일이야! 내가 진짜 도도새를 만나다니!’
나는 도도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워낙 새를 비롯한 동물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건 아마도 삼촌 덕분일 것이다. 삼촌은 동물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삼촌에게 동물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동물 이야기 가운데 새와 멸종동물에 대해 무척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삼촌이 들려준 ‘도도새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 도도새를 이렇게 진짜로 보게 되다니!
내가 도도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 겨울방학 때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도도새’란 이름을 보고 신기하고 궁금해서 삼촌에게 물어보았다.
“삼촌, 도도새는 어떤 새예요?”
“도도새라! 삼촌도 무척 관심이 있는 샌데……. 우리 정욱이가 도도새를 어떻게 알았지?”
“여기 책에 도도새 이야기가 좀 나와요.”
삼촌은 도도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도새는 약 330년 전까지 인도양의 모리셔스라는 섬에 살았던 새야! 크기는 칠면조보다 크고 부리는 툭 튀어나왔어. 지금은 그림으로밖에 볼 수 없어.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펠리컨이나 칠면조와 비슷했는데 날개는 퇴화해서 아주 작아졌대. 한마디로 말해서 날 수 없는 새였지. 도도새는 모리셔스 섬에서 수 천 수 만년 동안 알을 낳고 대를 이어가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 그 섬은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어.
그러다가 16세기 초에 포르투갈 배가 우연히 모리셔스 섬에 닿게 되었어. 섬에 처음 온 사람들은 날지 못하는 도도새를 보게 되었어. 물론 도도새들도 사람들을 처음 보았지. 그것이 도도새들에게는 불행과 비극의 시작이었어.”
도도새는 사람들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어.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지. 사람들은 그 처음 본 새에게 ‘도도’라는 이름을 붙였어. 포르투갈 말로 ‘도도’는 ‘바보’라는 뜻이지. 도도새는 날개가 있었지만 날지도 못해서 사람들이 붙잡아도 가만히 있으니 정말 바보 같았지. 고기가 필요한 뱃사람들은 너무도 손쉽게 도도새를 잡아 닭 요리하듯 잡아먹었지. 도도새를 잡는 건 너무나 쉬웠어. 막대기로 나무를 툭툭 치면 호기심 많은 도도새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모여들었어. 그때 사람들은 도도새를 붙잡았지.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리셔스 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섬에 집을 짓고 키우던 돼지나 원숭이도 데려왔지. 그 뿐만 아니라 배에 몰래 타고 있던 쥐들도 사람을 따라왔어. 돼지와 원숭이, 쥐들은 먹을 것을 찾아 모리셔스 섬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
섬 곳곳에 낳아 논 도도새의 알들은 낯선 동물들의 먹잇감이 되었지. 알이 없어지면서 도도새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지. 평화롭게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온 도도새는 사람들에게 사냥을 당하고, 돼지, 원숭이, 쥐 같은 천적의 공격을 당해낼 수가 없었지.”
그러면서 삼촌은 잠시 입을 다물고 뜸을 들였다.
“정수야, 천적이 무슨 말인지 알지?”
“쥐와 고양이 사이에서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잖아요.”
“맞아! 바로 그 천적 때문에 약 100년쯤 지나자 모리셔스 섬에서 도도새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어. 수 천 수 만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살아온 도도새가 겨우 100년만에 사라지게 된 거야. 1681년에 마지막 도도새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도도새는 모리셔스 섬에서만 살았던 아주 특별한 새였는데…….”
“…….”
나는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다.
“삼촌, 도도새 이야기는 그게 다예요?”
“아니야. 또 있어. 이건 더 기막힌 이야기야!”
“뭔데요?”
“도도새가 사라지자 모리셔스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글쎄요? 사람들이 다 섬을 떠났나요?”
“그건 아니야. 도도새가 사라지자 모리셔스 섬에서만 자라던 크고 울창한 카바리아나무가 하나 둘씩 사라졌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카바리아나무는 한 300년을 사는 나무인데, 새로 자라야 할 어린 나무가 없어지게 된 거야.
어떤 식물학자가 카바리아나무를 연구하다가 알게 되었어. 카바리아나무는 도도새가 열매를 먹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도도새 뱃속에서 소화가 된 다음 씨앗을 똥으로 눠야만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거야. 도도새와 카바리아나무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될 단짝이었지.
그렇게 도도새가 없어졌으니, 카바리아나무도 더 이상 어린 나무를 키울 수 없게 된 거지.
다행히 그 식물학자가 도도새를 닮은 칠면조를 데려와 늙은 카바리아나무의 열매를 먹인 다음 똥을 누게 했어. 그러자 카바리아나무 싹이 텄어. 어린 카바리아나무를 살려낸 거지. 그 어린 카바리아나무를 ‘도도나무’라고 이름 지었어. 그 뒤 도도나무는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됐어.”
그때부터 나는 삼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도도새와 도도나무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아졌다. 삼촌은 영국 작가 딕 킹 스미스가 1989년에 써서 우리나라에 2003년에 번역 소개된 동화 《도도새는 살아있다》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우큐콸걀 칼걀돌두, 칼걀돌두!”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도도새가 다시 소리를 냈다. 나는 얼른 삼촌에게 도도새가 나타났다고 알리고, 사진기를 가져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도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여전히 두 눈을 슴벅거리며 얌전히 있었다.
내가 막 유치원 문을 나서려고 할 때 한 어른이 다가왔다.
“너 거기서 뭐하니?”
나는 도도새를 보았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왠지 그 어른한테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집에 오자마자, 나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굉장한 뉴스예요. 진짜 도도새를 봤어요. 지금 혜성유치원 안에 있어요.”
“그래! 그럼 빨리 사진을 찍어둬라. 삼촌이 금방 달려갈게.”
엄마는 내가 전화하는 소리를 듣고 풋! 하고 웃었다.
“뚱딴지 같이 웬 도도새타령이니? 얼른 점심이나 먹어라!”
“엄마, 지금 점심이 문제가 아니에요.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도도새가 있다고요.”
나는 사진기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유치원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열리지 않았다. 문이 꼭 잠겨 있었다. 나는 유치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데도 없었다.
나는 도도새를 보았던 우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서 귀를 기울였다.
“우큐콸걀 칼걀돌두, 칼걀돌두!”하는 소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 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맥이 탁 풀려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이정욱! 방학 첫날부터 점심 굶고 싸돌아다닐래?”
내가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삼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삼촌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가 보자. 정말 도도새 같냐?”
“그럼요. 삼촌이 이야기해 준 바로 그 도도새예요.”
나는 삼촌과 함께 혜성유치원으로 갔다. 삼촌이 유치원 관리를 맡은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없다!
내가 바로 몇 시간 전에 본 도도새는 어디에도 없다. 토끼와 닭과 거위가 우리 안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얌전히 있어야 할 도도새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 이건 도도나무잖아. 도도새는 안 보이지만, 이 귀한 도도나무를 여기서 보네.”
삼촌이 가리킨 곳에 내 키보다 서너 배쯤 되는 나도 처음 보는 나무가 있었다.
“삼촌, 저기서 진짜 도도새를 봤어요.”
“알아. 우리 정욱이가 본 새는 진짜 도도새일 거야! 도도새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동안에 아주 똑똑해져서, 이젠 사람을 피하는 법도 알게 됐을 거야! 삼촌은 지구 어딘가에 도도새가 정말 살아 있을 거라고 믿어. 수 천 수 만년을 살아온 도도새가 겨우 300여 년 동안 사람들이 보지 못했다고 해서 멸종한 것은 아니라고 믿어. 도도나무가 여기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있는 걸 봐! 도도새는 정말 살아있어.”
나는 내가 틀림없이 도도새를 보았다고 힘주어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삼촌의 꿈꾸는 듯한 눈을 보고, 삼촌이 이미 내 말을 완전히 믿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다만 작은 소리로 가만가만 되뇌었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 도도새를 만났어!”
3동 아파트에서 아이들 몇이 몰려나와 그네를 탔다. 그네가 힘차게 출렁거렸다.
‘맞아. 도도새는 지금 다른 곳에 간 거야.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닐 거야!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았던 도도새만 잠시 사라졌을 뿐이야!’ (끝)
ssw9863@hanmail.net 계간 [열린아동문학] 2010년 여름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