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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族譜)
족보란 한 족속의 계통과 혈통에 관계되는 것을 적은 책을 일컫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족보의 기원과 종류를 알아보고 족보를 살펴보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족보의 기원
족보는 일찍이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소위 '제계'라 하여 왕실의 계통을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제왕연표라 하는 것이다.
개인에 대한 족보는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현량과'라는 벼슬에 추천되는 방편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개인의 내력과 조상의 경력을 기록하여 그 가계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족보의 시초라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족보는 고려 때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대체로 고려 중엽 이후로서 김관의의 <왕대실록>. 임경숙의 <선원록>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왕실의 친척인 종자와 종녀까지 기입되어 족보의 형태를 처음으로 갖추었다.
고려에서는 동족간에 족보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다만<고려사열전>에 부자 관계가 밝혀져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나온 각 씨족 족보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조로 들어 와서는 <상신록><공신록> 등이 정비되어 그들의 시조나 부자관계를 일부분이나마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동성 동본의 혈족 전부를 체계적으로 망라한 세보가 등장하기는 1400년대에 들어와서 비롯되었다.
그러한 본격적인 족보의 효시로는 안동 권씨의 <성화보>와 문화 유씨의 <가정보>를 꼽는다.
<성화보>는 1476년에 간행되었는데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중간본만 전해진다.
문화 유씨의 <가정보>는 1562년에 간행되었는데 완벽한 체계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외손까지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후일에 여러 족보를 만드는 데에 좋은 모형이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족보가 나오기 전에는 가첩이나 가승 등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렵만 해도 몇몇 유력한 씨족만이 지녔던 족보가 더욱 일반화되기는 선조 조를 고비로 하여 당쟁이 차츰 가열되고 그것이 또 점차 문벌간의 대결이라는 양상을 띠게 되면서 각각 일족의 유대를 공고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후부터라 하겠다.
따라서 문벌의 결속을 꾀하는 방편의 하나로 족보가 발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두 차례의 격심한 전란을 치르는 과정에서 종래의 엄격했던 신분제도가 붕괴된 것이 족보의 발달을 촉진한 요인이 되었다.
신분 제도가 헤이 해짐에 따라 양반이라 일컫는 사람이 늘어나고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혈족인 양 행세하게 되자 동족의 명부라고 할 족보를 만들어 다른 혈족이 혈통을 사칭 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족보를 둘러싸고 갖가지 폐단이 생기게 되었지만 족보의 원 뜻은 어디까지나 자기네의 혈통을 존중하고 동족끼리 유대를 돈독히 하자는 데에 있는 것이다.
족보의 종류
우리나라 족보에는 대동보와 파보 두 가지가 있다.
대동보는 시조 이하 혈족의 원류와 그 자손 전체의 분파 관계를 빠짐없이 기록한것 이고, 파보는 각 분파의 자손들의 혈연 관계를 기록한 족보이다.
이런 경우 시조로부터 분파된 파조까지의 계대는 상계라하여 별도 기록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분파란 마치 나무에서 줄기가 뻗고 그 줄기가 다시 여러 갈래의 가지를 치는 것과 같 아서 자손이 번창한 대성일수록 분파가 많게 마련이다.
원래 파를 구별하는 것은 후손들 각자의 혈연적인 계통을 분명하게 밝히고 촌수를 명확히 하려는 데 있다.
그래서 가령 어느 선조 때 특출한 형제가 나거나 딴 지방으로 전거하는 선조가 생기면 그의 후손들은 각각 별개의 파로 구분되고, 또 그 각각의 파는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그러한 분화 작용을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파의 명칭은 파조의 관작명이나 시호, 또는 아호를 따거나 자손이 오래 세 거한 지명을 따서 부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 외에는 족보에 준한 가계 기록으로 가승보와 팔고조도가 있다.
가승보는 시조로부터 나까지 이어져 오는 직계를 계통적으로 기록한 계보이므로 방계 의 혈연 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이는 족보외에 직계를 빨리 파악하기 위해 편의상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승보가 과거 우리 조상들이 처음 족보를 간행할 당시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팔 고조도는 4대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및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계통적으로 배열한 도표로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를 도표식으로 기록한 것으로서 이는 족보와 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족보는 시조로부터 밑으로 퍼져 내려오는데 팔 고조도는 나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족보 보는 법
첫째, 족보를 보려면 '나'가 어느 파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야 편리하다.
만일 파를 알지 못할 경우는 조상이 어느 지역에 살았고 그 지방에 어떤 파가 살았던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도 파를 모를 때는 부득이 씨족 전체가 수록되어 있는 대동보를 일일이 뒤적여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둘째, 시조로부터 몇 세인지를 알아야 한다.
족보는 횡으로 단을 갈라서 같은 세대에 속하는 혈손을 같은 단에 횡으로 배열하였으므로 자기 세의 단만 보면 된다. 만일 세수를 모르면 항렬자로 세수를 헤아려야 한다.
셋째, 항렬자를 알아야 하고 족보에 기록된 이름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가정에서 부르는 이름에 항렬자를 넣지 않았더라도 족보에 실을 때는 반드시 항렬자를 넣은 이름을 실었으니 이를 알아야 한다.위의 세가지는 족보를 보는 기본 요건이므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보첩(譜牒)
요즈음은 족보란 말에 밀려 흔히 하는 말은 아니지요.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족보의 큰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첩의 의의
보첩이란 한 종족의 계통을 부계중심으로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나타낸 책으로, 동일 혈족 의 원류를 밝히고 그 혈통을 존중하며 가통의 계승을 명예로 삼는 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보첩의 기원
보첩은 원래 중국의 6조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제왕연표를 기술한 것이었으며, 개인적으로 보첩을 갖게 된 것은 한 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 제도를 설치하여 응시생의 내력과 그 선대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가 된다.
특히 북송의 대분장가인 소순, 소식, 소철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편찬의 표본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의종 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대부의 집에서는 가승이 전해 내려왔는데, 체계적으로 족보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 7년에 발간된 안동 권씨 성화보이고, 지금과 같이 혈족 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때 편찬된 문화 유씨보로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전해온다.
보첩의 종류
대동보 : 같은 시조 밑의 중 시조마다 각각 다른 본관을 가지고 있는 씨족간에 종합 편찬된 족보이다. 즉 본관은 각기 다르되, 시조가 같은 여러 종족이 함께 통합해서 만든 보책이다.
족보 : 관향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가 수록한 보첩으로,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가계의 연속을 나타내는 보책이다.
세보와 세지 : 한 종파 이상이 동보, 합보로 편찬되었거나, 어느 한 파속 만이 수록되었을 경우이며,이를 세지라고도 한다.
파보 :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한 파속 만의 명촵휘자와 사적을 수록한 보책이다.
가승보 : 본인을 중심으로 편찬하되,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과, 비속에 이르기까지이름자와 사적을 기록한 것으로 보첩 편찬의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계보 :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내는 도표로서, 한 씨족전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이 수록된 것이다.
가보와 가첩 : 편찬된 내용이나 내용의 표현이 아니라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보을 말 한다.
만성보 : 만성대동보라고도 하며,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한 책으로 족보의 사전 구실을 하는 것이다.
보첩의 간행과정
족보를 간행하고자 계획을 세우면 먼저 종친회를 조직하여 족보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종친들의 분포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널리 알려 일가의 호응을 받아야 한다.
편찬위원회의 구성이 끝나면 편집에 관한 모든 사항을 논의 결정하여 지방조직을 통해 수단을 하고,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사에 의뢰를 하여 간행하게 된다.
보첩 보는법
족보를 보면 서문이 나오는데, 이는 머리말로 자랑스러운 가문과 조상의 숭고한 정신을 고취시키고 족보 간행의 중요성 및 긴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보통 00보라 하여 족보간행연도를 앞에 붙여 족보의 명칭으로 삼는다.
본문에는 시조와 비조로부터 시작하여 1간을 같은 대로하여 보통 6간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에 이름자가 나오고 이어서 출생과 사망연도가 표시하고 70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면 향년, 70세가 넘어 사망하면 수라하고 방서란에 기록한다.
시호와 관직이 기록되고 비필이라 하여 배우자를 표시하는데 보통 배자만을 기록하며, 본관과 아버지 이름자와 관직이 기록된다.
또한 묘소가 기록되는데 소재지와 방위 그리고 석물 등을 표시하며, 합장 여부 등도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다.
혹간 출후, 출계라 하는 것은 다른 집으로 양자로 간 경우이고, 양자로 들어온 사람은 계자라 기록되며, 서얼로 입적 되있을 경우에는 승적 이라고 표시한다.
보첩의 현황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가장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 있으며, 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따라서 우리 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실정이다.
현재 국립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열람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세대가 자라나면서 한문으로 된 족보가 읽혀지기 어렵게 되자, 각 가문에서는 족보의 한글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며, 아울러 간지를 서기로 환산하거나 사진의 컬러화와 체재의 단순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뜻있는 학자들이 학회를 결성하여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한글세대에 맞는 현대감각으로 족보를 개편하여 모든 이들이 실용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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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本貫) 의 유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씨가 점차적으로 확대되면서 같은 성씨라 하더라도 계통이 달라, 그 근본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웠으므로 동족여부를 가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본관이다.
본관이란 본관향 또는 관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관은 돈을 말하는 것으로 돈을 한줄에 꿰어 묶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이, 친족이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며, 여기에 더 나아가 본적이란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시조나 중시조의 출신지 혹은 장착 세거지를 근거로 호칭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봉군칭호를 따라 정하는 경우, 그리고 성씨와 같이 임금이 공신이나 귀화인들에게 특별히 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관이라고 한다.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은 곡성 사람이었지만, 고려 태조와 함께 평산으로 놀러가 그 곳이 좋았으므로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 받았으며, 하동 쌍계사 비문에 진감선사의 본관이 황룡사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선사가 황룡사 출신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따라서 성씨만이 같다고 해서 전부 같은 혈족이 아니며, 본관까지 같아야 같은 혈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씨와 본관과의 관계
첫째, 동족 동본의 동성인데, 근친혼의 불합리성과 윤리적 가치관 때문에 혼인을 절대 금지하 고 있으며 최근 들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자 점차 해소시킬 방침이다.
둘째, 이족 동본의 동성관계인데, 이는 성과 본이 같지만, 그 근원은 전혀 달라 사실상 혈통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양 홍씨는 당홍과 토홍으로 구분되어, 전혀 공통점 이 없이 계통을 달리하고 있다.
셋째, 동족 이본의 동성인데 이는 시조도 다르고 본도 다른 경우이다. 예를 들면 강릉 김씨 와 광주 김씨는 시조와 본이 다르지만 같은 김알지(金閼智) 계통이며, 고부 최씨와 경주 최씨도 마찬가지로 시조와 본을 달리하지만 같은 최치원(崔致遠) 계통이다.
넷째, 이족 이본의 동성관계인데, 이는 대성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한 예로 김해 김씨와 경주 김씨 등과 같이 같은 성을 쓰면서도 조상이 달라 아무런 계통관계가 없다.
다섯째, 동족의 동본 이성인데, 이는 조상과 본을 같이 하면서도 성씨만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예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경우인데, 같은 김수로왕의 후손으로서 성만 달리 하므로 혼인이 금지되어 있다.
여섯째, 이족의 동본 이성인데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예를 들어 경주 이씨와 경주 김씨, 경주 손씨, 그리고 안동 강씨와 안동 권씨, 안동 김씨의 경우이다.
아울러 우리 나라 성씨에 나타난 본관의 수를 살펴보면, 동국 만성보에는 김씨가 120본, 이씨 가 116본, 박씨가 51본, 최씨가 43본, 정씨가 35본 등으로 나타나 있다. 1930년 국세 조사의 기록에 보면 김씨가 85본, 이씨가 103본, 박씨 34본, 최씨 34본, 정씨가 35본 등으 로 되어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같은 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족부락이 있었는데, 이들은 문벌을 소중히 여기고 자치적으로 상호 협동하여 집안 일을 해결해 나가는 특이한 사회 조직의 한 형 태를 이룬다.
수많은 본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파를 지양하고 한 민족의 핏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족 동본 의식으로 오천년 역사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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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뿌리를 찾아서
우리 나라 모든 성씨의 유래와 본관, 시조, 항렬자, 족보, 계보, 촌수 계산법, 성씨별 인구수,역대 왕의 연대표와 약사, 성씨의 설화, 전설 및 인물 등을 검색엔진으로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의 뿌리-족보 홈페이지
우리 나라 모든 성씨의 유래 및 시조, 중시조, 항렬자, 계보도, 촌수 계산법, 관청, 관직 제례, 밀양 박씨의 계보도, 규정공파의 인물검색에서는 4대조 및 4대손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양김문 홈페이지
이 홈페이지는 영양 김씨의 씨족사를 기본으로 하고, 이어가야 할 우리만의 전통자료, 가정의례절차, 촌수계산법, 건강교실, 금연살롱 등을 담고 있습니다.
남양 홍씨 양평 종친회
족보 관련사이트, 남양홍씨, 양평종친회, 족보의 유래, 계촌법, 홍씨의 유래 등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족보
해외 한인들에게 족보를 소개하고 보급하려는 취지로 족보의 유래, 족보 용어, 족보 보는법,족보의 종류, 성씨와 본관, 계촌법 등을 소개하고 족보(만성대보)를 구매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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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뿌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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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가문 그리고 인물들
유니텔에서 만든 성씨에 관한 이야기, 시대별 관향별 인물을 성씨별로 찾기, 본관 별로 찾기가 준비되어 있고, 족보에 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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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우리 한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과 추석에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차례를 올리고, 모든 가족이 한데 모여 화목을 다지는 날입니다.
설과 추석 아침에 지내는 차례는 가문마다 예절이 조금씩 다릅니다. 여기 소개하는 차례상 차리기등 제례는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장하는 가장 표준에 가까운 전통적인 제례를 소개하니, 이대로 따른다기 보다는 가풍의 예절을 지켜 지내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참조하기 바랍니다.
차례장소는 대청마루나 거실이 적당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차례를 사당에서 지냈으나 요즘 사당을 모신 집이 거의 없어 무의미해졌습니다. 복장은 한복차림이 좋으며 특히 설 차례는 색동 저고리 등 화려한 옷차림도 무관합니다.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낼 때는 두루마기를 입는 것이 예의입니다.
차례의 특징은 기제사와 달리 축문이 없으며, 술은 한번만 올리는 단잔으로 하며 술 대신 차를 올려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밥)대신 설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올립니다. 제물은 가정 형편에 맞게 준비하고 정성을 담아 장만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흉년이라고 거르지 말고 풍년이라고 지나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 제 사
제사 지내는 전통 예절이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은 그 만큼 현대인들이 제사를 등한히 하고 조상에 대한 자손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결과로 생각된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고 돌보아 주신 선조에 대해 정성을 다하는 예(禮)로서 제사는 자손의 당연한 도리라 하겠지요.
지방/축문 쓰는 법
지방은 종이조각에 써서 만든 신주를 뜻하며, 축문은 제사 때 신명께 고하는 글입니다.
지방 쓸때 알아두어야 할 점
◎ 신위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되 사진이 없으면 지방으로 대신합니다.
◎ 기제사에서 지방을 붙이면 축문을 읽는것이 원칙입니다.
◎ 지방의 규격은 가로 6 cm, 세로 22 cm의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씁니다.
◎ 상단 모서리를 조금씩 잘라 버립니다.
◎ 아래 예제중 왼쪽은 할아버지 한 위, 오른쪽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양위의 지방입니다.
◎ 지방을 쓰기 전에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입니다.
◎ 남자 고인의 경우, 벼슬이 있으면 學生(학생)대신에 벼슬의 관직(예를 들면 崇祿大夫등) 을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을 씁니다.
◎ 여자의 지방 孺人 다음에는 본관 성씨를 씁니다.
◎ 考(고)는 사후의 父(부; 아버지)를 뜻하며 비는 사후의 母(모; 어머니)를 뜻합니다.
◎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더라도 남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함.
◎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 지방을 붙일 때 왼쪽이 높은 자리, 오른쪽이 낮은 자리입니다.
◎ 한 할아버지에 두 할머니의 제사일 경우 가장 왼쪽이 할아버지, 중간이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입니다.
여러 경우의 지방 쓰기 사례
◎ 초록색 부분은 알맞게 고쳐 쓰도록 합니다.
◎ 지방은 백지에 붓으로 정성스레 써야합니다.
축문 쓰는 법
축문은 신명 앞에 고하는 글이며 그 내용은 제위 분께 간소하나마 제수를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을 담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에는 한문의 뜻을 풀이하여 알기 쉽게 한글로 쓰기도 합니다. 축문의 규격은 가로 24cm, 세로 36cm 의 깨끗한 백지에 씁니다.
벼슬이 있을 때의 호칭은 지방을 쓸 때와 같습니다. 學生대신에 관직명으로,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등을 씁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에는 축문을 쓰지 않습니다.
한문 축문의 예(부친제사)
축문 쓸때 알아두어야 할 점
維(유); 이어서 내려오다.
歲次(세차); 해의 차례.
干支(간지); 간지는 천간지지 육십갑자의 그해의 태세를 쓴 것이며 그 예로 금년이 丁丑 (정 축)년이면 丁丑 (정축)이라고 씁니다.
某月(모월); 제사날을 따라 쓰며 제사달이 정월이면 正月 8월이면 八月(팔월)이라 씁니다.
干支朔(간지삭); 제사달의 초하루라는 뜻으로 제사달 초하루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초 하루 일진이 丁亥 (정해)이면 丁亥朔 (정해삭)이라 씁니다.
某日(모일); 제사날을 쓴것이며 제사날이 15일이면 그대로 十五日(십오일)로 씁니다.
干支(간지); 그 제사날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15일이 제사날이고 15일의 일진이 甲子 (갑자)이면 甲子(갑자)라고 씁니다.
敢昭告于(감소고우); 삼가 밝게 고한다는 뜻으로 妻喪 (처상)에는 敢(감)자를 버리고 昭告于 (소고우)만 쓰며 아우이하는 다만 告于(고우)만 씁니다.
예제 축문은 양친이 별세한 경우 부친 제사의 축문이며 모친제사의 경우에는 청색 글의 顯 考 (현고)를 顯비 (현비, 비: 죽은 어미비字)로 고쳐 씁니다.
부부중 한쪽이 살아 계신 때에는 顯考學生府君 (현고학생부군) 혹은 顯비孺人ooo氏 (현비유 인ooo씨)중 한쪽을 쓰지 않습니다.
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 (현고)를 顯祖考 (현조고), 顯비 (현비)를 顯祖비 (현조비)로 고 쳐 씁니다.
증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 (현고)를 顯曾祖考 (현증조고), 顯비 (현비)를 顯曾祖비 (현증 조비)로 고쳐 씁니다.
고조부모 제사의 경우 顯考 (현고)를 顯高祖考 (현고조고), 顯비 (현비)를 顯高祖비 (현고조 비)로 고쳐 씁니다.
孝子이름은 겸양의 표현으로 조금 작게 씁니다.
한글 축문의 예 (부친제사)
모년 모월 모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고하나이다. 아버님 어머님, 해가 바뀌어서 아버님의 돌아가신 날이 다시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과 하늘같이 크고 넓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전을 드리오니 흠향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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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사 상차리기
다음은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하는 기제사상 차리는 법입니다.
과일을 놓는 줄 (그림의 1번 줄)
조율이시라하여 좌측부터 대추, 밤, 배(사과), 감(곶감)의 순서로 차리며(조율시이의 순서로 하기도 한다), 그 이외의 과일들은 정해진 순서가 따로 없으나 나무 과일, 넝쿨과일 순으로 차린다. 과일 줄의 끝에는 과자(유과)류를 놓는다.
반찬을 놓는 줄(그림의 2번 줄)
좌포우혜라하여 좌측 끝에는 포(북어, 대구, 오징어포)를 쓰며 생채 다음 우측 끝에는 혜(식혜)를 쓰기도 한다. 그 중간에 나물반찬은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순으로 올리고, 고사리, 도라지나물등을 쓰기도 하며 청장(간장) 침채(동치미,겨울철)는 그 다음에 올린다.
탕을 놓는 줄(그림의 3번 줄)
대개는 3탕으로 육탕(육류 탕), 소탕(두부 채소류 탕), 어탕(어패류 탕)의 순으로 올리며, 5탕으로 할 때는 봉탕(닭 오리탕), 잡탕등을 더 올린다. 최근들어 한가지 탕으로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적과 전을 놓는 줄(그림의 4번 줄)
대개는 3적으로 육적(육류 적), 어적(어패류 적), 소적(두부 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린다.
* 적 : 생선이나 고기를 대꼬챙이에 꿰어서 양념하여 구운 음식.
* 전 : 재료에 밀가루를 뭍혀서 번철에 지진 음식(부침개).
반 잔 갱을 놓는 줄(그림의 5번 줄)
앞에서 보아 메(밥)는 좌측에 갱(국)은 우측에 차린다. 시접(수저와 대접)은 단위제의 경우에 메의 왼쪽에 올리며, 양위합제의 경우에는 중간 부분에 올린다.
향로 향합등
향상에는 축문, 향로, 향합을 올려 놓으며 그 밑에 모사그릇, 퇴주그릇, 제주(술)등을 놓는다.
제상진설의 한문어구
좌포우혜; 좌측에는 포, 우측에는 식혜를 놓는다.
어동육서; 동쪽(앞에서 보아 우측)에는 어류, 서쪽에는 육류를 놓는다.
동두서미; 생선의 머리가 동쪽으로 꼬리가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홍동백서; 붉은 과일은 동쪽, 흰색은 서쪽으로 놓는다.
조율이시; 좌측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올린다. (혹은 조율시이)
제사음식 조리할 때 주의할 점
조리하기전 몸 가짐을 단정히 하여 정갈하게 조리를 합니다.
제사에 쓰지 않는 음식; 복숭아, 꽁치, 삼치, 칼치, 고추, 마늘 등
식혜, 탕, 면 등은 건데기만 사용합니다.
설 차례는 메 대신 떡국을, 추석차례는 메 대신 송편을 올립니다.
기제사 지내는 순서
진설(進設)
북쪽에 병풍을 치고 병풍앞에 신위를 모실 교의를 마련한 다음 위의 그림대로 상을 차린다. 식어도 괜찮은 음식부터 차린다. 진설이 다되면 사진 혹은 미리 써둔 지방을 교의의 신위함에 붙인다.(지방쓰기 참조)
분향강신(焚香降神)
제주는 꿇어 앉아 향을 살라 향로에 꽂고 재배한다. 왼쪽집사가 제주에게 강신잔을 주면 오른쪽 집사가 술을 반잔정도 따른다. 제주는 모사그릇에 세번에 나누어 모두 따룬다(모사그릇이 준비되지 않았을때는 술잔을 향로위에 세번 돌린다음 퇴주그릇에 따룬다). 왼쪽집사가 강신잔을 받아 오른쪽 집사에게 건네주어 제자리에 놓게한다. 제주는 재배한다.
참신(參神)
제주이하 참석자 모두 재배한다. 요즘은 여자도 재배를 하나 원래는 4배였다.
초헌(初獻)
좌집사가 잔을 제주에게 건네주면 제주는 우집사가 따루어 주는 술잔을 좌집사로 하여금 제상에 올리게 한다.
독축(讀祝)
제주 이하 모든 사람이 꿇어앉고 참사자중에 한 사람이 축을 읽는 것이다. 예전엔 축문 읽기가 끝나면 곡(哭)을 했으나 지금은 생략하는 가정이 많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제주는 두번 절을 한다.
아헌(亞獻)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주부(主婦)가 올리는 것이 예이지만 주부가 올리기 어려울 때는 제주의 근친자나 장손이 올린다. 아헌을 한 사람이 재배를 올린다.
종헌(終獻)
3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아헌자 다음가는 근친자가 올리며 집안에 따라서는 이때 적을 올리기도 한다. 아헌을 한 사람이 재배를 올린다.
개반(開飯)
주부나 집사가 메(밥)와 탕그릇의 뚜껑을 열다.
삽시(揷匙)
주부나 집사가 시접에 담겨있는 숟가락을 메그릇에 꽂고 젓가락은 시접위에 가지런히 걸쳐 놓는다. 젓가락의 손잡이는 서쪽(왼쪽)을 보게 놓는다. 흔히 젓가락을 세번 굴리고 여기저기 제물위에 올려 놓기도 하지만 시접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는 재배한다.
첨작(添酌)
첨작이라 함은 제주가 무릎꿇고 다른 잔 혹은 그릇에 술을 따루어, 종헌자가 다 채우지 않은 술잔에 좌우 집사를 통하여 술잔을 채우도록 하는것을 말한다.
합문(合門)
참사자 일동이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부복한(엎드린)다. 대청일 경우 뜰아래로 내려선다. 모든 참석자는 조상이 진지를 드는 동안(9수저 드시는 시간) 조용히 엎드려 생전의 조상을 생각한다.
개문(開門)
제주가 앞서서 기침을 한다음 조용히 문을 열고 일동과 함께 들어간다.
헌다(獻茶)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리고 메(밥)를 조금씩 3번 떠서 말아놓고 정저(잠시 묵념)한다. 메에 꽂았던 숫가락은 반드시 손잡이가 집사의 좌측으로 가도록하여 숭늉그릇에 담그어둔다.
철시복반(撤匙復盤)
숭늉그릇에 있는 수저를 거두어 시접에 담고 메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사신(辭神)
참사자 일동이 재배를 올리고 신주를 모신 기제사일 경우에는 사당으로 옮겨 모시고, 지방과 축문을 향로위에서 사른다.
철상(撤床)
모든 제사 음식을 물리는 것을 말하며, 제상의 위쪽에서 부터 다른 상으로 공손히 옮겨 물린다.
음복(飮福)
옷을 입은 그대로 조상이 드시고 남은 제물을 참사자 모두가 나누어 먹고, 이웃에도 나누어 먹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