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가 된 도련님
-------------------
조성연
1.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가 없다. ‘알바’라도 하고 싶지만 그것도 할 곳이 없다.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이백 번이 넘게 입사원서를 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조차 없다.
“맨 날 이 따위 책 나부랭이나 읽으면 무엇해…”
인수는 책상 위에 펴놓았던 책을 내 던진다. 이제 공부를 더 해봤자 취직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책상 위 한쪽구석에 있던 담배 곽을 찾아서 손에 쥐었다. 빈 곽이다.
“너 담배 가진 것 있니?”
“얘는 여자보고 담배 있냐고 대놓고 묻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미숙에게 얼토당토않게 담배가 있는지를 물었지만 핀잔만 당했다. 인수는 할 수없이 열람실에서 복도로 나왔다. 한쪽 구석에 대형 쓰레기통이 있다. 그곳에서 담배꽁초를 주워서 입에 물었다. 쓴 냄새가 지독하다. 하지만 불을 붙여 물었다. 그리고 한 모금을 깊숙이 빨아서 내 뱉었다. 가슴이 조금 후련해졌다.
“너, 담배중독이 된 것 아니니? 꽁초까지 주워서 입에 물고, 자 여기 있어,”
“진작 주지,”
“네가 불쌍해 보여서 한 곽을 샀어,”
미숙은 언제 자기 뒤를 따라나섰는지 좌대에서 뽑아온 담배 곽을 인수에게 건네준다. 인수는 눈물이 나게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난 이제 공부를 포기하고 싶어,”
“왜?”
“공부를 해도 취직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 더 이상 어머니를 속이는 것도 양심에 가책을 느껴,”
인수는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가슴에 있던 말을 미숙에게 토해냈다. 시골에 홀로 사는 어머니로부터 매달 학비를 받아서 썼다. 그게 벌써 삼년이 넘었다.
“어머니는 내가 수재라고 믿고 있어, 곧 고시에 합격할 것이라고 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니셔, 하지만 네가 알다시피 내가 고시 공부를 한다고 그게 되는 일이니,”
미숙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눈을 깜박거리며 듣고만 있다. 그녀 역시 그의 말에 공감을 느껴서다.
“내가 커피 한잔 뽑아 올게,”
미숙은 재빠르게 커피 좌대 앞으로 갔다. 그리고 커피를 뽑아들고 앞장을 서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인수는 생각 없이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공부를 해서 취직을 하거나 고시에 합격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능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인수는 커피를 마시면서 자기 이야기를 남의 말처럼 한다. 이력서를 쓰는 것도 이제 지겹다. 지방 대학을 나온 것이 문제다. 토익점수가 나빠서 인터넷에서는 원서가 접수조차 되지 않는다. 이력서를 이백 번 이상이나 넣고도 면접한번 보러 오라는 곳이 없다.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 헛수고하는 것이 너무 지겹다. 그냥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 인수는 많은 말을 쏟아 냈다. 미숙은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다른 말을 한다.
“도서관에 지금 있는 젊은이들이 거의 너와 같은 처지야, 나도 그렇고,”
“네가 왜? 너는 일류 대학을 나왔잖아,”
“일류대학! 그게 여자한테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어, 나는 코를 고쳐야 취직이 되어,”
“코! 무슨 코?”
“너 그렇게 둔하니, 예쁘게 뜯어 고쳐야 취직이 된다는 이야기 말이야, 여자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인물이 반반해야 되어, 그래야 취직이 되지,”
인수는 그때서야 미숙이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았다. 그녀 역시 같은 동질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위로가 되기까지 했다.
“얼굴을 뜯어 고치려고 부모님을 졸랐지만 들어 주시지 않아, 그냥 시집이나 가라는 거야, 그런데 내가 시집이나 가려고 대학을 다녀나 하는 생각이 들면 머리가 아파져,”
“너도 고민이 많구나, 난 너를 부럽게 생각했어, 일류대학 나온 것을 말이야, 남자가 지방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취직을 하는데 걸림돌이냐, 실업자가 많아서 거들떠보지도 않아,”
“너 너무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해서 그런 것 아니니? 그냥 적당한 곳에 취직을 해,”
“적당한 곳! 그런 곳이 어디 있어, 실업자가 몇 백만이나 되는데, 그런데 유리한 조건이 나에게는 없어, 그냥 죽고 싶어,”
“죽기는!”
“어머니 생각만 하면 죽고 싶어, 노모가 나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사시는데, 나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인간이잖아,”
미숙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수는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머니의 손이 쇠스랑이다. 얼굴의 주름살은 가뭄 속에 갈라진 논바닥이다. 아침에 들로 나가서 저녁까지 일하고 겨우 목에 풀칠을 하고 살지만 아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미숙은 그의 말에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의 심정을 위로할 말이 없어서 그냥 커피만 마시며 침묵한다. 인수는 자나 깨나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공부가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네 고향이 어디니?”
미숙이 화재를 돌리려고 인수의 고향을 묻는다. 인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고향이야기를 쏟아낸다. 어린 시절에 살던 고향풍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봄철이면 산과 들에는 샛노란 생강나무 꽃과 분홍빛 진달래꽃이 만개하여 화사하다. 길 양쪽으론 늘씬한 은사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새하얀 너럭바위가 깔린 계류에는 맑은 물이 늘 흐른다. 서서히 흐르는 물속엔 푸른 하늘이 고요하게 잠겨 있다. 물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금빛 모래가 펼쳐져 있는 강이 있고, 그곳의 백사장은 참으로 절경이다. 연인들이 짝을 이루어 사진을 찍거나, 거니는 모습들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고 말했다.
“나 고향에나 갔다 와야 되겠어, 같이 가 줄래?”
“내가 왜 같이 가야 하는데,”
“내 고향에 가보고 싶어서 묻는 줄 알았어, 그리고 너를 어머니에게 소개하고 싶어,”
“너, 혹시 나 좋아하니?”
인수는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처분만 바란다. 백수라는 주제 때문이다. 미숙이 역시 같은 생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실업자끼리 사귀고 싶지도 않고 괜히 연인사이로 오해를 주기도 싫어서다.
“가려면 혼자나 갔다 와, 나는 공부를 해야 되어,”
인수는 공부보다 얼굴을 뜯어 고치는 것이 먼저라는 말을 그녀에게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인수는 다시 그녀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도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에는 백수들이 많다. 수백 번의 이력서를 넣고도 취직은 고사하고 면접 한번을 못 본 사람들이 많다. 가족들을 대하기가 민망하여 도서관으로 몰려와 있다. 부모님들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자식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워서 그들의 손에 몇 푼의 돈을 쥐어준다.
하지만 그들은 도서관에 오기는 하였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다. 인수처럼 그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동영상기로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쓸데없는 정보검색에만 매달려 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구내식당에서 라면이나 빵으로 점심을 때운다. 좌판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휴식공간으로 간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담소하고 동질성을 찾으며 커피를 마신다.
오후 역시 같은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신문을 읽거나 뭐 재미있는 것이 없는지를 검색한다. 그러다가 자기기준에 맞지 않는 뉴스나 읽을 것들이 발견되면 스트레스를 푸는 식의 댓글을 올린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다가 오후에 집으로 귀가한다. 그게 백수들의 하루 일과다.
미숙이도 같은 처지지만 생각은 인수와 조금 다르다. 그 이유는 양성의 차이와 지방대학과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차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콤플렉스가 있다.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보다 못생긴 얼굴을 뜯어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수는 자기고향에 같이 가보자고 한 것을 후회한다.
2.
인수는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버스터미널에는 오고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인수는 선물가게 앞에 서서, 어머니를 생각했지만 주머니 속에는 지폐 몇 장이 고작이다. 이내 마음을 바꾸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지정된 자리로 가서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버스 안이 매우 소란스러웠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생각을 바꾸려고 애를 썼지만 어린 시절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로 착잡해 진다. 그런 생각 중에도 공부를 포기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에게 고백하고 이제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버스는 벌써 고향집에 가까워지고 있다.
“제기랄! 언제 이 길은 포장이 되는 거야, 지금 이런 길이 어디 있어…”
인수는 창밖으로 보이는 고향의 봄 풍경을 만끽하다가 버스가 키질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불평석인 말을 했다. 하지만 창밖의 고향 풍경들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예전에는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이 지금 차가 달리고 있는 이 고갯길을 걸어서 넘었다. 백수가 아니라면 번잡한 일상을 잠시 잊고 한없이 여유를 부리고 싶어지는 곳이다.
“손님,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인수가 깊은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어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몰랐다. 같이 동행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차에서 내렸다. 인수는 운전수에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읍내의 상점들은 문을 열고 있었지만 한산했다. 인수는 낯익은 푸줏간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이게 누구냐. 우리 읍내의 수재구나, 그래 고시 공부는 잘되지?”
인수는 수재라는 말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당황했다. 하지만 태연한 척하면서, 외상으로 돼지고기 몇 근을 샀다. 그리고 재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인수의 집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산촌이다. 읍내에서 그곳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푸줏간 아저씨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인수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고향집에 도착했다.
3.
고향집의 용마루 위에는 봄이 찾아왔지만 아직도 메마른 잡풀들의 줄거리가 끊어진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군데 둔데 깨진 기와들이 황망하게 보여서 오래된 집의 장식물처럼 보였다. 인수는 대문 앞에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다보고 서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이 온 것을 알았다.
“그 동안 별고 없었지?”
어머니가 큰 소리를 내면서 아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인수는 조금 늦었지만 어머니에게 넙죽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신기한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다가 부둥켜 않았다. 그들 모자는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확인한 후에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에게 아랫목을 내어주면서 어서 앉으라고 말했다.
“네가 왜 갑자기 집에 왔니, 너도 벌써 알았니?”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직 모르는 구나, 너 몰래 이 집을 팔았다. 상의도 없이 팔았어,”
“예! 왜요?”
어머니가 뜬금없이 집을 팔았다고 말하자 인수는 무척 놀랬다. 조상 대대로 정을 붙이고 오랫동안 살던 집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인수가 왜 집을 팔았는지에 대해서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도 고향에 살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이 대학을 나오고도 몇 년째 취직을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인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봐라. 어미가 살면 이제 얼마나 더 사니…”
인수는 어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황소울음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울기는 왜 울어, 서울에 거처할 곳을 마련해라. 그리고 장가도 들어야지,”
어머니는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대충 팔아 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인수는 무엇인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여기 일은 걱정 말고, 며칠 쉬면서 친척들이나 한번 찾아뵙고 떠나는 것이 좋겠구나,”
인수는 어머니의 말에 이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격지심 때문이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 자체를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싫었다. 그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취직을 못해서라는 말은 더욱 하기가 싫다.
“너 우영이 알지?”
“그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해요. 오래 전에 보고 못 봤는데…”
“타지에 살아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고, 네가 보고 싶은 모양이더라.”
인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 그와 같이 놀던 생각이 되살아났다. 짙은 남빛 하늘 속에 큰 굴레의 황금 빛 둥근 달이 걸려 있다. 강가의 모래들은 은은한 빛깔로 반짝인다. 그 강가의 끝자락을 끼고 펼쳐진 수박밭은 아무리 봐도 끝닿는 데를 알 수가 없을 만큼 길고 기다랗게 수박 덩굴이 깔려있다.
수박밭 가운데 열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서 있다. 그 소년의 목에는 작은 소쿠리가 매달려 있고, 오른 손에는 쇠스랑을 들고 있다. 오소리가 그 앞으로 달려들자, 소년은 거침없이 그 미물을 향해 쇠스랑으로 내려찍었다. 하지만 발 빠른 오소리는 금시 그 소년의 시야에서 살아졌다.
“제기랄! 이놈들은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수박이란 수박은 다 갉아 놓으니.”
소년은 혼자 투덜거리며 그런 일을 계속했지만 한 마리의 오소리도 잡지 못했다. 그리고 구멍이 난 수박들을 쳐다보다가 다시 오소리를 쫓는다. 오소리가 움직일 때마다 수박 덩굴이 파도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소년은 잽싸게 추격하면서 다시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오소리는 번개처럼 도망갔다. 심지어는 소년의 가랑이 밑으로 손살 같이 뺑소니를 쳐버리기도 했다. 그 소년이 우영이다. 인수는 어린 시절에 우영이가 달밤에 수박밭을 지키던 일을 기억해 내며 추억에 잠겨있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니, 우영이를 만나 보면 되지,”
인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머니의 말에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인수와 우영이는 같은 시기에 태어났지만 상반관계로부터 시작하였다. 인수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집안 형편이 매우 좋았다. 집안 윗대에서는 벼슬을 한 분도 있었다. 그 이유로 아버지는 작은 동네에서 양반 행세를 했다. 인수 역시 도련님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반면에 우영이네는 가난하다는 것이 이유가 되어서 동네일을 돌보아 주는 소임 일을 했다. 그래서 우영이 아버지는 늘 동리 사람들에게서 하대를 받았다. 아이들까지 그를 하대하였고 우영이 역시 소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같은 천대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당시까지도 상반을 따지고 살았다. 인수의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면 우영이까지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때마다 인수는 도련님이라는 위치에서 그를 업신여기곤 했었다.
“무엇 때문에 우영이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지 아세요?”
“그거야 모르지, 아마 그냥 네가 보고 싶은 모양이지.”
인수는 어머니에게서 대수롭지 않은 일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와 인수는 늘 상반관계였는데, 그가 지금 와서 무엇 하러 자존심을 상하면서 까지, 자기를 만나러 올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의문이 생겼다. 아마도 취직을 부탁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4.
우영이는 푸줏간 아저씨로부터 인수가 집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사전에 연락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언젠가는 인수가 읍내에 나타나면 푸줏간에서 고기를 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부탁을 했었다. 그의 예측대로 푸줏간 아저씨로부터 인수가 집에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내 찾아오지 못하고 다음날 저녁 무렵에서야 인수의 집으로 찾아왔다.
“도련님이 오셨어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찾아온다더니, 그래 인수가 왔다. 들어가 보거라.”
인수는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서야 우영이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도련님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겼다. 아직도 그가 자기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인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섰다. 인수는 어정쩡한 상태로 그를 맞았지만 그는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했다.
“왜 그러니, 난 이제 네 도련님이 아니야. 자네 친구일 뿐이지,”
“무슨 말씀을, 제게는 도련님입니다.”
인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다보다가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눈을 감았다.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는 난폭한 성격을 가졌지만 인수와는 그런 점이 없었다. 그는 아무 의미도 모르고, 도련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랐다. 아직도 그런 관계가 확인되고 있어서 인수는 곤욕스러웠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도련님이라는 말을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상반관계를 느끼며 산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수는 그에게 참새를 잡아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새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날라 다니는 새를 잡기 좋은 계절은 겨울철뿐이다. 하지만 인수는 계절에 관계없이 새를 잡아내라고 그를 닦달했다. 그는 할 수없이 새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그때마다 그에게 가혹한 매질을 가했다. 그래서 우영은 눈이 오는 겨울철을 몹시 기다렸다. 새를 잡지 못하는 여름철에는 강가에서 이상한 돌이나 물고기를 잡아주었지만, 우영은 그런 일 외에도 늦은 저녁까지 수박밭을 지켜야 했다. 오소리를 늘 잡으려고 했지만 그 일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물새알을 내리러 가자,”
우영은 수박밭을 지켜야 하지만 인수의 성화에 못 이겨서 강가로 함께 갔고, 해질 무렵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나면 우영이 아버지는 그에게 매질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다음날 같은 일을 반복해서 수박밭은 엉망이 되었다.
강가에는 이상한 돌이나 우렁이 껍질밖에는 없었지만 인수는 바닷가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라고 졸랐다. 붉은 것과 푸른 것, 그리고 귀신을 쫓는 조개껍질을 찾아내라고 닦달을 했다. 심지어는 진주를 찾아내라고 했다.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대가로 늘 엉덩이를 맞았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황당한 일에서부터 아주 친한 친구의 사사로운 일들까지 미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상반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인수는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우영은 큰 절을 하고 난 후에도 인수가 눈을 뜨지 않고 있어서 황당하였지만, 감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슬며시 자리에 주저앉아서 조용히 기다린다. 하지만 인수는 눈을 감은 채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취직 부탁을 하지 않을까 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5.
동네에서 대소사 일을 맡아서 하고,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소임이라고 한다. 우영이 아버지가 그 소임 일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소임 일을 하는 사람은 늘 하대했다. 상반으로 취급당해서 어른들은 물론이고, 동네 아이들까지 하대했다. 우영 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식구들까지 하대를 받았다.
우영이는 그런 불만 때문에 점점 비뚤어졌고 골목대장이 되었다. 동네에서 나쁜 일을 도맡아서 하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우영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동네 굿은 일을 도맡아서 했다. 그 대가로 동네 사람들은 쌀 몇 말씩을 추렴하여 그에게 주었다.
우영이네는 그것을 가지고 생계를 꾸렸기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래서 인수네 집의 일을 거들었고 그 덕분으로 근근이 살아갔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이 그렇게 흉이 될 것이 없다. 더욱이 취직이 안 되는 지금의 생각으로 보면 훌륭한 일자리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를 늘 하대하고 우습게보았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잔치 집이나, 상가 집에서 몇 잔씩 얻어 마시는 술이 얼근하게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일이다.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고 싸웠다. 평소에 가졌던 불만을 술이 취하면 토해냈다. 그리고 술이 깨면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잘못했다고 사과를 천연덕스럽게 했다.
“이제 그에게 동네 소임 일을 거두게 하는 게 났겠네, 어디 술을 먹으면 그게 사람인가,”
마을의 촌장이 보다 못해서 그를 마을에서 추방하자고 말했다. 촌장은 그가 다른 마을에서서도 쫓겨난 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간음을 하는 사건이 생기면 자치적으로 처벌했다. 죄진 자가 등에 북을 진다. 자기 손으로 북을 치면서 동네 중심지를 여러 바퀴 돈다. 용서를 구하고 가족과 함께 멀리 쫓겨난다.
그러한 처벌은 지금의 감옥을 가는 것 보다 더 심한 상처를 입고 평생을 살아간다. 가슴속에 그런 수치스러움을 묻어 두고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동네사람들과 관련한 죄는 절대로 짖지 못했다. 우영이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동네 사람들도 소문으로 알고 있다.
“야! 양반이면 다냐? 양반인 새끼 나와 봐, 양반 좋아하네, 양반이라는 자식들 행색이 그것밖에 안 돼, 이 자식들아,”
우영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사고를 쳤다. 술이 취하여 도끼를 들고 고함을 치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청년들이 못된 버릇을 고쳐주려고 그에게 몰매를 가했다. 그는 너무 많이 맞아서 늑골이 부러지고 머리에 깊은 타박상을 입어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읍내에 있는 조그만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큰 도시로 가서 치료를 했지만 이내 완쾌되지 않아서 그의 처와 우영이가 동네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영은 점점 더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로 변했었다.
6.
인수는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슬며시 눈을 떴다. 하지만 우영이가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대로 지켜보고 앉아있는 것에 몹시 당황한다.
“자네는 지금도 그렇게 불쑥 남의 집을 들어오는 것은 여전하네?”
그는 그때서야 도련님이 눈을 떴다는 것을 알고 좌불안석이 된다. 인수는 그가 무엇인지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그의 말을 기다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더욱 초조했다. 인수는 오기가 생겼다. 그의 말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시 말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우영이 역시 침묵하고 있다.
“야, 네가 앞장서,”
“또 가게요, 오늘은 정말로 혼나요. 수박밭이 망가지는 것도 걱정이고,”
인수는 눈을 감은 채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가 뱀에게 물렸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는 절벽 중간쯤에 위치한 물새 굴에 어떻게든지 다가가서 알을 꺼내려고 했다. 물새들은 절벽에 겨우 손이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수평으로 깊숙하게 파고 알을 낳는다. 그런 구멍에 손을 넣고 물새알을 내리는 일은 위험하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하다가 어느 날 뱀에게 물리는 소동이 일어났다.
다행이 독이 없는 뱀이어서 큰 위험은 없었지만 오래도록 고생을 했었다. 부기와 독을 뺀다고 된장을 발랐다. 그 흔한 소독약도 없어서 약풀을 뜯어다 찌어서 바르고 오랫동안 다녔다. 우영이의 손이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자, 인수가 채근하는 바람에 또다시 물새알을 내리러 다녔다. 어떤 날은 갓 부화된 어린 물새 새끼들조차 내려다가, 읍내 다른 아이들에게 팔아서 사탕이나 엿을 사 먹기도 했었다.
“하기야 우리 집 대문은 늘 열려 있었지”
인수는 눈을 감은 채로 우영이 사전 예고 없이 자기 집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 나무라는 투로 또다시 한마디 했다. 도대체 무슨 심사로 눈을 감고 있는지를 모르는 우영은 더욱 난감해 하며 그냥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냥 도련님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인수는 우영이가 무슨 말인지를 하도록 하기 위한 기회를 주고 있다. 무엇 때문에 자기를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방편을 찾고 있는 중이다.
“너희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니, 술이나 한잔해라,”
인수 어머니가 작은 술상을 방안으로 들이밀었다. 우영이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을 받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에 술상을 인수의 앞에다 가져다 놓았다. 그때서야 인수는 자기의 생각들을 지우고 그를 쳐다보았다.
“혼자 살고 있는가, 부모님은 전부 돌아가셨고?”
“결혼을 했어요.”
“결혼, 그래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
인수는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가 결혼을 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인수는 막걸리 잔을 입에 대고 한숨에 마신다. 그리고 잔을 우영에게 권한다.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세요?”
“자네와 같이 한 세월이 정말로 그리워,”
우영은 그때서야 인수가 자기와 같이 한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흐뭇해한다.
“자네는 정말로 못하는 일이 없었지,”
우영이가 피식 웃었다. 그는 정말로 무엇이든지 잘했다. 미역을 감으러 갔다. 아이들 모두가 빨개 벗어 벌거숭이가 된다. 수영복 같은 것도 없고, 겉 옷 하나만 벗으면 맨 살이다. 모두들 고추를 내놓은 채 물 속으로 들어간다. 개헤엄을 치기도 하고 전혀 헤엄을 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 능력대로 멀리도 가기도 하고, 가깝게 가기도 한다. 멀리 가면 갈수록 물속이 깊기 때문에 잘못하면 사고가 생기지만, 그것을 빌미로 못된 장난이 곁들어 진다.
우영이는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그것을 택했다. 헤엄칠 줄 모르는 아이를 멀리 끌고 가서, 그냥 놔 버리는 것이다. 잘못하면 빠져 죽는 일이 되지만 겁도 없이 그런 장난을 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는 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헛물을 눈물이 나도록 먹어야 하고, 죽기 살기로 헤엄쳐서 물 가장자리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일을 주도하다 보니, 미역을 감으러 가자하는 말만 나와도 아이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는 그런 이유로 늘 아이들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고 우상이 되었다.
“자네가 나를 많이 도와주었지,”
“도련님은 무슨 옛날이야기를 하시고.”
읍내에 서커스단이 들어 왔다. 광고 나팔 소리가 하루 종일 읍내를 들썩이게 만든다. 예쁜 배우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읍내를 누빈다.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다니며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광대로 분장한 배우가 하는 대사나, 연기를 흉내 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저녁이 되면 노천극장으로 몰려갔다. 어떻게든지 돈을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노천극장 주위를 우락부락한 청년들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늘 약점은 있는 법이다. 빈틈을 노리다가 잽싸게 들어간다.
우영이는 귀신같이 늘 먼저 숨어 들어갔다. 그가 쓰는 방법은 정말 천재적이다. 뚱뚱한 아주머니의 치마를 붙들고, 문지기의 눈에 띄지 않게 교묘히 들어간다. 몇 사람의 가족이 들어갈 때 아주 천연덕스럽게 묻어 들어가기도 한다. 어떤 때는 그냥 태연하게 문지기 앞을 지나가기도 한다. 정말로 대단해서 우영이가 몹시 부러웠다. 인수는 늘 그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야, 코끼리가 나오는데 집채만 하다. 원숭이는 어떻고? 똥구멍이 빨갛다고 하는데 하나도 안 빨개, 거짓말이야, 앵무새가 말을 하는데 뭐든지 다 말해, 정말로 신통하더라,”
우영이는 자기만 혼자 구경하고 나와서, 그가 보았던 이야기들을 하였지만 거짓말의 명수였다. 아이들은 속아 넘어가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지금은 서커스를 구경할 수가 없겠지?”
“서커스를 하는 곳이 없지요. 왜 옛날 생각을 하시고?”
인수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 눈치로 알고 있어서 그는 반문하면서 크게 웃었다.
“정말로 자네는 나의 우상이었어,”
“도련님! 무슨 우상은, 나는 아주 못된 놈이었어요.”
“아니야, 그 시절이 정말로 그리워,”
그는 어린 시절에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았다. 인수는 그것이 부럽다는 말을 했다. 백수가 되어서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고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즐거웠다.
그는 아이들 세계에서 절대적인 존재였다. 읍내 애들과 패싸움을 할 때도 언제나 왕초처럼 행동하고 머리를 썼다. 읍내에서 싸움을 걸어오면 반드시 그것을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전체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을 내렸다.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떻게든지 그것을 감내했다.
그래서 늘 이길 수 있었고 골목대장답게 행동했다. 명령을 내리고 결과를 확인했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하는 성격이다. 아이들은 늘 그가 하라는 대로 했고, 그의 명령을 무조건 따랐다.
어느 날 읍내 아이들이 패싸움을 걸어왔다. 싸움을 걸어온 이유는 자기들 아지트에 숨겨 놓은 물건들과 먹을 것을 훔쳤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싸움은 대단히 치열했다. 한 아이의 머리가 깨졌다. 우영이가 큰 돌로 머리를 찍었기 때문이다.
우영이 아버지가 경찰에게 사정을 했지만 피해자 쪽에서 너무 강하게 나와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여러 날을 유치장에서 지내다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풀려났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의 소영웅이 되었고, 더 절대적인 우상이 되었다.
“한잔 더 들게.”
인수는 우영에게 다시 잔을 건넸다. 우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내 술을 마시고 다시 빈 잔을 인수에게 건넸다. 그리고 공손히 예를 갖추고 잔에 술을 부었다. 인수는 막걸리 잔을 들여다보다가 한 모금을 마시고 가볍게 술상에 잔을 내려놓고 빙긋이 웃었다.
“누나는 시집을 가서 잘 살지?”
“누나요?”
우영이 누나는 예쁘게 생겼지만 입이 매우 거칠었다.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일에 몰두했다. 얼굴에는 흔하게 구할 수 없는 분가루를 쳐 바르고, 비식비식 웃음을 웃으며,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말썽을 일으켰다.
그녀는 사소한 동네일을 다 알고 있어서 늘 문제가 생겼다.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등지고 원수처럼 살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예쁜 얼굴 때문에 총각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다녔다. 묵호는 외지에서 품을 팔러 들어온 풋내기지만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속만 태우고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집을 나가면서 사건이 생겼다. 우영이 아버지는 여러 날이 지나도 딸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찾아 나셨다.
그녀는 읍내 대포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녀를 집으로 끌고 왔지만 한번 집을 나가기 시작한 그녀는 자주 집을 나갔다. 그때마다 우영이 아버지는 그녀를 잡아다가 매질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족들은 할 수없이 그녀를 묵호와 결혼시키기로 결심했다. 우영이 아버지는 아예 묵호와 한편이 되어 그녀를 잡아오기도 하고, 한방에 집어넣고 밖에서 잠을 쇠로 걸어 잠그기도 하면서 어떻게든지 짝을 지어 주려고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간 후에 묵호가 일을 저질렀다. 읍내 술집으로 그녀를 찾아갔다가 술을 많이 먹고, 주인에게 행패를 부려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며칠 뒤 묵호는 풀려 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후로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그때부터 일어났다. 오히려 그녀가 적극성을 보이며 그를 쫓아 다녔다.
묵호는 한번 작심한 마음을 변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영이 아버지 농간에 넘어가 묵호는 마지못해 그녀를 받아들이고 결혼을 했다.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천성은 속이지 못했다. 그녀는 결혼한 몸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읍내로 나가 술을 마시고 심지어는 술집 주인과 외박까지 했다.
묵호는 그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일했지만 그녀는 매일 옷과 화장품 타령을 했다. 그리고 읍내 술집 주인과 놀아났다. 묵호는 그래서 병이 들었지만 매일 폭음을 하다가 자살을 했다. 우영이네 식구들 역시 그 사건 이후로 마을을 떠났다. 그 후로 동네 사람들은 그들을 잊고 살았다.
7.
인수는 술잔을 입에 대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찬찬히 우영이를 쳐다보았다. 인수는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지만 계속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몹시 궁금해졌다. 인수는 할 수없이 찾아온 이유를 알기 위해서 질문을 한다.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는가?”
“도련님을 잊지 못해서요.”
“정말로 내가 자네의 우상이었는가? 나는 자네가 나의 우상이었는데,”
“제가 우상이라니요. 저는 못난 놈입니다. 저는 지금도 도련님과 함께 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삽니다. 저는 죽어도…”
인수는 그가 무슨 부탁을 하러 온줄 알았다가 엉뚱한 대답을 하자, 자기의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잊어버리게,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나는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었네, 취직도 못하고 사는 백수일세, 자네는 장가도 갔지만 나는 어머니 신세만 지고 사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도와줄 수도 없는 인간이네, 그래서 이 집을 어머니가 팔았네, 이사를 가게 되었지…”
인수는 우영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 계속 이제 잊어버리라는 말을 했지만, 우영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 이거…”
“그게 뭔가?”
우영이는 하얀 봉투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인수에게 주었다. 인수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생각을 가지면서 흰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지레짐작으로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으로 알고, 그를 쳐다보면서 그냥 봉투를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우영은 황급히 일어서더니 큰 절을 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뜰에는 살구꽃이 만개하고 있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우영이의 뒷모습은 왜 그런지 쓸쓸해 보였다. 비척거리고 걷는 모습에서 그의 가족들에 대한 모습들이 연민과 함께 포개지며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인수는 왜 그런지 가슴이 아려오며 마음이 아팠다.
“왜 그러니 우영이가 그냥 말없이 가게, 하루 저녁 묵어가면 좋으련만.”
“글쎄요. 이 봉투를 어머니에게 드리라고 하더니 나갔어요.”
“그래! 무슨 봉투지?”
어머니는 인수로부터 봉투를 받아 들고, 그 속을 들여다보다가 한 장의 수표를 발견했다.
“아니, 이렇게 많은 돈을…”
인수는 그때서야 그가 말한 뜻을 알아들었다. ‘영원한 나의 도련님’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한 뜻을…
인수는 사정없이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그를 찾았지만 이미 어디로인지 가고 없었다. 인수의 마음과 다르게 싸늘한 바람만이 가슴을 매몰차게 친다. 백수라고 그에게 말한 것이 서러움으로 변했다. 인수는 자리에 풀썩 주저 않아서 허공을 쳐다보며 큰 소리를 질렀다.
“야 미친놈아! 나는 너의 영원한 도련님이 아니라 백수란 말이야,”
그는 허공을 향하여 수도 없이 나는 백수라는 말을 외치며 황소울음 소리를 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가세하여 더욱 큰 소리가 되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
|
첫댓글 조성연 선생님의 훌륭하신 긴 글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요즈음 보기 드믄 우영이를 볼 수 있었고, 백수가 된 인수! 인수 뿐 만이 아니라 하루 빨리 경제가 나아져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일자리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글을 칭찬해 주셔서----
인수의 고향묘사와, 대화 한번에 과거를, 다시 대화 한번에 과거를 불러내는 구조가 자연스러워 좋습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회원으로 이제야 등업된 걸 알았어요. 조성연선생님의 글 잘 읽었어요. 자주 들어와 앍고 갈께요.저도 소설이 완성되면 올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