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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송구영신예배 – 새해를 어떻게 살까? (역대하 32:20-26)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현재(present)는 영어로 선물(present)이란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지금, 현재는 그야말로 빛나는 선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상하고 어렵게 보낸 한 해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속에 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남은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재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삽시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예배에 히스기야왕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새해를 어떻게
살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히스기야왕은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입니다.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주전 715-686년 재위).
그의 아버지는 아하스왕이었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고, 바알과 밀곰의 우상을 섬기고, 산당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겨 공격을 당했고, 이스라엘왕의 손에 넘겨 하루 동안
유다의 용사 12만 명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하스는 곤고할 때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더 빗나갔습니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역대하 28:22)
유다를 공격해 온 앗수르 왕에게 성전의 재물을 바치고, 아람의 신들에게 제사하며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 문을 닫았습니다.
아하스의 잘못 중에서 절정은 성전 문을 닫은 것입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역대하 28:24-25)
성전 문을 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는 곳이며, 은혜와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때 성막 위에 구름 기둥이 서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었습니다.
솔로몬왕은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면서,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항상 성전에서 섬기고,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매년 세 차례씩은 성전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작년 내내 예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방역 당국은 쉽게 교회 예배를 막고, 교회를 일반 영업장들과 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힘쓰는 것은 예배가 약해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아하스는 우상을 섬기고 범죄하다가 성전 문까지 닫아 버렸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의 길도 닫혀 버렸습니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주전 722년).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 아하스와 반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아하스가 닫았던 성전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역대하 29장 3절)
히스기야가 왕이 되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성전의 문을 연 것입니다.
성전의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성전 문을 열었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앗수르의 군대가 위협할 때에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 때에 중요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문을 열고, 성전을 청결케 하고,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입에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내주고 무마하였습니다.
달란트는 무게의 단위로, 1 달란트는 약 34kg 정도이며, 1금달란트는 15은달란트 정도입니다.
어제(12월 29일) 기준으로 금 시세는 1g에 66,000원인데, 그렇게 계산하면 1달란트(34,000g)은
약 22억 원이나 됩니다.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과 금을 다 모으고,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겨우 산헤립에게 바쳤습니다.
산헤립왕의 부하 랍사게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항복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의 편지를 들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편지를 펼쳐 놓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열왕기하 19:20)
그날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죽였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본국으로 철수하였고, 부하들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죽을 병에 걸렸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를 보내 통보하였습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열왕기하 20:1)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열왕기하 20:5)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15년 더 살게 하시고, 그 증표로 해의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때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사절단을 보내면서 편지와 예물을
보냈습니다.
바벨론은 천문에 능한 나라였으므로, 히스기야의 치유와 천체의 변화(해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일)에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자기의 보물고와 군기고와 창고, 왕궁의 모든 것을 보이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 왕을 책망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열왕기하 20:17-18)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큰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22-23절)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앗수르 군대를 전멸시키고, 산헤립왕도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앗수르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죽을 병에서 살리셔서 15년을 더 살게 하셨다.
그 증표로 해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히스기야와 같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마이클 야코넬리(Michael Yaconelli, 미국의 평신도 목회자, 1942-2003)의 ‘영성(Messy
Spirituality)’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국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동료들은 전쟁터에 시신을 방치해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식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일선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흰 울타리를 친 작은 공동묘지가 딸린
교회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친구의 시신을 공동묘지로 옮겨가기 위해 상사의 허락을 받은 병사들은 해가 지기 전 겨우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리가 굽고 야윈 노 신부가 그들을 맞아 주었다.
한 병사가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친구가 전쟁터에서 숨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교회 묘지에 묻어 주고 싶습니다.”
신부는 병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지만 아주 서툰 영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묻어 줄 수가 없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서운한 기색조차 보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러자 노 신부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렇지만 교회 울타리 밖에 묻는 것은 괜찮습니다.”
병사들은 하얀 울타리 밖에 땅을 파고 친구를 묻어 주었다.
일을 다 마쳤을 때는 해가 떨어지고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다음날 아침 전선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그 작은 교회를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친구를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해진 병사들은 교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친구를 묻은 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어젯밤 지치기도 했고 어두워서 그랬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노 신부가 대답했다.
“어젯밤 당신들이 떠난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울타리를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옮겨 놓는 그 이상의 일을 하셨다.
아예 울타리를 없애 버리셨다.
예수님은 우리 앞에 있는 울타리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울타리 밖에 있던 우리를 울타리 안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2-13)
하나님께서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주십니다.
욥의 이야기에서 사탄이 그것을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욥기 1:10)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사탄이 함부로 손대지 못합니다.
히스기야도 하나님께서 울타리가 되어 주셔서, 주변의 강대국들과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죽을 병에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말년은 좋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5절)
히스기야는 교만하여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복에 감사하기보다 자기를 자랑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병문안을 한다며 다목적으로 찾아온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했더라면, 바벨론이 유다를 쉽게 넘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앗수르의 18만 5천 군사를 하나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몰살시키셨고, 자신을 죽을 병에서
고치시고, 해의 그림자가 10도나 물러간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강조했다면 바벨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지 하지 않았고, 자기 왕국의 모든 것을 보여 주며 자랑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100년 가량 후에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뭘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뭘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했다, 자기 때문에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 때의 결과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한복음 2:9)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사절단에게 행한 잘못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가 책망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열왕기하 20:17-18)
이런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에 히스기야의 대답이 뜻밖입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열왕기하 20:19)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자기의 때에 있지 않음에 대해 선하시다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지만, 히스기야가
죽을 병을 선고받았을 때와 비교하면 다릅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선고를 따르지만, 히스기야가 그때는 번복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은 후 뒤를 이은 그의 아들 므낫세왕은 남왕국 유다의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므낫세는 55년간 다스리면서, 아버지 히스기야가 바로잡았던 모두 뒤집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가 12세였는데,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고침받아 15년을 더 살게
된 사건의 3년 후에 므낫세를 낳은 셈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 사는 동안 낳은 아들 므낫세가 유다 왕국 역사에 가장
악한 왕이 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선하고 좋은 왕,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많이 받았던 왕이었으나 말년은 좋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고, 교만하였습니다.
새해를 어떻게 살 것입니까?
히스기야왕의 모습을 통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며 삽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인정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헛됩니다.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말씀을 들을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21,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태복음 7:23)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삽시다.
새해에도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것인데, 그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들었던 응답의 말씀을 들으며 삽시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열왕기하 20:5)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를 보답하며 삽시다.
히스기야의 말년이 좋지 못했던 것은 교만하며,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며 삽시다.
교만하지 말고, 자랑하지 맙시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삽시다.
히스기야처럼 바뀌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새해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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