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륙의 큰흐름 황하와 양자강사이에 또 하나의 큰 강이 있었으니
바로 삼천리를 흐르는 한수漢水이다.
우리 삼국의 역사에서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는 항상 漢水유역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워 왔다.
그런데 그 한수가 한강이 아니고 대륙의 한수라는 아주 당연하고도
기막힌 사실를 알고 나서 한동안 망연해 했다.
하긴 나도 삼국지를 여덟번이나 읽어 보았지만 촉의 승상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사천성 성도에서 섬서성 장안에 있던 위나라 조조를 향해 전장터를
나설 때면 항상 향하는 곳이 한중 땅이었는데,
그곳이 바로 한수 라는 것을 삼국지 소설 속에서는 한수 라는
강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관우 장군이 지키고 있던 형주땅을 먼저 차지 하려고 했던
제갈량의 천하삼분의 계는 결국 위, 촉,오 삼국이 한수 유역을
먼저 차지 하려고 싸운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즉, 한수 유역이 대륙의 중심 중원땅 이었으며 실제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대륙의 중원을 쟁취하려고 서로 앞다투어
한수를 찾이하려 했던것이다.
다음 지도에서 한수의 흐름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대륙의 중원을 흐르는 한수 !
이 한수는 대륙의 지도에 漢水라고 그대로 쓰여져 있다.
우리민족의 영원한 고향이며, 지울수 없는 역사 지명이 한수이다.
한수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다음지도는 대륙의 섬서성이다.
섬서성은 붉은부분으로 청색선이 한수의 흐름으로
한수의 상류 부분 3분지1정도가 나와 있다.
하류 부분 3분지2는 다음 지도 호북성에서 볼 수 있다.
한수의 북쪽에 있는 산이 북한산군으로 현재 명칭은 진령으로 되어 있는데,
그 산에 태백산이 있고 그 옆에 태백시가 있어 그곳이 한수의 발원지임을
지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어쩌면 태백산과 태백시와 한수를 한반도에 옮겨 놓고 한강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그 흐름이 정 반대이다.
대륙의 한수는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결국 양자강과
합류를 한다.
우리 고려사에는 그것에 대한 기록이 있다.
원래 고려의 양주는
백제의 수도 한성(근초고왕25년<370>-개로왕20년<474>까지 105년간)
으로, 고려시대에는 4경 중의 남경이 되며,
조선의 수도 한양이 되는 곳으로 양주의 관경내에
한수漢水와 양진楊津이 흘러가고 있다고 기록 되어 있다.
대륙의 황하와 양자강 사이에 삼천리를 흐르는
한수의 북쪽에 건설된 것이 한양인데
(낙수의 북쪽에 낙양성이 있듯이 강의 북에 도시를 건설하여 陽, 강의 남쪽이면 陰이 되며,
산은 그 남쪽에 도시를 건설하여 陽이라고 하고, 북에 건설한 도시는 陰이 된다.)
왜정시대 왜인들이 대륙을 유린할때, 남경과 양주를
양자강 하구로 옮겨 놓았다.
본래 고구려때는 북한산군北漢山郡 으로 불리웠고,
우리 조선의 도읍지 한양漢陽으로 일제에 의해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긴 이름은 경성이 되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다
北據華山 南臨漢水
조선의 도읍지 한양성이 북으로 삼각산(일명 화산華山 이라 한다.)이 있고
남쪽에 한수에 임해있다고 하였으니, 현 대륙의 섬서성 한수의 북쪽에
있는 진령이 북한산군이며 그 진령의 끝에 화산이 솟아 있음을 지도에서
확인해 보라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우리나라는 8도, 2경, 4부, 4도호부,
20목, 83군, 173현 등 300여 군, 현으로 기록 되어 있는데,
그 500년전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은 5도 양계, 4경, 8목,15부,129군,
335현으로 그 총수가 580여개로
전 대륙에 걸쳐 있던 지명을 한반도에 축소하고 또 줄여보아도 절반도
옮겨 놓지 못하였다.
그리고 현재 대륙에 그 이름 그대로 존재하는 현과 한반도에 옮겨진
군,현의 크기는 수십배의 차이가 난다.
예1; 대륙의 섬서성에 안강安康이라는 지명이 있다.
경주에 소속된 군,현중의 하나인데 묘하게 한수 유역의 한양이 있어야
할곳에 옮겨 놓았는데 그 크기가 한반도의 경상남도 만한 곳이다.
예2; 한반도의 여수(麗水)시는 대륙의 절강성 麗水현을 이름만 옮겨
놓은 것인데, 대륙의 麗水는 그 크기가 반도의 10배도 더 되는
경상 남북도 만 한 곳 이다.
예3; 한반도의 원주는 조그마한 도시로 치악산이 유명하다.
이와 비교해서 대륙의 평량현 일대 에서 돈황 까지인 감숙성 전체가
옛 북원경 원주이니 그 크기가 한반도 만한 크기로 옛 대륙에서의
고려의 위상을 상상해보라,
세계적인 대 제국 원나라와 싸워 원이 먼저 멸망 할때까지 존재했던
대륙에 존재했던 고려였다.
-고려사 지리지-
- 남경 유수관 양주 南京 留守管 楊州-
고구려의 북한산군北漢山郡(남평양성이라고도 한다)인 것을 백제가
빼앗아서 (서기370년) 수도로 삼고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그후 105년이 흘러 서기474년 고구려군사가 쳐들어와 수도를 웅진
으로 옮긴다.
한성을 신라 진흥왕때는 북한산주라 하였고, 경덕왕때 한양군이라
하였다가 고려초에 양주로 고쳤다.
고려 성종14년 전국을 10개도로 정하고 12개주 절도사를
두면서 양주를 좌신책군 해주를 우신책군으로 함께 좌, 우 2보로
삼아서 관내도에 속하게 하다.
양주는 일명 광릉 이라고도 부른다.
삼각산 三角山(신라의 부아악 負兒嶽)이있고,
한수漢水(사평沙平나루), 양진 楊津이 있다.
즉, 한수와 양진(양찐-양쯔-양자강)유역이 양주(楊州)라는 말이다.
楊州에 흐르는 강이 楊津이다.
본 주州에 소속된 군이 3개, 현이 6개 있으며,
관할하에 도호부가 1개, 지사군이 2개, 현령관이 1개있다.
1) 교하 交河군 ; 원래 고구려의 천정구 泉井口현(굴화 屈火군 또는
어을매곶 於乙買串)인데 신라 경덕왕이 교하로 고쳤다.
현종 9년에 본 양주에 속하게 하였고 선성宣城이라고도 부른다.
오도 烏島성 (한수와 임진강 하류가 여기서 만난다.)과
낙하나루터 洛河渡가 (이현의 북쪽에) 있다.
-주- 아래의 지도를보면 한수가 단강丹江과 만나는곳에 단강구
丹江口시가 있다. 이 단강구가 천정구였던 교하이다.
잊어버렸던 우리 고대사의 역사 지명이 대륙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보라, 고려사의 설명이 얼마나 자세한가.
두 강(한수와 임진강이 만나는 곳을 교하라고 하고 이곳을 천정구
라고 하였는데
한수와 단강이 만나는곳을 단강구라고 한 대륙의 지명.....
과연 단강의 북쪽엔 낙하洛河도 흐르고 있다.
이 낙수가 동으로 흘러 가는데 그 곳에 낙양성이 있다.
한수와 양자강이 만나고 있다.
고려사에 양진(楊津)이란 지명이 나온다.
楊津이란 양주땅에 흐르는 강이란 뜻의 고려의 지명이다.
이 명칭이 양쯔강으로, 지금은 양자강으로 변천해 온 우리 고려의 강이다.
위의 호북성 한수가흐르는 곳에 남양시와 수주시가 있다.
대륙에 우리 고려와 조선의 지명이 한수유역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2) 견주: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이다.
3) 포주: 고구려의 마홀군이다. 신라의 경덕왕이 견성군으로 고쳤다.
단련사를 두었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으며 청화(淸化) 라고도 한다.
4) 행주: 고구려의 개백현인데 신라 경덕왕은 우왕으로(왕봉이라고도 한다)
고치고 한양군 관할하의 현으로 하였다. 덕양이라고도 한다.
5) 봉성현: 고구려의 술미홀현. 교하군 관할이다.
서원현령으로 고쳤다.
6) 고봉현: 고구려의 달을성현으로 교하군 관할이다.
7) 심악현 옛날의 보신향이다.
8) 풍양현: 고구려의 골의노현인데 경덕왕은 황양으로고쳐
한양군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9) 사천 (沙川)현 ; 고구려의 내을매(內乙買)현(내이미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 견성군 관할하의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 본 양주에 소속되었다.
대륙의 사천성을 감아 돌아 흐르는 강이 양진(양쯔강)이다
10) 안남 도호부 수주 (安南 都護府 樹州 ) :
본래 고구려의 주부토(主夫吐)군으로 신라 경덕왕은 장제(長堤)군으로,
의종 4년(1150년)에 안남도호부로 고쳐고, 고종2년 (1215)
계양도호부로 고쳤으며,
충렬왕34년 길주(吉州)목으로 승격 시켰다가
부평(富平)부로 되었다.
소속 현이 6개나 된다.
(1) 금주( 衿州 )(衿은 금黔으로도 쓴다.)
본래 고구려의 잉벌노(仍伐奴)현으로 신라 경덕왕은 곡양(穀壤)으로
고쳐서 률진(栗津)군 관할 하에 현으로,고려초 금주로 고치고,
현종 9년에 수주에 소속되었다.
시흥(始興)(성종이 정한명칭)이라고도 하며,
양화나루터 (楊花渡)가 있다.
- 금주( 黔州)와 금강 (黔江)-
사천성과 운남성과 귀주성를 양쯔강(楊津)이 흘러서 간다.
이지역의 양쯔강의 이름은 금사강(金沙)이라 한다.
운남성을 흐를 때는 려강(麗江)이라 부르며 ,
중경시 남부지방에선 금강(黔江)이 된다.
그래서 이지역의 지배자 이었던 백제를 침략해온 당나라 군가
티벳에서 이 금강을 타고 공격해 온 것이다.
귀주성에 귀양보내는 곳이라고 귀양貴陽이라는 도시가있다.
이귀양을 중심으로 黔東, 黔南, 黔西가 있다.
이귀주가 黔州가 아니라면 우리의 고대 도시 黔州를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2)동성현: 고구려의 동자홀현(당산현,또는 구사파의 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은 동성현으로 만들어 장제군 관할로 만들었고, 고려공민왕때
통진감무를 두면서 그 소속현이 되었다.
(3)공암현; 고구려의 제차파의현으로 경덕왕이 률진군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충선왕 2년 양천현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4)김포현; 고구려의 금포현으로 경덕왕이 장제군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5)수안현 구구려의 수이홀을 술성으로 고쳐 장제군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12) 인주(仁州);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미추홀)인데 겨덕왕은
소성으로 고쳐서 률진군 관할하의 현을 만들었다.
현종 9년 수주(樹州)관할 소속이었고,
경원군이 되었으며 또 인주 지주사를 두었다. 공양왕 2년 경원부로
승격되었다.
자연도, 삼목도, 룡류도,등이 있으며 본 주에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개 있다.
(1)당성군;본래 고구려의 당성군으로 경덕왕때 당은군으로,
고려때는 당성군으로 현종9년 수주(水州)에 소속되었다가,
인주에 소속시켰다.
충렬왕 16년 홍다구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지 익주사로 승격되었으며,
도 강녕도호부가 되었다가 익주목으로 되었는데 충선왕2년 전국의
목이 폐지되어서 남양(南陽)부가 되었다.
(2)재양현; 옛날의 안양(安陽)현이다.
13)수주(水州); 고구려의 매홀현으로 경덕왕이 수성(水城)군으로 고쳤다.
고려태조가 남방을 정벌할때 이 군사람 김칠, 최승규등 2백여명이
귀순하여 협력한 공으로 수주로 승격되었으며, 원종12년 책량주둔
몽고병들이 대부도에 침략하여 약탈할때 폭동이 일어나 그것을
진압한 공로로 水原 도호부가 되었고 후에 수주목이되었다.
목이 폐지되어 수원부가 되었고, 공민왕11년 홍두적의 난때 제일먼저
항복한이유로 수원군이 되었다.
한남(漢南) 또는수성(隋城)으로 부르는바 소속현이 7개이다.
위의 호북성 한수가 흐르는 곳에 남양시와 수주시가 있다.
대륙에 우리 고려와 조선의 지명이 한수유역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1)안산현; 고구려의 장항구현으로 장구군이 되었다가 안산군이 되었다.
(2)영신현; 오타, 혹은 영풍(永豊)이라고도 한다.
(3)룡성현;고구려의 상홀현.
(4)정송현;옛날 송산부락이다.
(5)진위현;고구려의 부산현이다.
(6)양성현; 고구려의 사복홀로 적성으로 고쳐 백성군 관할 현이되었다.
(7)강화(江華) 현;
고구려의 혈구군(갑비고차)으로 신라 경덕왕은 해구군으로 고쳤다.
고려초 강화로 고쳤다. 고종 19년 (1232년) 왕이 몽고의 침략군을 피하여
이 곳으로 수도를 옮기자 군으로 승격 시키고 강도(江都)라고 불렀으며
37년(1250년)에 주위에 길이가 2천 9백 60여 간(間) 이 되는 중성을 쌓았고 원종 원년(1260년) 다시 송도를 수도로 하였다.
진강현, 하음현, 교동현등이 소속되어 있다.
아래 지도는 대륙의 강소성으로 상해시 가 있는 곳이다.
양자강이 바다로 들어가는곳 이곳이 장강구, 즉 해구군이다.
江口, 海口 어느것이든 이지역에 맞는 이름이다.
이곳에 江都시, 鎭江시, 江陰시가 있다.
한반도의 강화도에는 없는 고려사지리지의 기록에 있는 지명이
대륙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과연 누가 강화가 섬이라고 했는가?
단지 이 지역이 강이 거미줄같이 엮여 있는 강의 바다와 같은곳이라
몽고의 기병들이 접근 할 수 없었던 곳이라 고려 조정 에서는 전략적으로
이 곳에 임시수도로 정한곳이 강도(강의 도시)였던것이다.
한수는 무한시에서 양자강과 합류하고 있다.
이 한수 유역에 건설된 도시가 한양漢陽이다.
그런데 이렇게 핵심적인 대륙의 중원땅을 감아 돌아 흐르는 한수를
삼국지를 비롯하여 대륙의 각종 사서에 대부분 언급을 회피 하고
있는 것 이 사실이다.
한수유역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안강安康현(섬서성 하단)이
있는데 경주가 고향인 사람이나 신라의 지리지를 한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여기에도 안강이 있나 싶을 것이다 .
그런데 이곳 안강현이나 절강성의 여수麗水현은 그 크기가 한반도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만큼이나 큰 데다가 그 지명의 역사가 천년이 넘는다.
한반도의 왜정시대 급조하여 만든 지명과는 아예 비교를 할 수 없다..
그 안강현에 두 도시가 있다.
바로 한음漢陰과 자양紫陽이라는 도시이다.
왜인들이 대륙을 주무를때 한양漢陽을 두곳으로 쪼개 놓았다.
바로 이곳 한음과 자양의 두도시를 하나로 합하면
우리 조선의 도읍지 한양성이 된다.
또한, 이 한수가 양자강과 만나는 곳에는 무한武漢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 무한은 무창武昌과 한양漢陽 이라는 두 도시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위 지도를 보면 한수가 흘러 대륙의 중심을 적시고 드디어 양자강과 합쳐
지는 곳에 무한이 있고 그 무한 시가지에 한수 쪽의 큰 도로의 이름이 한양대로이고 양자강 쪽 건너편에 무창첨(역)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무창시에서 양자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면 구강시 맞은편에 있는산의 이름이 한양봉漢陽峰이다.
그럼 이 대륙의 한양을 시작으로 한수 유역을 따라 고려사 지리지에 나오는 우리의 옛 역사의 지명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양광도 楊廣道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의 땅으로 (한수이북은 고구려, 이남은 백제의 땅이다,)
고려 성종14년 전국을 10개도로 나누고
양주, 광주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 청주 소속 주,현은 충원도에,
공주, 운주 소속 주, 현은 하남도에 각각
속하게 하였다.
이를 통합하여 양광충청주도, 양광도, 공민왕5년에 충청도로 만들었다.
관내도는 고려의 도읍지 황도皇都 개경開京 개주開州 촉막군蜀莫郡을 중심으로 경기지역을 형성 하게 된다
-고려사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의 설명에 의하면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을 중심으로 양주
(한양)가 좌측에 있고 해주가 우측에서 보좌하고 있다고 지리적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지도에서 확인 해 보라.)
자 그럼 한수漢水 유역에서 한양漢陽을 찾았으면 광주廣州도 찾아 보도록 합시다.
- 광주목 廣州牧 -
광주목 廣州牧은 본래 백제시조 온조溫祚왕이 한漢나라 성제 홍가 3년 (기원전18년)에 나라를 창건하고 위례성에 수도를 정하였다가
13년에는 한산아래에 가서 목책을 세우고,
이곳에 위례성주민을 이주시켜 마침내 궁궐을 짖고 살았으며 이듬해에
이곳 광주로 도읍을 옮겨 남한산성 南漢山城 이라고 부르고
384년간 백제의 도읍지로 하다가,
근초고왕25년(370년)에 이르러 수도를 남평양성 南平壤城(한양성漢陽)으로 옮겼다.
이곳을 신라 문무왕이 접수하여 한산주漢山州, 남한산주南漢山州, 한주漢州라 하였다가, 고려태조가 광주廣州로 고쳤다.
대륙의 사천성의 지도이다.
사천성과 붙어 있는 섬서성 하단부에 한수가 흐르고
한수 남쪽의 대파산를 우리가 부르던 이름이 남한산南漢山이고 이곳을 한주漢州, 남한산주南漢山州로 부르며 성을 쌓아
남한산성南漢山城 이라 하던백제 400년의 도읍지 광주廣州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 광주목에 군郡이4개, 현縣이3개가 소속되어 있다.
1)천녕川寧郡 ; 본래 고구려의 술천述川군으로 신라 경덕왕이소천군으로 고쳤다.
고려초에 천녕군으로 고쳐 광주목에 속하게 하였다.
진강 나루터 鎭江渡가 있다.
2)이천 利川군 ; 본래 고구려의 남천南川현으로 신라가 이를 병합하여
주州로 승격시켜 군주 軍主를 두었고,
경덕왕은 황무黃武로 고쳐 한주 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고종44년 (1257년) 영창永昌이라 불렀고 공민왕4년 왕의 할머니
신씨의 고향이라고 남천군으로 승격시켰다.
-주- 대륙의 사천성은 이번(2008년 봄)에 대지진이 일어난 곳으로
4개의 큰강으로 이루어져 사천四川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우리의 고대국가 백제의400년 도읍지 한성(남한산성)이 있었고
그 한성의속현이 첫째가 천녕川寧이고, 둘째가 이천利川이라,
천녕이란 강江의 안녕을 책임 진다는 것이고,
이천이란 강의 이로움을 얻는것이라,
사천四川에서 우리 옛역사의 고대 지명을 확인 하여 보자.
우선 사천성 대파산이 우리백제의 남한산이므로 대파산 주위에서
달천達川시과 술녕述寧 시가있음을 보면 이지역이
천녕川寧군이었음을 알수있다.
그런데 이곳에 개현開縣시 개강開江시가 있음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
이곳이 고려의 도읍지 개주開州 촉막蜀莫군 이었던 것이다.
지도를 클릭하여 사천성을 자세히 살펴보라 !
.
우선 사천성에 중경重慶시가 붙어 있음을 알수있다
이곳이 통일신라 의 9주 5소경의 하나인 중원경 中原京으로
충주목 忠州牧이 되는 곳이다.
中京을 重慶으로 발음은 같고 글자만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우리보고 속고 있으라고 하는 짓이다.
하지만 그 지역 발음으로 충칭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이 충주였던 것이다.
이곳 중경시에 이천 利川시와 남천 南川시가 있다.
자! 천녕과 이천, 남천을 찾았으니 다음은 광주를 찾아봅시다.
광주는 중경과 사천의 경계에
광안廣安, 그리고 또 광원廣元이란 도시가 있음을 보자.
이곳이 광주 廣州이다.
그런데 기가 막힐일은 이곳이 광주廣州가 아니라고
홍콩위에 廣州를 옮겨 놓았다.
그곳은 다음에 설명 하겠지만 고려의 해양海陽현이고,
백제의 무진주武珍州로 광주光州가 있어야 할 곳이다.
3)죽주竹州; 고구려의 개차산군으로 개산군, 음평, 연창이라고도한다.
지도에보면 사천성과 섬서성 경계에 죽계, 죽산이란 지명이있다.
4)과주果州; 고구려의 률목군으로 률진군, 부안, 부림,부원이라고도한다.
관악산이 있다.
5)지평현;고구려의 지현현.
6)룡구현; 구성현또는 거서로불린다.
7양근현; 고구려의 양근군으로 항양, 빈양,영화로 불렸다.
용문산이 있고, 용진나루가 있다
등의 주, 군, 현이 소속되어 있다.
첫댓글 쉽게 풀어주셔요!! 재밌겠는데~~
어렵게 풀어주세요 !! 그래야 공부가 되죠 ^^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