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달인들

진맥 달인 황대석 옹 제목: 60여 년 간 '참인술' 펴온 지역 큰 의사 요점: 불임환자에게 애 낳게 해주는 현대판 '삼신할머니' 노구임에도 하루 60여 명씩 몰려드는 환자 진료 환자 몸 속을 훤히 들여보는 신들린 '족집게 진맥' 국가보다는 효과 본 수만 환자들이 허가해준 명의 충남 부여에 한약을 이용, 각종 병을 잘 고치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걸 들은 건 우연이었다. 팔순 정도의 노인이 진맥을 하고 약 처방전만 내려 주는데, 그대로 약을 지어 먹으면 부인병ㆍ신경계통병ㆍ중풍 등의 병이 백발백중으로 신기하게 낫는다는 소문이었다. 의사면허가 없어 보건소 등의 고발이 심하지만, 약을 먹고 나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치병 환자들이 매일 몰려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른 체 막연히 부여 군청에 "부여에 병 잘 고치는 그런 할아버지가 있냐"고 문의해 보았다. 대답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할 수 없이 부여 보건소에 문의해 보았다. 이번에는 알고는 있으나,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으나 병 고치는 능력이 별 것 아니고, 남의 약방에서 잠시 일하면서 배운 것으로 면허 없이 하다가 2~3년 전에 그만두었다"며 냉담히 끊어 버렸다. 그러다 겨우 부여의 병 잘 고치는 노인을 찾아낸 건 부여 읍사무소를 통해서였다. "쌍북리에 가 물으면 그 노인을 찾을 수 있고, 지금도 여러 난치병 환자가 찾아오고 있는데 성이 황씨라는 것만 알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찾았다"는 반가운 생각과 "과연 의술이 그토록 신통할까" 하는 의문이 교차되며, 그 말 한 마디만 가지고 미지의 노인을 찾아서 부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시원스레 뚫린 여름의 시골길을 달려 이내 부여에 들어섰다. 도시를 운치있게 안고 있는 백마강과 낙화암이 퍽 인상적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취재할 내용을 생각도 하고, 고도 부여의 표정도 구경할 겸해서 잠시 걷다 부소산성 앞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쌍북리에 가자는 말에 택시기사는 이내 "병 잘 고치는 할아버지에게 가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초행길의 막막함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뜻밖에 나의 목적을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움부터 앞섰다. "그 할아버지 잘 아십니까?" "외지에서도 그 할아버지 찾는 사람이 많이 오기 때문에 부여에서 택시기사 치고 그 할아버지 모르는 사람 없을 거예요." "그렇게 병을 잘 고칩니까?" "제 집사람도 특별히 아픈 데도 없이 작년 겨울에 시름시름 했는데, 올 봄에 그 할아버지한테 약 갖다 한 달간 먹고 지금은 쌩쌩한 걸요." 택시기사의 말에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부터 들었다. 택시는 쌍북리 로터리에 서더니 기사식당을 가리키며 "저 집에 그 할아버지가 있다"고 일러주고는, 쏜살같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 버렸다. 시골집일 것으로 짐작했는데 기사식당이라니….. 다소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에 들어가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주인인 듯한 남자에게 궁금증부터 물었다. "여기가 병 잘 고치는 할아버지 댁인가요?" "집은 요 아래이고 여기서 환자를 받고 있지요." "집을 놔두고 왜 여기서 환자를 받고 있나요?" "원래 산갓집에서 살다 몇 년 전에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집이 비좁기도 하고, 또 환자들이 새벽이고 밤중이고 아파트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고 다녀 찾기 쉽게 저희 집 뒷채를 빌려 쓰고 있지요."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주인의 안내로 안쪽으로 들어서니 마당이 딸린 뒷채가 나왔다. 한 서너 평 되는 대청마루와 오륙 평 되는 방안에는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벌써 삼십여 명의 환자가 빙 둘러앉아 있었다. 열 명 중 일고여덟 명은 여자이고, 어린아이도 간간이 보였다. "부인병을 잘 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환자들 틈을 비집고 황 노인 곁에 가 앉았다.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하얀 수염을 날리며, 팔십 노인답지 않게 꼿꼿이 앉아 환자를 신중히 진맥하고 손수 한 뼘만한 하얀 종이에 처방전을 일일이 적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할아버지 아들 낳게 해 주세요." "그래 애기 난 적은 있어?" "네 살인디 딸이예요." 황 노인은 대전에서 왔다는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인을 신중히 진맥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딸 낳게 생겼어. 신랑 안 왔지?" "예, 안 왔어요." "신랑 안 왔으니 말허는디, 아주머니 뱃속에는 딸만 잔뜩 들었어." "딸 낳는 건 여자 때문인가요?" "그건 여자 때문이여. 딸만 많이 들어 있는 자궁이 있고, 아들이 많이 들어있는 자궁이 있어. 임신되기 전에 고치고, 내가 임신허라고 헐 때 허면 돼. 대전에 있는 여자가 딸만 아홉 낳다가 내게 와서 약 지어다 먹고 마흔아홉에 아들 낳았어. 오십 년 동안 약을 지어 주면서 실패한 건 일곱밖에 없어. 수천 명이 전부 아들 낳았어." "첫 애기 낳을 때도 애기가 무단히 없어서 할아버지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고 낳았어요." 대전에서 온 삼십대 아낙네는 황 노인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표정이었다. 그런 아낙을 바라보며 황 노인은 말을 이었다. "지금 아주머니는 피로가 심혀. 가스가 약간 차고 냉도 약간 있어." "예 맞아요. 냉이 있어서 그런지 첫 딸 낳고 그 밑으로 유산되었거든요. 그래서 건강이 어떤지도 보고 아들 가져 보려고 그러니 할아버지 약 좀 잘 지어주세요."(웃음) "그려. 소원 풀어 주지." 황 노인은 30대 여인의 청을 선선히 들어주며 처방전을 술술 적어 내려갔다. 대전에서 온 여인이 끝나고 나니 이번에도 서른쯤 되어보이는 아낙이 황 노인 앞에 와 앉았다. 황 노인은 아낙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신중히 진맥부터 시작하였다. "결혼혔나?" "예." "나이는 몇 살이여?" "스물여덟 살이예요." "결혼헌 지 얼마여?" "일 년 삼 개월예요." "생리가 불규칙하고 아랫배에 가스가 차지?" "예." "눈도 시원찮고, 머리도 시원찮고, 팔다리 허리가 저리지?" "예." "어린애 하나도 안 낳고 벌써 늙으면 어떡허지." "애기를 유산했어요." "임신되기만 허면 유산여. 애기가 숨을 못 쉬어. 금방 생긴 것도 사람이여. 우리도 숨을 못 쉬면 죽잖여.생기면 뭘혀. 아랫배에 가스가 많이 차 애기가 숨을 못 쉬는디." "애기 낳게 좀 해 주세요." "애기 낳게 해 달라. 그럼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지. 수천 명 애기 못 낳는 여자들 애기 낳게 해 줬어야 담배 한 갑 가져와 피워 보라는 사람 없대." "사 드려야죠." "그만둬. 그런 것 일절 바라지도 않는 사람여." 마치 시골의 사랑방 정담처럼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다. 황 노인도 환자들에게 농을 걸어 좌중을 웃기기도 하고 찾아온 환자들도 그런 황 노인을 스스럼없이 대하였다. 황 노인이 불임증 여인을 진맥해 가며 처방전을 다 쓰고 나니, 이번에는 마흔 정도 된 허름한 시골 아낙이 황 노인 앞에 와 앉았다. 황 노인은 다시 예의 신중한 진맥부터 하였다. "밥은 먹는디 헛것이 먹는디." 황 노인은 병의 진단이 다 끝난 듯, 환자를 다정히 바라보며 말을 건냈다. "예, 밥은 많이 먹는디 항상 피로혀요." "아랫배에 가스 차고 더부룩허지. 허리도 아프지?" "예, 할아버지. 늘 몸이 나른하고 아파요." "자궁에 염증도 있어. 그 전에 유산혔지?" "예, 한 번 했어요." "한 번이든 반 번이든 혔잖여. 자궁 염증 때문에 가스가 차 올라오는 거여. 커피는 마시나?" "마셔요." "어쩌려고 커피 마시나. 앞으로 평생 못 먹을 게 커피ㆍ돼지괴기ㆍ닭괴기ㆍ인삼ㆍ꿀ㆍ콜라. 이건 일절 먹어선 안돼. 염증이 심혀지면 그게 암도 오고 큰일나." 잠시나마 황 노인을 옆에서 지켜 보며 눈에 띄는 것은 황 노인이 진맥을 통해 환자의 질병이나 건강상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아낸다는 사실이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 보고 있는데, 옆의 한 환자가 황 노인의 진맥은 '족집게 진맥'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황 노인의 신통한 진맥을 좀 더 살펴보자. "너 몇 살인가?" "열 살이요." 제법 똘망똘망하고 예쁘장한 여자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황 노인 앞에 와 앉았다. 황 노인은 어린아이의 왼손과 오른손 맥을 번갈아 짚어 가며 말을 이었다. "이 애 밥 잘 먹나. 위장이 시원찮은디." "먹긴 먹는디 가끔 배가 아프다고 허는디요." "글쎄 밥 먹어 보았자 가끔 배가 아퍼. 가스도 차고. 가스가 더 차면 배가 더 아프고, 덜 차면 덜 아프고. 간장에서도 열이 나 왔다 꺼졌다 그려." 그리곤 다시 신중히 연신 손목을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 애 어려서 풍 앓았잖아. 경기나 잔풍이나." "풍기 같은 건 안 혔는디요." "이 애 어려서 풍 일어났던 애야." "병원에서 뇌성마비로만 진단 받았어요." "뇌성마비가 뭐여. 그게 한방 병명으로 다 풍기운이여. 그리고 애 머리도 좋질 않혀. 띵허니 아프고 눈도 피로가 많이 오고." "말을 잘 안 허니 모르죠. 약 좀 잘 지어 주세요 할아버지." "지금 이 애를 고치라고? 벌써 시기가 얼마 지났어. 병이 생긴지 벌써 한 십 년 거진 다 넘어가는디, 지금 어떻게 고쳐. 이만치 되기도 다행이여. 이건 약 먹어 풀어지가만 허면 세상에서 기적이라고 혀." "한 번 기적 좀 이루어 주세요 할아버지." 아이의 부모인 듯한 마흔쯤 된 중년 남녀는 황 노인을 붙잡고 반 애원조로 사정하였다. "한 번 해봐? 근디 애 배에 가스가 많이 찼어. 가스 빼는 약부터 먹어야 돼. 그리고 애한테 돼지괴기ㆍ닭괴기ㆍ라면ㆍ인삼ㆍ꿀ㆍ개괴기ㆍ콜라ㆍ술ㆍ냉과ㆍ음료수ㆍ찐 계란ㆍ고구마ㆍ수제비ㆍ국수ㆍ물만두ㆍ부침개 그런것 일절 먹이들 말아야 혀. 과일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복상(복숭아)이고 참외도 안 좋아. 가스 차는 사람 그것 먹으면 절단이여." 황 노인은 열 살 된 어린아이의 맥을 짚어 가며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자 이번에는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가 앞에 와 앉았다. "너도 밥 잘 안 먹냐. 배 아프지 안혀?" "배 아프다고 그려요. 이 애는 도대체 먹는 것하고는 취미없는 애요." "오줌은 안 싸냐?" "싸요. 많이 지려요." "이 애 반듯이 드러뉘여." (아이를 드러뉘자 배를 튕겨 보며) "이게 북소리지 뱃대지여. (배에서 퉁퉁 북소리가 났다.) 이거 죄다 가스 차서 그려. 이거 젖 먹을 때 체헌 것을 여정 그대로 둬서 그러잖어. 이렇게 생긴 애를 밥 안 먹는다고 계란 후라이다 혀서 밥을 들고(자꾸) 멕이고 어쩌고 허면 더 절단 나. 지금 쟤 위장 안에는 조그만 밤마냥 덩어리가 있어. 젖 먹을 때 체헌 덩어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어떻게 왼손과 오른손 팔목을 짚어 환자의 뱃속을 훤히 들어다 볼 수 있으며, 환자의 건강 상태를 속속들이 꿰어 맞출 수 있을까. 신들린 진맥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며, 또 황 노인의 진맥하는 걸 계속 지켜 보며 결국은 그의 신통한 진맥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신 같은 진맥의 비결은 무엇이고 어떻게 터득하였을까?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황 노인이 환자에게 온 정성을 다쏟고 있으니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잠시 궁금증을 눌러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진맥 능력은 그렇다손 치고 치료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과연 소문대로 각종 난치병들을 고쳐 내는 것인가. 환자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하나하나 물어 보기로 작정했다. 먼저 서산에서 왔다는 한창순(취재 당시 64세 남자)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환자들이 많이 모였는데 몇 시에 오셨습니까?" "서산에서 3시 반에 동네사람 열 명하고 봉고차로 출발하여 여기에 6시에 도착했어요. 그때 벌써 예산에서 왔다는 일행이 진료를 받고 있더군요." "대체 몇 시부터 시작하기에‥‥‥? " "아침 다섯시 반에 시작하여 오후 다섯시에 끝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픈 데는 어디가 아픕니까?" "목 디스크 때문이지요. 그 전엔 아랫배도 묵직하고 양쪽 발가락 다섯 개가 압정으로 찌르는 것 같아 제대로 딛지를 못 했어요. 육칠 년 전부터 고통이 심해 서산 병원에서 수술도 하고, 중국 한의원에서 약을 많이 갖다 먹었는데 안 나았어요. 그런데 여기 할아버지한테 올 봄부터 진맥을 하고 약을 두 제 갖다 먹었는데, 신기하게 배가 묵직하고 발가락 아픈 게 풀리더군요.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맥을 짚더니 콩팥 기능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약을 지어주어 먹었는데, 계속 오줌이 많이 나오더니 몸이 풀렸어요. 이젠 목이 굳어진 것만 풀리면 되겠어요." "얼마만에 한 번씩 옵니까?" "보통 보름에 한 번씩 와요." "어떻게 알고 서산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몇 년을 두고 병고로 시달리니 서울에 있는 제 조카가 부여에 맥 잘 보는 할아버지 있으니 한 번 찾아가 보라고 소개시켜 주더군요. 여기에 오는 환자는 다 약 먹고 효과 본 사람에게 알음알음으로 소개받고 온 사람들이예요. 여기에 거의 4개월째 다니면서 보니, 각종 부인병 환자들이 많이 오고 효험도 그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몇 사람 소개시켜 주었는데 집사람이 속이 답답하고 목이 아프다는 게 약 세 첩에 다 나았고, 항상 머리가 아파 잠을 못 자던 국민학교 교사 부인이 삼 일만에 다 나았어요." 이번엔 충남 내산에서 온 진관순(취재 당시 61세 여자) 씨와 부여에서 온 이순이(취재 당시 48세 여자) 씨에게 물어 보았다. "여기 처방대로 약을 먹고 많이 효과를 보았습니까?" ,"배가 더부룩하고 살이 쪘었는디 할아버지한테 와 진맥혀 보니 배에 가스가 찼다고 허드라고요. 그리고 약을 두 제 지어 먹었는디, 배에 가스도 빠지고 찐 살도 쏙 빠졌어요. 이제 가슴이 답답헌 것만 가시면 되것어요." 진관순 씨의 말이 끝나자 이순이 씨도 할 말이 많다는 듯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나도 팔다리가 쑤시고 아픈 게 말도 못 혔어요. 배도 아프고 머리도 띵허고, 앉아 있으면 깔아져 땅속으로 몸이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변비도 2년 넘게 있었고요. 그런디 이번에 약을 먹고 몸이 많이 개벼(가벼워)지고 변도 보드러졌어요. 할아버지 말은 심장에 열이 있어 속이 조여 타서 그렇다고 허대요." 이번에는 진관순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 메느리(며느리)가 삼 년 동안 아이가 없었어요. 임신만 하면 자연 유산되고. 그러다 또 임신을 허긴 혔는디 하루는 메느리가 소변을 보고 오더니만 불그스럼헌 게 비친다고 그래요. 그래서 놀래 택시 타고 와 할아버지한테 진맥을 허니 임신맥이 없다고 알아 맞히더라고요. 그 뒤 할아버지 처방 지어준대로 약 다섯 첩 지어 먹고 그 기듬해(이듬해) 딸을 낳고 작년엔 아들 낳았어요. 이쯤 되면 황 노인의 치료 능력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약재를 처방하기에 그토록 신기하게 병을 치료하는가. 황 노인의 처방을 보려고 다시 옆에 가 앉았다. "밥을 제대로 못 자시지?" 황 노인은 옆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다 죽어 가다시피 하는 삼십대 후반의 여인이 앞에 와 앉자 역시 진맥을 하며 말을 꺼냈다. "밥은 잘 먹는 편인디요." "근디 위가 좋질 않으디. 윗배에 가스차는 것 아시나?" "예, 거기가 더부룩허요." "어떤 땐 소화력이 괜찮고 어떤 땐 소화력이 좋질 않지?" "예, 맞아요." "윗배에 가스 차서 그려. 혈압도 좀 모자라는 편인디." "구십에 백이십이에요." "혈압이 불규칙인디 약간 모자라는 편이여. 애기 엄마 몸땡이 성헌 데가 별라(별로) 없어. 팔다리도 성허질 않지, 눈도 피로허지, 허리도 좋지 않잖여?" "허리는 아픈 것 없는디 다리 쑤시고, 팔 쑤시고, 손바닥 발바닥이 화끈화끈허니 뜨거워요." "어떤 때 열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러지?" "예, 열이 많이 위로 올라와요." "열이 확 허니 한 번 위로 올라오면 병이 그만큼 크느라고 그러는 거여. 그 전에 병원에 가서 자궁에 기계 댔지?" "애기 유산시키느라고요." "오늘날 애기 엄마가 이렇게 된 건 자궁에 기계 댔기 때문이여. 요새 여자들 애기 유산시킨다고 자궁 수술하고, 애 낳는다고 배 가르고 허는디, 그게 다 자궁에 염증이 생기게 혀 가지고 몸땡이 절단내고 있어. 자궁염증 때문에 풍기로 쓰러지는 여자도 쌨어. 냉이 누렇고 냄새 나지?" "예." "애기보 안에서 냉이 썩어서 나오기 때문에 그려." 병의 진단이 다 끝난 황 노인은 여인의 맥을 짚어 가며 하얀 종이에 자궁염증으로 온몸이 쑤시는 증상의 처방을 써 내려갔다. 향부자 다섯 냥, 당귀ㆍ천궁 네 냥, 창출ㆍ진피ㆍ택사 세 냥, 작약ㆍ백복령ㆍ황기ㆍ산수유ㆍ오약 두 냥, 형개ㆍ방풍ㆍ황백ㆍ반하ㆍ생강 한 냥 반, 감초 한 냥. 그 처방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어느 한의원에서나 지을 수 있는 흔한 처방이요 약재들이었다. 이처럼 다른 데와 비슷한 처방을 가지고, 다른 데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더욱 기이한 것은 모든 환자들에게 쓰는 황 노인의 처방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었다. 아랫배와 윗배에 가스가 차고 정력이 부족한 쉰 살 된 남자에게도 향부자ㆍ당귀ㆍ천궁ㆍ창출ㆍ진피ㆍ택사ㆍ작약ㆍ백복령ㆍ황기ㆍ산수유ㆍ오약 등이 양만 다를 뿐 그대로 들어갔다. 다른 게 있다면 계지ㆍ지각ㆍ길경ㆍ황금이 각각 한 냥 반씩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황 노인은 그 다음날 집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이 환자는 위가 허해위를 따습게 하면서 보강시켜 주기 위해 계지ㆍ지각을 썼고, 심장에 열이 있어 길경을 썼으며, 간장에도 열이 있어 황금을 쓴 것이라고 들려주었다.) 그런가 하면 불임증 환자에게도 도인ㆍ계지ㆍ익모초가 특이하게 들어갈 뿐, 처방이 대동소이했고, 아들 낳으려고 온 사람의 처방도 비슷했다. 다시 자궁에 근종이 있어 왔다는 삼십대 후반 환자의 증상을 들어 보면서 황 노인의 처방을 살펴보자. "아이 다 낳았지?" "예." "아이 다 낳고 헐 일 다 혔는디." 이때 옆에서 남편인 듯한 사람이 끼여들어 얘기하였다. "근데 자꾸 아프다고 해서 왔어요." "아픈 디 있으면 고쳐야지." 그러곤 신중히 진맥을 시작하였다. "자궁염증 있는 거 아나?" "예. 병원 다니다 왔어요." "병원에서는 죽는 날꺼지 댕겨도 이것 못 고쳐. 아주머니 몸땡이 아픈 건 자궁염증 때문인디, 병원에 오래 댕기면 배 가르자고 허고 그러다 자궁에 기계 대면 염증만 더 부허니 일어나." 다시금 신중히 진맥하더니, "젊은 사람이 몸땡이 좋은 데 별로 없잖여." "글쎄 그래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요." "커피 마시나?" "예." "커피는 앞으로 평생 못 먹어. 저거 잘 혀서 완전히 큰 애기적 체질 찾아 놓기 전에는 안 돼. 냉도 있지. 냉에서 냄새 안 나?" "냄새 나요." "그건 염증이 너무 심혀서 그려. 그리고 아랫배에 어떤 뿌듯헌 게 있지?" "아파요. 따끔따끔허고." "이것 까닥허면 뭐 생기것는디. 애기보에 뭐 생기면 그때는 헐 수 없이 수술혀야 돼. 애기보에 뭐 생겼다 허면 약을 먹어도 약이 맞들 안혀." "병원에서 그러는데 근종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요." "근종이라면 약 먹어도 나아. 다 죽어 가던 공주 사는 여자, 주먹만한 근종 내가 약으로 다 녹였어. 배 안 가르고 약으로 고쳐 달라길래 삼 년 걸릴텐데 약 먹을라냐니까, 삼 년 아니라 오 년이 걸려도 약 먹는다고 그러대. 그래서 삼 년만에 다 녹이고 손톱만치 남았어. 오늘도 그 여자 왔다 갔어 아침에. 근종이라면 상관없어. 그렇지만 암이나 물혹 그런 것은 약발을 잘 안 받어." "제발 좀 잘해 주세요." 황 노인은 근종에 대한 처방을 적어 내려갔다. 향부자 다섯 냥, 당귀ㆍ천궁ㆍ생지황 네 냥, 창출ㆍ진피ㆍ택사 세 냥, 작약ㆍ백복령ㆍ황기ㆍ산수유ㆍ오약 두냥, 황백ㆍ도인ㆍ금은화ㆍ형개 한 냥 반, 감초 한 냥.역시 대동소이한 처방이었다. 단지 틀린 게 있다면 도인ㆍ금은화 정도이었다. 어느 한의원에서나 다 있음직한 처방이요, 대동소이한 약재를 가지고 어떻게 여러 난치병을 고쳐내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게 궁금했다. 그러나 일단은 덮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아홉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황 노인의 진료를 받으려고 육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 노인은 열 시쯤에 담배 한 대 피우겠다고 그제사 잠시 한 숨 돌리더니, 다시 환자들의 아픈 사정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팔십 넘은 노인이 오전 다섯시 반에서 오후 다섯시까지 근 열 두시간을 환자들과 보낸다니 일단은 그 체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지만 황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하고 환자와 농을 주고 받으며 좌중을 웃기는 여유도 여전했다. "할아버지 다리가 좀 묵직헌데요." "놔둬. 좀 무거우라고." "또 와야 허나요?" "그럼 와야지. 늙은이가 가야 허나." "냉에서 냄새 나지?" "예." "냄새 나서 좋것네." 황 노인의 여유로운 농담을 뒤로 하고 잠시 마루로 나왔다. 창문이 열린 곳으로 상쾌한 아침 바람이 불어왔다. 그날의 취재를 다 마치고,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아홉 시 경에 황 노인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황 노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황 노인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진료를 쉬기 때문에 궁금한 내용을 충분히 물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 노인은 불쑥 찾아온 외지 사람을 경계하며, 괜히 사진 찍고 책에 내 잡혀 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부터 하였다. '향토명의'를 발굴하려 하니 협조해 달라고 여러 번 간청하고서야 겨우 황 노인과 마주앉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스물댓 평 정도의 아파트에 모든 게 단정히 정리돼 있었다. 황 노인의 이름은 대석(大錫)이고, 올해 나이는 여든하나이다. 고향은 현재 살고 있는 부여이고, 대대로 농사를 짓던 가난한 농사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바뀐 게 있다면 산갓집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평생을 살다 십 년전에 아파트로 이사온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황 노인과 오후 늦게까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의술을 배우게 된 동기가 있었을 텐데요.－ "나는 왜정시대 때 학교 안 댕겼어. 학교 댕겼으면 관청일 혔것지. 그때 열여덟 살 때꺼정 서당에서 글 배웠어. 논어ㆍ맹자ㆍ대학ㆍ시전까지 보았지. 그런데 왜놈들 세상이고, 한문 글 배웠으니 무얼 할 수 있어야지. 열아홉 살되던 해에 동네사람이 의술이나 배워 보라고 부여군 은산면에 계신 장 의관이란 분을 소개시켜 줬어. 그래서 앞으로 약방을 허든지, 의원질 허든지 혀야 되겠다고 그 밑으로 들어갔지." －왜 학교 안 다니셨나요?－ "그것 물어 볼 것 무엇 있어. 왜놈들이 우리 나라 사람 얼마나 많이 죽였어. 왜놈들이 우리 적인디. 나는 왜정 때에도 일본말 한 마디 않고 살았어." －당시 의술을 배워 준 장 의관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의관은 관속 명칭이고, 성함은 장석상 씨이지. 병 잘 보고 글도 많이 헌 분이여. 그 양반한테 약을 쓰면 죽을 사람도 병은 낫고서 죽는다고 그랬어. 처음엔 부여 은산면에 계셨는디 연로허시기도 허고, 또 왜정시대 때 허가 없이 헌다고 다른 의사헌테 몰려서 부여 장암면이라고 구석진 데에 계시다 돌아가셨지." －그 선생한테 배운 가르침은‥‥‥?－ "그 양반은 늘 나헌테 허는 소리가 그려. '병을 오래 앓는 사람은 대개 사기(邪氣)가 있다. 의원이 떡 허고 환자가 앓는 방에 들어가면, 그 귀신이 의원의 인기(仁氣)에 눌려서 문밖에라도 나갔다 들어와야 된다. 의원이라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의술질허는 거다.' 늘 그런 말씀하셨어. 그리고 그분께서는 <의학입문> 온서상한편을 읽어라 그렸지. 그러곤 다른 것은 일러주질 않았어. 맥을 어떻게 보고, 병을 어떻게 보고, 약은 어떻게 쓰는지 일절 일러주지 않았어. 단지 온서상한편을 달통허면 모든 게 거기서 나온다 그렸지. 그래서 그걸 몇 십 년 읽어 보니께 모든 게 거기서 나왔어. 평생을 두고 그걸 읽고 있어." －그 선생한테는 몇 년 동안 의술을 배웠습니까?－ "근 일 년 동안 그 밑에 있었어." － 그 뒤엔‥‥‥?－ "약방에 가 머슴 살았지. 그러나 의술공부는 혔어도 사명당 같은 도술공부를 혀서 왜놈들 전부 때려 잡고 싶어서 스물두 살 되던 해에 금강산으로 들어갔어. 그러나 금강산 속을 댓 달 전부 헤맸어야 도사를 만날 수 있어야지. 사명당 같은 도술공부를 허면 지금도 세계에서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비행기도 무서울 게 없고, 총도 무서울 게 없고,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어. 그때 금강산에 그런 도사가 있었을텐디, 내가 운이 없어서 못 만났어. 결국 도사를 못 만나고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로 한 번 일주허고 돌아왔지." －약방은 언제 차렸습니까?－ "금강산 갔다 오고 나서 집에 있는디, 환자들이 찾아와 성가시게 혀. 처음엔 처방만 써주었는디, 자꾸 일도 못허게 찾아 댕겨서 서른 살 적에 아예 집에도 약방을 차려 놓았지. 그렇게 시작헌 게 평생 갔어. 십 년 전까지도 약방혔는디 이젠 그만 뒀지." 이번엔 가장 궁금하였던 환자의 질병과 건강 상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맞춘 진맥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맥 보는 걸 의서를 보고 배울려면, 평생 몇 대를 두고도 풀 덜 못혀. 의술은 술수여. 도술 다음이 의술이여. 스스로 깨우침이 있어야지. 그래서 책만 보고 배운 지금 한의치고 맥 제대로 보는 이 없어." － 맥 보는 걸 터득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과정인데, 어느 정도 걸렸습니까?－ "스물네 살 먹던 해에 식전마다 마음을 정허니 허고 앉아 스스로 깨우친 거여. 그때 벌써 진맥 잘 헌다고 서울서 화타 편작이라는 소리 들었어. 의서에 <구침지서>라고 맥결이 있어. 기초는 그것이었고, 세세헌 건 스스로 깨우친 거여." － 할아버지 진맥법은 다들 귀신같다고 하는데, 진맥의 비법을 설명해 주세요. － "그건 간단허지 않여. 맥이란 참으로 무서운 거여. 맥이라는 건 절대 거짓말이 없어. 먼저 짚는 걸 잘 혀야 돼. 고골(손목뼈)을 중심으로 바로 위쪽을 짚어야 돼. 의서에도 고골(高骨) 상(上)에다 대라고 혔어. 이쪽(어깨쪽을 가리키며)이 위이고, 이쪽(손끝을 가리키며)이 아래여. 근디 지금 의원들은 손목뼈 밑이나 손목뼈에 맥 짚는 걸 고골 위로 알고 있어. 그러니 안 맞지." 그러고 나서 황 노인은 맥을 구별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사람의 왼손 고골에서부터 위쪽으로 오른손 검지ㆍ중지ㆍ약지를 차례로 가지런히 대고 살짝 댄 검지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심장맥이고, 꾹 눌렀을 때 느껴지는 맥박이 소장맥이다. 또 살짝 댄 중지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간장맥이고, 꾹 눌렀을 때 느껴지는 맥이 쓸 개맥이다. 그리고 살짝 댄 약지에서 느껴지는 맥이 남자의 경우는 신장, 여자의 경우는 자궁이고 꾹 눌렀을 때 느껴지는 맥이 방광맥이다. 반대로 오른손에 왼손 검지ㆍ중지ㆍ약지를 마찬가지로 가지런히 대고 검지를 살짝 대면 폐맥이고 꾹 누르면 대장맥이다. 또 중지를 살짝 대면 췌장맥, 꾹 누르면 위장맥이다. 그리고 약지를 살짝 대면 명문백, 꾹 누르면 삼초맥이다. －맥을 짚어 어떻게 병을 진단합니까?－ "심장맥이 세게 놀면 혈압이 높은 거고, 약허게 잘 안 놀면 저혈압인 거고. 간장맥이 세게 놀면 간장염증, 잘 놀지 않으면 간장빈혈이지. 간장빈혈에 걸리면 가슴이 두근두근 허고, 또 간장맥이 잘 안 놀면 콩팥맥도 잘 안 놀아. 그러면 가슴이 답답허고 울렁울렁허지. 팔다리가 저리거나 쥐가 나거나 힘이 빠지거나 허는 증상이 나가지. 그렇게 되면 머리도 가끔 띵허니 좋지 않지, 눈도 피로허지, 허리도 아플 수 있지. 신장맥허고 간장맥이 잘 안 놀 경우엔 그런 증상이 나오지. 그리고 신장맥이 좀 세게 놀면 신장염증, 약허게 놀면 그것은 정력부족, 또 방광맥이 세게 놀면 방광염증이거든. 방광염증이 있으면 대개 소변이 노래고(노랗고) 당뇨가 나가. 그리고 담석증이 있으면 쓸개맥이 세게 놀아. 그게 한참 가면 황달로 나가고 그렇지." － 방광맥이 잘 안 놀 경우엔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방광맥은 원래 안 놀아야 혀. 안 놀아야 헐 혈맥이 방광맥·쓸개맥·소장맥·위장맥·대장맥 다섯 개여. 그 맥은 놀면 낭패여." －소장맥이 놀면 어떤증상이 나타납니까? "장염이 있지. 그리고 폐맥이 세게 놀면 폐병이고, 폐맥이 안 놀아도 폐병이고. 폐맥이 노는 폐병이 있고 안 노는 폐병이 있는디, 폐맥이 세게 노는 것보단 안 노는 폐병이 더 무서워." － 폐맥이 안 노는 폐병은 어떤 병이기에 낫기 어렵습니까?－ "폐에 핏기가 하나 없어 말라 붙은 병이지." －췌장맥이 세게 놀면 어떻습니까?－ "취장맥이 시게(세게) 놀면 임신부들은 입덧이 심허지. 취장은 다른 장부와 같지 않고 취장맥이 대개 시게 놀아도 음식 맛을 모르고 안 놀아도 음식맛을 몰라. 취장이란 순전히 음식을 댕기게 허고 음식맛을 알게 허는 거거든. 거기에서 밥맛이 있고 없고가 생겨나지. 그리고 명문맥은 놀아야 허고 삼초맥도 놀아야 허지." －명문맥이 세게 놀 경우엔 어떻습니까?－ "명문맥이 어디 시게 노나. 안 놀면 명이 떨어졌다고나 허지. 사람이 죽을 때에 가서 신장맥 허고 명문맥이 떨어져 버리지. 여자고 남자고 죽을 때는 신장맥이 먼저 죽어." －그걸 사맥(死脈)이라 합니까?－ "사맥이 몇 가지 있는디, 우선 그렇게 알어. 그리고 삼초맥은 언제나 놀아야 돼. 안 놀면 위가 맥혀. 체헌건 삼초맥에서 보거든. 젖 먹을 때 체해 있는 것도 삼초맥 보면 대번 나와." －맥이 불규칙하게 뛸 경우엔 어떻습니까?－ "위에 습기가 차면 위맥이 일정허들 않고, 약간 끊어졌다 놀다 장난허지. 습기 찬 기운이 위에 들어가면 위가 잘 안 놀고, 찬 기운이 나가면 맥이 좀 놀고. 맥 보는 걸 설명허려면 한정이 없어. 몇 마디로 다 설명헐 수도 없고. 우선 그렇게만 알어." 하기야 황 노인의 육십 년 맥법의 비결과 경험을 한자리에서 다 밝힐 수는 없는 문제이리라. (황 노인은 자신의 맥 보는 비결을 세밀하게 정리하여 <북포맥결(北浦脈訣)>이란 이름으로 묶었는데, 마침 대전에 있는 한의사가 빌려 갔다고 한다. 더 상세한 것은 그 책을 가져오면 참고하기로 했으나, 아쉽게도 그 책자를 이 글을 쓸 때까지 구하지 못하였다.) －할아버지와 같이 맥을 보고 병을 진단하는 기준은 예전의 어느 의서에 나와 있습니까?－ "그건 안 나와 있지. 스스로 깨쳐서 허는 이야기지." －그 어려운 맥결을 스물네 살 적에 터득했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번 터득하고 여러 사람 적용혀 보니 맞는 걸 어떡혀. 나는 십 년 전꺼지만 혀도 의술이 선연히 늘었어. 날마다 의술이 늘다시피 혔어. 그만치 우리 뇌는 무서운 겨. 그러더니 십 년 전 정월 초하룻날 자고 일어났는디, 뇌에서 영이 나와 버렸어. 그 뒤론 의술이 더는 안 늘어." －의술을 깨치기 위해 주로 본 의서는 어떤 책입니까?－ "나는 의술 공부 안 헌 사람이여. 의학책이라면 평생 <의학입문> 온서상한편을 읽은 게 고작이여. 의서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석실비록>이다, <편작심서>다 있어도 읽질 않았어. 의술은 술수여. 술수는 경험이 있다거나, 방대한 서적을 본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녀. 깨우침이 있어야 혀. 어디 가서 이것저것 따지고 이론적으로 이야기 헐려면 의서를 많이 보면 좋지. 그렇지만 실지 효과는 못 내. 그것은 예전의 약방문에만 의존허기 때문이여. '여기 방다이효소(與其方多而效少) 막약방소이의심(莫若方少而意深)'이라고, 서책이나 방서는 잔뜩 보고서 아무 효과도 못 내고 의원질허느니 책은 조금 봤어도 성과를 내는 의원질혀야 혀. 나는 성과내는 의원여." －그러면 옛날 의서에만 의존하면 오늘날 병을 못 고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병이란 건 천지 기운과 똑같아서 천지 기운이 바뀌는 대로 약도 바꿔져야 혀. '질각유인(疾各有因) 통어피자(通於彼者) 색어차(塞於此)'라고 병이란 전부 원인이 있어. 그런데 예전의 의서에만 의존허면 현대에 와서 병의원인이 바꿔지는 걸 몰라. 생각혀 봐. 지금 병은 왜정시대 병이 거의 없잖여. 굳이 들자면 풍진이나 있지. 사람도 전부 달라졌잖여. 뱃속도 전부 달라지고. 지금 의원들 대개 <동의보감> 처방에 의존허는디, 지금 동의보감 볼 시대가 아녀. '의어고자(依於古者) 이어금(異於今)'이라고 예전 방법만 들고 자꾸 고집허면 병을 고치기가 어려워." －그럼 지금 병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건 천지 기운이지. 천지 기운도 많이 바뀌었고, 음식 오염도 많이 됐잖여. 천지 기운이 변허는대로 병도 변허는 거고, 따라서 약도 변혀야 돼. 그래서'신명변화존호심(神明變化存乎心)'이라. 옛날 의원들도 의서를 내면서 몇 천 년 동안 처방을 그대로 쓰라고 헌 게 아니고 세상이 변허는 대로 바꿔 써라 그랬어." －천지 기운이 지금 어떻게 바뀌었는가요?－ "지금은 화전쟁 시기여. 모든 게 불 세상 아닌감. 지금 화왕시(火旺時)이기 때문에, 신경성이니 염증이니 홧병이 많잖여. 지금 염증이란 게 전부 홧병때문이여. 당뇨도 홧병이고 혈압도 홧병이고 간장염도 홧병이고 자궁염도 전부 홧병이여. 암도 화에서 나가. 그러니 요새 병 고치기 쉽잖여. 불을 끄고 거기에서 나가는 염증을 고치려면, 들고 물을 부어 줘야 혀. 그래서 가끔 염증이 심헌 사람이 오면, 당신 병 고치려면 소방차 불러대야 헌다고 그러지." －그러면 화전쟁 시대는 얼마나 가고 언제쯤 끝나겠습니까?－ "그런 건 알아도 함부로 말 않는겨. 전쟁도 한번 생각혀 봐. 모든 건 금목수화토(金木水火土) 오행 원리로 돌아가. 전쟁도 처음엔 멱살잡고 전쟁혔어. 그러다 돌팍(돌멩이)으로 뚜드려 패다가, 몽둥이나 대나무창으로다전쟁혔어. 그래 목극토(木剋土)이니께 토전쟁을 이기기 위해 목전쟁이 나온 거지. 근디 금극목(金剋木)이라고 나무를 이길려면 쇠야 되잖여. 그래서 칼전쟁이 나왔어. 전쟁 시기가 가장 오래 간 게 칼전쟁이여. 칼전쟁은 몇 천 년씩 가. 그리고 쇠를 이길려면 자연히 불이 나와야 되니께, 지금은 폭탄을 가지고 불전쟁허잖여. 그 다음에 불을 이길려면 수전쟁이 나올 차례지. 수전쟁이 나오면 화전쟁이 끝나는 때여." －수전쟁은 어떤 전쟁이고 언제 옵니까?－ "김 기자도 그것까지는 생각허지 못헐 걸. 사실 몇 천 년 전에도 화전쟁이 있었어. 그때는 한 '一'자 하나 가지고 막았어. 한 일자 하나 써서 들으면 저쪽 대포에서 물만 찔찔 나왔어. 한 일자가 천일생수(天日生水)거든. 한 일자에다 물을 붙여. 그건 술수(術手)여. 화전쟁이란 게 공자 이전 시대에도 있었어. 그 때는 이렇게 오래 안 갔어." －화전쟁을 막으려면 술수로 막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앞으로도 화전쟁은 술수로 막게 돼. 그렇게 되면 또 암흑 세계가 오게 되고, 그때는 자동차 전기도 다 없어져." －그럼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원시시대로 또 돌아가지." － 할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어. 그냥 알지. 설령 지금 그걸 안다 혀도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법이여." 알 듯 말 듯한 아리송한 말에 궁금증은 점점 더 하나 황 노인은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말을 잠시 돌려 황 노인의 약처방 비결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내 처방은 거진 같어. 비방 같은 건 없어. 병의 원인은 화(火)이고, 염증만 치료혀주면 되니 자연 처방이 비슷 헐 수밖에." －현재 처방에 쓰고 있는 약재들에는 어떤 약성이 있습니까?－ "나는 성질이 순허고 아무나 먹어도 탈이 안 나는 그런 약재들만 써. 주장약은 향부자·당귀·천궁이여. 향부자는 가스 빼는 약이고 당귀ㆍ천궁은 수혈제이지. 불이 났으니 피를 더해 줘서 물을 부어 줘야 혀. 창출ㆍ진피ㆍ택사는 위장의 가스 빼는 약이라 위를 보해 주지. 백복령ㆍ황기ㆍ산수유는 정력제인디, 정력을 넣어 주고 물을 들고 넣어 줘야 기운이 돌아가면서 가스가 빠지는 법여. 황백은 팔다리가 저린 데 쓰고. 팔다리가 저리면 대개 간장에 열이 있으니, 간장열을 식혀 주는 작약이 따라 가야지. 형개 ㆍ방풍ㆍ 반하 ㆍ생강은 담을 치료허는 약이 고." －어느 한의원에서나 흔히 쓰는 약재들인데, 할아버지 처방이 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맥을 짚어서 맥이 노는 대로 처방을 혀줘. 그래서 약을 먹고 며칠 후에 같은 환자가 와도 처방이 또 틀려져. 의서를 보고 대보탕이면 대보탕 처방전만 그대로 빼서 쓰는 의원 같으면 다음에 환자가 와도 처방이 같은디, 나는 맥대로 처방을 쓰기 때문에 매번 달러. 맥대로 허니 약이 병에 맞는 모양이지." 결국 집요한 관심을 가지고 쫓았던 황 노인의 기이한 의술과 여러 난치병을 고쳐 내는 실체는 밝혀졌다. 귀신같은 정확한 진맥과, 현대병의 원인은 불이라는 깨우침, 그리고 그에 합당한 약을 쓰는 것이다. －불임증에는 어떤 약을 씁니까?－ "불임증이 되는 건 자궁에 가스가 차고, 찬 기운이 돌기 때문이여. 더운 기운이 돌아도 그렇지. 그러니 가스 빼주는 향부자가 주장약이고, 찬 기운을 없애주는 익모초ㆍ계지를 써야 허지. 자궁이 너무 더우면 식혀 주는 황금이 들어가지. 또 기운을 넣어 줘야 허니 산수유ㆍ백복령을 쓰고, 냉이 있을 땐 복상씨 두 냥을 쓰지. 이렇게 아무리 설명혀도 맥을 모르면 아무 소용없어." －아들 낳는 약은 어떤 걸 씁니까?－ "자궁이 약한 여자들은 딸이 많이 들었거든. 또 자궁이 너무 시게 놀아도 딸이 많이 들었어. 그러니 정력이 약헌 여자는 정력을 보해 주는 황기ㆍ산수유ㆍ당귀ㆍ천궁ㆍ백복령을 쓰고, 정력이 센 여자는 열을 식혀 줘야 되니 택사ㆍ황금을 쓰지. 요즘 여자들 대개 자궁에 염증 있으니까 금은화·생지황ㆍ향부자도 들어가지." －그러한 약재들의 약성은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별도로 약 성질을 배운 것 없어. 그 전에 <방약합편>을 읽었는디, 거기에 나오는 약 처방을 읽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어." －할아버지 처방은 오운육기(五運六氣)와 관련이 있습니까?－ "화장부(火臟腑)니 금장부(金臟腑)니 허는 건 오운육기이고 태음ㆍ소음 허는 건 사상법인디, 나는 그런 건 쳐다도 안봐."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건 이 사회에 하나도 맞질 않어. 이 시대는 사상법 보는 시대가 아녀.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에 나오는 약은 전부 불같이 뜨거운 약 아니면, 얼음같이 찬 약 두 가지밖에 없어. 그렇기 때문에 이 화왕시기엔 안 맞아." －그러면 그건 어느 시기에 맞습니까?－ "이 화왕시기가 지나야지. 그리고 그 시대가 온다 혀도 이제마 선생같이 통령(通靈)헌 의원 아니면 그 법을 못써. 내 처방도 맥을 모르는 사람은 못 쓰듯이. 왜정시대에도 한의사들이 이제마법 쓰다가 사람 많이 죽였어. 그건 약 한두 첩에 사람 치료허기도 하고 죽이기도 허거든." －스스로 자신의 의술경지를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삼등 의원 정도에 불과허지. 일등 의원은 보지 않고 말소리만 들어도 병명을 아는 의원이고, 이등 의원은 얼굴을 살펴서 병명을 아는 의원이고, 나는 맥을 짚어 병명을 아는 정도이지. 그래서 나는 나를 큰 의원 큰 의술이라고 생각 안 혀. 신과 통헌 통령헌 의원이 큰 의원인디, 나는 마음으로 통했을 뿐이여. 옛날에 이제마 선생 같이 신과 통헌 이는 환자가 오기만 하면 벌써 훤히 알았어. 이 부여 은산면에도 내 어렸을 적 문 통령이라고 예순 넘은 통령한 이가 있었어. 그 분은 벌써 아침 먹고 나면, 약 짓는 애들 더러 그날 어떤 환자가 올 거라고 약을 미리 전부 지어 놓으라고 그려. 그러고 오는 대로 하나씩 내줘. 환자들은 그걸 먹고 죄 낫거든. 와서 진맥헐 일도 없이 벌써 오늘 어디서 어떤 환자가 올 것이다 앉아서 죄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그 사람은 거지처럼 살았어. 통령한 사람은 돈을 안 벌어. 돈 벌면 자기가 통헌 신에게 해를 받어. 내 스승 장 의관도 통령헐려고 석 달 열흘 산에 들어가 공부허다가 마(魔)에 걸려서 못 허고 나오셨어. 그래도 통령이 석 달은 갔어. 그리고 허준 선생이 명나라 천자의 병을 고치러 중국에 갔는디, 가는 도중 만주서 자게 된 일이 있었어. 조선서 명의가 들어온다니께 자는 데마다 환자들이 모여들거든. 그런데 어느 젊은 각시가 절을 떡허니 허고 맥을 봐 달라고 그려. 봤더니 아무 병이 없어. '아 당신은 아무 병이 없다'고 그러니, 이 각시가 우는 기여. 병은 있는디 어디고 가든지 의원들이 병이 없다고 허니 이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운단 말여. 허준 선생이 가만히 생각허니 천자병 보러 가는디, 중간에서 그런 꼴 당허니 기분이 나뻐. 그런데 침이라는 건 병이 있건 없건 놓아도 괜찮거든. 그래서 침이라도 한 번 맞으라고 삼백육십혈을 다 놔 버렸어. 그러고 남경 가서 천자 병을 진맥하고 약 다섯 첩 써 올렸어. 그런데 하루는 어느 허름헌 중국 의원이 오더니 처방전을 보여 주며 이대로 썼으면 천자 병이 나을 거라고 말허거든. 그래 보니 자기가 올린 처방허고 똑같어. 그 뒤로 천자 병이 실지로 말끔히 나았어. 남경에 머물면서 그 중국 의원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게 됐고, 오다가 만주에서 겪은 이야기도 허게 됐어. 그게 무슨 병이냐니께 음양상충증(陰陽相衝症)이라 그려. '침을 삼백육십 혈을 다 주고 왔는디 어떻게 될 것 같소' 물으니, 침을 놓기는 잘 놨는디 그 여자 비를 맞고 갔으면 살았고 비를 안 맞고 갔으면 죽었을 거라고 말하는 거여. 거기서 허준 선생이 한 달이고 놀면서 그 의원한테 많이 배워 가지고 왔어." －그 의원은 누구입니까?－ "중국 의원인디, 이름은 잘 몰라. 그래 오다가 허준 선생이 만주에서 역부로(일부러) 잤어. 그날 저녁 그 여자가 비단 이십 필 가지고 찾아왔어.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 봤어. 그 날 침 맞고 어떤 일이 있었냐니께, 가다가 비가 쏟아졌는디 우산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비를 홈빡 맞고 갔다는 거여. 벌써 중국 의원 말이 맞잖여. 의술이란 게 그런 겨. 암만 자기가 잘 알아도 자기보다 더 잘 허는 의술이 있고, 그보다 또 더 잘 허는 의술이 있어. 그래서 술수라는 건 한이 없는 겨." －질병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했는데, 예전엔 어떤 병을 잘 고쳤는지요?－ "그 전의 질병은 결핵ㆍ폐병ㆍ횟배ㆍ장티푸스ㆍ풍진 등이 많았어. 양방에선 이런 병 고치기 위해 균을 죽이지만 한방에선 균을 내쫓아. 한 번은 보건소 직원 아들이 폐디스토마에 걸려 왔는디, 양약 먹어도 안 낫는다는 거여. 그래서 이거 한약 한 제 지어 먹으면 충이 반 이상 없어진다고 그랬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의아해 혔지만, 아들에게 약을 먹이고 나서 사진을 찍어 보니 실제 충이 없어졌거든. 그 사람이 한약으로 어떻게 충을 죽였소 허고 물어. 그래서 '아 이 사람아 약으로 충 죽일 정도면 사람도 죽여. 내쫓아야지' 그랬지. 충을 어떻게 내쫓느냐고 묻기에 쇠똥에 고자리 낀걸 한 번 보라고 혔지. 쇠똥 한 쪽을 들어 바람 통허게 허면 고자리가 못 살고 도망가지 않냐고. 몸 속 충도 못 살게 허고, 비위 상허게 허면 모조리 도망가 버리는 법이지." －부인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부인병을 특히 잘 봅니까?－ "병은 매 일반여. 남자건 여자건 가릴 것 없지." －치료비는 얼마씩 받습니까?－ "나는 내 분수를 알어. 돈 버는 건 내 일이 아녀. 내가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으니 그대로 받아 들여야지. 그걸 억지로 뒤집어 맞추려면 앙화(殃禍)가 와. 그저 화제값만 받으면, 족허지 더 이상 바라지도 않어. 나는 평생을 환자 위해 몸을 바친다고 생각혔지 다른 건 생각허지도 않았어. 절대 돈이 욕심나서 의원질 헌 게 아녀. 의원이라면 병을 고쳐 주어야지 돈을 생각허면 벌써 정신이 썩어 들어가. 그러면 의술이 늘덜 안 혀. 의술질 허려면 심성(心性)에 자격이 있어야 돼. 그런 자격이 없으면 의술질 허지 말아야 혀. 의술이란 도술에 버금 가는 거여. 요즘 조금만 침을 놀 줄만 알아도 병 고쳐 준다고 나서고 있는디, 그런 사람은 이 사회에 죄 짓는 거여." －의료면허가 없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그 전부터 나는 평생 숨어 사는 사람이여. 면허가 없어 투서질도 많이 당허고 경찰 수사계에서 불려 댕기기도 허고, 보건소에서 나와 작두나 저울을 뺏어가기도 혔어. 지금은 면허만 앞세우지 어디 병 고쳐 준 것 상관허나. 올 봄에도 보건소 직원이 나와 못 허게 막어. 그래도 환자들은 어려운 병에 걸리면 내게 와서 고쳐 가고, 들고(자꾸) 찾아오니 어떡혀. 여기 경찰서장이나 군수 가족들도 신경통이다 중풍이다 허는 병, 다른 데서 낫지 못허고 결국은 내게 와서 병 고쳐 갔고만. 그래 내가 그랬지. 나 같은 사람 군에 한 명씩만 있어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병으로 고생은 안 헐 거라고. 실제 나 같은 사람 동네마다 몇 있으면 돈 없는 사람, 병원에서 병 못 고친 사람, 불쌍헌사람 많이 도움을 받을 겨." －그 전에 의료면허를 낼 기회도 있었을 텐데요.－ "원래 나는 농사 짓고 책이나 읽으며 살아가려고 그랬지, 의원질 오래 헐려고 허질 않았어. 동네사람이나 고쳐 주고 조용히 살아갈려고 마음 먹은 것인디, 갈수록 용타는 소문이 나고 환자들이 들고 찾아와 성가시게 혀서 결국은 평생 의술을 허게 됐지. 그리고 왜정 때 허가장 내라고 허는디, 왜놈들헌테 허가장 내서 의원질 헌다는 게내 비위장이 안 맞았어. 면허도 없고 평생 돈도 못 벌고 살았지만, 나는 언제나 기분 좋은 사람이여. 평생 죽어 가는 사람 구하고 애 못 낳는 사람 소원 풀어 주었으니 그걸로 만족혀." －의술을 배우겠다고 나선 후계자가 혹시 있는지요?－ "대전에서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이가 진맥허는 걸 배우겠다고 댓 달 왔다갔다 혀서 일러주었는디 결국은 못 혀. 처방 적어 놓은 걸 묶어 의서 하나 꾸밀려고 혀도 혼자서는 도저히 못 허것어. 그것도 헐려면 의원 몇이 앉아서 혀여 되는디 힘들어서 그만두었어. 나 죽으면 끝나." 황 노인은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다닐 정도로 건강하고 안경 안 쓰고 신문 잔 글씨를 볼 만큼 눈도 밝다. 건강 비결이 궁금하여 물어 보았다. "내 건강 관리는 다른 사람허고 달러. 나는 약방을 혔어도 보약 같은 것을 좋아 허질 않는 사람이여. 왜정시대 부터 생식을 많이 혔어. 생식을 많이 혀서 시력이나 체력이 좋은 걸로 알어. 지금은 농산물도 죄다 농약 쳐서 나오고,짐승도 사료로 키우고, 바다 생선도 오염되고 혀서 먹을 게 많이 병들었어. 그러니 사람이 병들 수 밖에 없지." 황 노인은 의술에 입문한 이래 육십 년 동안 하루 평균 이십여 명 정도의 환자를 받아 왔고, 작년부터는 서울ㆍ부산ㆍ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부쩍 많은 환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면허도 없고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는 황 노인에게 평생 그토록 많은 환자가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황 노인의 의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리라. 만약 면허가 없는 황 노인의 의술이 보잘 것 없고 환자들의 병이 치료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황 노인을 평생 동안 의술에 매달리도록 하지 않았으리라. 이 점에서 황 노인은 국가에서 허가장을 내준 게 아니라 환자들이 허가장을 내준 명의라 하겠다. 비록 면허는 없지만 나름대로 깨달은 독창적인 의술과 인술 정신을 가지고, 숱한 난치병 환자를 구료해 오며 평생을 살아 온 '향토 명의'가 부여에 있음을 확인하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천 년을 두고 묵묵히 흘러내리는 백마강이 석양빛을 받으며 멀리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