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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고 대중적인 책이지만 최신
연구된 로마 역사와 교차검증도 많이 되어 요즘은 많은 비판을 받는 책입니다.
로마의 건국신화는 트로이신화와 맞닿아있습니다. 신생국 로마는 당시 가장
유명한 일리어드 서사시의 트로이 이야기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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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인 아이네이아스가 로마 자신들의 선조라고 내세우고 있어요. 진위가
어째든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 믿었어요. 트로이 신화는 대략 기원전 13세기
이었으니 기원전 753년 건국한 로마시대보다 400년 전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북부와 중부의 에트루리아인과 남부의 그리스인들이 주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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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아직 양치기 정도나 하는 세력도 작은 민족이어서 자신의 정통성이나
세력을 부풀리기 위해 트로이 신화와 연결 지으려 했을 것입니다. 로마를 건국
한 1대 왕 로물루스는 그 유명한 늑대 젖을 먹고 자란 형제 중 첫째입니다.
로마는 처음부터 왕과 원로원 그리고 민회라는 3가지 제도를 가지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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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즉 민회에서 왕을 뽑고 대체로 유력가문의 가부장들 즉 귀족대표
들로 이루어진 약 100명 정도의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원로원
이라는 정식국가 기관을 설립해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초기 로마는 주로 남자
비율이 높았는데 이 당시 약탈혼이라는 것을 많이 했어요. 약탈혼은 남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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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강제로 훔쳐 와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건국 초기에 로마는 젊은 여자
들이 부족했어요. 큰 파티를 열어 인근의 사비니인들 초청했는데 이때 딸과
아내를 동반하게 한 후 갑자기 습격하여 사비니 여자들을 강간하고 남자들은
쫓아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사비니의 남자들이 아내와 딸을 되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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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길러 로마를 쳐들어갔으나 이미 로마인들과 사이에 자식까지 낳은
사비니 여인들은 어느 편도 다치기를 원치 않았고 로마인들과 사이에 낳은
자식들을 데리고 로마군과 사비니 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쟁터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화해하라고 호소하여 결국 양측은 화해하고 동맹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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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다비드가 그린 ‘사비니 여인들’이 바로 이 내용
입니다. 1대 로물루스로부터 7대 왕까지 약 244년간 왕정이었던 로마는 민회
와 원로원의 힘이 커지게 되어 기원전 509년에 공화정으로 이행하게 됩니다.
민회에서 종신 왕 대신 1년 임기의 2명의 집정관을 뽑기 시작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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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로마에서 군대 복무는 세금을 내는 것이자 선거에 참여할 권리는 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군제 개혁은 동시에 세제 개혁과 선거 제도 개혁인 셈
입니다. 그래서 군대문제는 항상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요. 대체로
초기 공직자를 뽑는 로마의 민회 (켄투리아 민회) 에서는 백인 대 (켄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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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정도의 부대) 단위로 투표권이 있었고 총 투표수는 대략 193표정도
되었어요. 이들 백인 대 중 다수가 실제 무기와 물자를 일부 귀족들의 후원을
받을 뿐 아니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군인이 되므로 진정한 의미의
공화정은 아니었어요. 즉 로마의 공화정은 누구나 한 표가 있는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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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군대를 제공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민회에서
군인을 많이 배출하는 소수 귀족과 숫자는 많으니 군인을 적게 배출하는 평민
간의 세력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귀족들부터 투표하기
때문에 1계급에서 80표, 기사계급에서 18표로 과 반수가 넘으면 투표를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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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로마공화정은 공화정의 탈을 쓴 귀족정치
제도라고 부르기도 해요. 공화정초기 로마는 당시 문명이 앞선 그리스의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소수의 원로원 대표들을 그리스로 파견합니다. 당시
그리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대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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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공화정의 로마귀족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인
의무) 가치를 잘 실현하는 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로마 귀족들은 유력가문
의 가부장들 (파트로네스) 이고 이들을 따르는 무리 (클리엔테스) 가 많았어요.
또 이들은 항상 전쟁에서 최 일선에 섰던 만큼 희생도 많았고 또 이에 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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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의 권한 또한 막강하고 대부분 관직은 이들 차지였어요. 하지만 일반
평민들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원로원출신이 독점하던 집정관에 평민들도 뽑히
고 또 원로원에 대항하기 위해 재산에 관계없이 34개 선거구로 이루어진 평민
집회 (트리부스민회) 에서 뽑은 호민관이라는 평민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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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을 만들게 됩니다. 호민관은 원로원이나 민회에서 만들어진 법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임기 중 신변에 대한 면책특권을 가졌어요. 또 기존의 귀족들
의 전유물이었던 앞서 말한 로마의 집정관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관직들도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 법을 통해 평민들에게 개방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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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주요관직을 경험한 평민들은 원로원에까지 입성할 기회까지 주어지게
돼요. 물론 이는 평민들이 호민관 등의 주요관직을 역임하고 기존 기득권인
원로원에 들어가게 되어 아예 재임 중 과격한 정책을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아무튼 호민관 뿐 아니라 법무관, 회계감사관, 재무관, 안찰관
등의 주요 관직들도 평민들이 능력만 있으면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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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부터 정치제도를 창조적으로 들여온 로마 공화정의 제도부터
또 오늘날 민주주의 대부분 제도들은 영감을 받았음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로마는 건국초기부터 다신교였어요. 다른 신을 인정하고 자신의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아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뛰어나서 다른 민족과의 통합에 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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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어요. 따라서 이들은 로마시민으로 이루어진 로마뿐만 아니라 로마의 협력
하는 로마연합을 구성하는데도 큰 장점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튼 이 초기 로마
공화정은 이런 제도를 통해 통합을 이루어가면 계속 국력을 확장해갔고 로마
가도라는 군사, 경제 도로를 계속 확장하게 되고 결국 이탈리아 반도를 모두
통일하게 됩니다.
2.
날을 꼬박 샜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면 한 개를
사먹고 와서 계산해보니 오늘은 예배당 두 군대를 가라는 신의 계시 같아요.
서양철학 사에 탈력이 붙어서 ‘로마인이야기’까지 그냥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학구파가 아니었는데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범 생 이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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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가면은 있는 것 같아요. 각자가 맡은 역할을 따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삽니다. 어쩌면 인생의 목표는 다른 가면
속에 있는 진짜모습 간의 일관성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매번 다른 가면에
맞는 인간으로 사느라고 너무 힘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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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로랑 산행이라도 함께 가서 교회 관련 피드백을 줘야 하는데 여건이
녹록치가 않습니다. 더 솔직해지자면 교회사를 놓고 난상토론이 필요합니다.
로마를 강대하게 한 요인은 종교에 대한 사고방식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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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에게 종교는 지도원리가 아니라 버팀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종교를
믿음으로써 인간성까지 속박당하는 일도 없었어요. 강력한 지도 원리를 갖는
것에는 이점도 있지만, 자기와 종교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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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도 간과 할 수 없습니다.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광신적이 아니기 때문에
배타적이지도 않고 패쇄적이지도 않은 로마인의 종교는 이교도나 이단이라는
개념과도 거리가 멀었다고 해요. 로마인은 전쟁을 하긴 했지만, 종교전쟁은
하지 않았어요.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단순히 믿는 신의 수에만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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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남의 신을 인정하느냐 인정 안 하느냐 도 차이가 있습니다.
남의 신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누마의시대
부터 20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는 일신교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습니다.(중략)종교는 그것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는 효력을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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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효력
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니,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이기 때문에 법이
필요합니다.(로마인 이야기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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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여기서는 종교의 선순환에 대해 얘기 하고 있는 것 같구나.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은 좋지 않은데 이것이 믿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
같아. 광신적이고 배타적이지 않은 종교는 삶의 버팀대가 될 수 있긴 해.
아빠가 성경신학을 했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히 탈종교의 시대를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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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 같거든. 하지만 우리 프로테스탄트 보수교단은 상대적으로 맨-붕
상태에 직면해있다고 본다. 누마라는 사람은 권력을 계획적이고 치밀하면서도
폭력적이지 않게 이루어 낸다는 부분에 공감했던 것 같구나. 에예공!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명령해야 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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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강압적으로 시키는 것보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도록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말 확실한 리더십이 아닐까. 강요된 권위 말고 자발적
권위 말이야. 로마인이야기1편에서 교훈을 받은 것은 시스템화의 중요성
이란다. 이를테면 겉모습이 민주정치여도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면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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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지배하는 독재가 될 수밖에 없단다. 가톨릭교회가 그랬고 개신교가
답습을 한 탓에 오늘날 지도자의 타락이 점입가경이 되지 않았겠는가. 시장
경제에서 ‘시스템화’는 효율성과 기회 균등, 연속성, 확장성까지 확대된다고
보는데 동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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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켈트족에게 수도가 털릴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더욱 크게 성장하였어. 에스더가 4수를 하고 학부를 8년을 다녔기 때문에
오늘날의 경쟁력의 모판이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에예공! 학원 시스템화는 얼만큼 진행됐냐?
2023.2.18.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