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말씀은 2008년 5월 26일 월요일 가정연합 8층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협회장 취임식 때 하신 말씀입니다. (편집자 주)
인사말씀에 앞서 평화훈경 가정맹세에 가치와 그 의의의 한 구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축복가정 여러분, 기도 중에서 최고의 기도가 가정맹세입니다. 가정맹세는 참부모님의 전성기록입니다. 시의 시대인 성약시대의 가르침을 주는 법도입니다. 가정맹세는 참사랑을 뼈로 하고, 참가정을 심장으로 세워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과 연결시켜주는 다리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는 참사랑의 핵폭탄입니다. 가정맹세는 종과 횡, 남과 북, 전과 후를 연결하는 중심의 참사랑을 모시고 영원한 구형운동을 출발시켜주는 에너지요. 지혜입니다. 가정맹세는 천국 문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천국문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키로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요. 참사랑으로 완성한 참가정의 키로 열어야 열리는 문입니다. 그래서 가정맹세는 1절부터 8절까지 모두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의 시대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시대입니다.
존경하는 세계 회장이신 문 형진 회장 내외분, 또 문 국진 재단 이사장 내외분, 사길자 어머니, 김영휘 회장님, 이요한 목사님 내외분, 존경하는 선배 그리고 동료후배 여러분, 오늘 저는 실로 섭리적이고 역사적인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전 총관 흥진님, 효진 형님을 비롯한 영계의 참가정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유효원 초대 협회장과 선배 성령들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립니다.
영계의 도움과 더불어 지상에서 저를 지도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 고향 학교 후배 유영하 씨의 인도로 저에게 처음으로 원리를 들려주신 사길자 순회사님은 저의 믿음의 어머니요, 처음으로 저의 원리교사이셨습니다. 당시 유효원 협회장님께서 영계에 가신 뒤 그 다음에 1주년 되는 행사에 제가 영정을 들고 원전에 갔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8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순회사님은 협회장님을 여의시고 38세에 젊은 나이로 고향 함평에 오셔서 20리 떨어진 저희 학교에 며칠간 계속 출근을 하시면서 저에게 집중적으로 원리를 가르쳐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제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 말씀을 통해서 참부모님이 누구이신가를 지도해주신 이요한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가 지향하는 신앙에 근본이 무엇이고, 또 그 근본의 주체이신 참부모님이 누구이신가하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는 눈을 저에게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아울러 입교 당시에 저를 지도해주신 당시 교역장이셨던 허양 회장님, 대학 운동에 참 지도자로 저의 센츄럴티했던 손대오 박사님. 그 분들도 저의 인생의 큰 스승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22년간 공직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모셨던 김원필 선생님, 김영휘 회장님, 이재석 회장님, 황원채 협회장님, 그리고 곽정환 회장님에 이르기까지 이 어른들은 모두 저 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 더나가 한국의 통일 운동에 가장 큰 형님들이십니다.
저는 14년 간 미국에서 공부하며 한편으로 공직자로써 일하다가 갑자기 일하다가 명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많은 분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저와 함께 미국을 가서 미국 운동을 이끌었던 우리 젊은 한국 교구장 출신 지도자들이 지금보다 2년 전에 한국에 특별 활동을 하러 왔다가 아버님의 명을 받고 남아서 초종교초국가연합의 중앙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 같이 미국에 갔던 동료들 중에 바로 앞서 협회장을 지내신 황선조 회장께서 먼저 10여 년 전에 귀국하셔서 지난 13년간의 참으로 이 격동의 세월을 부모님을 모시고 기관차처럼 한국협회의 일을 해 나오셨습니다.
저는 저의 미국 생활은 참부모님의 직접 주관의 시대였습니다. 34년 간 참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에 미국 생활에 후반부의 14년을 모시고 보냈던 저 자신으로서는 하루에 일기를 쓰기 어려울 정도로 부모님의 일정 앞에 바쁘게 움직였던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한국을 선언하시고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이스트가든에 여러 형님들과 누님들, 그리고 전국에 널려진 어린 식구들을 지도해 오면서 뭐지 않아 미국을 미국 사람들에게 맡겨야 될 때가 올 텐데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그들을 주인으로 만들 것인가.
참부모님께서 1998년도 4월 부활절 날 이스트가든에서 주요 섭리 3개국을 아담, 해와, 천사장 입장에서 한국을 아버지의 나라, 일본을 어머니의 나라, 그리고 미국을 장자의 나라로 선포를 하셨습니다. 선포하신 것 뿐 아니라 동시에 미국의 멘토로서 미국을 지도하는 책임자로 예수님을 임명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가정을 벨베디아의 그 메인하우스. 참부모님이 이스트가든으로 이사 가시기 전에 사셨던 그 집에 거하시도록 그리고 영계의 총사령관이신 흥진님과 함께 사시도록 2층에 우리 훈숙님 흥진님 가정의 집을 마련하시고 직접 어머님께서 여러 가지 가구를 직접 구하시고 쇼핑을 하시면서 2층을 마련해 드려서 장 선생님께서 2층에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섭리적으로 보면 신부의 국가, 기독교의 대표 국가입니다. 평화훈경 13장에 잘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 후에 그 문명의 순례가 다시금 재림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실체적인 기대를 찾아서 순례를 하였습니다. 말 할 수 없는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수 백 천 만의 희생을 치루면서 하나님의 섭리의 그 운행이 미국을 향해 지금부터 232년 전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단일 문화권으로 그리고 단일 언어권으로 단일 법률과 하나의 연방 정부 아래 50개주를 통합시키는 그런 위대한 나라로, 짧은 200여년의 역사에 슈퍼 1등 국가로 모든 면에서 하늘은 미국을 예비시키고 성장시켰던 것입니다.
그 미국을 이제 천사장의 입장에서, 신부의 입장에서 이젠 아벨의 자리로 축복을 하셨던 것입니다. 한 집안이 평안하려면 그 집의 특별히 장남이 자리를 잡아야하고, 그 장남의 미션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요. 두 번째는 형제자매를 돌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UPF 천주평화연합을 만드시고, UPF에 본부를 어디에 두어야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드렸을 때 바로 생각도 안하시고 하신 말씀은 워싱턴의 캐피탈에 두어야한다. 다시 한 번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 천주평화연합의 본부를 두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국 전체가 미국의 존립 근거가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빼면 미국은 존재 근거와 이유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열릴 때에도 성서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시작을 하고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어 취임을 할 때도 원로 목사를 불러서 축도를 받고, 바이블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미국의 모든 집회에 동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빼면 미국은, 기독교를 빼면 미국은, 그 존재의 근거와 발판과 도태가 없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오시는 환영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참부모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래 우리가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고, 우리 황선조 섭리 박사님께서 늘 많이 지도를 해주셨지만, 해방 이후에 정말 기독교가 하나님의 섭리의 끈과 제대로 연결되었더라면 한국의 이승만 정권과 더불어 참부모님께서 수난의 길을 걷지 아니하시고 부모님께서 미국을 가셔야할 이유가 전혀 없으신 것입니다. 한국의 총사령 본부로써 지금처럼 세계를 지도 지위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섭리적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1971년도 12월 18일 부모님께서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오실 때는 아무런 기반이 없었습니다. 집 한 채도 없고, 물론 언론사도 없고 누구 하나 환영하는 사람도 없고 그 전에 1950년도에 아버님께서는 김영운 선생과 김상철 총장님 그리고 61년도에 우리 박보희 총재님 무관으로 가시고 그래서 세 분의 선배 개척자들이 미국을 개척하셨습니다.
1959년부터 69년까지 40년 선교사를 크게 화보와 함께 정리를 하면서 세 분의 수고와 노력과 정성의 토대 위에 사실은 부모님이 오셨지만 대개 당시의 선교 기반은 서부 중심이었습니다. 동부의 박총재님이 오셔서 개척하기 전에 사실 아버님이 오셨을 때는 아무런 기반이 실질적으로 운행하실 수 있는 여건이 없으신 때였고 더군다나 참부모님을 보호하고 프로택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는 여건이었습니다. 부모님의 34년의 건강하신 모습으로 귀국하신 것 자체가 미국을 아는 사람으로써는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던 부모님의 34년의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언제나 아버님께 인도하셔서 드라이버도 어디로 모시고 갈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아버님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면 드라이버에게 왼쪽으로 돌아가라, 오른쪽으로 돌아가라, 집으로 돌아가라. 철저하게 하늘이 직접 부모님의 성체를 보호하시고 시크리트를 담당하셨던 34년의 삶이었습니다.
가장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는 제가 50개주를 순회강연을 모시고 다니면서 50개주를 날마다 한 주씩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세계 선교 역사에 그런 전례는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저녁에 하루에 3시간씩을 퍼 부으셨습니다. 그때 아버님은 모든 목사들을 500명에서 1000명이상 데리고 나와라. 다음날 아침에 훈독회에 또 다시 3시간씩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평화훈경이라든지 중요한 참 섭리에 관한 말씀을 피력하신 주요한 내용들이 그때 완성되어 지셨던 것입니다. 거의 아침에 식사를 못하시고 비행기를 타신 적이 거의 태반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50개주를 끝내시고 두 차례 앵콜을 받으셔서 할렘의 가장 중심 교회 마드르주 킹에 사무총장을 했던 닥터, 와이트 워크라는 분이 목회하던 교회에 가시고,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5월 2일 날 아버님을 초청하셔서 영광스러운 국회 강연을 아버님이 개최하셨던 것입니다.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승리는 2004년 3월 23일, 워싱턴 DC에 있는 상원빌딩에서 참부모님께 올린 평화의 왕 대관식이었습니다. 여러분 비디오를 통해 보신 분도 있겠습니다만 정말 참부모님의 34년간의 희생과 고난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 이후에 패배와 수난과 고난의 길을 왔던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일생일대의 역사적인 승리적사건이었습니다. 2,000년 전에 로마와 같은 미국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했던 유대권과 로마의 원로원이 오늘의 기독교와 미국의 정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정부, 미국의 정치 경제의 가장 핵심 심장부인 바로 상원에서 말하자면, 원로원에서 2,000년 전에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참부모님을 환영하고 평화의 왕관을 제정, 봉정해 올린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종교계를 대표해서 한 흑인 목사님과 그리고 백인 목사님. 조지 스탈링스와 제시 에드워드가 부모님 양위분에게 봉정을 하는 용포를 드리고 그리고 왕관은 정치 지도자들이 하게 해서 민주당의 시카고 출신의 국회의원, 또 마들렌드의 공화당 국회의원, 이렇게 해서 흑인과 백인,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참가정의 자녀님들이 전부 도열하신 가운데 부모님께 캐피탈과 와이 타워스가 배경에 깔린 백드롭을 배경으로 하고 올렸던 그 사건은 참으로 역사적인 미국의 승리요. 더 나아가서는 참부모님의 승리요. 하나님의 승리요. 예수님의 한을 풀어드리는 그런 일생일대의 대 쾌거였던 것입니다.
이런 모든 행사를 다 하시고 부모님께서는 이제 한국으로 귀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마지막 파이널 데스네이션이 천일국 창건을 위한 12년 노정의 향후 5년 노정 후반부를 걸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참 부족하고 철없는 사람이 미국사람과 더불어 섭리의 현대사회와 더불어 한 장면을 연출하고 이끌어 가야 했던 것은 상당히 저에게는 어렵지 않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직접 주관이었고, 참부모님의 직접 주관이었기 때문에 저는 연출하시는 부모님의 따라 움직이는 배우와 같은 그런 입장에서 지난 14년 횟수로 15년 생활을 보내고 왔습니다.
이제 신앙의 조국인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14~5년을 보내고 난 다음에 한국에 와서 보니 여러 가지로 많이 한국이 바뀌고 변하고 발전하고 다양화되고 그리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특별히 과거와 지금의 변화의 한 때, 천일국 섭리의 후반부를 엮어 나가는 이때에 참부모님께서는 특별히 이제 그동안 제 1세대를 중심으로 지도 지위해오던 탕감복귀 구원섭리 시대를 종료하고 이제 특별히 참가정의 자녀님들을 선봉에 세우셔서 이제는 자녀님들과 그리고 축복가정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1세가 2세가 부모님을 중심으로 천일국을 건설해 나가는 도성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현진 형님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유감없는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미국의 UPF와 ILC 국제지도자회의를 중심으로 남북미와 유럽 그리고 많은 나라에 참 대단한 그런 증거로 부모님의 영광과 위상을 펼칠 운동을 전개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섭리에 조국, 한반도의 참 예기치 않게 아버님께서는 국진님과 형진 형님을 보내셨습니다. 사실 세계회장님은 미국에서 낳으시고, 미국에서 성장하시고 교육을 받으신 분으로써 한국어가 말하자면 모국어가 아니신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많은 미국의 교민들을 대하면서 얼마나 교민들의 어려움이 자녀들인 것입니다. 일단 미국 땅에 내려서 미국에서 자라다보면 모국의 전통, 모국의 언어는 다 잊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참 사막과 같은 시대에 우리 두 분, 형님들을 임명을 하시고 재단과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하시도록 했습니다. 참으로 최근에 자녀님들이 이제 성숙하시고, 성장하셔서 각 분야를 프론트 라인에 책임을 지고 나오고 계십니다. 바로 제가 오기 며칠 전에 참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효진 형님을 잃고 난 다음에 형님의 큰 뜻과 위업을 부모님은 인진누님께 맡기셨습니다. 인진누님 여러분 하버드에서 공부를 하시고 정말 따님으로써 아버님의 댄버리 노정 때 과감하게 대중들 앞에 스피커로 나섰던 명연설자이시고 대단히 명석하고 정말 더 나아가 가정 자녀분들을 교육하는데 모범이 되는 미국에서 대단히 존경받는 인진 누님이시고 또 진성님이십니다. 이 두 분에게 맨하튼 스튜디오 센터를 맡기셨습니다. 정말 즉시 참 오너 같은 마음으로 들어오셔서 효진 형님의 정말 그 분 만이 아시는 깊은 내적세계, 누구도 상상,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깊은 뜻을 이해하시고 참 그 뜻을 펼치기 위해서 즉각 워싱턴에, 뉴욕에 내려오셔서 일을 진행을 하고 계십니다.
또 이제 다가오는 6월 5일은 우리 참부모님 가정에 선진님이 하버드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심리학과를 졸업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기쁜 일 아닙니까? 앞에 앉아 계시는 국진님,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하시고 형진님 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것처럼 학부와 대학원을 대학원에서 하시고 모든 자녀님들 한분 한분이 참 미국과 세계의 가장 우수한 최고의 학부에서 최고의 대학원에서 지도자 교육으로 연수를 받으셨습니다.
저희들이 탕감복귀 시대에 일을 해 나오면서는 아버님의 명령을 중심으로 때로는 논리도 초월하고 전문성도 초월하고 명령하나에 배후의 뜻을 모르는 저희들로서는 순종이, 복종이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었기 때문에 참 전문적인 눈에서 볼 때는 하는 일이 어설펐고, 또 결과를 놓고 볼 때에 결과가 바르게 생산적으로 나오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체적으로 새로운 천일국 시대를 열어나가시면서 부모님은 자녀님들을 각 분야에 전문가로 키우셨습니다. 사업 분야, 목회분야, 섭리를 파헤치고 섭리관을 전개하는 그런 분야에서 참부모님의 참가정의 자녀님들처럼 정확하게 현실과 미래를 보는 분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인플로이드는 언제나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오너의 마음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오너의 오너십의 마인드를 수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참 양자 양녀 된 입장에서 부모님을 부모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우리가 통하지 아니하는 그런 맥박의 한 구성이 있었던 것을 기억을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었던 큰 하나는 참부모님과 참가정의 자녀님들을 가까이서 뵙고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트가든에 계시기 때문에. 참 그런데서 이 형님들이 성장하시면서 부모님의 뜻을 이어받고 그 뜻을 성취하고자 애쓰시고 결의 하시는 그런 모습들을 수없이 지켜보았습니다. 특별히 이 시간 효진 형님을 다시 한 번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길님이 불현듯 가신 이후에 효진 형님은 단 한 주도 벨베디아에 강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한국이나 일본에 출장을 하시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 한주도 단 일분도 늦지 않으시고 7시 제단을 지키셨습니다. 형님의 유고집이 이제 책으로 나올 것으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말씀을 나누시면서 오늘 프론트 라인에 서 있는 저희들이 동생들과 더불어 정말 내가 큰 형으로써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을 너희들은 다 해 달라. 그런 것들을 수없이 부탁했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모든 것을 내가 장자 된 직분으로써 하늘 앞에 부모님 앞에 여러 동생들 앞에 자랑스러운 입장에 서지 못했던 것을 내 책임으로 생각을 한다. 하시면서 스스로 공직상의 자리를 피하시고 행사가 있기 전에도 먼저 한 시간 전에 오셔서 이스트가든 2층에서 부모님께 경배를 올리시고 뒤에 서 계시면서 동생들을 전면에 세우시는 정말 우리의 영원한 큰 형님이십니다. 34년 부모님의 미국에서의 생활은 아버님께서 막 갗 50대 초반에 미국에 가셔서 부모님의 가장 황금연세, 그래서 부모님의 60세 생신도 거기서 하셨고, 70세 생신도 미국에서 하셔서 모든 부모님의 최근세사의 자료가 미국에 다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제 한국에 천정궁 박물관으로 준비해오고 1차 모든 지난날의 필름들을 그 디지털 타이징하는 프로젝트가 1차로 끝났습니다. 제가 이제 그 이후에 부모님의 정신과 전통을 옆에서 목격하면서 부모님의 지시 하에 미국과 중동을 수없이 드나들면서 부모님의 수족 노릇을 하면서도 언제나 느꼈던 것은 충분치 못한 것, 부모님의 기대와 부모님의 섭리적 욕구에 충분치 못했던 그래서 얼마나 참 도구를 써야 할 때에 그 주인의 마음이 안타까울 것인가. 그런 것을 수없이 목격을 하고 지켜왔습니다.
이제 저를 한국에 부르시고 또 이제 선교의 참 미국에서 18년, 소련 중국에서 20년을 보내신 우리 석준호 박사님을 선교 본부로 보내신 것은 미국과 그리고 공산권 국가. 양 극단의 그동안 훈련됐던 기반들을 조국과 연결해서 최후의 조국 해방, 그리고 천일국 창건의 전면에 서신 자녀님들 중심으로 모든 1세 기반을 연결하라 라고 하신 분부의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그리던 조국을 다시 돌아오면서 역대의 선배 협회장님들의 참 온갖 정성어린 그런 재단과 토대, 섭리적실적을 어떻게 손상하지 않고 더 빛내서 결국은 마지막 최후의 정상을 향해 지금 2013년을 향해 가는 마당에 중요한 길목을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깊은 부담감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단히 가볍고, 대단히 기쁘고 또 감사한 것은 제 앞에 두 분 형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국진님과 형진님, 두 분이 한국과 일본, 또 세계를 책임을 지시고 또 미국은 현진님이 미국을 굳건하게 붙드시고 이렇게 나아가시는 것을 볼 때 저는 어디까지나 지도자라기보다 보좌관이요 스텝으로서, 오늘 큰 구상을 가지고 정말 참 깊은 수도의 세계를 걸어가시면서 부모님의 참 엄청난 그 가치를 어느 누구 우리 통일교회 식구보다도 참 통찰하시고 느끼시고 경험하시고 그렇게 경륜해 가시는 형진님을 보좌해가는 그런 책임이 저의 가장 큰 도리고 사명이고 미션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미션을 위해 하늘이 명을 하셔서 저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형진님의 손발이 되고, 모든 자녀님들 모든 형님 누님들의 수족이 되고자하는 그런 마음으로 단상에 섰습니다.
한편 우리 교회는 과거 광야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이제 새로운 정착시대를 향하고 더군다나 천일국 창건의 시대에 세계 선교의 가장 스탠다드가 되고, 한국을 세계에 접목해야한다는 이 시점에 이제 행정과 조직, 그리고 모든 프로페셔널 한 관점에서 전문가인 국진님을 큰 백으로 두시고 형진님을 전면에 세우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종교적인 영성을 깊이 다지고 계신 형님을, 그리고 가장 현실적으로 오늘 전문적으로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오늘 비즈니스에서 겪고 있는 프로페셔널리즘을 어떻게 우리 목회현장에 접목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고심하면서 이 길로 오신 국진님의 도움 가운데 우리의 미래가 대단히 밝게 전망이 된다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동안 많은 종교들이 초기에는 카리스마로 그 종단이 일어나지만 결국 그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시스템으로 정착하지 않을 때 그 종단은 중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도 어떤 큰 둔 회사는 강력한 파운더를 중심한 카리스마적인 지도지만, 예를 들면 삼성 같은 경우는 시스템으로 그래서 세계 가장 스터디 케이스로 삼성의 시스템이 참 영어로도 책이 많이 나와 있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럴 때는 파운더는 사라지더라도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과 비즈니스는 결코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프로페셔널 한 전문적인 그런 비즈니스의 마인드가 오늘 우리 교회 내부에도 도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심을 하시고 파스트 포스트를 통해서 참 우리의 지난 과거 탕감시대를 엘라이즈 했던 대단히 날카로운 분석을 보면서 저로서 많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아버님께서는 미국에 지도자들을 전면에 세우셨습니다. 저와 김동호 부협회장이 철수함으로서 사실은 한국 지도자로 같이 갔던 모든 지도자들은 돌아왔고, 그리고 프론트 라인에 마이클 젠키스를 중심으로 모든 미국 지도자들이 전면에 서 있습니다. 대륙회장이 가신다고 하지만 대륙회장의 역할을 대륙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키는 미국 지도자를 어떻게 전면에 더 서게 할 것인가라고 하는 중간 역할 하는 그것뿐이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 가운에 몇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훈련된 비즈니스 분야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과 교회 안에서 영성으로만 자란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저로서는 상당히 보여 지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진님의 어드바이스는 오늘 우리 교회에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에 참 좋은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가 간직해 온 독특한 교회의 영성, 그런 점은 형진님께서 누구보다 앞장서 개척해 나가시고, 가정맹세 서문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정말 참사랑의 본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전해주시는 그 목회 현장의 모습이 저도 예배에 참석하면서 참 가슴 찡하게 느껴져 왔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그동안 훈련되고 훈련을 받았던 각 분야에 모든 경험들이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이 형님들의 참 프로페셔널 한 접목을 어떻게 잘 실세화 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저의 연구 과제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 온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일어나면 피스 티비를 틀고 아버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어디 계시는가. 부모님의 근황은 어떻고 또 참가정의 자녀님들의 근황은 어떤가. 이것이 온 세계가 촉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 이꼴 세계가 되는 것이고, 한국 본부와 세계 선교를 함께 묶어서 한국에서 세계선교를 지도 지위해 나가도록 해라 그런 아버님의 말씀을 또 형진님께서도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계시고, 석 박사님과 저가 스텝으로써 그 분야에도 적극적인 도움을 실무적인 일을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존경하는 선배 그리고 식구여러분. 지난 날 우리가 걸어왔던 수난의 길, 고난의 길, 그리고 숱한 사연 사연의 길은 우리가 최후에 승리를 선포하고 최후의 정상의 날개를 펴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 눈물은 한숨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난 8월 황 회장을 단장으로 우리가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정주를 다시 방문하면서 거기에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아버님의 바로 여동생, 85세가 되셨군요. 되신 할머니를 보고 저희가 껴안아 보면서 정말 뼈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 아버님의 단 하나 남은 혈육의 이 귀하신 할머니의 하나 모시고 나오지 못하는 우리들의 위약함, 우리들의 기반, 우리들의 현실이 한편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물론 우리야 그럴 수 있지만 그러나 부모님은 북녘 땅에 2,200백만 전 동포를 해방시키지 않고선 자기 직계에만 관심을 가지실 수 없다는 말씀 때문에 우리가 실무적인 진행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를 미국에 보낼 때 아버님께서 너희들은 UTS를 졸업을 하고 마지막 가야할 곳은 북한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남한의 총체적인 우리 남한 5천만의 영향을 묶어서 결국 우리가 주류라인으로 서서 이제는 남한 전체의 구성원을 엮어 가지고 마지막 최후의 저 북녘 땅을 해방하고 2013년 역사적인 부모님의 승리의 선포는 이곳 서울이 아니고, 평양 땅 더 나아가 정주 땅에서, 안주 땅에서 선포되어지는 그 책임을 자녀님들을 전면 대장으로 세우시고 우리 모든 1세, 2세 지도자 식구여러분들이 우리가 거기까지 가야되지 않겠는가. 최후의 순간, 최후의 그 고지를 점령하고 거기서 승리의 팡파르를 울릴 때까지 우리는 지쳐서도 안 될 것이요, 쓰러져서도 안 될 것이요. 더군다나 죽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주!
마지막으로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이 자리에 앉아 있고 서 있기까지는 말 할 수 없는 참가정의 희생과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저로서는 제가 가까이서 목격하고 실무자로서 일을 했던 저로서 부모님 가정에 다섯 자녀분이 결국은 미국 땅에서 가셨습니다. 효진 형님 미국에 거의 생활을 보내시고 한국 땅에 마지막 운명을 달리 하셨지만 미국에서 온갖 말 할 수 없는 사연과 고난, 핍박 홀로 장자로서 감당해야 하는 6000년 먹은 사탄 세력을 홀몸에 감당하시고 가신 것입니다. 흥진 형님 그렇게 가셨습니다. 영진 형님 보내셨습니다. 정말 저는 형진님의 세 권의 책을 보면서 특히 형진님의 결정적인 모멘트를 영진님의 승화의 계기로 하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그 날 그 순간, 마침 곽정환 회장님과 피터 김과 같이 2층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잠깐 회의를 하고 말씀을 나누던 밤 10시쯤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거의 기절하셨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아버님은 아무표정도 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마디가 내일 네가 가봐라. 만약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하면 그 자리 전부 화장을 해라. 저하고 시크리트 한사람하고 피터 김하고 그 다음날 제일 빠른 비행기로 거기를 갔습니다. 가서 다시 경찰 조사에서부터 모든 아주 처음에서부터 A투지를 전부 다시 분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5페이지의 경합 리포트를 썼습니다. 결코 영진님은 절대로 스스로가 목숨을 달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가 제가 설명하자면 2시간을 설명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약을 해서 부모님께 절대로 아닙니다.
스테이크를 오더 하시고 잡수시다가 텔레비전을 온하시고 아무런 심판도 분위기도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문 열었던 그 발코니가 허리 밖에 안 되는 지역입니다. 제가 짐작하건데 이상헌 선생의 케이스입니다. 이상헌 선생님이 여러분 마지막 생을 정리하실 때 창문인줄 알고 문을 열고 나가셨잖아요. 선생님의 메시지에도 나와 있습니다. 하늘이 필요하시게 되면 길을 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영진님도 그 케이스입니다. 전혀 아무런 스스로가 그리고 그 형님의 차림이나 준비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저희 손으로 형님의 시신을 수습을 하고 다음 날 1차 승화식을 거기서 하고, 다음날 부모님의 보고를 받으시고 그렇다면 한국으로 옮겨라. 그래서 한국에서 세계승화식을 거행했습니다. 신길님이 가셨습니다. 현진님 가정에 신예님이 뜻밖에 가셨습니다. 현진님 전숙님의 그 아픔과 말 할 수 없는 비애를 옆에서 목격하고 그 어린 애기님을 모시고, 참 승화식을 해드리면서 느꼈습니다.
신길님 곧 며칠 만 있으면 아버지 품 안으로 오고, 대학 합격 통지와 더불어 뉴욕으로 오고, 형님은 방도 준비하시고 다 이런 마당에 급기야 가셔서 남아진 모든 유물을 수습해서 대모님 기념관에 모시다가 원전을 마련해드렸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영원히 지을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 사형수 중의 사형수와 같은 실무자로서의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확대한다면 우리 모든 1세, 참 우리 축복가정들이 부모님과 참가정을 모셔드리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했던 그래서 참가정의 자녀님들이 생축의 재물로 가시고 그 섭리를 토대로 오늘 아버님이 섭리의 축을 이어가셔야 되는 그런 아픈 상처와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해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희진님, 혜진님까지 합해 7분의 자녀님을 앞서 두신 부모님 마음, 특별히 마지막 효진 형님을 여의시고 여러분 마지막 아버님 떠나실 때 청평에서 우리는 아버님을 환송하는 것을 보셨죠. 가시는 도중에 두 번이나 황 회장에게 전화해서 지금 효진이 어디 가느냐. 원전에 가시는 것을 아시면서도 다음다음날 끝나고 저하고 유종오 회장하고 급히 하와이에 날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아버님이 경향이 아니셔요. 거의 아버님이 정신이 없으세요. 어머님도 앉으시면 눈물이시고. 아버님이 1시간도 내가 잠을 잘 수가 없다. 얼마나 사연이 많은 형님이십니까. 장자이시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를 무엇으로 위로해 드릴 수 없는 거기에 우리 형님들이 계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형님들이 계시지 않는 핏줄도 다른 가인의 자식들이 어찌 어머니 아버지의 위로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핏빛의 재단위에 종단이 서 있고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서 있다고 생각을 할 때 다시 한 번 여러 가지 한국에 참 우리 모든 선배 식구님들이 최후의 우리가 보답하고 그리고 우리의 소신을 다하는 것은 부모님을 모시고 참자녀님들과 더불어 영광의 승리의 한 날을 향해 다시 한 번 형진님들 말씀하시는 초심으로 우리가 처음 원리를 듣고 미쳐서 뛰며 세상에 모든 영계와 부귀를 버리고 이 길을 개척을 나서며 개밥을 먹으면서도 동산의 노래를 부르며 걸어왔던 우리의 근본적인 개척의 정신, 다시 한 번 재가동하는 그 에너지와 그 파워로 오늘 이 한반도 전체를 울려 나가고, 전체를 통합하여 하늘의 궁극적인 최후의 정상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 만세를 부르실 때 부모님의 한이, 그리고 참가정의 형님 누님들의 안타까움 들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그 날이 오지 않겠나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한 번 한 작은 후배로 또 작은 아들로 소자로 그리고 한 스텝으로 한국의 있는 동안 제가 미국에서 현진 형님을 모시고 미국의 소이 거장들을 남미의 VVIP들을, 세계 ILC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정말 당당하게 아버님의 어머님의 그 위대한 평화사상과 평화의 실천 내용으로 정복을 했던 것처럼 그 파워와 그 승리적 기대가 신앙의 조국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자녀님들 중심으로 펼치게 될 때, 앞장서 준 형님 누님들이 부모님과 더불어 최후의 승리의 자랑스러운 새로운 성약의 완성의 페이지를 열어 가시지 않겠는가. 바로 그 스텝의 일원으로 저와 더불어, 함께 형님들과 더불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을 결의하고, 그런 도움을 요청을 드리면서 제 인사의 가름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글 Thanks입니다^^
저도~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