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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공 박 현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많은 책과 인터넷을 뒤져 조상님들에 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수집하려고 애썼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검증 편집하여 후세에 전함으로써 조상님들께서 영적으로 우리 후손들의 마음속에 사시면서 음덕을 베풀어 주시고, 또 우리 후손들은 조상님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그 은혜와 공덕을 기릴 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박씨 시조 혁거세의 45세손이자, 언침의 16세손인 현鉉(1252~1340) 선조님은 규정공파의 파조派祖이시다. 밀성군密城君 유효惟孝의 손자요, 밀성군密城君 흥 興의 아드님이시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규정司憲府糾正(고려(高麗) 때 사헌부(司憲府) 종3품) 벼슬을 지내시고 태사太師(고려 정1품 관직)에 이르셨다. 시호는 무열武烈이시다.
공께서는 청백리淸白吏로서 세간世間의 칭송을 받으셨으며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이 뛰어나셨다. 수교충절록受敎忠節錄에 이렇게 적혀 있다.
1367년(공민왕16)에 이색李穡(1328~1396 대사성)과 박상충朴尙衷(1332~1375 대사간)이 상소하여 말하기를, "박현은 청백리로 인의를 베풀고 충효의 사상을 널리 보급한 사람으로 가위 동방도학東方道學의 조종祖宗이라 일컬을 만합니다. 공의 높고 밝은 큰 덕과 가르침으로 말하면 그 업적이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1243~1306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유(裕). '향'(珦)자가 조선 왕조 문종의 이름자와 같았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모두 초명으로 불렀다.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와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984년~1068년 고려의 문신 겸 학자이다)과 같이 높고 어지니 이들과 함께 숭의전崇義殿(고려 태조 및 공신들의 위?를 모신 사당으로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에 있다)과 공자묘에 배향하여 제사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지증대사智證大師(824~882)가 입적했을 때 최치원崔致遠 (857년 ~ ?)이 한 말을 떠올렸다.
오호라!
별들은 하늘로 되돌아가고 달은 큰 바다로 빠졌도다
嗚呼 星廻上天 月落大海
그 높은 덕으로 세상을 밝게 비춰주시던 규정공께서 세상을 뜨시니 '뜻있는' 사람들이 적극 나서서 국가적으로 현양 추모하여 규정공의 정신을 이어가자고 건의했던 것이다.
공公의 묘는 잠주부岑州府 남쪽 40리 두매산 좌자杜梅山子坐로, 지금의 장단군 장도면 두매리 성주동長端郡 長道面 杜梅里 聖主洞이나 실전失傳 하였다. 그리하여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두응촌 선영과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동에 제단을祭壇을 설치하고 매년 3월 7일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한 옥천 원덕사遠德祠, 고흥 숭양사崇陽祠, 장흥 세덕사世德祠(전남 장흥군 장흥읍 사안리 34번지. 규정공 이하 후손 23위 위패를 봉안한 사우祀宇이다. 061-433-0786) 경산 율산서원栗山書院에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받들고 있다. 배위는 동래정씨 함지涵之의 따님이며, 독자 문유文有를 낳으셨다.
공에 관한 문헌으로 <밀양박씨수교>(1618년. 1책 24장. 목판본. 30.7 21)가 있다. 1617년(광해9) 경상 유학 박사문, 박광필이 박현의 후손이니 조세나 부역을 면해주고 특별히 예우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봉황이 알을 품다(밀양박씨 규정공파 31개 소파의 어머니=정경부인 밀산박씨)
앞에서 현鉉 선조님의 제단이 완주군에 있다고 했는데, 공의 4세손 침침(1342~1399)의 배위配位인 정경부인 밀산박씨(1343~1381)의 묘역을 말한다. 밀산박씨는 효성과 자애가 여성의 본보기요 맑은 덕을 모두 행하셨으나 애석하게도 39세에 소천하셨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묘역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形局, 즉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대길지大吉地라서 호남 8대 명당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이 명당의 좌청룡 우백호가 마치 봉황의 양 날개처럼 생겼다. 주산主山에서 수직으로 쭉 뻗은 산등성이는 봉황의 몸통처럼 보이는데 혈穴로 내려오면서 이 산등성이가 봉황의 꼬리깃털마냥 좌우로 6개씩 짧은 산줄기를 형성했다. 이 산줄기의 마지막 한 쌍이 둥그렇게 명당을 감싸고 있다. 명당은 축좌丑坐(북북동을 등진 자리)로 혈반穴盤은 넓고 평평하며 높으면서도 높지 않게 보인다. 옛 묘의 산도山圖가 규정공파 세보와 청제공파 세보(淸齊公: 심문審問 1408~1456 세종때 집현전 박사와 부제학을 지낸 강생의 셋째아들로 진도에서 태어났다. 성삼문, 하위지 등과 단종복위를 도모하였다. 1456년(세조2)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의주에 이르러 성삼문 등 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하였다.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에 게재되어 있는데, 실경 묘사에 더 충실한 청제공파세보 산도가 옛 그림에 보이는 봉황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자세히 보면 정말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처럼 보이며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밀산박씨의 묘역이 이처럼 아름답고 세상에 보기 드문 명당이라 몰래 차지하려는 자들이 나타났다. 우리 문중에서는 한동안 이 묘를 실전하여 애를 태웠었는데, 1838년 종호, 종효 등 후손 30여명이 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 마침내 옛 지석誌石(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이나 도판. 조상의 계보, 생몰연대, 행적, 가족관계, 무덤의 소재와 방향 등이 기록되어 있다. 무덤 앞이나 옆에 묻혀있다.)과 옛 묘광墓壙(무덤 구덩이)을 찾아내고는 즉시 모두가 거기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면서 그간의 불효를 눈물로 씻었다. '조상의 묘를 지키지 못한 것만큼 큰 불효는 없다'고 아득한 후세 선조임금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때 뜻밖에도 김씨 성을 가진 자가 나타나 시비가 붙어 멱살잡이와 고성이 오가던 중 밀산박씨 묘 전후 좌우에 투장偸葬(남의 산이나 묏자리에 몰래 자기 집안의 묘를 쓰는 일.)무덤이 무려 6~7총이나 더 있음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전국 제종諸宗들에게 고하자, 종중宗中의 의론이 크게 일어나 종인宗人들인 승지承旨 효묵, 도정都正 응신, 군수郡守 정진, 부사府使 홍진 등 80여 명이 관청에 청원하여 부동산 등기를 인정하는 증명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1840년 규정공 18세손 준성準晟이 종인들의 협조를 얻어 옛 무덤을 일신하고 석물을 새로 갖춰 선문羨門(무덤의 문)을 지키게 한 뒤 제각을 세우고 묘위토墓位土(묘에서 지내는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를 장만하여 대대로 수호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김총金塚(김씨 무덤)의 후손이 처음에는 관청의 명령대로 평분平墳으로 두었다가 십수년만에 다시 소송을 걸어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관은 김씨의 손을 들어주었고, 봉호鳳鎬는 관청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죽었다. 이에 박씨 제종들이 발끈 들고일어나자 부사府使 경진景鎭이 이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다루게 되었고 결국 김총을 예전처럼 평분으로 만들게 했다. 그 뒤 수십년이 지나 김씨 후손들이 김총의 유골을 수습하여 다른 곳에 이장함으로써 비로소 산송山訟이 일단락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송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산송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예라 하겠다. 현재 밀산박씨의 묘소를 둘러싼 주산은 20만평, 안산은 5만평, 묘위토 및 봉서제 대지는 약 7천평에 이른다.
우리 나라는 산천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슬기롭고 용맹한 인재가 많이 나고, 명당이 많은 땅이라고 알려져왔다. 따라서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국의 질투도 심했다.
고려 초, 중국 지관인 호종단胡宗旦(고려 중기의 귀화인(? ~ ?). 원래 송나라 사람으로 태학에 들어가 상사생上舍生이 되었다가 상선을 타고 고려에 들어와 예종의 총애를 받고 벼슬이 기거사인에 이르렀다.)
이 동해를 다니면서 화랑 유적을 파괴했고, 조선시대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지관地官인 두사충(杜思忠. 임진왜란 때 원군援軍으로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 ?). 호는 연재(蓮齋))을 시켜 인물이 나올만한 마을의 진산鎭山에 쇠말뚝을 박고 혈맥을 끊게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또 일본인들이 조선팔도에 숯, 소금, 쇠말뚝을 박고 다녔다. 밀산박씨의 묘가 있는 서방산도 이런 섬뜩한 만행을 당했는데, 1995년 5월 31일에 쇠말뚝 두개를 뽑아냈다. 남한에서 쇠말뚝이 발견된 지역은 128개소(1992. 8. 15. 서울신문) 내지는 154개소(1991. 8. 15. 한국경제)이다.
정경부인 밀산박씨 묘의 산도山圖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형국.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동
정경부인 밀산박씨(1343~1381)의 묘 규정공 박현의 4세손 박침의 배위로 이분이 보여주신 효성과 자애가 여성의 본보기요, 맑은 덕을 모두 행하셨으나 애석하게도 39세에 소천하셨다. 앞에 보이는 '성기봉' 으로 인해 밀양박씨 규정공파가 우리나라에서 단일 본관으로는 김해김씨 다음으로 자손이 번성했다고 한다.
봉서재
鳳棲齋 박침(1342~1399)의 배위 정경부인 밀산박씨를 모신 재실이다. 서방산(612m) 줄기의 하나인 봉서산자락(봉서재 좌측 뒷산)에 밀산박씨의 묘가 있다. 봉서재 입구에 현재 12기의 비가 세워져 있다. 매년 (음) 3월 7일 규정공 200만 후손 가운데 뜻있는 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제향을 받들고 있다.대한민국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박씨 인구 389만 5천명 가운데 77.8% 이상이 밀양박씨이다(2008년 통계). 박씨 가운데 가장 번창한 문중인 규정공파는 조선조에서 70명(규정공파 소파들의 파보에 고려말에 급제한 강생이 올라 있는 반면에 안행,성표가 누락되어 69명으로 소개돼있다. 박씨 전체는 26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리고 봉군封君된 분들이 15명, 시호諡號를 받은 분들이 13명이나 나온 '뼈대있는' 명문가名門家이다. 현재 31개 소파를 거느리고 있다.
일찍이 상장군의 손자 강생 선조님께서 유서에 쓰시기를, "오지자손吾知子孫이 조종여음祖宗餘蔭하니 필대견어세야必大見於世也니라(자손들이 조종의 음덕으로 반드시 세상에 크게 드러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하셨는데, 과연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다.
01. 간의공(諫議公:思仁,사인. 문유 차남)파 박원일 02-389-3203 010-7703-7378 02. 군수공(郡守公:思敏,사민. 문유 3남)파 박원규 02-324-9855 011-301-8549 03. 간성공(杆城公:祗生,지생. 침 장남)파 박도근 031-923-4175 019-268-4175 04. 참판공(參判公:訥生,눌생. 침 3남)파 박승호 053-856-3327 011-9565-3328 05. 찬성공(贊成公:信生,신생. 침 4남)파 박대성 02-752-4116 011-274-4116 06. 호군공(護軍公:疑問,의문. 강생 장남)파 박천춘 041-356-3554 019-306-3554 07. 청재공(淸齊公:審問,심문. 강생 3남)파 (부재중) 08. 절도공(節度公:大孫,대손. 절문 장남)파 박재식 02-456-6917 011-9942-9680 아래는 공효공 23개파 박성휘 031-855-5408 09. 공간공(恭簡公:楗,건. 중손 3남)파 박성휘 031-855-5408 10. 대간공(大諫公:義榮,의영. 미 장남)파 박동수 043-833-5576 11. 해백공(海伯公:召榮,소영. 미 4남)파 박창신 02-548-6586 011-9090-6586 12. 문도공(文度公:薰,훈. 증영 장남)파 박종복 043--232-3484 017-745-3484 13. 주부공(主簿公:蕙,혜. 증영 차남)파 박길성 02-902-5152 011-475-1700 14. 경력공(經歷公:孝元,효원. 조 차남)파 박종서 031-458-8839 011-431-6852 15. 전한공(典翰公:仁元,인원. 란 장남)파 박여래 02-389-6904 011-290-0266 16. 충정공(忠靖公:崇元,숭원. 란 차남)파 박로중 043-231-2560 17. 송월당(松月堂:好元,호원. 이 장남)파 (부재중) 18. 승지공(承旨公:舜元순원. 이 차남)파 박덕순 02-406-6407 018-336-6407 19. 락봉공(駱峰公:謹元,근원. 빈 3남)파 박승연 031-287-0319 011-9370-2319 20. 별좌공(別坐公:應賢,응현. 충원 차남)파 박복길 031-223-4206 017-228-4202 21. 참군공(參軍公:用賢용현. 충원 3남)파 박건신 02-499-7239 011-380-7239 22. 화록공(華麓公:好賢,호현. 충원 4남)파 (부재 중) 23. 여산공(礪山公:齋賢,재현. 형원 장남)파 박로수 043-223-9123 011-9846-9123 24. 지평공(持平公:友賢,우현. 형원 차남)파 박홍래 043-264-5833 011-9828-5833 25. 선곡공(仙谷公:顔賢,안현. 신원 장남)파 박성순 02-909-0509 017-364-5015 26. 부정공(副正公:安民,안민. 계현 차남)파 박성재 041-664-1069 011-9629-1069 27. 영해공(寧海公:安國,안국. 계현 5남)파 박근행 031-723-7003 016-415-1355 28. 숙민공(肅愍公:承宗,승종. 안세 장남)파 박정채 031-973-4485 017-753-4485 29. 연안공(延安公:承祖,승조. 안세 차남)파 박봉규 02-394-6800 011-787-2271 30. 김제공(金提公:承黃,승황. 안세 3남)파 박경화 041-568-5924 019-436-6363 31. 양성공(陽城公:承顔,승안. 안명 장남)파 (부재 중) 낙촌공 9개파 별좌공파, 참군공파, 화록공파, 부정공파, 영해공파, 숙민공파, 연안공파, 김제공파, 양성공파.
규정공파 31개 소파 및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