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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문(奉安文) 1677년 반천정사(槃泉精祠))에 김중청(金中淸)의 위패를 모시는 봉안문(奉安文)으로 정필달(鄭必達)이 지었다. |
봉안문(奉安文) 정 필달(鄭必達)
嵬嵬太白 외외태백 우뚝솟은 태백산의,
公鍾其英 공종기영 그 영기 공에게 모아졌고,
赫赫太師 혁혁태사 빛 나는 태사공,
公世其聲 공세기성 그 명성 공이 이으셨도다.
端潔植志 단결식지 단아하고 께끗함으로 뜻을 세우셨고,
孝友成德 효우성덕 효도와 우애로 덕을 이루셨도다.
夙奮承師 숙분승사 일찍이 분발하여 스승을 받들었고,
周流學殖 주유학식 두루 돌아다니며 학문을 넓히셔서,
敷是華蕤 부시화유 바로 꽃을 피우게 하여,
以配其實 이배기실 그 열매를 짝을 삼아,
貫穿經史 관천경사 경전과 사기를 통달 하셨는데,
愈深於易 유심어역 주역에 더욱 조예가 깊으셨도다.
進退之義 진퇴지의 진출하고 은퇴하는 의리는,
講之旣熟 강지기숙 이미 익숙하게 강론 하셨도다.
鳴鶴屢聞 명학누문 학의 울음은 여러번 알려졌고,
幽蘭自馥 유난자복 깊은 산골에 있는 난초는 저절로 향기롭도다.
築室養靜 축실양정 집을 지어 그곳에서 조용히 마음을 기르며,
碩人之軸 석인지축 은거하는 선비가 배회하도다.
倡學育材 창학육재 학문을 선도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君子之樂 군자지락 군자의 즐거움 이도다.
科第非心 과제비심 과거에 응시할 생각은 없었으나,
爲親而屈 위친이굴 어버이를 위하여 본래의 마음 을 굽혀서,
忠移於國 충이어국 충성을 국가로 옮기니,
祿宜隨之 록의수지 녹봉은 당연히 따르게 되도다.
由我者志 유아자지 나를 행동하게 하는 것은 뜻이고,
不我者時 불아자시 나를 몰라주는 것은 때이도다.
一網于飛 일망우비 하나의 그물을 공중에다 쳐 놓으니,
前觸後罹 전촉후리 앞서는 살짝 닿았고 나중에는 걸렸도다.
搓海之錄 차해지록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기록은,
直氣貫斗 직기관두 올 곧은 기상이 북두성을 뚫을 정도였고,
螭階之筆 리계지필 조정에서의 문장 솜씨는,
義言盈口 의언영구 의로웠다는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 가득하였으나,
蜮失傍俟 역실방사 물여우의 화살이 곁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公豈可久 공기가구 공이 어떻게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左授于南 좌수우남 영남의 신안현감으로 임명되였으나,
乃隱乃吏 내은내이 마음은 은거하는데 두었도다.
朝衣坐府 조의좌부 관복을 입고 동헌에 앉았으니,
仁浹訟理 인협송리 인정은 주민들에게 미치고 송사는 다스려졌는데,
如彼河江 여피하강 저 양자강과 황하 큰 물에도,
溉之尋尺 개지심척 실질적으로 은혜를 입은 부분은 미세하였으며,
治功亟聞 치공극문 잘 다스린 공이 빨리 알려져,
遂遷其秩 수천기질 드디어 그 직질(職秩:품계)이 올라가게 되였으나,
卒成官謗 졸성관방 마침내 관원의 비방을 이루게 되어,
名昇已屈 명승이굴 명망은 높았으나 벌써 막히게 되였도다.
由初迄終 유초흘종 처음부터 끝까지,
焯其行事 작기행사 그 행한 일들이 빛이 났으며,
不躓于危 부지우위 위태로운 데서도 넘어지지 않고,
展也明智 전야명지 펼치는 일들이 명확하고 지혜로웠으니,
號曰苟全 호왈구전 구차하고 온전하다고 호를 지은 것이,
意豈偶爾 의기우이 그 의미가 어찌 우연하다고 하리요.
盛際拔茅 성제발모 융성한 시기에 현인이 기용되어,
朝望攸寄 조망유기 조전에서 바라고 부탁한 바였으니,
若有以爲 약유이위 마치 해 봄직하다고 여겼는데,
奈何年至 내하연지 연세가 많은 데야 어쩌겠으며,
持服不起 지복불기 상복을 입으셨기에 기용되지 못하고,
以孝自殉 이효자순 효도를 하다가 돌아가셨도다.
蓋公之生 개공지생 대체로 공의 일생은,
蓄大靡伸 축대미신 쌓은것이 크지만 모두 펴지 못하셨으니,
肆其盡用 사기진용 그것을 모두 활용하게 하였더라면,
綽乎經綸 작호경륜 경륜하는데 여유가 있었을 터이라고,
先輩見推 선배견추 선배들이 미루어 짐작하였으니,
匪我言私 비아언사 나의 개인적인 경해가 아니도다.
盛名之傳 성명지전 융성한 명망은 전해지고,
西山不移 서산불이 서산은 옮겨지지 않으며,
高風藹然 고풍애연 고상한 풍교(風敎:풍습을 잘 교화 시킴)는 성대하여,
終不可諼 종불가훤 끝까지 잊을 수 없도다.
睠彼槃洞 권피반동 저 반천 골짜기를 보니,
密邇丘園 밀이구원 은거하던 곳과 매우 가까워,
羮墻彌切 갱장미절 사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며,
典刑如存 전형여존 본보기가 될 틀이 그대로 보존되는 듯하기에,
作廟翼翼 작묘익익 날아갈 듯한 묘우를 지으니,
襟佩盈門 금패영문 선비들이 문에 가득하도다.
以日之良 이일지량 좋은 날 가려서,
以將厥事 이장궐사 그 행사를 치르려 하도다.
詩書一邦 시서일방 한 나라에 시서로 알려졌으니,
俎豆千祀 조두천사 제사는 천년토록 받드리로다.
[물여우:역(蜮)물속에서 살면서 주둥이에 한개의 긴 뿔이 앞으로 뻗었는데 독기로서 사람의 그림자를 쏘면
쏘인 부분에 종기가 생긴다는 옛말이 있음.전하기를 남을 해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함.]
상향축문(常享祝文) 유경립(柳經立)이 지은 축문이다. |
상향축문(常享祝文) 류경립(柳經立)
積學自修 적학자수 학문을 쌓으면서 스스로 수양하셨고,
推敎後生 추교후생 후생들에게 미루어 가르쳤으니,
名尊德邵 명존덕소 명망도 높고 덕망도 높으셔서,
瞻慕彌誠 첨모미성 우러러 보고 사모하기를 더욱 정성스럽게 하도다.
봉안제문(奉安祭文)
봉안제문(奉安祭文) 반천정사(槃泉精祠)에 김중청(金中淸)의 위패를 모시는 제사(祭祀)의 제문(祭文)으로 문인( 門人)인 남형회(南亨會)가 지었다. |
남 형회(南亨會)
[제사 받드는 일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지은 것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위의 글을 구하여다 사용하였다.]
山河氣全 산하기전 산하의 정기가 온전하여,
降傑生賢 강걸생현 걸출한 인재와 현명한 인물이 태어남은,
在理則然 재리칙연 이치로 보아 당연한 일,
質稟純精 질품순정 타고난 바탕이 순수하고 정밀하며,
才賦超英 재부초영 재주는 뛰어나게 영명함을 타고 나신,
挺我先生 정아선생 우리 선생님이 우뚝하시도다.
齠年負笈 초년부급 어렸을 적에 책상자 걸머지고,
從嘯門學 종소문학 소고선생의 문하에서 글을 배울제
稱器嘖嘖 칭기책책 특출하다는 칭찬 그치지 않았으며,
長而有造 장이유조 장성해서 학문이 진취하여,
心誠求道 심성구도 정성된 마음으로 바른 도를 구하려고,
親炙川老 친자천노 친히 월천선생에게 배우셨도다.
昭源獨到 소원독도 근원을 명백히 하여 혼자 심오한 경지에 이르시어,
宗訣是斅 종결시효 마루가 되는 진결을 가르치고,
樂得而敎 락득이교 터득하여 교화되는 것을 즐기셨도다.
旣貫經義 기관경의 이미 경전의 뜻을 꿰뚫으시고,
尤精易理 우정역리 더욱 주역의 이치에 정통하셨으며,
藻華餘技 조화여기 문장은 여가로 하는 재주이셨도다.
泗濱依仰 사빈의앙 한강 선생을 의지하고 우러르며,
業其干廣 업기간광 학문을 넓히려고 기약하시어,
工深向上 공심향상 공부는 깊이 있게 향상이 되셨도다.
奚助我爲 해조아위 어찌 나 자신만을 돕는 것이랴?
發於省私 발어성사 사생활을 성찰하는 데서 시작하여,
妙契賢師 묘계현사 묘하게도 어진 스승과 마음이 맞으셨도다.
退歸中年 퇴귀중년 중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藏修志專 장수지전 학문을 정식 과목으로 연마하는데 뜻을 오로지하여,
爰得槃泉 원득반천 이에 반천 골짜기를 얻게 되었는데,
磵幽山環 간유산환 그윽한 시내와 산이 둘러 있는 곳에다,
卜策安閒 복책안한 안정되고 여유있게 정사를 지으니,
碩人之寬 석인지관 석인(碩人)의 마음이 넉넉하도다.
潛心靜居 잠심정거 마음을 가라 앉혀 조용히 생활하니,
一室蕭疎 일실소소 온 집이 쓸쓸하고 성기기는 하였으나,
左圖右書 좌도우서 왼쪽 벽에는 그림을 오른쪽 벽에는 글씨를 붙쳤도다.
緇帷一闢 치유일벽 검은 장막처럼 둘린 무성한 숲이 한번 열리자,
吾黨坌集 오당분집 우리 무리들 많이 모여들게 되어,
覺我後覺 각아후각 나보다 뒤에 깨닫는 이를 깨닫게 하셨으며,
討談墳典 토담분전 옛날의 전적을 토론하고 담론하면서,
毫分縷辨 호분루변 미세한 부분까지 분석하고 변별하고,
訓誨不倦 훈회불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도다.
半世貞固 반세정고 반세 동안 정도를 굳게 지키면서,
素履自裕 소리자유 평소의 조행이 저절로 여유가 있었으니,
何纍外慕 하누외모 어찌 학문 밖의 일에 연연 하셨으랴?
應擧釋褐 응거석갈 과거에 응시하여 관복을 입게 된 것은,
初非所欲 초비소욕 애당초 하고 싶어 했던 바는 아니였으며,
爲親而屈 위친이굴 어버이를 위하여 자신의 뜻을 굽히신 것이였도다.
一出於世 일출어세 한 번 벼슬길에 진출하여서는,
志存經濟 지존경제 뜻을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제하는데 두었으며,
賢路庶泰 현로서태 어진 이를 등용하는 길이 트이기를 바랐었고,
學優經幄 학우경악 학문이 넉넉하여 경악의 임무를 맡았으며,
才宜館閣 재의관각 재능은 관각의 직책을 맡기에 적합하여,
咸期任責 함기임책 모두들 그 책무 맡기를 기대하였도다.
君子道消 군자도소 군자가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사라지니,
不安於朝 불안어조 벼슬살이가 불안하게 여겨졌으며,
三日臺寮 삼일대요 대각(臺閣)의 관료로 3일동안 수행하였지만,
嗟世淟涊 차세전년 세태의 지저분함이 한탄스럽기만 하니,
奈此屯蹇 내차둔건 어찌 이렇게 험악하게 막혀서,
抱負某展 포부모전 포부를 펼 수가 있었겠는가?
顧惟學力 두유학력 돌아보건대 학문의 역량은,
隨遇而發 수우이발 만나는 곳마다 발로되고,
事爲信赫 사위신혁 어떤 일을 하면서는 진실하게 빛이 났으며,
扶倫正紀 부륜정기 인륜을 부지시키고 기강을 바로 잡으니,
言凜立幟 언늠입치 말씀은 늠름하여 표지를 세우게 되었고,
具僚魄禠 구요백사 관료들 정신과 복을 갖추게 되었도다.
觀周專對 관주전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임무를 수행할 적에는,
文雅燁藹 문아엽애 문장과 풍아가 빛나고 여유 있었으며,
儘出詩禮 진출시예 모두가 시와 예를 익힌 데서 나왔으며,
返齊滕路 반제등로 제나라에서 등나라에 갔다오는 길에서는,
鄒範爲度 추범위도 맹자가 보여 준 모범을 본보기로 삼으셨으니,
彼焉我污 피언아오 간교한<허균이>어떻게 선생을 오염시킬 수 있었으랴?
矧伊誣錄 신이무록 더구나 저 열성을 무함한 기록에 대해서는,
箚對明白 차대명백 차자로 대답하기를 명백히 하여,
骨寒奸慝 골한간특 간특한 자의 골수를 오싹하게 하였으니,
方正之則 방정지칙 언행이 바르고 점잖은 법칙과,
穎敏之局 영민지국 지혜롭고 민첩한 기국은,
何施不適 하시불적 어디서 시행하더라도 걸맞지 않으리오?
斂此利具 염차이구 이렇게 유리한 자질을 거두어다,
專於一府 전어일부 한 고을에 전념하게 하였으니,
百里太古 백리태고 작은 고을이 태고의 기풍을 되살리게 되어,
絃歌化洽 현가화흡 학문을 힘쓰는 교화가 흡족하고,
來暮頌溢 래모송일 훌륭한 수령이 우리 고을에 늦게 왔다는 칭송이 넘쳤는데,
誰肆搆捏 수사구날 누가 방자하게 터무니없는 허물을 얽었던가?
田園入望 전원입망 사야에 들어오는 전원을 바라보며,
寄懷元亮 기회원량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떠났던 심정을 이해하니,
歸舟輕颺 귀주경양 전원으로 돌아가는 배 경쾌하게 나는 듯하도다.
琴書隨鶴 금서수학 거문고와 책만 실은 짐바리에는 학이 따르는데,
行返鄕國 행반향국 그 행차 고향으로 돌아오더니,
婆娑初服 파사초복 벼슬하기 전의 입던 의복 너울대기도 하도다.
心閑神靜 심한신정 마음은 여유가 있고 정신은 안정이 되니,
樂天安命 락천안명 자연을 즐기며 운명을 편안하게 여기는데,
不容何病 불용하병 무슨 병인들 용납 되지 않으랴?
始公之用 시공지용 맨 처음 공이 등용되어서는,
聲望屬重 성망속중 명성과 인망이 무겁게 모여들어,
孰不欣聳 숙불흔용 누군들 좋아하며 우쭐해하지 않았던가?
旣去咨咨 기거자자 그러다가 이미 떠남에 있어서는 한탄하면서,
庶幾復施 서기복시 다시 등용되기를 바랐는데,
幸公不衰 행공불쇠 공께서 노쇠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였도다.
仁壽某徵 인수모징 그런데 어진 분이 장수한다는 징험이 없어,
喬嶽遽崩 교악거붕 태산같던 선생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니,
矜式誰憑 긍식수빙 누구를 의지하여 본보기로 삼겠습니까?
高山景仰 고산경앙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며,
馨德彌朗 형덕미랑 향기 나는 덕행 더욱 밝고도 맑아,
愈久愈尙 유구유상 오래 될수록 더욱더 높이게 되도다.
人懷大雅 인회대아 사람들은 큰 학자를 사모하고,
里遺仁化 리유인화 마을에는 어진 교화가 남아 있으니,
允宜祭社 윤의제사 그분에게 제향을 받드는 것이 참으로 적합하도다.
彼槃一曲 피반일곡 저 반천의 한 골짜기는,
杖屨遺躅 장구유촉 선생께서 노니시던 자취가 남아 있어,
宛然如昨 완연여작 완연하게도 어제와 같으며,
源泉混混 원천혼혼 근원이 있는 샘물 졸졸 흘러 내려,
雲物淸婉 운물청완 경치가 깨끗하고 아름다우니,
祠宇可建 사우가건 사우를 건립하기에 알맞겠도다.
盍相經營 합상경영 어찌 도와가며 터를 닦고 집을 세워,
用妥英靈 용타영령 영명한 영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老少殫誠 노소탄성 늙은이나 젊은이나 정성을 다하지 않으리오?
大祲適丁 대침적정 때마침 큰 흉년을 만나게 되어,
力詘擧赢 력굴거영 재정에 비하여 큰 공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면서,
三歲不成 삼세불성 3년 동안이나 완성하지 못하다가,
方伯致栗 방백치율 관찰사도 곡식을 보내주고,
守宰相役 수재상역 수령도 역사를 도와주어,
功始告訖 공시고흘 그제야 공사의 준공을 보게 되었으며,
日吉辰良 일길진량 좋은 때 좋은 날 가려,
縟禮斯將 욕예사장 번거로운 의식을 행하게 되었으니,
不顯其光 불현기광 그 덕망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襟佩鼎至 금패정지 많은 선비들 많이많이 이르러,
告厥成事 고궐성사 그 일이 완성되였음을 고하여,
傳示千祀 전시천사 천년토록 전하면서 나타내려 하도다.
惟孝與忠 유효여충 효도와 충성은,
根干秉衷 근간병충 사람이 지니고 있는 도덕심에 근원을 둔 것으로,
人道之宗 인도지종 도에 들어가는 마루가 되도다.
顯允我公 현윤아공 밝고 진실한 우리 공께서는,
識大收功 식대수공 식견도 광대하고 공로도 거두셨으며,
行修德崇 행수덕숭 행동은 다듬어지고 덕망은 높으셨고,
養志供職 양지공직 어버이의 뜻을 따라 봉양하며 자식된 직분을 다하시며,
愛敬幷篤 애경병독 애호와 공경이 아울러 독실하여,
孝思惟則 효사유칙 효도하는 생각이 법이 되도다.
求忠孝門 구충효문 충신을 효자의 집안에서 구하는데,
何間事君 하간사군 임금을 섬기는데 어찌 차이가 있겠는가?
進退憂勤 진퇴우근 진출하고 은퇴함에 근심하고 괴로워하였으며,
實德之修 실덕지수 실질적인 덕을 닦고,
經術之優 경술지우 경학의 응용이 넉넉하여,
展也眞儒 전야진유 참신한 유학자로 알려져,
講筵推能 강연추능 경연 강석에서의 능력을 미뤄보고,
恨不同升 한불동승 함께 자리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愚翁所稱 우옹소칭 정 우복이 칭찬한 대상이셨으며,
三千三百 삼천삼백 곡례 삼천과 경례 삼백을,
融會明說 융회명설 소상하게 이해하고 분명하게 설명한다고,
沙爺赤服 사야적복 김 사계 역시 감복하셨도다.
凡厥所得 범궐소득 무릇 그 터득하는 것은,
孰非事業 숙비사업 어느 것인들 재능에 달린 것이 아니겠으며,
不負所學 불부소학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으셨기에,
見者德薰 견자덕훈 보는 이는 덕에 감화가 되고,
聞風鄙敦 문풍비돈 기풍을 듣는 이는 비루 함이 바뀌어 돈독하게 되니,
功在斯文 공재사문 공로가 유교를 진흥시키는데 있도다.
廟食於斯 묘식어사 이곳에서 제향을 받으셔야 할 터인데,
其不在兹 기불재자 여기에 계시지 않겠는가?
稽典而宜 계전이의 옛날 전례를 상고하여 적합하게 하도다.
樽俎俎潔 준조정결 제주며 제수를 정결하게 하여,
明禋芬苾 명인분필 깨끗하게 지내는 제사 향기로우니,
其庶來格 기서래격 강림하시기를 바라오며,
誠專禮隆 성전예융 정성은 전일하고 의식은 융성하여,
肅肅雝雝 숙숙옹옹 엄숙하면서도 화기가 넘쳐,
苦覩英風 고도영풍 영걸스런 기풍을 보는 듯하오니,
歆此哀情 흠차애정 이 충정에 흠향하시고,
惠我光明 혜아광명 저히들에게 광명한 은혜를 내리셔서,
永世攸寧 영세유녕 영원토록 평안하옵서소.
[석인(碩人:큰 덕이 있는 사람.]
[검은장막:숲과 나무가 무성한 곳 장막지림(緇帷之林)]
[경악(經幄:어전에서 경서를 강론함.]
[관각(館閣)경연청(經筵廳)규장각(奎章閣)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춘추관(春秋館)승문원(承文院)
성균관(成均館) 의 총칭임]
[ 대각(臺閣:사헌부,사간원의 총칭.]
축문( 祝文) 정필달(鄭必達)이 지은 축문이다. |
축문(祝文) 정 필달(鄭必達)
學造承師 학조승사 학문은 스승을 계승하는 데로 나아갔고,
道全守志 도전수지 도는 지조 지키기를 온전히 하셨도다.
留馥鄕邦 유복향방 향기를 고향에다 머물게 하셨으니,
永尊勿墜 영존물추 영원토록 제향을 받들며 떨어트림이 없으리라.
<[나중에 넣었음[追至]>
발문(跋文) 1824. 김시찬(金是瓚)이 쓴 문집(文集)의 발문(跋文)이다. |
原文(원문) 跋文 (발문) 先民有言。苟全先生金公。經學傳月川。文章出夏寒。禮學襲泗水。盖公未齔。從嘯臯受句讀。裁過就傅。 선민유언。구전선생금공。경학전월천。문장출하한。례학습사수。개공미츤。종소고수구독。재과취부。 摳衣月川書堂。聞爲學大方。仍往來兩先生門。旣博學矣。於易尤彬如也。當時士友月朝月門士。輒先僂指公。 구의월천서당。문위학대방。잉왕래량선생문。기박학의。어역우빈여야。당시사우월조월문사。첩선루지공。 旣哭月川翌年。鄭寒岡先生來莅花府。公又往拜之。留講心經。晩又出新安。從遊殆無虛月。自處孔門之游路。 기곡월천익년。정한강선생래리화부。공우왕배지。류강심경。만우출신안。종유태무허월。자처공문지유로。 斯時也平日習公者。魚鱗襲金馬玉堂。特以立異於群射梧相。更不許上林一枝。公亦有遐擧之志矣。親意望祿養。 사시야평일습공자。어린습금마옥당。특이립이어군사오상。경불허상림일지。공역유하거지지의。친의망록양。 由是不敢違。其浮沉冗卑十年者。非牽於晻世之鷄肋。寔強其所不欲也。此苟全之號之所以志也。 유시불감위。기부침용비십년자。비견어엄세지계륵。식강기소불욕야。차구전지호지소이지야。 今其遺集並詩文雜著朝天錄臮年譜附錄凡七卷。方欲鋟諸木。要是瓚訂豕亥。竊受而讀之。其赴燕也。 금기유집병시문잡저조천록기년보부록범칠권。방욕침제목。요시찬정시해。절수이독지。기부연야。 動與上价矛盾。其哭岡老也。歆歎其筆演春秋。其聞趙上舍之安置過縣也。則初無雅分。乃贈詩以贊美之。 동여상개모순。기곡강로야。흠탄기필연춘추。기문조상사지안치과현야。칙초무아분。내증시이찬미지。 君子之守正不搖。以義理根於中。外物不得以亂之也。然則公之夙夜齋所得。又奚亶禮學而已哉。是集之出。 군자지수정불요。이의리근어중。외물불득이란지야。연칙공지숙야재소득。우해단례학이이재。시집지출。 善讀者將自得之。 선독자장자득지。 上之二十有四年歲舍甲申漢案戶上弦夕。光山金是瓚謹書 상지이십유사년세사갑신한안호상현석。광산금시찬근서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발문[跋文]
옛날 분들이 말씀하기를,
구전선생 김공(苟全先生金公)이 경학(經學)은 월천(月川)에서 전수 받았고,
문장(文章)은 하한(河漢)에서 익혔고,
예학(禮學)은 사수(泗水)에서 물려 받았다 고 하였다.
그것은 대체로 공이 유년기(幼年期)에 소고선생에게서 구두(句讀)를 배웠으며,
조금 지나서는 월천서당(月川書堂)에 나아가 글을 배우며 학문하는데 대체적인 방법을 들었고,
<소고,월천> 두 분 선생의 문하(門下)를 왕래하면서 학문을 넓혔는데 주역(周易)에 더욱 정통하였다.
당시 사우[師友:학문하는 친구]가 월천선생 문하의 선비들을 품평(品評)하면서 번번이 제일 먼저 공을 꼽았다.
월천선생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정 한강 선생(鄭寒岡先生)이 안동도호부사로 부임하자,
공이 또 가서 한강선생을 뵙고 그곳에 머물면서 <심경(心經)>을 강독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만년(晩年)에 외직(外職)인 신안현감(新安縣監)으로 나가게 되자
그곳에서 한강선생을 종유(從遊)하기를 거의 거르는 달이 없을 정도였으며,
공자(孔子)문하의 자유(子游)와 자로(子路) 같음을 자처(自處)하였다.
이 무렵 평소 공을 익숙하게 잘 아는 이들이 예문관[金馬]과 홍문관[玉堂]에 분잡(紛雜)하게 모여 특별히
오리정승(梧里政丞)을 집중으로 공격하면서,
공이그들과 의견을 달리 한다고 하여 다시는 중앙 관서의 한 직위에도 임용하지 않으려고 모의하였으며,
공 역시 멀리 떠나고 싶은 뜻이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어버이의 의도는 녹봉(祿俸)을 받아 봉양하기를 바라셨으므로 이때문에 감히 그의도를 어기지 못하셨으니,
그 벼슬길의 바쁜 하위직에서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은 기강(紀綱)이 무너진 난세(亂世)에서의 <벼슬이>
닭의 갈비처럼 먹을 것은 없으나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는 정에 이끌려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였으며,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한 것이였으니, 이것은 구차하게 온전히 한다는 호(號)에 대한 의사 표현인 것이다.
지금 공의 유집(遺集)과 시문(詩文), 그리고 잡저(雜著), 조천록(朝天錄)과 연보(年譜),부록(附錄)을 아울러
모두 7권을 간행(刊行)하려고 하면서 시찬(是瓚) 에게 교정해 줄것을 요구하였다.
가만히 받아 읽어보니 공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는 자칫 상사(上使)와 서로 모순(矛盾)이 되기도 하였으며,
공의 한강선생 제문(祭文)에서는 그의 문장 솜씨가
<춘추(春秋)>를 알기 쉽게 설명한 듯한 점에서 부러워하며 감탄하였고,
공이 조 진사[趙上舍]가 귀양(안치:安置)가는 길에 신안고을을 지난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애당초부터 잘 알고 지내는
친분이 없는데도 바로 시(詩)를 지어 그에게 주면서 그의 행위를 칭찬하며 아름답게 여겼으니,
군자(君子)가 정도(正道)를 지키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의리가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기에 외부에서의
어떤 사물도 그 의리를 어지럽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이 숙야재(夙夜齋)에서 터득한 바가 또한 어찌 오로지 예학(禮學) 뿐 이겠는가?
이 문집(文集)이 나오게 되면 내용을 잘 읽어보는 이가 장차 저절로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한[夏漢:정자(亭子)이름, 경북 영주(榮州)반곡(槃谷)에다 소고,박승임(嘯皐 朴承任)을 위하여 지은 정자이며,
소고(嘯皐)가 그곳에 기거(起居)하며 후학(後學)을 가르쳤음.]
[사수(泗水:한강(寒岡)정구(鄭逑)가 만년에 기거하면서 후진(後進)을 가리켰던 사양정사(泗陽精舍)를 가리킴.]
순조(純祖)24년 갑신(甲申:1824년)7월[한안호:漢案戶]초8일[상현:上弦]저녁에 광산김시찬(光山金是瓚)은 삼가쓰다.
우(又 ) 1826. 후손(後孫) 김윤근(金胤根)이 쓴 발문(跋文)이다. |
原文(원문) 跋文 (발문) 右苟全先生遺稿詩文緫若干篇。 우구전선생유고시문총약간편。 嗚呼。先生種學績文。榮名淸時。歷華膴而掌綸誥。著述之富。當不下於當時諸鉅公。而兵燹屢刳。年代寖邈。 오호。선생종학적문。영명청시。력화무이장륜고。저술지부。당불하어당시제거공。이병선루고。연대침막。 巾衍之藏。止此寥寥。吁可惜已。然先生之平日所存。亦可以因此槪見。見壬辰疏及與任屹書。其秉義敵愾之氣。 건연지장。지차요요。우가석이。연선생지평일소존。역가이인차개견。견임진소급여임흘서。기병의적개지기。 凜凜如澹庵之章。見和歸來及贈趙溭詩。其守貞憂世之意。惻惻如靈均之詞。雖頑頔愞蜍。亦當廉立於千載之下。 름름여담암지장。견화귀래급증조직시。기수정우세지의。측측여령균지사。수완적연서。역당렴립어천재지하。 豈不韙歟。又况先生蚤甞受業於朴嘯臯,趙月川之門。晩又請益於寒岡鄭先生。于以私淑乎退陶遺緖。所受之正。 기불위여。우황선생조상수업어박소고,조월천지문。만우청익어한강정선생。우이사숙호퇴도유서。소수지정。 所養之深。有非俗士之所可彷彿。故其發於言語者。要皆曲暢典重。絅章內燁。不問可知爲有道者之文。 소양지심。유비속사지소가방불。고기발어언어자。요개곡창전중。경장내엽。불문가지위유도자지문。 其眡藻繢爲姣。貽譏菑木者。不翅若渾金粹璞。愈少而愈珍。倘使知言者見之。其將曰先生之文。在先生固餘事。 기저조궤위교。이기치목자。불시약혼금수박。유소이유진。당사지언자견지。기장왈선생지문。재선생고여사。 而亦自爲好文章云爾。 이역자위호문장운이。 時崇禎百九十九年臘前一日。族孫務功郞侍講院說書兼春秋舘記事官胤根謹識 시숭정백구십구년랍전일일。족손무공랑시강원설서겸춘추관기사관윤근근식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발문[跋文]
위는 구전선생(苟全先生)의 유고(遺稿)인 시문(詩文) 총 약간편(若干篇)이다.
아아!선생께서 학문을 배양(培養)하고 문재(文才)를 쌓으시어 청명한 시대에 좋은 명망으로
화려한 벼슬을 역임하면서 임금의 유시(諭示)를 관장하였으니,
저술(著述)이 풍부함은 의당 당시의 여러 거공[鉅公:고관(高官)]들에게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병란(병선:兵燹)을 여러 차례 겪고 연대가 점점 멀어지게 되어 상자에 간직된것이 이처럼 적은 분량 뿐이니
아 ! 애석하게 여길 만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선생이 평소에 지니셨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철학 또한 이유고를 통하여 대략엿볼수 있다고 하갰으니
임진년(任辰年선조25,1592)에 올린 소(疏)와 임흘(任屹)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의리를 다잡아 지키며
군주(君主)를 위하여 원한을 풀려고 하는 기개가 늠름(凜凜)하게 담암(澹庵)의 문장과 갔았으며,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답한 것과 조직(趙稷)에게 준 시(詩)를 보면 정도(正道)를 지키면서 세상을 우려하는 뜻이
측측(惻惻)하게 영균(靈均)의 문사(文詞)와도 같아 아무리 미련하거나 나약한 자가 천년 뒤라 하더라도 당장 미련한 자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는 뜻을 세우게 될 터이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더구나 선생은 일찌감치 박 소고(朴嘯皐)와 조 월천(趙月川)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늦게는 또 한강 정 선생(寒岡鄭先生)에게 배우기를 청하면서 퇴계선생께서 남시신 학문 사업을 사숙(私淑)하였으니,
전수(傳受)받은바 올바름과 수양한바의 깊숙함은 식견이나 안목이 낮은 범상한 선비가 흉내낼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언어(言語)로 표현된 것은 중요하게 모두가 자세하게 통달하고 법도에 맞고 점잖으며 내적으로
빛나는 문체를 드러내지 않았으니,
묻지 않아도 도(道)가 있는 분의 문장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화려한 문체를 뒤섞는 것을 지혜롭다고 하면서 남을 비난하여 나무가 선 채로 말라죽는 것같이 하는 자와
비교하면 아직 정련(精鍊)하지 않은 금(金)과 아직 다듬지 아니한 옥(玉)과 같을 뿐만이 아닐어서 더욱 양(量)이
적을 수록 더욱 값진 것이다.
혹시라도 남의 으논를 분석하여 그 시비(是非)와 정사(正邪)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고를 보게 한다면
그가 장차 선생의 문장은 선생에게 있어서 진실로 여가로 하는 일이였는데도 스스로 문장을 좋아하셨다고
말을한다 고 할 것이다.
[담암(澹庵:(宋)나라 여릉(廬陵)사람인 호전(胡銓)의 호(號)임,
고종(高宗)연간에 추밀원 편수관(樞密院編修官)으로 있으면서 소(疏)를 올려,
음험하고 잔인한 성격을 소유하고서 정권을 잡고 중신과 양장(良將)을 무함하여 죽이는
진회(秦會),왕륜(王倫),손근(孫近)의 목을 베어 고가(藁街)에다 내걸도록 대담한 건의를 했던 인물임]
[영균(靈均)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자(字).
초회왕(楚懷王) 때 대부(大夫)로 충간(忠諫)하였으나 용납(容納)되지 아니하여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음]
때는 숭정(崇禎:명나라 의종(毅宗)의 연호) 후 1백99년인 계묘년(癸卯年현종9년1843)
납일(臘日: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하루 전에 족손(族孫)무공랑(務功郞:정7品階)
시강원 설서 겸 춘추관 기사관(侍講院說書兼春秋館記事官) 김 윤근(金胤根)은 삼가 쓰다.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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