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만년샤쓰
발제일: 2026. 7. 23.
작가 : 방정환글 / 김세현그림/ 길벗어린이
발제자: 김가애 (원주지회 1기)
◈ 작가이야기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3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어린이를 위해 온갖 정성을 쏟은 애국지사이자 위대한 교육자인 동시에 아동문학의 선구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는 어른의 소유물로만 취급받아온 어린이를 인격적인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고, 어린이들의 마음에 사랑, 눈물, 용기, 기쁨을 키워주기 위한 동화, 소설, 시 등 아동문학을 일으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소파는 1899년 서울 출생. 어려서 어머니와 누이를 잃고 새어머니가 들어왔으나 정을 못 붙이고, 대신 그림그리기와 글짓기에 재미를 얻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9세 때 종조부의 사업실패로 그의 집이 파산을 맞게 되고 소학교 재학 중인 10살에 ‘소년 입지회’라는 소년회를 조직하여 토론, 연설의 수련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1914년 선린상업학교에 들어갔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열여섯 나이에 벌써 '청춘' 지에 글을 투고했다.
19세에 천도교 교주이며 독립운동가인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하고, 이후 일본에 건너가 도요대학 철학과에 다니며 아동 문제를 연구하였다. 1919년 ‘신청년’, ‘녹성’ 등의 잡지 창간 및 발간. 1920년 ‘신여자’ 편집 고문 활동을 함.
1921년 서울에서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한편 세계명작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내기도 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아동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그 해,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날 운동을 범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어린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였는가는 분명치 않지만 현재까지의 기록으로는 방정환 번역시의 장르 소개 명칭으로 처음 소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각종 대회, 강연회, 강습회를 주관하면서도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글을 발표하였다.
소년운동이 좌익세력에 의해 자기의 참뜻과 차츰 달라진 1928년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오로지 잡지와 동화순례 강연으로 자기 길을 걸었다. 그의 동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이와 관련된 여러 일화가 있는데, 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고무신을 벗어 오줌을 눈 어린이도 있었다고 한다.
1931년 서른세 살의 나이로 그는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초지일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방정환 선생님의 대표작>
- 어린이(잡지), 동생을 찾으러,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칠칠단의 비밀, 사랑의 선물 등
◈ 글을 읽고
<만년샤쓰>를 처음 읽었을 때는 오래전 옛이야기라 생각했고 다시 읽었을 때는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창남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엔 책의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함을 안고 읽기 시작했고 살고 있는 환경을 표내지 않으며 살아가는 창남이의 속마음이 읽혀졌다.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의 삶이라 전해지는 불편함과 가슴 아픔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난과 싸우면서 살았던 할머니와 부모님이 생각났다. 창남이는 가난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으니 씩씩하게 대처하는 용기있는 소년이다. 헤진 신발을 고쳐 신으며 퉁퉁부운 발로 학교에 가고, 추운 날에는 앞을 못 보는 어머니께 샤쓰도 벗어드리고 학교에 갑니다. 없는 형편이지만 이웃도 생각합니다. 창남이의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심이고 배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희망을 갖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의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희망을 잡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작가인 방정환 선생님은 소년들에게 용기를 갖고 살기를 희망을 잡기를 어렵지만 더 어려운 다른 사람들과 더블어 살아야 함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닌가 한다. 어린 시절 일요일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마을청소를 했다. 70년대였기에 국가 정책이었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데 빨레가 마르지 않았다면서 어머니께서 오빠 반바지를 입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 반바지라고 쓰여있던 것도 아니고 바지 색만 칙칙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무덤 뒤에 한참 동안 숨어 있었다. 친구들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미웠고 울음이 쏟아졌었다. 지금에 나라면 ‘요즘 패션이야, 우리 오빠 반바지인데 멋지지 않니?’ 라고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을 텐데. . . . . 창남이의 용기와 밝은 미소를 요즘 아이들도 닮아가기를 바란다.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창남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 나누고 싶은 이야기
어린 시절 나를 만나보아요.
진정한 용기는 무엇인가요?
내가 ( ) 했던건 너에 대한 배려다.
내가 창남이 엄마라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