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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교수님
수놓은 별 빛의 서막
처음 김은홍 교수님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여 학생들의 단기 선교를 계획하였다. 학생들에게 많은 공부보다 선교현장 체험이 더 확실하고 중요하다는 의견에 전통적으로 매년 단기선교를 추진해야 한다는 비전이었다. 범 백석을 대상으로 계획했으나 여건상 신대원 선교인류학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백석신학대학원 단기선교를 계획하고 지도교수로 내가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아프리카 앙골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경비의 과부담이었다. 그래서 학생 자치적으로 선교지를 정하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일본과 중국이 대상이 되었지만 50% 정도의 경비지원에만 집착한 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윤관석 전도사가 필리핀 이경철 선교사의 선교지에 대한 의견을 내었고 선교사님이 백석교단에서 파견한 선교사라는 것과 필리핀의 경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반영되어 결정되었다. 처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참여자의 확실한 의사표명 부족이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은홍 교수님의 홍보로 참여의사 학생들이 있었고 선교인류학 외의 학생들의 참여가 시작되었다. 그때가 11월 너무 늦은 시기였고 결정이었다. 첫 관문은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윤관석전도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국 2월 명절 이후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스케줄 변경으로 인한 학생들의 참여 불확실과 갑작스런 환자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거의 15명 정도의 수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몇 명이 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매주 1회 김은홍 교수님 연구실에 모여 말씀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스케줄을 조정하고, 단기선교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개성이 뚜렷하여 토론은 다양하고 제각각이었지만 찬양과 기도만은 뜨겁고 열정이었다. 정말 갈수 있을까? 하는 우여곡절이 여러 차례였는데도 아무 상관없이 자치책임자였던 윤관석전도사와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기고 그저 추진할 뿐이었다. 선교에는 극렬히 방해하는 세력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셔 반드시 극복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영리 전도하는데 필요한 준비물이었다. 그리고 초대받아 온 사람들을 위한 집회에 요구되는 멤버들의 보여줌이었다. 필리핀의 정서 상 청소년 및 청년들의 워십이나 찬양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단기선교 구성원들의 나이는 모두 40-50대였다. 사실 속으로 난감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했다. 또 하나의 장벽은 선교지에서 나눠줄 선교용품의 준비였다.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선교사님에게 할 헌금과 선교용품 비용이 거의 모두 찬조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약 120여만원이 소요되었는데 출발한 날까지 하나님이 돕는 손길을 붙여주셨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장벽은 가기 전 까지 모든 물품을 준비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늦게 참여의사 표명한 전혜정전도사가 마지막 한주일 동안 모두 준비하였다. 이 모두가 출발할 날이 가까울수록 어렵고 까마득했던 현실이 점점 밝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8일 출발 날 오후 2시에 학교에 모인 우리는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그 동안 숫한 장애에 긴장했던 탓인지, ‘아! 이제는 가는 구나’하는 생각에 한 순간 피곤이 몰려 왔고 나는 눈을 붙였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타이페이 정도 왔을까? 비행기 창밖을 보았다.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저 수평선위로 보이는 하나님께서 수놓은 뚜렷한 별들이 장관이었다. 그것도 내 좌석 밑으로 보이는 별들도 많아 보였다.‘아! 그동안 어려운 장벽들을 하나님께서 헤치시고, 이제 성공할 선교의 서막을 내게 알리시는구나 ’마하나임! 할레루야!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9일 새벽 클락 공항에 내렸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차는 오지 않았다. 성급한 누군가가 걸어서 나가보자고 했다. 1시간여를 기다려서 이경철 선교사님은 지프니를 몰고 나타났다. 그런데 지프니를 타고 가는데 엔진소리와 클러치 밟는 폼이 이상하기 시작했다. 온전한 차인가?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서 불안감 속에 믿음으로 선교사님 집에 도착했다. 예배를 드리고 취침에 들어갔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꼬박 날을 새우고 뒤척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는데, 누군가 예배당을 닦고 청소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심 놀랐다. 출발 전 매주 준비모임을 할 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너무 솔직담백해서 공동체 생활에 까다로울 것 같던 안희란 전도사는 솔선수범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윤관석 전도사는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렇게 필리핀 앙겔레스에 도착해서 두 가지 조짐은 상반되었다. 지프니의 불안감과 공동체의 본이 됨이었다. 하나님께서 수놓은 뚜렷한 별들의 서막은 이렇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드디어 선교현장으로 설레는 가슴을 안고 출발하였다. 드디어 차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앙겔레스 시내에서 지프니를 고치는데 많은 시간이 허비되었다. 그러나 우리 선교팀은 남의 집 대문 앞에서 그리고 그 집 마당에서 수화찬양과 따갈로그어 찬양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동안 모이지 못해서 연습도 못하고 온 우리 팀들의 걱정이 녹아내렸다. 필리핀 사람들은 자신의 집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를 피해 오고 갔다. 그들의 인간 사랑의 에티켓을 읽을 수 있었다.
오후 3시 넘어서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그곳의 대학교와 시내를 지나가서 학생들과 상가 등 길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쳐다보면 한 참 갔을까? 앙겔레스 시티를 지나서 마갈랑 시티에 들어갔을 때였다. 우리가 탄 지프니가 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차는 멈춰 섰고 나와 윤관석, 안희란 전도사가 밀어야 시동이 걸렸다. 두 번 세 번째에 땅거미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희란 전도사가 차를 밀다가 지쳐 뒤로 쳐졌을 때 순간 위기감이 느껴졌다. 작년 단기선교에서 대열에 낙오된 경험 때문이었다. 마지막 차는 멈춰 섰고 지프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의 사역일정은 끝이 났구나!’
오후 7시가 넘어서는 시각, 나는 지프니를 뒤로 한 채 칠흙같은 어둠 속에 불빛을 향하여 진행하여 보았다. 그곳의 촌락은 불빛이 가로등이 아니라 집이었다. 키가 크고 덩치 큰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의 지프니를 훔쳐보고 있었다. 이때에 선교사님은 길 가의 가게에 섭외를 잘 해서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한 순간의 위기가 가고 우리는 저녁을 그것도 필리핀의 가정에서 먹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주인은 정성껏 준비했다. 큰 붕어 같으면서 숭어 껍질과 흡사한 익힌 생선과 기름에 튀겨 낸 조그만 생선, 그리고 육식 내장 요리가 인상적이었다. 모두 배가 고파서 밥에다 거침없이 먹었다. 차를 판 사람들과 간신히 연결되어서 그들이 오는 바람에 우리는 다시 앙겔레스로 돌아 수 있었다.
밤늦은 시간에 시내에서 집으로 가는 차를 타는데 학생들은 테라피 마사지를 받고 싶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선교하려 와서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가? 여기서 우리의 어려움을 누가 파헤쳐주겠는가? 누가 우리를 돕겠는가? 하나님에게 예민하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나도 철부지였다. 첫날 장애를 맞아 선교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다. 그래야 내일의 선교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반대에도 강하게 주장하는 학생들 앞에 안희란 전도사가 기지를 발휘하여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지프니를 탔을 때는 운전사와 그의 아내, 아홉 살된 딸이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딸에게 말을 걸어 예수 그리스도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교회에 꼭 나가라고 말했을 때, 고개를 자신 있게 끄덕였다. 엄마는 놀쓰 코리언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다.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은 운전사에게 한 참 전도했다. 나는 그날 우리 차비가 약 3,000원이었는데 교회 나가겠다는 그 아이에게 3달러를 쥐어 줬다. ‘오! 예수님 이들을 긍휼이 여겨 주시옵소서’
또 하나의 장애는 이런 늦은 시간에 돌아와서 꼭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고 학생들을 대변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차가 고장난 것 보다 더 큰 위기를 느꼈다. 오늘의 선교에 실패한 우리는 하나님에게 아뢰어야 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의 죄입니까? 우리를 용서하시고 선교의 장애를 막아 주시고 내일은 진정한 선교를 행하게 해 주시옵소서 ’윤관석 전도사는 계획은 모두 실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호와 이레! 내일은 분명히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조짐을 나는 본 것이다. 나는 잠을 못자고 피곤에 지친 몸이었지만 찬양에 힘을 얻고 눅 7:47,48말씀으로 우리를 돌이켜 보는 설교를 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런데 모두 불평 없이 우리 단기 선교팀은 예배에 순응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었다.
10일 아침 내가 기도하러 나올 때는 아침 준비하는 멤버가 나와 있었다. 새벽기도회를 뜨겁게 찬양과 말씀과 더불어 마치고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 선교지에 가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마을 밖에서 지프니를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타고 내가 가지고 간 땅콩을 나누면서 은혜를 만끽했다. 그곳 사람들은 상냥했고 항상 웃어주었다. 지프니를 갈아타는 곳은 재래시장이었다. 많은 열대 과일을 구경하고 지프니를 갈아타고 시내를 구경하면서 마갈량시티 경계에 도착했다. 선교사님은 이 지프니로 계속 가자고 협의했지만 운전기사는 돈을 더 줘도 더 이상 못간다고 버텨서 실강이를 했다. 결국 HAVEN 미혼모 센터까지만 가기로 하고 출발했다. 여러 번 갈아타야 했지만 우리는 두 번 갈아타고 HAVEN에 도착 할 수 있었다.
HAVEN에 도착 직전 PAC 국립대학의 월드미션센터에서 우리는 땅 밟기 기도회를 가졌다. 건물 벽만 댕 그러니 놓여있었고 트러스만 얹혀있어 지붕이 없는 건물은 삭막했다. 주위에는 풀이 무성했고 안타까움이 앞섰다. 이 건물이 완성되면 이곳 대학은 복음의 황금어장이 아닌가? 이 많은 학생들이 온전한 복음에 이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오! 하나님! 이 건축이 속히 완성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는 목 놓아 기도했다.
HAVEN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2시가 다 되고 있었다. 아라얏산을 배경으로 하는 HAVEN 센터는 3시까지가 점심시간이었다. 센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우리 일행은 차도 없는 이 산골 마을에서 HAVEN 차량을 빌려 타고 다시 근 거리인 PAC 국립대학에 갔다. 점심시간이 사영리 전도에 유리하기 때문에 더 잘된 일정이 되었다. 뜻하지 않게 내일로 예정 되어 있던 PAC 총장을 만나 기념품을 전달하고 우리는 사영리 전도에 들어갔다. 모두 영어를 잘 하지도 못했지만 사영리 전도는 열정적으로 시작하였다. 선교는 열정이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 열심히 누가 있는지 생각지도 못하고 사영리 전도에 열중 했다. 제 정신이 나서 보니까 우리가 복도에서 사영리 하다 한 곳에 모여 전도하고 있었고 그곳은 야외 수업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 강의 교수가 이미 와 있었다. 하지만 선교사님의 평소 친분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 시간을 우리에게 할애하게 만드셨고, 우리는 수강생 거의 모두에게 사영리 전도를 하였다. 어떤 학생은 한국 사람이 하는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굉장히 반가워했다. 우리는 저녁에 여자 기숙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다시 HAVEN 미혼모센터에 지프니를 타고 돌아갔다.
HAVEN 미혼모센터에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들은 너무 애 띠었다. 미혼모인데 유아는 없고 아이들만 있는 것 같았다. 모두 16, 17세 미만의 청소년들이었고 그곳에서 학교도 다니고 있었다. 사영리 전도를 마치고 이어서 수화 찬양과 따갈로그 찬양은 그들을 즐겁게 했고 그들은 바로 따라서 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고 우리 또한 즐거웠다. 말씀을 전하고 선물을 나누었을 때는 다시 PAC 국립대학 기숙사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뻤다. 내손을 자기 이마에 정중히 가져다 대고 무릅을 숙여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고, 아빠가 일본인이어서 일본어를 잘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을 남기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아쉬웠다.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복음을 주려왔지만 그들의 안타까움을 보면서 무언가 더 주지 못하는 아쉬움에 눈물을 훔쳤다.
PAC 국립대학의 여자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졌다. 어둠 속에서 금남의 집을 두드려야 해서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선교사님의 사감선생과 교제에 힘입어 우리는 기숙사 앞 뜰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너무 깊어서 긴 시간을 갖을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밤에도 단기선교팀의 따갈로그어 찬양에 이어서, 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교의 간증이 적당하고 보고 간증과 말씀을 전했다. 박사논문을 쓸 때 내게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증해서 말씀을 전하였다. 우리 선교 팀들은 그동안 모기가 많아서 다리를 드러낸 학생들의 모기를 부채를 가지고 쫓아내고 있었다. 나중에 더 많은 학생들이 가세해서 간증과 말씀을 들었는데, 그들의 진지함과 모기를 쫒아주는 단기 선교팀의 행동은 너무도 감동 깊고 잊을 수 없는 어두운 밤의 추억이었다.
우리는 PAC 국립대학의 캠퍼스를 즐거운 마음으로 담화를 나누며 긴 거리를 어둠을 헤치며 나왔다. 너무도 만족스럽고 무언지 모르지만 기쁨이 차있는 마음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돌아가려하자 너무 늦어서 지프니 차량이 정류장에 없었다. 우리는 트라이 시클을 나눠타고, 먼지에 눈을 못 뜨고 고개를 숙인 채 마갈랑 시내에 들어왔다. 선교사님은 일주일 분량의 사역을 했다며, 쇠고기 칼질을 하려가자고 안내했다. 갈비와 갈비 살인데 씹히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애들 먹었지만 맛있고 흥겨웠다. 우리 팀은 모두 부쩍 가까워졌다. 돌이켜보니 모두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서로 간에 웃기는 유머가 많아졌고 하는 일들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오늘 너무 고생했다고 선교사님은 자신의 재량으로 테라피 마사지를 시켜주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새벽이었다. 찬양과 말씀과 기도를 끝냈을 때는 2시가 넘어섰다. 그날 학생들은 치유 은사자인 선교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았고 뒤로 넘어지고 많은 은혜를 체험하였다.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해서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끝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11일 새벽기도회를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마친 우리 팀은 마음이 한층 부풀었다. 오늘은 멀리 수빅시티를 거쳐 울랑가포 해변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선교사님은 우리 팀의 식사는 신경 써서 괜찮은 곳으로 인도해 먹었다. 이 날도 닭다리에 밥을 곁들인 몇 가지를 먹었다. 이 날 차량의 문제는 타이어였다. 만일 고속도로를 탔으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 고쳤지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를 가릴 커텐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다 고치고 나니까 오후 3시가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도 지프니 차는 가다가 스톱하면 시동이 꺼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수빅 시티에 가면 5시가 넘어서서 밤이고 고속도로 안전을 위해 가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선교사님은 믿음으로 가자고 밀어붙였다. 사실 재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위험한 장난이었다. 중간에 주유할 때, 차량이 멈춰서기도 했다. 그러나 가는 길목에서의 필리핀의 경치는 정말 장관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평선과 논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의 전경들, 시골 마을의 풍경들, 빌라촌의 전경들, 너무도 평화로운 흰 소들과 검은 물소들, 들판에 평화롭게 노니는 새 떼들,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흘러내려 생긴 커다란 물줄기의 강, 끝없이 넓은 옥수수 밭, 바나바 숲, 열대림의 숲의 장관들 등등 너무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필리핀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계속되는 장대비도 멈춘 평화로운 들판은 표현할 수 없는 가관이었다.
과거 미 해군 기지가 있었던 수빅 시티에 도착했을 때 6시가 되어 어두워졌다. 그곳은 한국의 24시 편의점들이 많았고 도시가 꽤 부촌이었다. 첫째, 차가 모두 고급이었다. 그리고 지프니가 많지 않았는데 있더라도 고급이었다. 다른 도시에 비해 경찰들이 여유로웠고 자신 만만했다. 도시개발을 많이 하고 있었다. 차가 자주 시동이 멈춰서 그때마다 차를 밀어서 시동을 켜야 했고 교통에 걸릴까 조마조마 했다. 교통이 밀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이마트에 들려 라면 등 먹을 것들을 사서, 울랑가포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8시가 다 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안 왔으면 너무도 섭섭 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나도 정겹고 즐겁고 흥겹고 맛있게 라면을 먹고 바다에 들어갔다. 바다는 깊은 곳이고 밤인데도 바닥이 보였다. 낮에 왔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아쉬웠다.
문제는 돌아오는 야행 길이었다. 수빅 시티의 교통경찰은 상당한 엘리트들이었다. 걸리면 봐주는 것이 절대 없고 그대로 진행하는 부패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미등이 켜지지 않아서, 상향등이 켜져서 3번씩이나 교통경찰에 걸렸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선교사님의 임기응변과 그들의 반응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떻게 왔는지 우리는 새벽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오는 길에도 전혜정 전도사는 수지침으로 아픈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치료해 주었다. 여러 모습으로 본을 보여주는 모습은 항상 밀려오는 감동이었다.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예배를 드리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우리 단기 선교팀들은 나를 붙들고 안수기도를 요구했다. 이유는 어제 선교사님만 하고 나는 하다가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아득했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필리핀에서 저녁 집회에서 안수할 때 내 손에 강력한 힘이 느껴졌고 필리핀 사람들이 뒤로 강하게 떨어지는 것을 체험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수 기도를 하는데 의식이 없었다. 사람마다 방언으로 통변할 때에 예언기도가 터지고 그리고 사람들이 넘어졌다. 마음에 거부하는 사람은 기도만 해 줬다. 그런데 마치고 들어가려 하는데 선교사님이 안수기도를 원했다. 은사사역을 하시고 뛰어난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거부했다. 두 번 세 번 재촉에, 나는 안수 기도하기 시작했고 강력하게 예언기도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얼마쯤 되었을까 뒤로 넘어졌다. 사실 선교사님이 넘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놀라웠다. 오늘 우리를 즐겁게 하시고 한 공동체로 결속을 더욱 강하게 하는 날이 되게 하시고 내일을 준비하게 하셨다.
12일 아침 역시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침을 먹고 나섰지만 차량을 손 봐야 했다. 점심에는 조옥순 전도사의 생일이어서 선교사님은 앙겔레스 중심가의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에서 통닭, 쇠고기, 고급생선, 기타 여러 요리들과 어우러진 식사와 야자수를 통째로 마시며 생일을 축하했다. 정말 즐겁고 모두가 한 몸이 되는 날이었다. 다시 차량을 손보고 나니 많은 시간이 흘렀다.
TABUN지역에 도착해서 타븐 센터에 들러 부센터장과 그 직원들을 면담하고 타븐 지역에 들어서니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선교사님이 예배를 드리는 공터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워졌고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선교사님의 인도에 따라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에 가서 사영리 전도를 하기로 하였다. 내가 갔던 집은 비어있어서 아이들에게 사영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해 맑았고 사영리를 잘 이해했다. 묻는 말에 모두 대답을 잘 하였다. 다시 공터에 모였으나 아이들은 많이 왔는데 어른들은 적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아이들은 부모가 불러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 선교팀은 수화 찬양, 따갈로그어 찬양을 보여줬고 조옥순 전도사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인도했다. 말씀을 전하고 모세 영화를 상영했지만 시설이 부족해서 중단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내일 10시를 약속하고 아쉽지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앙겔레스 시내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원주민이 있었다. 그런데 원주민 중 한 젊은 여인의 옷에 성령의 나타남이라는 한글과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교회 다니냐고, 그리고 크리스천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산에 살며 과일을 따다가 밤에 거리에 나와 팔아서 사는 이들에게 한국선교사들의 손길이 닿고 있다고 생각하니 뜨거움이 솟아올랐다. 너무 기쁜 마음에 그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10달러를 손에 쥐어 주면서 내가 네게 그냥 준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녀는 봉지에 과일 하나를 넣어서 내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천들의 만남과 느낌이 아닐까? 이 과일은 파타야로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비싼 과일이었다. 그냥 보내지 않고 보답하려는 그녀의 크리스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10달러를 밤이라 페소로 아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은 타븐 지역 사역이 너무 아쉬웠다. 내일을 기다리며 하나님께 내일을 맡겨야 했다. 오늘 밤도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예배를 드렸다.
13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타븐 지역 10시 예배여서 서둘렀다. 나는 타븐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사영리 전도에 나섰다. 한 여자에게 사영리를 끝내고 열심히 기도해주었는데 나중에 이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니까 내가 기도 하는 중에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이 지역의 희망을 보았다. 보는 사람마다 사영리 전도에 응해 주었고 사람들이 너무 진실하고 순박했다. 장년 전도여서 10시에 공터로 오라고 했더니 모두 대답했다. 그러나 그들은 10시에 오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이 지역은 선교사님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서 어른들의 반응이 비교적 좋지만 공터에서 예배드리기 때문에 아이들의 예배로 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교회 만 세워진다면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은 빈민 지역에서 중간층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에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수용성이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용성의 타이밍을 놓치기 쉬운 지역이었다.
11살 먹은 두 여자 아이가 내게 편지를 가지고 왔다. 한 아이의 편지는 대충 이렇다. 내 이름은 그레이스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당신을 대나무 숲 아래에서 처음 보았다. 당신은 그곳에서 내게 더러운 것을 제거할 수 있는 비누와 사탕을 주었다. 감사하다. 그리고 밑에 스펠링이 틀린 글씨로 신명기 11:3절을 인용하여 당신은 몸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할 것이라고 축복하고 있다. 뒷면에는 한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서툰 한글로 써 놓았다. 어떻게 11살 먹은 아이가 복음 증거 하러 간 나를 축복할 수 있는가? 내가 그녀에게 복음증거 하러 가서 오히려 내가 그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나는 조옥순 전도사의 아이들 찬양인도와 단기 선교팀의 헌신으로 예배를 마치고 그 아이들을 축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감동이 되었던 엘라, 마리아, 그레이스, 알리사 등등 여러 아이들에게 미래의 축복의 말과 기도를 했다. 선교사님은 열심히 통역해서 그 아이들이게 소망이 되게 하였다. 나의 선글라스 안에서는 끝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 하나님! 이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이들의 삶이 나아지고, 이 아이들을 통해서 필리핀이 온전한 복음에 임하게 하소서! 이 아이들을 사용하여 주소서!
점심을 먹고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판타카키였다. 마갈랑 시티의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화산 폭발로 인한 이주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복음의 수용성이 높아서 이국선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건축 중인데도 있었다. 이경철 선교사님은 이곳에 PAC 국립대학의 교수 한 분이 소유한 곳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분은 캐나다로 가기 때문에 이경철 선교사에게 소유한 600평의 땅을 팔려고 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한글, 태권도 등의 사역을 시작한다면 그 지역 복음화는 이주민의 복음 수용성의 특성상 쉬워 보였다. 우리 선교팀은 손을 맞잡고 뜨겁게 통성기도를 하였다. 우리는 그 교수님의 고구마와 열대과일을 접대 받고 돌아 섰다.
이제는 귀국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지프니 차량 때문에 귀국에 차질이 있을까 걱정 하는 사람이 생겼다. 저녁을 앙겔레스 시내에서 먹고 SM에 들려서 귀국 선물도 사야 싶은데 시간이 허락 되지 않았다. 우리는 시내 수퍼마켓에서 급히 물품을 구하고 돌아와 귀국을 서둘렀다. 아쉬운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각자 느낀 점들도 나누고 클락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경철 선교사님과 아쉬운 작별을 나눈 우리들은 모두 비행기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동안 자지 못하고 힘들었던 모든 것을 쓸어내리기라도 하듯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인 포근한 잠을 이루었다. 여호와 사파! 여호와 닛시!
하나님께서 수놓으신 뚜렷한 별들의 서막은 인천공항에서의 해단식으로 마감되었다. 그러나 승리케 하신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디에 가서 선교를 하든지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이 있고 방법이 생각날 것이다. 또한 많은 자들에게 간증하고 선교를 알려서 비전을 심어줄 것이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그 뜻을 이루신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그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드린다.
2011년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필리핀 단기선교를 분석해 보면 이렇다. 이 팀은 선교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골로새서 3장 12-17절의 말씀을 보여주었다. 이 팀의 여호와 닛시의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주를 힘입는 것이다. 12절은 오래 참음으로 옷 입으라고 말하는데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하고 겸손과 온유한 태도를 말한다. 우리 선교팀은 인내가 처음부터 끝까지를 지배 했다. 모두 잘 참아주었다. 늘 너그러운 마음을 유지하고 온유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리고 매일 찬양, 말씀, 기도를 매일 2회씩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시행하여 주님을 힘입었다(3:17). 우리가 주님을 힘입는 기도가 없었다면 인내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우리를 승리케 한 것이다.
둘째, 용서와 사랑이 있었다(3:13-14). 우리 선교팀은 늘 불평이 없었다. 늘 용서하고 사랑으로 껴안았다. 그래서 온전하게 매는 띠를 둘렀다. 우리 선교팀은 온전하게 매는 띠 없이 사역 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평강을 위하여 한 몸이 되었다(3:15). 우리 선교팀은 한 몸, 곧 한 공동체로 선교를 시행하였다. 선교는 한 팀이 바로 한 공동체이고 한 교회임을 보여준 것이다.
넷째, 말씀에 풍성히 거하였다(3:16). 우리 선교 팀은 매일 2회 말씀으로 무장하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지혜가 솟아나서 늘 웃기고 위트가 번뜩이고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매 시간 찬양으로 채웠다. 공항에 내려서부터, 늘 지프니 안에서 찬양 했다. 우리는 신령한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번 필리핀 단기선교팀 한사람 한 사람 모두의 열정은 누구 보다도 알아 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필리핀 단기 선교팀의 윤관석 팀장은 모두가 개인의 특성이 강한 팀원들인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소금과 윤활유의 역할을 다해 냈다. 시작부터 그가 없었으면 이번 선교는 없었을 것이다.
안희란 전도사는 누가 뭐래도 그 역할이 지대했다. 수화 찬양 뿐만 아니라 가장 솔선수범의 본을 보여 주었고 무슨 일이든지 가장 앞장섰다. 이번 선교의 핵심멤버이다.
전혜정 전도사는 남들이 싫은 일에 본을 부여 주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의 역할을 배 이상으로 해냈다. 그가 없었으면 우리가 힘들었을 것이다.
조옥순전도사는 HAVEN과 TABUN 지역에서의 찬양 인도에 탁월함을 발휘했다.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이 없는 우리 멤버에 귀중한 역할을 해 냈다. 생일이 이때 끼어서 우리 모두 덕 봤다. 맛있는 것 먹고, 멋진 추억 만들고 이러 일은 만들기도 어렵다.
김인숙 장로는 준비에서 시작부터 모든 일에 군말 없이 잘 따라가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큰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모습이라는 샘플을 잘 보여주었다. 준비 모임 때 사온 맛있는 것이 생각난다.
김덕화 전도사는 많은 위트와 재치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특별히 선교사님이 운전 중 졸지 않게 하는 특효약을 가지고 있었다.
최금숙 전도사는 갔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되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그가 남긴 선교헌금은 전도용품으로 귀중하게 쓰임 받았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리라 믿는다.
백석대학교신학대학원의 단기선교의 중심이었던 김은홍교수님과 선교 헌금해주신 임정택 목사님과 백석신학교 허은열 박사님, 그리고 KT 한 분에게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경철 선교사님!!
이번 단기선교를 이루기 위해, 우리 뒤에서 힘드셨을 텐데, 더구나 지프니 고장으로 속이 탔을 것이고, 운전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아무도 그 차는 운전해 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교사님의 모든 사역 중 월드비전센터 건축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고, 다음으로 타븐지역 교회 건축, 그리고 판타카키, 나머지 사역들이 차츰 진행되어서 미래 필리핀 영적지도자들을 키워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사님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살롬!!
첫댓글 자루 (윤관석 댓글입니다) 2011/03/02 10:38
이번 선교일정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신 하나님의 일정이셨습니다.
정말 바쁘신 일정 속에서도 영적 리더로서 누구 보다도 세심하게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살피시고 기도하시고 행동으로 본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꼼꼼하게 기록해 주신 교수님의 여행일지를 대하니 선교의 여정이 다시 눈에 선해집니다.
이것은 교수와 학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질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자루...배상
cos1409 (조욱순전도사님 댓글입니다) 2011/03/03 15:14
관용과 부드러움,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시고 주님의 뜻 안에서 행하시는 교수님의 은혜스러운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저는 지명과 이름 다 잊어버렸는데 새롭습니다.
항상 설교와 기도와 예배, 모든 일에 지도자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안고 다니셨을터인데 정말 좋은 지도교수님과 함께하여 더 성공적인 선교 여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sugar2 2011/03/08 16:25
단기선교의 은혜를 이번에 제대로 받고 언제나 우릴 실망시키시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감사할뿐입니다.교수님과 선교사님의 영성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팀장님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팀들 모두 많은 은혜의 체험이 될줄 압니다.선교는 가지 않으면 보내드려야 한다는 어느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다시한번 핀리핀 선교의 열정이 쭉 이여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