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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같이 먹자고... 자기가 전화하더라... 끊고 나서 점심 먹자고 그랬는데 처남이 하던 대로 하라고 했다고 중얼거리길래 냅 뒀어 (미안해! 전화 퉁명스럽게 받아서... 내가 요새 상태가 안 좋아. 집구석이 풍비박산 났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휴가는 잘 보냈나요? 한 달 전에 큰 매형이 두 번째로 전화 와서 지 아들 다루듯 해서 빡쳤는데 참고 그냥 끊었어. 내게 속 좁게 굴지 말라고 훈계하더구먼... 속 넓은 인간이 같잖은 소리 한 뒤로, 희정이랑 문자 나누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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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않은 막내의 모습에 복창이 터져, 속에 있는 말 다 해버렸다네. 서운했는지 그 이후에 연락이 두절됐고, 누나마저 연락을 안 하길래 뽁짝뽁짝 해서 누구 하나 걸리면 씹어 먹을 상황이었어요. 나는 매형들이 몇 달에 한 번 전화 와서 밥 먹자고 하는 속을 모르겠네... 형제자매는 물론 새끼들도 못 보고 사는데, 가게 문 닫고 두 매형 비위나 맞출 군번은 아니지... 몸이 자꾸 아파서 만약 지금 무너지면 난 못 살 것 같아. 당분간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각자 도생 하시길)(명옥/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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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터널을 통과 한 후에 보이는 건 다 빛이더이다. 생으로 60代 형제가 왜 죽었을까요? 제주 실종 여성이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거제/통영은 수해 복귀로 난리가 아닙니까? 에예공! 아비에게 인생이 만만해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맘만 먹으면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녹록지 않은 것이 인생이더라. 그렇지만 그게 절망이 아닌 다행이고 안심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고, 끝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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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할 때 내가 하는 짓은 여행-트래킹-먹방-쇼핑-수면 그리고 영화 감상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넷플릭스 쇼핑하다가 <화려한 휴가 2007>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20년 동안 5번쯤 본 영화인데 5.18관련한 어떤 영화보다 잘 찍은 영화(김지훈 감독)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6년 오늘, 5.18 헌법 수록/폠훼 문제로 여야가 해묵은 논쟁을 하는 가운데 이번에 보수의 전사 이진숙 의원이 극우 인사를 초청해 "5.18를 성역화시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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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을 공개하고 재조명해야 한다" 민주당과 5월 단체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나는 이진숙을 차기 대통령 감으로 봅니다만 5.18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제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라! 보수의 진보든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것만 보고 바리케이드를 쳐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진보 측에서도 토론하자는데 토론 좀 하고, 명단 까라는 데 못 깔 것 뭐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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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2007> 팔로 밀! 시원한 메타세쿼이아 길 위에 녹색 제미니 택시(김상경)가 지나갑니다. <택시운전사 2017>는 브리샤/송강호로 기억합니다. 이 길이 <겨울 연가 2002>이후 새로 만들어진 길입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전주나 남이섬에도 있는데 만약 담양이 원조라고 한다면, 이 길을 우리 국민학교 때 남은 묘목 없애려고 노력 동원으로 심었을 것입니다. 오른쪽에 문화재 석간당과 석탑이 있고 맞은편에 담양 군청, 직진하면 금성면과 가마골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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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녹색인 들판을 보니 국민학교 때 소풍 가다가 길가에서 삐비를 뜯고 남산에 토끼몰이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인트로에 <태양의 후예>와 흡사한 6H1H 시퀀스가 스릴-드릴-서스펜스의 블랙 홀로 빠르게 잡아 끄는 것 같습니다. 공수 특전사의 꽃은 점프(공중 낙하)입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다! 우리는 빨갱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할 것이다!" "우린 지금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시 담양에 11공수가 1977년부터 이전을 한다고 시끄러웠고, 간혹 밥풀때기 군인들과 선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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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레인이 있을 때마다, 군인들이 조심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17살 소년은 특전사가 별것 아닌 줄 알았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이놈의 택시는 입으로 엔진을 돌리나... 누군지 몰라도 동생도 되게 피곤하긋다) 너 아침에 설거지 안 하고 토꼈지(준기/상경)" "형님도 시간 내셔서 성당에 나오세요!(이요원)"동생을 데려다 주고 새로운 손님을 태웠습니다. "뭣헐라고...(괜찮아)용대씨! 그란디 뭔 냄시 안 나요?(아따 그것을 인자 맡았어야...나가 행수 좀 뿌렸제) 그 냄시가 아닌디... 워매 어쩐지 똥 밟아부렀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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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우리가 요렇게 헤어지는 것은 성급 하제(택배비 줬잖아)... 상관 안 하고 싶은데 똥칠을 해놨잖아... 폭력을 유발하게 하네(박철민/박원상)' "아짐! TV 좀 꺼주쇼!" 1980년 5월, 광주. 택시 기사 민우(김상경 )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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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다가오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니가 지금 중3 수준의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당게(61세,박철민)" "간 좀 봐라(맵고 짠 거 뻔한데 뭔 간을 봐!... 형 내 폼 어때?... 내일 우리 성당 야유회 가거든)(상경/준기)" "인기 절정 드라마 kbs '전설의 고향'이 방영 되것습니다. 막간을 이용해 시청료 징수 시간을 가질 테니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TV 보려고 평상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이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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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다세대 주택에서 주로 살았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열 살까지는 담양읍 지침 리 79번지에서 살았고, 중3 때까지는 천변 리에 있는 박금자네 집에서 살았지요. 지침 리 79번지는 신작로 쪽으로 삼거리 꼭짓점에 이발소가 있고 대문 옆에 영조네, 우리 집, 그리고 백미 아줌마네 집이 나란히 도로에 맞닿은 채 봉창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는데 홍신이네 이발소는 동네에서 제법 큰 이발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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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주인인 홍신이네 아버지는 주변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분은 뱀탕도 직접 끓여서 먹었고 땅강아지를 산 채로 다리만 씻어낸 후 씹어 먹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나는 이발소에 그냥 갔는데 꼰대 같은 아저씨가 영감처럼 기침을 해대며 머리를 잘라 주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나중에 돈을 주시기로 약속이 된 것일 겁니다. 집 주인인 영조 네는 농사를 꽤 많이 지었는데 우물이 있는 마당 한가운데 초가 한 칸 정도의 볏짚단을 쌓아 놓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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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짚단을 볼 때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볏단 뒤로 창의네 집 토방 마루가 전형적인 남향집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섯 집중에 매인은 창의네 집이어서 우리들은 그곳에서 주로 햇볕을 쬐거나 마당 한가운데 있는 대나무 평상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컸습니다. 성당 야유 회하는 날입니다. "안녕하세요! (낚시하러 간다더니...) 출발합니다. "사랑해요 민우씨(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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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직 공원의 회전목마가 보이고 난데없이 봉산면 논 길 사이로 탱크가 지나갑니다. "퇴근하시나 봐요. 마침 이 길을 지나가려던 참이었는데 타시죠. (하실 말씀이 있다면서요) 진우가요... 공부를 너무나 해요... 지나치다 싶게요(아니에요. 진우 성가대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그런데요. 부탁 하나 들어줘요... 문화생활 차원에서 극장 한 번 가줘요(상경/요원)" "너 사귀는 사람 아직 없지?(신랑감은 아부지가 구해주시기로 했잖아요)(안성기/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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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 극장에 '라스트 콘서트'...'로키 2'... (철민)' "자네 며칠 전에 공짜 손님 태웠나? 할머니 아들이 직접 찾아왔었어(안성기)" "사장님이 주신 하사금인디 얼릉 받어(철민)" "일요일인데 어디 나가냐! 데이트 있나 보구나( 아니에요) (아버지와 딸)"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계엄군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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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부터 시작된 패션 집착은 60 대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패션은 권력이다" 그날(1980.5.17) 하복을 찾아 돌아오는 길에 만난 시민 군 버스에 김밥과 요구르트를 넣어주던 담양 경찰서 장면이 이렇듯 생생해도 되는 줄 모르겠습니다. 기상하고 무려 4시간을 누워서 운동-강의-컨디션 조절을 했고 구리 시장에 탐브라운 재킷과 스톤아일랜드 팔뚝 소매를 수선하고 들어왔어요. 지나 주 동묘 나갔다가 탐브라운 4개, 스톤 1개를 득템했거든요. 패션은 포트폴리오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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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전 그날도 오늘처럼 날씨가 무척 더웠어요. 12시쯤 양각리에서 멱을 감았고 객사리 사거리에서 교복(제일 합섬)을 찾아 나오다가 담양 파출소 정문으로 돌진하는 버스와 만난 것입니다. 이후 휴교령이 내려졌고, 담양 특산물 딸기가 한 짝에 1500원, 배추 한 포기에 3000원에 거래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광주-비아-삼례- 장성에서 통학하던 친구들이 죽었고, 일도가 삼청교육대에 스타트를 끊었어요. 군사정권은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키치 아래 삼청교육대-리틀 순화 교육대의 피바람이 휘몰아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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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6주년 기념식>을 구 도청 앞에서 하는데 태극기가 붙어있던 그 장소가 보이스카우트 연맹 자리입니다. 마지막 시민 군이 이곳에서 최후의 결전을 끝내고, 앞마당에 태극기에 휘감긴 주검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입니다. 2026년 나는,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을 따라 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힌 옷 입은 무용수들이 추는 살풀이춤이 온몸의 솜털을 쮸뼛쮸뼛 세웠는데 영령들이 위로를 받았을까요?>>(계속)
2.
평범한 일상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 시작되는가, 아니면 밥을 먹고 연애하고 옷을 고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갑자기 파괴되는 순간 시작되는가? 그리고 46년 전의 기억을 오늘 다시 말한다는 것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인가, 현재를 책임지는 일인가? 글은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큰매형의 전화가 불편하고, 동생과는 연락이 끊기고, 누나마저 조용합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지금 무너지면 못 살 것 같다”는 생각까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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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분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글은 바로 그 고립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로 이동합니다. 이 연결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화려한 휴가』 역시 거창한 정치이념에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택시를 몰고, 동생을 걱정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극장에 가자고 어설프게 말을 건네고, 평상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역사가 들이닥칩니다. 역사는 언제나 역사책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1. 외로움의 터널을 지나면 왜 모든 것이 빛나 보이는가?
“외로움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 보이는 건 다 빛이더이다.” 이 문장이 이번 글 전체를 여는 열쇠 같습니다.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일상의 사물과 관계를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평소에는 당연했던 전화 한 통, 밥 한 끼, 가족의 안부가 관계가 끊어진 뒤에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사건이 행복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실의 가능성이 평범한 것의 가치를 발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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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는 깨달음은 반드시 절망은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인간은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됩니다. 타인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가족관계를 혼자 복구할 수도 없으며,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일종의 성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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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장기전이라는 것은 끝까지 악착같이 버티라는 말만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를 오늘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관계에도 휴지가 필요하고, 침묵도 필요하고, 때로는 거리가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각자 도생”은 최종선언이기보다 잠시 물러나는 문장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2. 『화려한 휴가』가 무서운 이유 ― 비극 직전까지 사람들이 웃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의 힘은 총격 장면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전이 중요합니다. 택시기사 민우는 동생을 챙기고, 신애에게 마음을 전하려 애쓰고, 사람들은 농담을 하고, 영화를 이야기하고,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평상에 모입니다. 아무도 자신이 곧 ‘역사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화의 잔인함입니다. 관객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압니다.그런데 등장인물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웃을수록 관객은 슬퍼집니다. 철학적으로 이것을 <사건 이전과 사건 이후의 비대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우리는 자꾸 과거를 결과에 맞추어 해석합니다. “그때 이미 조짐이 있었겠지.” 하지만 실제로 그날을 살던 사람에게 미래는 아직 열려 있었습니다. 1980년 5월의 어느 아침에도 누군가는 교복을 찾으러 갔고, 누군가는 데이트를 생각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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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장사를 했고, 아이들은 놀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평범함 속으로 국가폭력이 침입했습니다. 그래서 5·18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망자 숫자와 정치적 구호만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파괴되기 이전에 그들에게 어떤 일상이 있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3. 담양의 열일곱 살 소년과 ‘역사의 우연성’
여기에서 영화와 개인의 기억이 겹칩니다. 46년 전 하복을 찾으러 나갔던 열일곱 살 소년에게 그날은 처음부터 ‘역사적인 날’이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더웠고, 멱을 감았고, 교복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길 위에서 버스를 만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쉽게 필연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역사책을 읽으면 사건 A 다음에 사건 B가 오고, 다시 사건 C가 이어졌으므로 모든 일이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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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날을 실제로 살았던 사람에게 역사는 우연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바디우의 ‘사건’ 개념을 조금 빌려오면, 사건은 기존 질서 안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변화와 다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이전의 세계를 이전과 똑같이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아침에는 교복이 중요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는 군인과 버스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수십 년 뒤에는 그날 지나쳤던 장소와 사람들의 얼굴이 한 시대를 증언하는 기억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기억은 역사와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역사는 언제나 누군가의 사소한 하루를 통과해서 발생합니다.
4. 기억은 정확해야 하는가?
46년 전의 기억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고 해서 기억의 모든 세부가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은 현재의 나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됩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는 기억을 단순한 과거의 저장고로 보지 않았습니다. 기억에는 망각도 들어 있고, 해석도 들어 있으며, 현재의 관점도 스며듭니다. 따라서 개인적 증언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그것을 역사자료와 대조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태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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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존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검증해야 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버스의 위치, 물가, 친구의 죽음, 군부대의 움직임 같은 구체적 사실은 자료와 대조해볼 수 있습니다. 확인 결과 기억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날 느꼈던 공포와 혼란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5·18을 둘러싼 오늘의 논쟁에도 중요한 원칙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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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자체를 금지해서도 안 되지만, “질문할 자유”와 “검증된 사실을 아무렇게나 뒤집을 자유”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토론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토론은 양쪽이 똑같이 옳을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 앞에서 나 역시 틀릴 수 있다는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 오히려 이 문장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5. 진보와 보수보다 먼저 필요한 것 ― 오류 가능성
이 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살릴 만한 대목도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 보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순간 진보든 보수든 사유는 멈춥니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오류 가능성(fallibility)의 인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신념이 강하다는 것과 내 신념이 틀릴 수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충돌하면서도 상대를 제거하지 않고 증거·논증·절차를 통해 계속 수정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체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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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5·18 역시 성역화와 왜곡이라는 두 극단을 동시에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은 자료와 증언과 연구를 통해 계속 정밀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검증된 국가폭력과 시민 피해까지 정치적 취향에 따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재검토’와 다릅니다. 질문은 열어두되 사실까지 무한히 상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기억의 민주주의입니다.
6. “패션은 권력이다” ― 왜 참혹했던 날의 교복까지 기억나는가?
그리고 느닷없이 패션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을 빼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17일, 나는 하복을 찾으러 갔다.” 역사적 비극을 이야기하면서 교복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사소함 때문에 글이 살아납니다. 열일곱 살에게는 민주주의만큼이나 새 교복도 중요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그 시대의 인간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역사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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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고 싶었고, 멋있어 보이고 싶었으며, 친구와 놀고 싶었고,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 평범한 욕망을 폭력이 짓밟았기 때문에 비극인 것입니다. 따라서 “패션은 권력이다”라는 문장은 이번 연재에서 조금 더 발전시킬 만합니다. 푸코식으로 말하면 옷은 단순히 몸을 덮는 천이 아닙니다. 제복은 권력을 표시하고, 교복은 규율을 드러내며, 사복은 자기표현이 됩니다. 1980년의 군복과 열일곱 소년의 하복이 한 화면에 놓이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몸이 등장합니다. 통제하려는 몸과 살아가려는 몸. 그 대비가 강렬합니다.
7. 산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46년이 지나 기념식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살풀이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영령들이 위로를 받았을까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산 사람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기억은 계속 분노하기 위한 장치만은 아닙니다. 복수만을 위해 기억한다면 기억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제 오래됐으니 잊자”고 말하면 희생자의 죽음을 두 번 지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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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쾨르가 고민했던 것도 결국 정의로운 기억이었습니다. 잊지 않되 기억에 포로가 되지 않는 것. 용서하되 사실을 삭제하지 않는 것. 화해하되 책임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 것. 이 어려운 중간지대를 민주주의는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에서 중요한 단어는 어쩌면 산 자입니다. 죽은 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우리가 더 인간답게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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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족의 전화에서 시작해서 광주까지 갑니다. 처음에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가족 때문에 마음이 상했고, 뒤에서는 다시는 전화할 수 없는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두 이야기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이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며, 미안하다고 말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의 가장 큰 교훈은 거창한 이념에만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하루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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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민주주의의 목적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하루를 빼앗기지 않게 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택시기사는 택시를 몰고, 학생은 학교에 가고, 젊은이는 사랑하고, 열일곱 소년은 마음에 드는 하복을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평범함을 지키는 것이 정치이고, 그 평범함이 파괴되었던 날을 잊지 않는 것이 역사이며, 그 기억을 증오가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의 근거로 바꾸는 것이 산 자의 몫입니다. "역사는 위대한 사람들의 연대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 권리를 빼앗겼을 때 비로소 피를 흘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2026.8.26.wed.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