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해설사 1차 현장 답사를 다녀와서
지난 7월 4일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으로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3시간정도에 현장답사를 마치려고 하였기에 풍납토성을 모두 돌아 볼 수는 없었다. 경당지구 쪽으로 길을 잡아 약 50여m 정도 걸어 어느 한 곳에 멈추었다. 이 곳은 윤영선 선생님께서 지금의 이일을 시작하게 된 깊은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멋모르고 따라 걷던 나는 무심결에 풍납토성을 올려다보았다. 사진으로 보았고, 무수히 수업 중에도 들었던 풍납토성인데 이 날은 왠지 그 웅장함과 이 성을 쌓도록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 또 이 앞에서 백제를 쳐부수려 했던 고구려의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여 내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 곳에서 백제의 건국과 성장, 문화 등 백제에 대하여 전반적인 얘기를 들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경당연립지구로 향하였다. 시장 통을 지나 집들 사이로 그곳이 보였다.
이 곳에서 500상자 분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한다. 엄청난 유산이다. 또 인위적으로 깨어진 토기와 말머리뼈 특히 아래턱뼈가 출토되어 아마 이곳이 제사터가 아니었을까 생각되어진다. 그 시대에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드릴 수 없었음을 감안할 때 이 곳이 왕성이라는 사실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풍납토성은 평지성으로 판축법에 의해 축조되었으며 청동초두와 토관, 환호와 집자리 그리고 짐승얼굴 와당을 비롯하여 많은 와당이 출토되고 중국의 도자기 등이 발견되었다. 또 길이는 3.5km에 높이 15m정도, 그 밑면이 40여m에 달하는 토성이다. 이 토성을 쌓는데 100만 명 정도의 인원이 동원 됐을 것이라 하니 실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이러한 사실과 여러 가지 유물을 종합해 볼 때 풍납토성은 당시 한반도를 지배했던 백제시대의 궁성임에 틀림없다.
지하철을 타고 몽촌토성으로 향했다.
먼저 둘러 본 곳은 움집터 전시관이었다. 1호 움집터 위에 2호 움집터가 잔존해 있어 언뜻 보기에는 그 구분이 쉽지 않았다. 모양도 설명을 듣고 나서야 육각형인 것을 알았다. 집터와 분리되어 위쪽으로 저장구덩이가 보였다. 복주머니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안을 뻘흙과 식물유기체등으로 다져 물이 새지 않게 하고 마찰력을 좋게 해서 무너짐을 방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몽촌토성에서 31개의 저장구덩이가 발견되었다 한다. 또 소뼈로 만든 동물뼈 갑옷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비늘갑옷형태로 한 장마다 11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방어력은 약하지만 기동성이 높아 지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입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자리를 옮겨 몽촌토성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갔다. 가는 길목에 오래전부터 이름이 궁금했던 나무가 보였다. 나무에 달린 이름표에 ‘자귀나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오래된 숙제를 푼 것처럼 속이 다 후련해졌다. 선생님 중 한분이 말씀하시길 이 나무를 집안에 두면 부부금술이 좋아 진다한다. 아마 꽃에서 나는 달콤한 향내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풍납토성이 평지성인데 반하여 몽촌토성은 낮은 구릉에 쌓은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청량산에서 시작한 성내천을 해자로 이용하였다. 또한 이 곳은 4군데에 4~5m정도를 더 높여서 만든 망루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동, 남, 북쪽에 1개씩의 성문과 동북쪽 바깥에 외성을 쌓았다. 이 곳에 목책시설이 보이는데 모두 3군데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적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좀 취약한 곳에 설치한 것이다.
몽촌토성은 토성위로 주거지가 있었으며 주거지 안에서 불을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으므로 군사시설일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몽촌역사관으로 향했다. 서울의 선사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움집의 변천과 몽촌토성의 모형 그리고 풍납토성, 석촌동과 방이동 등 삼국시대 고분군의 모습과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와 신라의 이성산성,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금귀걸이, 금동신발, 신묘수 등과 일본에서 발견된 칠지도, 일본의 국보1호 미륵반가사유상등이 전시되어 있다.
백제는 가장 먼저 한강유역을 지배하였고 그로인해 빠른 문화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곳곳에서 찬란한 백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의 현장학습이 끝났다.
엄청난 유물과 그것을 발견하고 분류하고, 전시되기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물들이 만들어 지고, 지내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어쩜 이러한 것은 미려한 시작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첫 발을 내디딘 새내기처럼 마음은 한없이 설레인다. 또한 설레이는 만큼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역사란 상상을 잘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상상의 나래를 무한히 펼칠 수 있는 열의가 나에게 있기를 바라며 이렇게 나의 역사일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첫댓글 선생님이 새내기인줄 몰랐어요. 오래된, 친숙한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충분히 열의가 있어서 창조적으로 이 일을 즐기며 잘 하실 거예요. 계속해서 후기를 올려주세요.
감사해요. 그날의 답사기행을 생각나는데로 썼는데 이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도 정리가 되었어요. 지식이란 이렇게 흥미로운 건가봐요. 후후~~~
선생님! 후기 넘 잘 봤어요. 전 애석하게도 집안행사로 참석을 못했는데.. 마치 제가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이 다가오네요. 정말 열심이세요. 저도 더욱 분발해야겠네요. 자귀나무는 "합혼수,유정(有情)수"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자귀나무 잎의 팽압때문에 흐린날이나 비가 오는 날, 해가지면 잎이 접힌다고 하네요.^^ 역사의 현장에는 생태도 같이 자리하고 나무는 오래 사니까 그들이 역사를 우리 보다는 잘 알겠지요? 토요일에 만나요
안그래도 나무이름을 생각하며 왜 안오셨을까, 오셨으면 금새 의문점을 풀어주셨을텐데 했어요. 이번주 답사에서는 꼭 만나기를 바래요.
조용히 야무지게 활동 잘하시는 우리 선생님~ 위례역사문화연구회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실 거죠?
귀감이 되는 소감문이세요. 잘 읽었습니다~^^ 아이디만으로는 어느 분인지 모르겠네요. 낼 뵙겠지요. ^^ 내일도 기대되네요.
잘 보았습니다. 저도 어느 분인지 궁금했는데 이젠 알겠어요. 열심히 하시는 모습 멋지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