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진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말, 통도사
황화각 뒷마당 패엽실 앞에서였다. 통도사 강사로 있던 각성
스님을 찾아왔던 스님이 내게 "각성스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각성스님은 이미 금산사로 떠난 뒤였다. 나는 이미
그 스님이 통도사를 떠나 계시지 않는다고 말해 주면서, 혹
스님이 호진스님이 아니냐고 물었다. 스님은 자기를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 전에 불교신문에서 스님에 관한 기사를 두어 번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스님 두 분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가게 되었다는 기사와 그 후 7~8년
이 지나, 스님이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는 기사
를 본 적이 있어 호진스님의 인상을 조금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물어 보았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스님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최고
엘리트 스님임에도 내전(內典) 공부를 더 하려고 강원에 방부를 알아보러 왔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 나는 호진스님으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대학 교수를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내전 공부를 더 하려고 강원에 방부를 들이
러 왔다는 사실이 스님에 대한 이미지를 너무 좋게 각인시켜 주었다. 이것을 계
기로 나는 스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조금씩 친분을 맺게 되었다.
내가 통도사 강사를 하면서 학인들에게 특강을 할 때 스님을 여러 차례 초빙했
고 스님이 중앙승가대학 초창기에 잠시 근무할 때, 좋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서울을 찾아간 일도 있었다.
계 의식 않으면서도 온전히 실천.
밤새워 연구하고 후배들 보살펴...
한국불교 희망燈 밝히는 ‘참 선배’
스님은 내게 참으로 좋은 선배다.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가 아니라, 승납과
세납에서 나보다 댓살 위인 스님은 내가 절 집안에 들어와 만난 사람 가운데
후배에게 가장 모범이 될 만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훌륭한 스님이다. 우리
시대의 사표가 되는 스님이다. 스님에게서 느낀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
었지만 무엇보다도 스님은 투철한 면학정신과 함께 한시도 스님으로서의 품위
를 잃지 않으면서 너무나 순수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점에
서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정직하고 소박한 인품은 승납이 조금 많은 사람들이 갖는 스님의 아상, 곧 속된
말로 ‘중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언제나 자상하고 겸손한 자세로 사람사이에 거
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점이 마음에 들어 스님과 더욱 친해졌다.
경주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가끔 찾아가 스님을 만나게 되면 교수 연구
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다, 라면 등으로 간단히 공양을 때우고, 낡은 소파에서 잠
을 자며, 밤을 새는 등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 모습에 같은 스님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 출신의 학덕 높은 스님이 때로는 우리 같은 사람
에게 한역 경전의 뜻을 겸손하게 묻기도 했다. 우리 승가에 불교의 참정신의 내
실화가 시대풍조 때문에 퇴영되고 있는 불우한 환경을 의식할 때마다 스님을 생
각하면 새로운 용기나 나고 희망적인 밝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님은 일면 너무나 소탈하여, 체하는 가식적인 모습이 전혀 없다. 스님은
기성세대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아류에 치우친 생색내는 마음이 전혀 없다. 예를
들면, 스님은 계율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5 계를 거의 완전하게 지키며 생활하
고 있다. 율사연하지 않으면서 순수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언제나 자기 처신을
분명하게 하고 남에게 폐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워낙 욕심없는 분이라 시주 신세지는 일은 꿈도 꾸지않는 스님이고, 옷 한
벌로 10년을 족히 입고 지내는 분이다. 젊은 후배들의 공부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고 격려해 주며 언제나 친절을 베풀어 주는 스님의 모습이 너무
좋아 나는 내 상좌 보고 "너도 호진스님 같은 사람이 한 번 되어 보라"고 말한 적
도 있다.
--- 지안스님/ 승가대학원장 [불교신문 2282호/ 11월29일자]---
첫댓글 _()()()_
존경 받아 마땅하신 스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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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