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둥글 참 잘 사시네요/ 귀룽나무
최정희(할수)
폭우가 쏟아진다.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산림문화전시관으로 몰려온다. 산림문화전시관 안이 사람들의 발소리로 시끄럽다. “너무 많이 쏟아진다.” “언제 그칠까?”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전시관 입구에서 서서 어두컴컴한 바깥을 내다본다. 잠깐 사이 산책로가 개울로 변한다. 개울물 위로 빗방울들이 퐁퐁 퐁퐁 떠내려온다.
우산을 쓰고 새로 생겨난 개울물을 걷는다. 바지가 빗물에 젖는다. 무궁화원과 습지원 사잇길을 걸어가니 빗물 속에 둥글고 까만 것이 떠내려온다. ‘이게 뭐지?’ 주위를 살펴보아도 알 수 없다. 빗물 속을 뱅글뱅글 돌면서 굴러 내려오는 까만, 그것들의 실체를 알기 위해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무궁화, 원추리, 비비추 또 무궁화, 자주목련, 그다음에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가 서 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연두색 이파리를 틔워 올리는 나무. 가지 끝에 자잘하고 하얀 꽃을 피워 하얀 뭉게구름을 연상케 하는 나무. 지금은 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이 나무의 이름은 귀룽나무다. 빗물에 떠내려오던, 까맣고 둥근 그것은 귀룽나무 열매였다.
식물은 씨앗을 멀리 떠나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그 이유는 어미 식물 주위에 어린 식물이 빽빽이 자라나면, 햇빛도 부족하고 한정된 영양분을 나눠 먹어야 해서 제대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도 산불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가까이 붙어살다간 도망갈 수 없는 식물은 몰살하게 된다. 이럴 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식물은 살아남을 수 있다. 식물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단풍나무는 바람에 잘 날아갈 수 있는 얇은 막 같은 날개를 만들었고, 도깨비바늘은 갈고리바늘을 만들어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잘 붙게 하여 멀리 퍼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귀룽나무도 씨앗을 가능한 한 멀리 떠나보내려고 열매를 둥글게 만든 것이다. 둥근 열매는 비탈길에서는 굴러 내리기 쉽고 비가 내리면 빗물에 떠내려가기에 좋다.
오래전에 지인들과 식사를 하던 중 한 사람이 내게 “둥글둥글 사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그 사람이 “둥글둥글 사세요.”라고 한 말의 뜻은 술과 육식을 하지 않는 내게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때 불쾌했던 감정이 일어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말로 대꾸를 했는지도 기억이 없다.
“둥글둥글 사세요”라고 말한 그 사람의 속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고기와 술을 먹지 않는 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 사람은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어주는 것이 둥글둥글 사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타인에게 “둥글둥글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다름을 틀린 것으로 착각하고 하는 행동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라는 말을 그럴듯 하게 포장한 말일뿐이다.
이 말에는 “너는 모난 사람이다. 너는 잘못 행동하고 있다. 둥글둥글 사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 포함되어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와 존재를 대놓고 무시하는 말이다.
둥글둥글 사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둥글둥글 사세요.”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둥글둥글 사세요.” 말한 그 사람은 자신은 둥글둥글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 말로 인해 도리어 내게 자신에게 난 '모'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둥글둥글 살려고 노력해요”라고 말할 순 있지만, "둥글둥글 살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사람마다 둥글둥글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기준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이 둥글둥글 산다고 생각하며 한 행동인데 상대방은 그 행동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바로 내가 지인들과 식사하면서 겪은 일이 그렇다.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이 둥글둥글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둥글둥글 사세요”라는 말은 내 삶의 방식을 버리고 술을 마셔주고 고기를 먹어주는 것일 테고, 어떨 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교통 신호를 어기는 행위 같은 작은 불법을 함께 하자는 것일 수도 있고. 더 큼지막한 불법에 가담하자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리저리 둥글둥글 살다가 너무 멀리 굴러간 사람들이 ‘ㅇㅇㅇ씨 구속’이라고 뉴스에 나오는 건 아닐까.
귀룽나무의 둥근 열매는 어미 나무로부터 떨어져 멀리 갈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멈춰 뿌리를 내리고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처럼 둥글둥글한 것이 식물이나 사람에게도 좋게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
둥글둥글 산다는 말은 꽤 멋있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너무 맞추다가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짜장면을 시킬 때 내가 짬뽕이 먹고 싶으면 짬뽕을 시킬 것이다. 맘이 졸아들어 원하지 않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고 싶지 않다.
이게 ‘모’라고 한다면 나는 ‘모’가 있는 사람이다. 나의 이런 ‘모’로 인해서 예상치 못한 시각이나 장소에서 멈추게 된다 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이 정도의 모’는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말한 둥글둥글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내게 “둥글둥글 사세요.”라고 말한 그 사람에게 “당신이나 둥글둥글 잘 사세요.”라고 말해 주고 싶는 걸 애써 참는다.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바꾼다. "당신은 참 둥글둥글 사시네요."
첫댓글 최정희 선생님
말이 좋아 둥글둥글이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어릴때 부터 모가 나서는 안돤다고 부모님에게
들으면서 살아 왔지요
때와 장소에 따라 나하고 다르다고
싸잡아 모가 난가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훈이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필을 빕니다
네^^ 감사합니다.
둥글둥글한 것이 어떤 상태인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죠. 자신의 마음에 들면 둥글둥글하다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났다고 하기가 쉽지요.
고마워요
스크랩이 안되네요
될 수 있도록 하면 안될까요?
내가 다 못 몲깁니다
스크랩이 가능하게 설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