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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ch Vally과 Eifel Lake 갈림 길에 선 필자와 이상열 회원 |
이 야영장은 ‘셀프 레지스트레이션’(self-registration). 즉 관리인 없이 이용자가 스스로 캠프장 사용 등록을 하고 요금도 내는 곳이다. 우리는 캠프사이트를 정한 뒤 무인(無人)관리함에 자진 신고하였다. 캠프장 요금은 10캐나다 달러(약6,100원)이며 모닥불까지 피울 경우는 13캐나다 달러다. 사용 시간은 그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각 캠프사이트별로 가까운 곳에 모닥불용 장작이 잘 정돈되어 있다. 저녁을 먹은 후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다음날의 등반계획을 김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텐트를 두 동 쳐 놓았으나, 청명한 날씨도 날씨려니와 은하수를 비롯한 대자연의 신비로움 속에 도취되어 식탁 위에서 비박을 한 사람도 있다. 8월13일 새벽 4시 모두 일어나 약 1시간에 걸쳐 아침을 들고 약 40km 떨어진 Vally of Ten Peaks로 향하였다. 이른 새벽이라서 그런지 도로에 차가 전혀 다니지 않았다. 계곡 길을 꼬불꼬불 차로 40분 달려 모레인 호수(Moraine Lake)주차장에 도착했다. 오전 6시경이었다. 각자 장비 간식 등을 챙긴 뒤 나머지는 차량에 놓아두고 작은 배낭에 넣었다. 6시20분 해발 1,888m인 모레인 호수를 떠났다.
트레킹 중인 산바라기 회원들 맨 앞이 필자 |
모레인 호수 옆으로 가다가 구불구불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해발 2,241m지점의 라치계곡(Larch Vally)과 아이펠 호수(Eifel Lake)갈림 길목에 다다랐다. 어제 설친 잠 탓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고 나니 그 동안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났을까. 해발 2,300m지점에 다다랐을 때 빙하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 물이 보인다. 여기에서 식수를 수통에 담은 다음 얼굴을 적시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올랐다.
캐나다인 두 사람이 우리 앞을 지나간다. 아주 건장한 남성들로 나이는 중년이 넘은 듯싶다. 부지런히 평지를 걷다 보니 그 높은 곳에 아주 작은 미네스티마호수(Minnestimma Lake)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만년설이 뒤덮인 산봉우리들과 능선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Minnestimma Lake와 텐피크의 위용 |
쎈티널 패스에서 본 그랜드 쎈티널 |
너덜지대를 오르는 박기정씨와 경환군, 경환군의 아빠 김상율씨 |
비로소 만년설을 밟으며 쎈티널 패스에 도달했다. 표고 2,611m인 이 고갯마루에는 사람들이 쉬어간 흔적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상한 느낌이 머리를 스쳐간다. 이것이 비로소 고소증의 징후인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주위에는 그야말로 웅장하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로키의 절경이 펼쳐진다.
페이봉(Mt.Fay 3,234m), 바벨봉(Mt.Babel 3,101m), 리틀봉(Mt.Little 3,140m), 볼렌봉(Mt.Bowlen 3,072m), 페렌봉(Mt.Perren 3,051m), 알렌봉(Mt.Allen 3,245m), 투조봉(Mt.Tuzo 3,424m), 델타폼봉(Mt.Deltaform), 넵튜악봉(Mt.Neptuak 3,237m) 등 3,000m급 준봉들은 태고의 신비 자체를 안고 솟아 있다.
휴식을 마치고 템플봉(3,543m) 정상을 향해 전진을 거듭함에 따라 고산증 징후는 점점 심하게 나타난다. 10분 정도 걷고 5분 쉬고 하기를 수십 차례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귀찮게만 여겨진다. 로키의 거대한 바위들이 만년설과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너덜을 이룬 곳은 정말 걷기 어렵다.
(사진5: 너덜지대를 오르는 박기정씨와 경환군, 경환군의 아빠 김상율씨)
어렵다.
중학교 1학년생인 경환군은 힘이 다한 모양이다. 정상을 300m 남겨놓고는 도저히 못 올라가겠다고 아빠인 상률씨에게 하소연한다. 아빠가 산사람 기질을 십분 발휘 정상까지 도달시키고자 노력을 하건만 경환이가 이제 더 이상은 못 가겠단다. 결국 뒤에 남은 경환이에게 배낭을 맡기고 정상을 향했다. 정상으로 가는 동안 단단히 굳은 만년설과 커니스 등 위험한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위험지대를 지날 때마다 조심하라며 김선생님은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정상부의 커니스 |
정상에선 필자 |
정상에서 만남 외국인(현지 하이커)과 기념 촬영 |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였다. 7시간이 걸렸다. 도착하니 일행 중 박기정, 김휘씨가 회기를 정상에 꽂은 다음 자일로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외국인들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른다. 정상의 날씨는 영하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엄습하는 한편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또한 정상의 커니스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금이 가 있다.
템플봉 정상에서 바라본 로키의 수많은 연봉들 남쪽으로 아씬보인봉의 파노라마. 서쪽으로는 부가부 산군과 파노라마. 북으로는 롭슨봉과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카나나스키 컨트리의 수많은 연봉들이 펼쳐진다. 그 아래 펼쳐지는 대자연의 조화… 언제 우리가 이곳을 또 오를 수 있을까. 정상에서 40여 분을 머무르며 사진을 찍고 힘들게 지고 온 배낭의 먹을 것들을 뒤져 서로에게 권하기도 했다. 추위에 다소 떨리는 몸으로 간식을 마친 뒤 ‘한국의 산바라기팀이 왔다 간다’는 내용을 적어서 정상 기록함에 넣었다.
템플 하이킹 루트 중에 나타나는 크럭스 부분 |
오후 1시20분에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을 시작하니 그렇게 지끈거리며 아프던 머리가 언제 그랬었냐는 식으로 싹 가시는 것이 아닌가? 참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단 한 점의 구름도 없는 청명한 일기가 계속된다. 경환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하산을 재개했다. 오히려 등반하는 것보다 하산이 더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편석으로 이뤄진 모레인
지대의 길이다.
미네스트마 호수에 이르니 처녀 1명이 전라의 몸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아까 정상에서 만난 여자다. 그 여자는 가무잡잡한 살결에 몸매도 늘씬하다. 나는 눈이 나빠 자세히 살피지 못했지만… 그 호수에서 땀을 씻은 후 하산하니 얼마나 발길이 가벼운지 모른다. 4 시간 만에 하산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우리 일행은 모레인 호숫가에서 잠시 머물다가 ‘세계 10대 절경중의 하나’ 라고 캐나다인들이 자랑하는 루이스 호수와 샤토(Chateau)호텔을 구경한 뒤 모스키토캠프장으로 차를 달렸다. 그 유명한 알버타주의 소고기스테이크와 모닥불이 기다리는 우리의 보금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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