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있어 ‘직역’과 ‘의역’의 정의
번역에 있어 ‘직역’과 ‘의역’의 정의 자체를 혼동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교과 과정 중에서 잘못 전달된 부분도 있고, 나도 이 개념의 정립이 확실히 된 게 그리 오래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엄청난 오해다.
흔히 직역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라고 착각하고 의역을 ‘원문에 충실하지 못 한 번역자의 애드립’ 정도로 착각한다. 하지만 큰 오해다. 번역이 오로지 의역만으로 구성된다는 건(또는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대참사다.
직역과 의역의 정의를 제대로 잡는 게 우선이다. 학창시절 배울 때처럼 딱딱하고 의미와 상관없이 영문과 한글 1:1 대응, 즉, 글자그대로의 뜻과 배운대로의 문법 어순과 특정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얽매이는 것은 직역과 의역의 구분을 떠나서 이미 번역이 아닌 단순 ‘독해’에 불과하다. 직역이란, 원문의 내용 자체엔 변화를 주지 않되 표현과 구성 등을 대상 언어에 알맞게 손 보아 완성해내는 매끄럽고 현장감 있는(즉, 업계에서 실제 사용되며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우리말) 번역을 의미한다. 반면에, 의역은 다소 유동성/융통성을 발휘해서 아주 약간의 부분에 한해 과감히 원문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나 색상의 표현으로 재편곡/각색 해내거나 가능한 부분을 생략하고 필요한 부분을 추가하는 작업이 의역인데, 이런 의역 시에 주의점은 적절한 부분에 대한 의역은 좋을 수도 있으나 자칫 원문, 원작자 의도, 전문 지식 등을 왜곡하면서까지 과도한 융통성을 넘어선 ‘독선과 자만’을 추가하는 의역은 삼가야 한다는 점이다. 의역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의역은 많은 시간에 걸쳐서 번역자 본인이 경험과 노하우로 검증하여 확신이 있을 때나 결코 원문에 미미하게라도 왜곡을 주지 않음이 분명할 때 정말 극소수의 부분에 한해 매우 조심스럽게 첨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역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독해’ 특히 그 중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 자주 듣게 되는 ‘직독직해’ 말그대로 ‘리터럴(글자 그대로, 1대1로)’한 해석에 불과하다. ‘직독직해’와 ‘직역’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극과 극의 용어다. 실제로 대다수의 번역은 직역이며 또한 직역을 위주로 해야만 한다. 의역은 나름의 시간에 따라 누적된 경험과 확신에 따라 심사숙고해서 넣어야 하는 복어 독과도 같은 존재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웬만해선 독이 된다. 따라서 웬만하면 ‘매끄러운 직역’을 하는 것이 최선이며, 본인의 실력과 경험에서 확신이 있는 부분에 한해서만 미량의 의역을 첨가하는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급자(독해) -> 중급자(직역) -> 고급자(직역 위주 + 미미하고 정확한 부분에 한한 의역)
[비창작 == 직독직해]
[창작 == 직역 또는 직역에 첨가한 약소한 의역]
창작이라고 해서 원문에 없는 내용을 지어냈다는 뜻이 아니다. 직역의 의미 자체가 독해와 달리 매끄럽게 다듬어지고 번역자만의 우리말 문체나 표현이 베어 나온 번역을 뜻하기 때문에 번역을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원문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표현이나 문장 구성의 변주를 통한 미묘한 느낌이나 분위기의 차이를 구현하고 생성하는 ‘직역’은 명백히 창작 행위기 때문이다.
좀 더 쉽고 확실한 구별 이해를 위해 예문을 들어야겠다. 아주 적절한 예문은 평소 번역하다가 자주 눈에 띄는데, 꼭 이렇게 정식으로 글에 사용하려 할 땐 그런 적절한 문장이 발견되지 않는다.
Cabbage and radishes are two vegetables in kimchi. ‘무’와 ‘배추’는 김치 안의 두 채소다. (글자그대로 = 독해 = 번역이 아님)
Cabbage and radishes are two vegetables in kimchi. ‘무’와 ‘배추’는 김치의 재료로 쓰이는 채소다. (‘채소’를 강조, 원문충실 = 직역)
Cabbage and radishes are two vegetables in kimchi. 김치에 들어가는 채소로는 ‘무’와 ‘배추’가 있다. (‘무, 배추’를 강조, 약한 의역)
Cabbage and radishes are two vegetables in kimchi. ‘무’와 ‘배추’는 김장의 필수 요소다. (강한 의역)
물론 위 문장 중 두 번째는 앞뒤 문맥에 따라 직역문이 달라질 수 있지만(예: 채소를 강조하지 않고 단순히 재료라는 사실만 전달하면 될 경우엔 ‘채소’를 빼고 그냥 ‘무와 배추는 김치의 재료다’라고만 하는 것이 더 좋다), 아무튼 위 두 번째 문장은 ‘채소’라는 단어가 반드시 표현돼야 할 때의 번역문 예다. 세 번째 문장도 앞뒤 문맥에 따라 채소가 강조돼야 했으므로 결국 오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실 아주 적절한 예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전달이 확실히 안 될 수 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감이 올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제대로 된 정의의 직역을 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번역이 아닌 독해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문의 핵심이나 강조사항 등을 꿰뚫은 다음 그것을 흔한 한국어 표현에 맞게 매끈하게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심한 왜곡을 불러오는 의역보다는 차라리 독해가 훨씬 낫긴 하다. 그만큼 의역을 넣을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확신과 절대-믿음이 없다면 함부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위험한 폭발물이자 경우에 따라 오역의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출처: http://www.gtport.com/1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