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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대담 / 세종 600년과 한글 컴퓨터 시대
*출전: 허웅·박성래(1997). 이어받아야 할 세종의 전신, 이루어야 할 한글의 세계화. <문화예술(월간)> 3월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일 시 : 1997. 2. 14(금요일) 3시
장 소 : 한글학회 사무실
대담자 : 허 웅 / 한글학회 회장
박성래 / 한국외국어대 교수
박성래 선생님께서는 평생 한글 발전을 위해서 일해 오시고 이바지한 바 크십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컴퓨터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저만해도 인터넷을 많이 쓰고 있는데, 쓰다보면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지 않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신문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근래에 소프트웨어를 집어넣어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 말은 소프트웨어가 들어있지 않아 글자가 깨져서 나옵니다. 그때마다 치환해서 볼 수는 없고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저는 한글 분야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럴 때 한글을 전산화 시대·정보화 시대에 맞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합리적인 안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며칠 전 신문에서 선생님께서 인터뷰하신 내용 중 우리 음운법칙에 맞춘 우리나라 로마자 표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전산화 시대에 우리말을 어떻게 표기하는 것이 옳은지 말씀해 주십시오.
허웅 지금 로마자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로마자 표기라는 것이 외국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한 것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외국사람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사람들을 편리하게 하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로마자를 쓰고 있는 많은 나라들, 가령 영국, 불란서, 독일, 이태리, 스페인,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동구권들을 보면 각자 쓰는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만 영어식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기반을 두고 우리말의 정확한 조직을 파악한 후 로마자를 쓰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우리는 우리말에 기반을 두고 로마자를 이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절대로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박성래 저도 우리나라 문화를 영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알파벳만 가지고 표현하는 것만 일관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웅 우리나라에는 외국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의 나라에 오는 사람이 불편을 꺽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 주로 일본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자기들의 한자로 표기해 놓지 않아 불편하다. 일본말로 쓰여진 간판이 없어 불편하다는 등, 하지만 불편한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에겐 어떻게 보면 이곳이 자기들이 살던 곳이라는 잠재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사람이 불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박성래 맞습니다. 그 문제는 적극적으로 고쳐 나가야 합니다. 저는 음운학은 잘 모르지만 영어로 우리말을 표기하는데 무조건 우리 스펠링대로 영어로 표기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졁을 t로 하고 鑁을 d로 표기하고, 읽기도 같은 방향으로 하는 겁니다.
허웅 과감하게 우리말의 소리구조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문자만 빌린 것입니다.
박성래 일본과 중국은 통일된 안을 쓰고 있는데 우리만 중구난방입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겠습니다.
허웅 로마자로 적어야 할 필요성이 많아짐에 따라 통일할 필요도 많아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자 쓰는 원리부터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로마자 문제뿐 아니라 다른 문제도 그러는데 소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은다고 하는 경우 각계각층의 사람을 모아 놓아야 말썽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든 위원회를 보면 전문가는 물러앉아 있고 그 외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발언을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병폐 중 하나입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전문가가 앞서나가야 합니다.
박성래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영어 알파벳을 가지고 우리 의사를 로마자로 표기해서 E-mail이나 팩스로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 알파벳을 치면 저쪽에서 보았을 때 우리말로 바꾸어 표기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영어로 치면 우리말로 환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자판도 우리말의 영자 표기가 통일되어야 하지요, 또 자판도 통일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
허웅 남쪽에서 컴퓨터 자판은 통일이 되어 있는데 북쪽에는 다른가 봅니다. 자판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5년 동안 컴퓨터를 치고 있습니다. 이미 내 손에 자판이 익어 있는데 한 군데라도 자판이 달라진다고 하면 아예 컴퓨터 할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판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성래 마침 금년이 세종 탄신 600주년이고 또한 문화 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세종의 역사를 다시 기리고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한글학회에서는 금년에 세종 600년과 연계하여 어떠한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
허웅 요즘 '세계화 물결'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계화 물결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화라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것 특히 미국 것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쫓아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어 조기교육이다 뭐다 하고 있고 교육개혁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어는 제1외국어가 아니고 제2모국어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모국어는 모국의 언어인데 그러면 우리나라의 제1모국은 한국이고 제2모국은 미국이란 말입니까 ? 교육개혁을 하겠다는 책임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세계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것을 외국에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국사람들이 우리말과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특히 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은 2, 3세만 되면 우리나라 말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일본사람과 중국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을 위한 한글학교가 많이 있는데 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한국말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한국말을 써야하는가 하는 정신적인 자세와 한국말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모임을, 금년 여름방학중에 '연수회'라는 이름을 붙여 가지려고 합니다.
두 번째로 외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전공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과 우리나라 국어학자와 최근의 연구성과를 우리나라안에서 의견을 교환해 보자는 취지로 국제 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서 대학의 '조선어과'를 '한국어과'로 고쳤습니다. 제일 먼저 고친 곳이 상해 외국어대학교인데 상해 외국어대학교와 한글학회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중국에 있는 여러 한국어과 학생과 한국어 웅변대회 공동주최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글이 어떻게 생겼는지 외국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몇 일전 이태리 국립방송국에서 한국을 취재하러 왔는데 그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글을 훌륭한 글자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좋은 글자냐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적어주니 좋아하면서 가져갔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사람들은 한글의 존재 여부도 모릅니다. 한글의 역사, 원리를 보기 쉽도록 판넬을 만들어 외국에서 전시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금년에는 LA에서 문화부의 양해를 얻어 신문사와 힘을 합쳐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성래 다른 기관에서도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과학사 분야에서는 아무런 행사도 없습니다.
허웅 세종 600년이라고 하면 세종의 위대한 업적을 선양하기 위한 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우리 같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분의 업적이라는 것은 과학적인 면에서도 굉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성래 세종 시대의 과학이 세계최첨단이라고 봅니다.
허웅 음악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로는 세종이 「정간보」라는 악보를 직접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한글 창제도, 지시한 것만이 아니라 본인이 실제로 알고 관여한 것입니다.
박성래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웅 '세종 문화의 재조명'이라는 책에서 보니 국토관이 그때 비로소 확립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관이 그때에 정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이렇게 보면 그분께서 우리 역사 발전에 미친 영향이라는 것은 정말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적인 면에서는 세종 600돌을 기념하는데 좀 소홀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성래 실제로 한글 하나만 가지고도 다른 모든 부분을 뒤덮을 만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한글을 지켜온 학자도 계시고 우리나라 정서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글은 한글학회라는 기관이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장영실과 측우기가 조금 알려졌을 뿐 한글학회 같은 힘이 있는 모임이 없습니다.
허웅 역사를 얘기하시니까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저는 가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두뇌활동은 어떤 때는 샛별처럼 빛나는 독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뒤에 오는 사람들이 이어받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발전시키기는커녕 이어받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 빛나는 별이 한 번 반짝 빛나고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후손들이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 현대문명에 줄을 이어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섰다고 큰소리를 쳐보는데 세계 역사가들은 구텐베르크에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한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한글이 되살아났지만 500년 역사를 보면 지식인들이 한글을 계속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유명한 학자 중에는 한글을 몰라서 아내에게 한글편지를 읽어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충무공의 거북선입니다. 그 함대는 그 당시로 봐서 세계 어느 해군으로도 당할 군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쇠퇴해서 조선말기에 가서는 해군은 전무했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성래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해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정도 앞선다는 사실은 그 동안의 노력으로 이제 서양의 큰 책이나 박물관에 가서 보면 조금씩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네스코에서 1997년에 회의를 하는데 중국학자가 우리나라 국보인 다라니경을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온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처음에는 목판인쇄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770년경에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6년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오는 바람에 세계 학자들이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인쇄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자 중국사람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우리나라 신문에 알려진 것입니다. 그들의 근거는 당나라 때 측천무후라는 여자가 만든 한자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쓰였다는 것입니다. 당나라 때 잠시 지배한 측천무후가 만든 한자를 신라사람이 왜 사용했겠냐는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맞는 얘기인 것 같지만 저는 반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측천무후의 제도를 따랐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695년에 측천무후가 역법을 고쳤기 때문에 신라도 역법을 고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때 한자를 사용했다는 것도 증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허웅 측천무후가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글자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지키려면 역사공부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서지학자가 없습니다. 서지학회라는 이름이 있기는 한데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것은 우리 문화를 담아놓은 그릇입니다. 책에 대한 철저한 서지학적인 검증 없이 우리가 우리의 과거 역사를 공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학사나 서지학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박성래 서지학 분야의 학자들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과학사도 다라니경뿐 아니라 인쇄술 자체가 점점 중국사람이 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목판인쇄물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 기분 나쁜 것입니다. 중국사람들은 과학기술사에 굉장히 열심입니다.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원리가 과학주의에서 나오기 때문이지요. 공산주의는 과학주의의 최첨단 이론이고 중국이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을 버리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 이러한 사상적인 틀에서 보면 중국역사가 상당히 발달했는데 다만 부족한 것이 힘입니다. 경제력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구요. 이것이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경제가 나아지면서 중국이 자신감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사람들이 그들의 역사를 볼 때 중국의 역사가 항상 앞섰는데 최근 200∼300년 동안 앞서지 못한 것입니다. 이기간이 바로 서양이 과학기술사로 앞선 기간입니다. 그런데 프란시스 베이컨은 근대화의 근본원동력을 얘기할 때 화약, 나침반, 인쇄술을 꼽습니다. 중국에서는 여기에 4대 발명으로 종이를 덧붙입니다. 따라서 화약, 나침반, 종이는 중국 사람이 먼저 발명한 것이 명백한데 다만 인쇄술이 걸리는 겁니다. 인쇄술이 중국역사의 고유한 분야라고 해야 하는데 한국의 목판 인쇄물, 금속활자가 중국보다 앞선다고 세계가 인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허웅 그런 점에서 우리 역사를 지키는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세종, 세조 때 불경번역을 인쇄해 놓은 것을 보면 목판이나 활판의 글자체가 매우 정교합니다. 그뿐 아니라 종이를 다듬이질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발달했던 기술이 후대로 갈수록 종이도, 활자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 옛날 책을 보고 어느 정도 오래된 책인지를 판단할 때 활자의 정교함과 종이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대로 갈수록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은 우리뿐입니다. 그 방면의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물론 자연과학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나라 과거를 빛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박성래 종이 말씀을 하시니까 생각이 나는데 다라니경의 최종판정은 종이를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당나라 종이와 신라종이가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는 사람만 나타나면 그것이 제일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옛날 종이를 연구한 학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라니경의 종이가 너무 낡아서 복완을 했을 때 그 작업을 일본전문가가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로는 다라니경이 신라의 종이 같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가지고 국제학회에 나서기는 무리가 있고 결국은 우리도 종이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하나 중국사람에게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측우기입니다. 그들은 측우기를 자신이 만들어 한국에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기상사'라는 책의 표지에 아예 우리 측우대가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역사에는 자기들의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근거는 측우기에 쓰여있는 '건륭경인오월조'라는 글인데 여기에서 '건륭'이 청나라의 연호라는 것입니다. 서양사람은 중국말은 열심히 배우지만 한글은 배우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중국문헌을 읽게 되고 그것을 따르게 되니 서양 책에도 측우기를 찾자는 운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허웅 우리 역사에서 피눈물 나는 것은 일제 36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전통이 이때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제, 군사뿐 아니라 학문도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우리는 옛날 사람의 학문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 중기, 말기의 백과사전만 보더라도 대단한 것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을 뿐 더러 우리는 일제 36년 이전의 문화는 없던 것으로 덮어버리고 교육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파헤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일본, 서양의 전통을 이어받아 갈팡질팡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교육제도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학을 보면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과목만 수강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취직이 잘 되는 과목으로 학생들이 몰리게 되고 고고학, 서지학, 역사학과 같은 학문은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문에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박성래 이렇게 나가다가는 10년 이내에 인문학은 사라져버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년 이후에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허웅 단절의 역사인 일제 36년은 5000년의 역사로 볼 때는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영향력은 아주 큽니다. 좀전에 말씀하신 10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영향력은 아주 클 것입니다.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감각을 가지고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대학사회의 교수들이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끌어가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제 36년간의 단절을 저는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끊어진 채 있습니다.
박성래 단절의 단적인 예는 측우기입니다. 측우기는 세종이 처음 만든 이름입니다. 측우기라는 이름을 1440∼1910년까지 500년 동안 썼습니다. 1910년에 일제가 정권을 잡자 일제는 측우기를 쓰지 않고 새로운 기상대를 만들어 식민지 조선에 서양 것을 도입하여 레인 게이지 rain gauge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측우기가 아닌 우량계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때 측우기가 단절된 것입니다. 이름만 다르지 사실 같은 것입니다. 1945년 해방되었는데도 측우기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지 않았고 우량계라는 이름을 아직까지도 기상청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측우기라는 이름부터 찾아야 하겠습니다.
허웅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일제시대의 타격으로 단절된 것을 지금 우리는 도로 살려 그것을 이어받아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박성래 그래도 한글은 계승된 것입니다. 제 분야의 경우는 도대체 아무 것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허웅 앞으로 그런 방면의 사람들을 많이 가르쳐 내고 우대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많이 모이게 마련입니다.
박성래 그런데 그것이 참 힘이 듭니다. 중국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과학사 책만 수천 가지는 될 정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사를 전공하면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허웅 다른 나라처럼, 교수가 강의하는 교수만이 아니라 연구기관의 교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더욱 필요합니다. 사립대학은 재정이 어렵다 하더라도 국립대학이라도 이러한 것을 추진해야 합니다. 희귀한 과목에 연구소를 차려놓고 연구를 위주로 하는 교수를 두어야 합니다.
박성래 저는 최근 10여 년 동안 과학기술사 연구소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처라는 기관이 있지만 순수한 과학기술연구소만 만들고 지원할 뿐 과학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허웅 우리는 현재밖에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투영입니다. 역사의식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현재를 중요시하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좀더 희망적인 얘기 없을까요 ?
박성래 세종 탄신 600년을 계기로 중앙청을 없애니 참 보기 좋습니다. 건물을 없애기보다 그 건물 자체를 천안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왕 중앙청 건물은 옮겼으니 건물 자체를 독립기념관으로 사용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광화문에 있는 충무공 동상을 세종대왕 동상으로 바꾸는 것은 어떻습니까 ?
허웅 세종 탄신 600년을 계기로 세종 동상을 좋은 것으로 만들자는 얘기는 있습니다. 광화문에 가장 적합한 분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로에 세종대왕이 계신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됩니다.
박성래 그런 점에서 세종 때를 생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청렴한 선비정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본받아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웅 옛날 정신을 가지고 현대에는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이라도 옳은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나라가 제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박성래 교육 얘기를 하면 집현전입니다. 이불을 덮지 않고 자는 학자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배려, 이것이 바로 지금 얘기로는 재정적인 지원이 아니겠습니까 ? 학문연구기관, 학자, 대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박사 무직자가 아주 많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인문학자들입니다.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식층의 불만이 쌓이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부패가 생기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 혁명이 지식층이 생겨났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위치에 따른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따르는 불만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말기의 육두품제도가 비슷한 예가 아니겠습니까 ? 육두품에게는 직위상승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신라 사회를 터뜨린 것입니다.
허웅 학생 위주의 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나라발전, 민족의 발전을 짊어질 인재들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에서 응당해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일제 30년 동안에 단절된 흐름을 메우고 옛날 것을 새롭게 잇는 작업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합니다.
마침 오늘 저와 생각을 같이하는 동지를 만나 기쁩니다.
박성래 저도 좋은 말씀 많이 들어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음운법칙에 맞춘 우리 글의 로마자 표기를 만드는 일 꼭 힘써 주십시오. 모쪼록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