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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계신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
아버지!...
창밖에는 겨울 날씨라 그런지 날씨가 매우 쌀쌀하네요 오늘 저의 마음속에 찾아드는 추위는 한층 더하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칠때도 우리 아버지께서는 언제까지나 살아계실 영생불멸의 존재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 철없고 어리석은 제 생각 이였지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님의 살아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불효소자가 이 글을 올리오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조부님과 생 이별을 하시고 조모님을 모시며 살아오시던중 조모님께서는 1960년도 예수병원에서 9년간의 투병생활로 그 많았던 전 재산이 전부다 병원비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국민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하시며, 조모님 병간호와 소년가장으로서 살아오신 아버지의 고단한 삶은 영화속의 이야기와도 같지요?
제가 어렸을적 유년시절에 아버지와 마당에서 멀리뛰기와 공놀이를 같이하시던, 기억과 어린이날 이라면 논산에 있는 관촉사에 자식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주시던 기역과 논부로서 아버지는 들판에서 온갖 힘든 농사일을 하시며, 어머님과 아버님이 마련한 전답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 보시며 흐뭇해 하시고, 쭉쭉 자라나는 3남 1녀를 기르시며, 휘파람불며 콧노래 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유년시절부터 아버지의 사랑한번 못 받아보시고 한평생을 살아 오셨기에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남 달리 더 크셨음에도 유독 자식들에게 엄하게 훈육 하셨지요
우리 형제들은 다른 친구들처럼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어리광도 재롱도 부렸으면 하였으나, 엄하신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시며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형제는 아버지를 유년시절에는 더욱 이해 할 수가 없었으나 이제야 자식을 키워보니 겉으로 사랑하지말고 속으로 자식을 사랑하시라던 결혼전 아버님의 말씀이 왜 이리도 가슴을 뭉크럽게 하는지요..!
아버지.
큰손녀 한설이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노력한바 한식,중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수능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전주대학교 문화관광학부 전통요리과에 1차 수시에 합격하여 4년간 전액 장학생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현재 CJ그룹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으나 대학원에 합격하여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제일 사랑해주시던 아람이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마치고, 제가 졸업한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에서 작업치료사 과정을 2년차 수학하면서 현재까지도 수석을 놓치지 않고 학업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람이는 모든일에 있어서 스스로 게획하고 실천하면서, 작업치료사나 장차 여군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학업이 끝나면 태권도 도장에서 수련한바 태권도 2단의 자격을 취득하였고 지난달에는 컴퓨터의 모든자격에 합격하여 마이크로쏘프트사로부터 마스터의 자격을 인정하는 인증서를 받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종갓집 장손으로서 살아생전에 그토록 손자를 원하셨지요. 아버님께서 세상을 하직하신후 손자 인택이가 태어나던 날 어머님과 가족모두는 아버님 생각에 사무쳐서 대성통곡하는 눈물의 장이 펼쳐졌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인택이는 전교학생회 부회장을 끝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년 임진년에는 어여한 중학생이 됩니다.
인택이 또한 학업이 끝나면 태권도 도장에서 수련한바 태권도 3품(즉 3단)의 자격을 취득하였고, 전주시 체육회장기 대회에 출전하여 준우승을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하여서 한참을 바라보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인택이가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친다니 세워이 유수와 같이 빠르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사뭇 졌어봅니다. 살아생전에 손자 인택이를 보시지는 못하셨지만, 잠시 인택이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소자를 축소한 것처럼 너무 토실하고 튼튼하며 대견스럽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희 곁으로 다시는 못오시겠지만 우리곁에서 지켜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자는 로타리 지도자로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희방을 주는 봉사활도에 전념하고 있으며, 제2의 봉사활동으로서 법무부 봅지공단 위촉에 의하여 수감자가 출소시 사회에 적응할수 있도록 보살피고 재정을 지원하는 봉사를 목표로 2012년을 개획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님께 부끄러운 이야기를 올리며,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네요? 아버님께서는 대통령 표창도 마다하셨는데 소자는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과 내무부장관으로부터 경비기념장 국제로타리 이동건 회장으로 부터 봉사부문 표창장.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 전북도지사. 전주시장, 전라북도 교육감. 전북도의회 의장상 국회의원 표창과 2011년 중소기업 지식서비스 최우수기업 선정과 중소기업청 창업진흥원장 표창. 각 노인복지관 및 장애인 단체의 표창과 2011년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 및 최우수 표창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의 깊으신 마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사회와 이웃에 함께한 세월이라는 표현으로 용서를 구하오며, 내후년에는 미쳐다하지 못한 학업에 전념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학박사과정을 이수하고자 합니다.
아버님! 평소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삼강 오륜을 유독이 강조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삼 강 ( 三 綱 )
君 爲 臣 綱 (군위신강)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 되고, 父 爲 子 綱 (부위자강) .....아버지는 아들의 근본이 되며, 夫 爲 婦 綱 (부위부강) .....남편은 아내의 근본이 된다.
오 륜 ( 五 倫 )
父 子 有 親 (부자유친)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 君 臣 有 義 (군신유의) .....임금과 신하사이는 의가 있어야 하고, 夫 婦 有 別 (부부유별) .....남편과 아내사이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長 幼 有 序 (장유유서) .....어른과 어린이 사이는 차례가 있어야 하고 , 朋 友 有 信 (붕우유신) .....벗과 벗사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귀절과 공자 맹자의 고귀한 말씀을 양식으로 처신하여야 하는 행동론과 실천을 강조하시던 우리 아버지!... 저는 자라오면서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제일 자랑스럽고 존경스러 웠습니다.
그러나 세월앞에 낙낙장송도 생을 다하듯이 조모님께서도 올초 3월 1일 부처님 곁으로 떠나시고, 이젠 장자로서 홀어머님과 동생들을 돌보면서, 아버지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였고, 큰 자리였는지 이제야 소자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하여 모진 고생을하시며, 살아가시는 숙부님을 그리워 하시며, 형제의 우애를 더욱더 강조하시던, 우리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젊음과 땀방울을 성실함으로 이루시어, 만드신 전답 그리고, 항상 점잖은 예의는 우리 자식들에게 큰 교육이었지요.
홀어머니를 모시는 효심 또한 크시어 대통령 표창을 받으실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께서는 거절하셨지요. 소자는 아버님께 왜 표창장을 받지 않으시냐고 여쭈어보니 아버님께서는 훗날 자식과 손자중 그 누구라도 불효를 하게된다면 종이 한장에 세겨진 표창장은 그 무엇보다 추한것이 될 것이라면서 단호히 거절하셨지요.
당신이 못다한 향학열에 자식이라도 잘 가르쳐 훌륭하게 키워보시려고, 농사철에는 농사일에 전념하시고, 겨울에는 객지에 가셔서 공사판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셨지요. 제일 가슴아픈 기억은 벼공판을 하게되면 수 많은 벼 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창고에 쌓아야 하는데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시고자 하루종일 고생을 하시고, 그날 저녁 아버님의 맨 살갓인 어깨가 다 벗겨져 상의 속옷이 살에 달라 붙어서 쓰라린 고통의 신음을 토하시며 꼬박 날을 세우시던 우리 아버지!... 그 신음소리에 어떻게 하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옆에서 눈물로서 고된 농부의 삶속에서 가난과 역경에 목메어 우시던 어머님을 보면서 이불속에서 소자는 한 없이 가슴조이며 울던 생각에 아버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에 어깨에 살갇이 버껴저 피가 흐르듯이 아품에 흐느끼는 소름이 전율을 흐르게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여 십리길을 걸어 다닐때 자전거를 사주시려고, 어머니와 자식을 집에 두고 혼자서 타지에 가셔서 고생하시여 번 돈과 숙부님꼐서 보내주신 돈으로 자전거를 사주셨을때 철부지 소자는 하늘을 날아갈듯이 온동네를 누비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면서 뽐내는 최고의 하루를 보냈지요.
그러나 이제야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힘이들고 고통이 많으셨을까요?
어려운 살림에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려고 익산에 있는 지업사에서 고학을 하며 학교에 다닐때 였지요 그날은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고 바람또한 세차서 몹시도 춥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 비와 눈을 맞으며 이십리길을 자전거로 배달하고 왔을때 저의 모습은 마치 물속에 빠졌다 나온 생쥐가 추위에 떨고있는 모습이었지요?
아버지께서는 먼 발치에서 소자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고, 행여 자식이 볼세라 눈물을 훔치시던~ 우리 아버지!!!
눈물을 감추시는 아버지를 뵙는 순간 소자의 두눈에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버님께 숨기지 못하고 한없이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자식이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 이렇게 불효부모 사후회(不孝 父母 死後悔)라는 말씀이 억장을 메어지게 하네요? 이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자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집니다...
그날 아버님께서는 목메어 우는 소자에게 아들아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세상을 살다보면 더 크고 힘든일이 많을 것이다.
오늘을 참지 못하면 훗날 더 큰일을할수 없다며 소자의 얼은 두 손을 거친 아버지의 손으로 감싸주시던 우리 아버지가오늘은 더욱더 그립습니다.
아버지!...
기억이 나시는 지요?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말고, 항상 나의 부족함을 먼저 깨닫고, 뒤를 돌아 보라시던, 말씀과 형제간에는 콩 한쪽도 나누어 먹으라시던 말씀을요..
아직까지도 힘들다는 이유로 형제간의 우애에 많은 노력을 다 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소자는 오늘을 계기로 홀로계시는 어머님께 효도를 다할것을 약속드리오며, 형제간의 우애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이 아버지께서 운명하신지 12년이 되는 기일입니다.
대학병원에 계실때 기력을 다하여 작은 목소리로 유언도 못하시고 그저 자식들만 바라보고 잘 있으라며 고개만 끄덕이시며 먼길을 떠나시던 가여운 우리아버지!..
아버지 소자는 보았습니다.
다시 못올 먼길을 떠나시면서도 자식들에게 근엄하시게 떠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요?… 아버지! 이제 다시는 저희들 곁으로는 못오실 우리아버지!... 그래서 소자는 더욱더 아버지를 잊을수가 없기에 아버님 기일을 맞이하여 이 글을 아버님전에 올립니다.
살아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회상하면서 두서없는 이글을 올리는 불효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길 간절이 바라오면서 부디 극락왕생 하시길 불효자는 빌고 비옵니다…
2011년12월16일
불효소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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