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악 기행
전인평(중앙대 교수)
장동건을 좋아하세요?
"장동건을 종아 하세요?"
"모래시계의 고현정, 참 예쁘지요?"
베트남에서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흔히 받는다. 베트남TV에서는 매일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드라마 때문인지 한국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덕택에 한국 가전제품이 베트남 시장에서 뜨고 있다. 중고등학생 공책에 장동건, 최진실, 김혜수의 얼굴이 없으면 팔리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거리 카페나 식당에도 한국 스타의 사진이 나오는 달력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다지도 과거를 빨리 잊는 것일까? 1975년 전 만해도 한국군과 미군은 월맹군의 적이었다. 수많은 베트남 사람이 미군의 폭격으로 생명을 잃었고, 자식을 잃거나, 남편을 잃은 여인네의 한숨이 아직도 곳곳에서 들린다. 사이공 북쪽 구찌 언덕에는 전쟁 중 베트콩이 판 땅굴이 당시의 처참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25년, 그 동안 베트남 사람은 한국 해병대의 잔인성을 전설처럼 전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 드라마에 빠지고 있다.
베트남 사람이 우리나라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랬다. 한달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흡사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돌잔치와 풍수 사상
베트남 도착 3일째 되는 날, 호지밍음학학교 구엔반더이(Nguyen Van Doi, 阮文代) 교수 손자의 돌잔치에 초대받았다. 집안 식구, 친척, 친구 모두들 모여 떠들고 웃으며, 마시며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으레 상상할 수 있는 잔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돌상에 연필, 가위, 거울, 실, 호미, 떡 등을 얹어 놓고 아기가 무엇을 처음으로 잡는가 지켜보는 것이다. 갑자기 환호가 터졌다. 아기는 연필이 멀리 있었는데도 연필을 잡은 것이다. '이놈이 자라면, 학자가 되겠네!' 모두들 덕담을 나누며 축배를 든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습이다. 가위를 잡으면 양복쟁이가 되고, 거울을 잡으면 미인이 되고, 실을 잡으면 오래 살고, 호미를 잡으면 농사꾼이 되고 등등의 해석을 해 보는 것이다.
음식을 나누고 잠시 집안을 둘러보았다. 집안에 자그만 연못과 언덕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풍쉐이(風水) 사상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사이공에는 산이 없기 때문에 집안에 이렇게 산을 만들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삼고, 연못을 만들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地勢)를 조성합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마치 우리나라 풍수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 숭배 열기는 우리 보다 한층 강하다. 집안 가장 좋은 곳에 조상의 사당이 있다. 사당 치장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 곳에 선조의 사진·글씨 그리고 유품을 전시한다. 그리고 이 사당은 응접실을 겸한다. 손님이 오면 사당으로 안내하고 그 곳에서 손님을 대접한다. 자연스레 조상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그리고 이곳에 침대를 마련해 두고 손님이 오면 이곳에 묵게 한다. 그리고 일년 내내 신선한 제물을 조상께 바친다.
베트남의 악기
돌잔치가 무르익자, 베트남 전통 여성 옷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 입은 사람이 일현금(一絃琴) 당바오(dan bao) 연주를 시작하였다. 일현금은 우리나라 거문고만큼이나 농현을 즐겨 하기 때문에 음악이 신묘하기 짝이 없다. 농현도 굵은 농현·가는 농현·끌어올리기·끌어내리기·꺾는 음, 농현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요즘은 음량을 크게 하기 위하여 전기 확성 장치를 달았다. 그래서 미묘한 농현도 잘 들을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116년(고려 예종 11년) 송나라에서 대성아악을 보내 오면서 일현금 15개를 보내 와 대성아악(大晟雅樂)의 연주에 사용한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이 일현금이 전하지 않고 있다.
일현금은 말 그대로 한 줄 짜리 악기이다. 70㎝ 정도 길이의 울림통에 줄 하나를 얹었다. 오른쪽에 손잡이가 있어 누르면 줄의 장력이 높아져 음이 높아진다. 또한 악기 몸통 중간에 점을 찍어 놓아 이곳을 누르면 높이가 달라져 선율을 연주할 수 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월금(月琴) 당위엣(dan nguyet)을 들고 연주를 거든다. 월금은 울림통이 달처럼 둥글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 {악학궤범}(樂學軌範) 권7에 당악기로 월금이 나온다. {악학궤범}의 설명을 보면, 당악기 항에 소개하고 있지만 '향악에만 쓴다'(只用鄕樂)고 하였다. 이로 보면, 우리나라 월금은 15세기 말 향악기화하여 조선음악만 연주하는 악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월금은 연주법을 잃고 악기만 전해 왔는데, 서울대 음대의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개량 복원한 바 있다. 며칠 후 이 월금을 배워 보았는데, 이외로 기법이 간단하여 간단한 선율은 연주 가능하였다. 합주하는 속에서 연주하면, 악기 소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좀 미숙해도 다른 사람에게 큰 방해 않고 즐길 수 있었다.
이어 17현의 발현악기 당짠(dan thranh), 4현의 발현악기 당티바(dan ty ba, 琵琶), 세줄 발현악기인 당땀(dan tam, 三絃), 두 줄 찰현악기 당니(dan nhi), 당땀탑룩(dan tam thap luc, 양금), 박판(拍板) 기능을 하는 송롼(song loan), 그리고 몇 개의 관악기와 타악기가 합세하자 본격적인 관현악을 이루게 되었다.
당짠은 dan tranh이라고 써서 다른 나라에서는 영어식으로 '당트란'이라고 부르지만, 본래의 베트남어는 '당짠'이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유명한 베트남 음악학자 Tranh Van Khe는 '트란 반케'가 아닌 짠 반케이고, 짠의 한자어는 진(陳)이다. 당짠은 우리나라의 가야고, 중국의 쟁(箏), 일본의 고도(琴)와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당짠과 고도는 쇠줄을 쓰지만 가야고는 비단실을 사용하는 점이다.
당티바는 비파이다. 우리나라 {악학궤범}에는 두 가지 비파가 있다. 목이 굽은 4현의 당비파(唐琵琶)와 목이 곧은 5현의 향비파(鄕琵琶)가 있다. 우리나라의 향비파와 당비파는 악기만 전해 오고 연주법과 음악은 모두 잊고 말았다.
당땀의 땀(tam)은 '셋'이라는 뜻으로 당땀은 세줄 악기이다. 1116년 송에서 우리나라에 보내 온 대성아악에 삼현이 있었다. {악학궤범}에 삼현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15세기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인멸한 듯하다.
당니의 니(nhi)는 '둘'이라는 뜻이고, 우리나라 해금과 같은 것이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몽고의 해족(奚族)이 즐겨 한다고 해금(奚琴)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얼후(二胡)라고 하는데, '얼'은 악기의 두 줄을 말하고 '호'는 북쪽의 오랑캐들이 즐겨 한 악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고 보면 베트남의 당니는 중국 얼후를 베트남말로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땀탑룩(dan tam thap luc)은 우리나라 양금과 같고 36현의 쇠줄을 얹은 악기이다. 땀이란 '3'을, 탑은 '10'을, 룩은 '6'이어서 줄 수로 악기 이름을 삼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양금은 페르시아 악기였는데, 이것이 십자군 전쟁 때 유럽으로 흘러가고, 이것이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라는 선교사가 중국에 전하고, 우리나라에는 홍대용(洪大容)이 처음으로 들여왔다. 이 양금으로 홍대용이 영산회상을 양금으로 연주한 것은 1772년 6월 18일 이었다.
베트남 악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송롼(song loan)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목탁 소리 비슷한 '딱'하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도대체 이 악기를 누가 치는지 보이지 않아 궁굼증을 불러 일으켰다. 음악이 끝나고 알고 보니 당짠 연주자가 발로치는 것이었다. 아오자이 아래 발이 가려 있으니 바로 치는 송롼이 보지 않을 수밖에--. 송롼은 어린이 주먹만한 목탁에 스프링 끝에 구슬을 달아 말로 스프링을 누르면 목탁이 울리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발로치는 목탁이다. 송롼의 송은 '둘'이라는 뜻이고 롼은 '대나무', 즉 대나무 둘을 말한다. 이것은 송롼이 원 모습이 대나무 막대 둘을 마주쳐서 소리내는 것이었는데, 간단히 만들면서 이름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송롼이 흥미로웠다는 것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 송롼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토록 끙끙거리면서 고생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행
베트남 여행의 매력은 뭐니 뭐니해도 베트남 사람들의 착한 심성이다. 거리의 작은 찻집 등 어디서나 흔히 소박하고 착한 베트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마치 어릴적에 만났던 이웃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찻집에서 차를 마시다 식사시간이 되면 베트남 사람들은 손님을 두고 혼자만 밥을 먹지 못한다. 손님과 작은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려고 권한다. 체면치레로 권하는 것이 아니다. 손님이 과일 한 조각이라도 들어야 그제야 편안함을 느낀다.
다음 매력은 싼 물가이다. 대학교수 월급이 미화 50불 정도라고 하니, 이 수준에서 상상하면 된다. 한끼 때우려는 마음으로 점심을 먹으면 1000원이면 충분하고, 맛좋은 모카커피가 300원, 맥주 한병 1000원, 그리고 풍성한 과일이 곳곳마다 넘쳐 난다.
그렇다고 방심하다간 큰 코 다친다. 뒷골목에서 서성이는 묘령의 아가씨 눈웃음에 한눈을 팔다가는 눈 깜짝할 틈에 택시비도 안 남기도 모두 털린다.
음악가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가슴을 쥐어흔드는 베트남 음악의 선율이다. 베트남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치밍 음악학교(Nhac wien) 방문을 권한다. 이곳에는 자주 전통음악 연주회가 열리므로 쉽게 전통음악을 접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 대금인 '사오' 음악은 일품이다. 관악기로 이처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을 까 싶어 절로 탄성이 나온다. 특히 관악기 연주자 쩐탄쭝(陳靑忠) 교수의 연주는 혼을 빼 놓는다. 보기 드물게 쩐 교수는 영어도 능숙하여 의사 소통이 편하여 국제적 연주자임을 알 수 있다.
베트남에는 미인이 많다. 사이공 호텔에서 예기치 않게도 일본 오끼나와 대학의 히꾸이 교수를 만났다. 지금 막 하노이에서 오는 길이란다.
"하노이와 도오데스까(하노이는 어떻던가요)?"
"하노이데와 미진가 입빠이데스(하노이에는 미인이 꽉차 있었습니다)."
웬일인지 베트남에는 뚱보가 없다. 남자나 여자나 날씬하다. 특히 여대생은 교복으로 전통 복장인 흰색 아오자이를 입는다. 대학 앞에 흰 아오자이 물결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오자이는 바지에 긴 웃옷을 입은 것이다. 긴 웃옷은 활동성을 높이기 위하여 양옆을 터놓는다. 그런데 허리 맨살이 약간 보이도록 살짝 터 놓는다. 눈길이 저절로 허리로 간다. 여대생들이 흰 아오자이를 입고 학교 앞을 거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모자를 즐겨 쓴다. 따가운 햇볕을 막기 위해서다.
문제는 고약한 경찰(공안원)과 관리들이다. 관리들은 대부분 베트남 통일 후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다. 베트남 사람들도 문제가 생기면, 소문이 나서 경찰이 오는 것을 극히 꺼린다. 경찰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은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여행 체험기를 보면, 애초부터 경찰에게 무슨 도움을 받으려고 생각을 버리라고 권한다. 짐을 잃고 나서 보험회사에 제출한 도난신고서라도 받으려면 신고액의 1/3은 뇌물로 줘야 한다. 더 황당한 것은 기차역에 가서 표라도 사려면 역무원의 불친절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에서는 표를 팔아 주는 것이 큰 이득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교통 상황이다. 웬일인지 사이공 시내에는 시내버스가 한 시간마다 온다. 그리고 노선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놀랍다. 베트남 사람도 시내 버스는 애초에 탈 생각은 않고 각자 오토바이로 다닌다. 그래서 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토바이가 넘쳐 난다. 베트남의 인구는 7700만명, 넓이는 33만2000㎦이다, 남북이 길어서 1650㎞, 비행기로도 두 시간이 걸린다. 기차는 단선이라서 시속 40km 정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서울에서 살다가 베트남을 가면 갑자기 50년전의 생활로 돌아간다.
베트남 음악은?
베트남 음악 조사에서 느낀 점은 한국음악의 풍성함이다. 우리나라에는 3000년전 중국 주(周) 시대의 음악인 문묘악(文廟樂)이 있는가 하면, 1000년전의 백제음악이 정읍이 전해 오고 있다. 또한 900여년전 송(宋)나라에서 들어온 보허자(步虛子)·낙양춘(洛陽春)은 중국에는 인멸되고 없는데 우리나라에만 전해오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선비음악인 영산회상과 가곡, 서민음악이 판소리가 오늘날에도 풍미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 중에서 피아노·성악·바이올린에서 세계적인 연주가가 배출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음악 전통 때문이리라.
문화 전파 이론에 변방 잔존(邊方殘存)의 원칙이란 것이 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 중심부에 파문이 없어진 후에도 변두리에는 파문이 남아 있다. 문화 전파에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즉 중심부의 문화가 중심부에서는 사라지고 없지만 변두리에는 아직 문화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야웨(雅樂)가 한국에서는 아악(雅樂)으로, 일본에서는 가가쿠(雅樂)로, 베트남에서는 냐냑(nha nhac)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중국은 아악을 보존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네 나라의 아악은 공동 연구로 상호 보완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