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에서 행복해하는
솟을북 – 신통한 다이어리 전창수의 에세이 리뷰 목록
1)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그냥!
2)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평온함을 응원한다.
3) [희망 대신 욕망] 비교하지 않는, 불쌍하게 보지 않는.
4) [나무無] 나무가 되어간다.
5) [인생문장] 사소한 행동 하나가.
6) [걷는 사람 하정우] 조금이라도 걸어가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그냥!
[도서]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저자화상 | 2018년 05월
1.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마음에 드는 부분을 체크해 두었다가 복사를 해 버린다. 이전에는, 일일이 손글씨로 옮겨 담았는데, 분량이 많을 때는 그 작업이 만만치 않아 손쉽게 복사를 하고 제본기로 와이어철을 해놓는다. 이런 작업이 이전에는 귀찮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즐겁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름 나의 책장들이 도서관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뭐라도 되고 있는 중이었다. 나의 독서와 리뷰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뭐라도 되겠지. 그렇지, 나는 지금 뭐라도 되고 있는 중이다.
2.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는 에세이다. 그저,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해 놓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에세이다. 그 에세이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기쁨이 나를 또 행복하게 한다.
세상은 늘 모자란 것투성이인 것 같다.어릴 적 최고의 디저트, 요구르트는 늘 딱 한 모금이 아쉬웠고, 수능 점수는 원하던 대학의 커트라인보다 조금 모자랐다. 연인에게 기대한 사랑 역시도 맘 놓고 누리기엔 부족했으며, 꿀 같은 여행 일정도 늘 원 없이 즐기기엔 모자랐다.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면, 치아가 상하지 않을 만큼의 충분함이었고, 실력은 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안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점수였다. 세상 모든 것이 '기브 앤드 테이크'가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사랑이었고, 여행의 권태에 빠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시간이었다.
결국에 되돌아보니, 조금 모자라서 좋았다.
- p.051
모자란 것투성이인 세상에, 나의 욕심을 늘어놓는다. 아쉬운 점, 조금 더 했으면 좋았을 것, 조금 더 가졌으면 좋았을 것들. 그런데, 그 아쉬운 만큼이 있어서 좋았다는 것. 돌아보면, 그렇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더 보고 싶은데,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쩌면 딱 그만큼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고, 영화도 역시 뭔가 아쉬움이 드는 만큼의 재미가 있는 딱 그만큼이 좋은 것이다.
3.
'그냥'이 가장 기피하는 것은 집요한 캐물음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분야는, 누군가의 '변덕'에 대해서다.
그 남자를 그리도 원망하더니, 왜 다시 만나게 됐는지. 그 의견을 핏대 세워 반대하더니,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는지. 그 사람을 그토록 싫어하더니, 왜 부쩍 가까워지게 됐는지.
그가 먼저 나서서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그건 자신조차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거나, 그 이유라는 것이 대단히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럴 만했겠지.'하며 그 변덕을 안아주기로 하자.
- 240
그냥에 대한 에피소드는 앞 페이지에 더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생략해 본다. 왜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냥'이라고 답하는 수밖에. 그냥이란 미묘한 말.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닦달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말. 그냥. 어떤 책이 왜 좋을까, 물을 때 그냥, 이라고 대답하면 뭐라고 말할까. 정말, 책이 그냥 좋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그 책이 좋았던 거 아닐까. 정말,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있는 걸까. 아낌없이 내 모든 걸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같은 책.
4.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소한 것들에 내재된 에너지를 믿는 편이다. 거창하고 수려한 문장보다는 수한 몇 음절이 선사하는 뜻밖의 영감에 환호하는 편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마주한 단어들, 그 단어를 디딤돌 삼아 펼쳐본 잡다한 생각들에 대한 끼적임이다. 그러니, 가급적 늘어진 자세로 대수롭지 않게 읽어주기를. 정제된 책상머리보다는 뜨끈한 방바닥이, 유기농 샐러드보다는 바스락거리는 봉지 과자가 이 책과 합을 맞추기를. 그런 느슨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고유한 빛깔을 드러낼 수 있길 고대해본다.
지금 이 시간, 그대의 1분 1초.
그래 아무것도 아닐 리 없다, 뭐라도 되고 있을 것이다.
- p.299
작가의 이 말처럼 나는 느슨하게, 여유롭게 뒹굴거리면서 이 책을 읽었다. 아쉽게도 과자 봉지는 없었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에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1분 1초. 그저, 스쳐가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이 쌓이고 쌓여서, 나는 뭐라도 되어가고 있다. 자그마한 일상 속에서, 자그마한 단어들의 묘미를 발견하는 것처럼 나의 조그만 일상도 책 속의 여유를 찾으며,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그 끝엔, 더 큰 기쁨이 있겠지. 더 많은 에피소드를 담을 수 없어 아쉽지만, 나의 와이어철 속에 담긴 책장 속 작은 기쁨이 더 많은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평온함을 응원한다.
[도서]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청안 저레몬북스 | 2020년 06월
1.
우리는 많은 순간, 사랑 때문에 또 때로는 사람 때문에 아프다. 우리는 아프기 때문에, 그 아픔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승화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노력을 기울이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아프기 때문에,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2.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는 사랑과 사람에 관한 에세이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아픈 순간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그 아픈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 아픈 순간을 위로해주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이 에세이는 그만큼 편안하고, 또 때로는 아름답기도 하다.
율마를 살리기 위해서 엄마에게 보내야 했던 저자의 선택, 군대 말년에 시간에 좀처럼 안 간다며 면회를 와 달라고 했던 동생을 보며 군대 간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 스쿼시를 하다가 손목에 힘을 빼야 한다는 코치의 말씀에 손목에 힘을 빼려고 노력하다가 더 힘이 들어 앓아누운 후 깨닫게 되는 저자의 생각.
힘을 빼고, 끝까지 보고, 제대로 쌓아나가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너무 힘을 주지 않았는지. 끝까지 보지도 않고 서툰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고조시키면서 쌓아 올려 나간 것이 맞는지. - p.73
그렇다. 힘을 빼고 끝까지 나아가자. 많은 순간순간들이 힘을 너무 주어서 끝까지 완주하지 못한다. 인생에서 힘을 빼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힘을 조금 빼어서 긴장도 조금은 완화시키고, 슬픔도 기쁨도 적당히 선을 그어가면서 적절히 살아간다면, 우리는 많은 위기의 순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3.
“강렬한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 - p.128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는 이별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2부 바람이 불지 않는 이별이란 없었다, 에서는 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3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에서는 삶의 희락에 관해 이야기한다. 물론, 이렇게 정리한 것은 전체적인 총평이지, 모든 챕터들이 다 그렇게 쓰였다는 야그는 아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 직장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편안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중간 중간 삽입된 사진들은 책을 읽는 재미와 편안함을 더해준다.
4.
새가 서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또 평화로워서 삽입해보았다. 정말, 우리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이 그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까. 특히, 이 새가 있는 사진을 보면서 내 마음은 조금 더 평온해졌다.
5.
-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아니야 결과가 좋지 않아도 돼.
열심히 해!
+ 아니야, 뭐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하고 싶은 걸 해.
좌절하지 마!
+아니야. 최선을 다했다면 가끔은 좌절하는 게 당연해.
다시 일어서야 해!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돼. 조금 쉬어가도 돼.
하지만 말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금 해. 하려고 해봐. 그게 뭐든 너의 삶이 채워질 수 있다면! 응원할게.
- p.243
응원한다. 나의 삶도 이 글을 보는 그대와 당신의 삶도. 언젠가 이루어질 우리의 축복도. 모두 응원의 끝에서 편안한 삶,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길. 또한, 희망찬 하루하루가 되기를. 우리 모두의 축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희망 대신 욕망] 비교하지 않는, 불쌍하게 보지 않는
[도서]희망 대신 욕망
김원영 저푸른숲 | 2019년 04월
1.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편의점이 있다. 그다지 목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아주 안 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 편의점이 생기기 전에는 일부러 길을 건너 거기까지 가서 무언가를 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편의점이 생기고 난 후,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가까운 편의점을 놔두고 일부러라도 그곳까지 가서 무언가를 사 먹는다. 무엇보다 넓은 공간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곳이 동네의 다른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좁은 통로에 서서 먹어야만 하는 자리만 있었다면, 나는 일부러 발품을 팔거나, 길을 건너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애를 쓰면, 아주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다양하게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에 나는 그곳을 자주 애용하게 된다. 할인카드가 적용된다는 점도 좋고.
2.
아이들이 미래에 인공지능 개발자가 되기를 꿈꾼다면 이는 '장래희망'이지만, 3백 억을 모아 강남에 아파트 12채를 사겠다고 하면 '(장래) 욕망'으로 분류될 것이다. 평생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고 4인 가족을 이뤄 손주까지 본 뒤 조용히 삶을 마감하겠다는 꿈은, (현대사회에서 무척이나 이루기 어려움에도) 보통은 희망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그 꿈은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평생 인구를 재생산하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존재는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 p.11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점에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희망을 이야기하다가도 그 희망에 어떤 이의 슬픔이나 아픔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희망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 욕망을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겠지만, 저마다의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욕망은 희망이 된다. 내가 말한 저 위의 편의점은 갈 때마다 항상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나처럼 일부러 발품을 팔아야 하는 지역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길 하나만 건너는 수고만 하면 되는 곳이다. 요즘은 길 하나 건너는 곳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박과 쪽박이 갈리기도 하는 걸 보면, 그 편의점의 마케팅은 분명 성공지점에 있는 듯하다.
욕망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람의 마음을 알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기적 쾌락을 위한 욕망만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그 욕망으로 인해 쪽박을 차야 하는 불운을 겪을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정당해져야 하고, 우리의 욕구는 정당하게 해소되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대체된 희망의 웃음이 우리 사회에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3.
『희망 대신 욕망』은 장애가 있는 변호사가 이미 10년 전에 쓴 글이다. 미안하다. 나도 리뷰를 쓰다 보니, "장애가 있는" 이라는 말을 써 버렸다. 이 말을 안 하고 "장애가 있는”"장애가 없는”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썼다.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장애에 대한 극복기”도 "장애를 극복한 사람에 대한 처절한 에세이”도 아니다. 그냥, "나 장애 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라고. "나를 동정하지 말라고!” 정도의 그냥 보통사람이 쓴 글이다. 그렇다. 장애를 동정해야 할 대상이나, 장애를 극복해야 할 어떤 치열한 싸움의 존재로 보지 않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차별이나 차이 같은 건 사라질 것이다. 그대가 장애인을 당신보다 낮은 존재로 보고 그들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낄 때, 당신은 그 순간, 당신이야말로 동정 받아야할 불쌍한 존재가 된다.
"아, 오늘 선생님한테 혼나서 정말 짜증났는데 나는 저 아이처럼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중얼거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바닥을 지나가던 바로 그 장애인이었다.
- p.33
슈퍼 장애인이 되어야 할 내가 모욕감을 느껴 좌절한다면 자격 미달이 아니겠는가. 나는 모욕에 익숙해져야 했다. 장애인은 모욕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정신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걸 모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네 장애를 생각해볼 때 그건 모욕이 아니다'라는 의미인지, 그건 누구에게도 모욕적이지 않다는 뜻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만약 전자라면 장애인이 모욕을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대야 할 것이다.
- pp.124~125
3.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장애인을 교육할 수 있는 특수학교를 짓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씁쓸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이유를 보니, 내가 장애인이었다면 상처받았을 내용들이다.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그저, 장애인에 대한 편견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긴 힘들다.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분명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나의 짧은 공감능력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누군가의 배려로 간신히 극복할 수 있는 개인의 슬픈 비극이 아니다. 장애인은 병원이나 수용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 상태 자체가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도 세계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장애를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 치료사나 사회복지사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장애가 단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 등이 전 세계 장애인 운동과 사회과학 연구들이 성취한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 p.158
저자가 장애인으로 겪는 삶의 애환점과 그가 펼치는 주장들에 백배공감하면서 장애인들을 돌보아야 하는, 그래서 비장애인이 우월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만 인식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4.
만약 세상에 장애인 수용시설 같은 것이 없었다면 열등감에 시달리는 우리 20대들은 어디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충고는 커다란 결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열등감은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존재들에 의존해서, 그 열등감을 상쇄해 보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태도는 자신을 그 자체로 충만하게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존재에 의지해 열등감을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타인에 의해 열등감을 경험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위안을 얻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바로 비정상적인 인간을 '구경'하는 것이다.
- p.210
오래 전의 일이다. 이런 사진과 글이 있었다. 아주 가난하고 먹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난민을 보면서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거 아니냐는 취지의 글이었다. 나는 그 글에 이런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우리가 행복한 거라면, 결국은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보면 불행해지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그렇게 가난하고 못 먹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비교에 의한 행복은 결국은 불행해질 뿐이라고.
이런 취지의 답글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문장을 전개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비교에 의한 행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만약, 장애인을 보면서, 나는 저렇지 않으니 그래도 행복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 당신은 장애인에게 상처를 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난 당신에게 이런 저주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이제 곧 불행해지겠군요."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절절히 경험하고 있듯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휠체어 리프트의 음악 소리,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 휘황찬란한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행되는 주민자치센터의 쌀 전달식 등은 누누간의 자존감에 상처를 낸다. 장애인을 앞에 놓고 구원 이후에는 완전한 육체로 살 수 있을 거라 설교하는 종교인이나 방송에 나와 "내가 너를 걷게 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과학자의 말 역시 내 존재의 가치를 미래의 구원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어 나를 침울한 열등감에 빠뜨린다.
이 모든 것은 선량하고 숭고한 외피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실 "너의 안쓰러움을 내 능력으로 감싸 안고 싶다”라는 자기 우월성의 쾌락에서 촉발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선량한 의도에서 출발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요즘 너무 살기 힘들다”라는 친구의 고백에 "꽃동네에 가서 장애인들들 보고 오면 힘이 날 것이다”라고 충고해주는 사람들은 명백히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이지만,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을 만나 자기 존재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큰 유혹이다.
- pp.212~213
5.
나는 어쩌다 보니, 우연히 장애인과 관련된 기관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이 리뷰를 쓸 당시에는 장애인직업재활센터에서 근무했다) 지체 장애인도 간혹 있고,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장애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는 그 친구들의 순수한 마음이 좋지만, 이조차도 그냥 어쩌다보니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만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적어도 장애인 중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가끔, 장애인들이 자기를 괴롭힐 거라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뭐,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다.
나는 '장애인 치고는' 멋있는, 이라는 말을 거부한다. 나는 장애인 치고는 멋있기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멋지고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뜨겁기 위해 무대 위에 섰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장애인 치고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혹은 '장애인 치고는'멋진 말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멋질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는 어떤 메시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 pp.305~306
장애인으로서의 처절한 외침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외침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다짐했던 순간을 반성한다. 나는 장애인을 위해 살려고 결심했지만, 그것은 나의 우월감이 빚어낸 착오였다. 오히려 장애인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런 친구들과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나의 도리가 아니다. 그저, 그 친구들과 같이 숨 쉬고 함께 즐기며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상의하고 나아가는 것이 나의 길이 아닐까. 나를 위로해주던 장애인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생각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희망 대신 욕망』은 그렇게 무너져 가려던 희망을 욕망이란 구체적인 현실성으로 다가갔다. 나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결코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회. 함께 꿈꾸며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마음을 다한 바람을 가져본다.
[나무無] 나무가 되어간다.
[도서]나무無
김경일 저북랩 | 2018년 07월
1.
나무 없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나, 없음이다. 나, 무(無).
"꿈이 여전히 나무이긴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덜어내 나를 비우는 '나.무(無)'를 쫓고 싶었다. - 서문에서
지하철에서 틈틈이, 출근해서 일 시작하기 전에 틈틈이, 4일 동안 읽고 오늘 집에 와서 읽기를 마무리를 했다. 4일 동안의 여정이지만, 꽤 긴 여행을 한 기분이다. 무언가가 되기 위하여 애쓰는 게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글. 따뜻한 이야기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리뷰를 쓰지 않았다. 다른 책을 가끔 뒤져보기는 했지만, 나무를 다 읽기까지는 다른 어떤 것을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오늘 올린 리뷰가 있긴 있지만, 그것은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잠깐 동안의 감정을 쏟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나무는 내 마음에 순백의 여백을 준다. 책을 덮으니, 조금 여유 있게 살고 싶어졌다. 여유롭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하고, 진정 성공한 삶을 사는 길 아닐까.
"음… 맛집마다 비법이 있듯이 어쩌면 행복에 이르는 길에도 지름길이 있을 거라 믿었어. 그런데 행복으로 직행하는 열쇠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고생고생해서 찾은 게 하나 있긴 한데 말이야. 그건 바로 일식집을 차려내면, 그러니까 말이지… 내가 원하는 딱 한 가지를 갖게 되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일 듯싶어."
- p.039
2.
"사장님, 제가 지난주에 로또 엄청 많이 산 거 기억나세요? 사실은요, 제가 모은 돈을 사기로 다 날리고 여자 친구도 떠났으니 살아서 뭐 하겠냐는 생각에 죽으려고 작정했었거든요. 혹시나 해서 마지막으로 복권을 사본 거예요.”
이 의외의 상황을 말해놓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진 그 청년의 말.
"그런데요, 로또 당첨 기다리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확률은 정말 적어도 대박의 행운이 제게도 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죽지 않기로. 저, 잘한 거 맞죠?”
- p.229
나무에서는 유독 행복에 관한 일화가 많이 나온다.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사는 정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정석대로만 살면 행복한 삶은 포기해야 하겠지만. 그래서 저, 로또에 관한 일화를 보면서 아! 이런 게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닐까. 로또에 대해서 노력도 안 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린다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지만, 때로는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고, 그리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 그래서 로또의 희망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깊은 뜻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왜곡된 시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3.
"네가 묻는 이유는 알겠는데, 글쎄, 어른이라고 다 성숙한 게 아니라서……”
하지만 딸의 연이은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럼, 아빠는 진짜 어른이야, 아니야?”
"........”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가끔은 어른 안 하고 싶은 날이 분명 있다. 어른의 얄팍한 지식만으로는 어린 아이의 아주 간단한 질문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울 때가 생겨나서.
- p.032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참 신기할 게 많기에, 꽤나 독특하면서도 신선할 것도 같다. 아이들의 개성은 그렇게 생겨나고 그렇게 함으로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 아이들을 인정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질문은 나에게도 이어진다. 나는 어른인가, 아닌가.
4.
그렇게 자신의 사소한 행동으로 인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에 나비 효과 광신도가 되어버린 선배. 요새는 뭔가 도울 게 없나 찾아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남의 일을 마치 제 집일인양 챙긴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 선배가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더 궁금한 건,
선배로 인해 누가 행복해질 지다.
- p.022
별거 아닌 듯한 누군가의 행동이 때로는 어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 선배처럼. 이 선배는 책임자로서 누군가를 승진시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가정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어떤 순간이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순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그런 순간은 오게 될 것이라 믿고, 묵묵히 해 나가는 수밖에.
5.
"언젠가는 끝이 보이게 됩니다. 제 말을 믿으셔야 돼요. 고민이 묘하게도 해결되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옵니다. 정말이에요, 언젠가는 꼭 온답니다.”
- p. 067
고민이 끝나는 순간은 언젠간 온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우리는 이런 말을 되뇌일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이란 게 별 게 아니에요. 아는 만큼 행복이 보인답니다. 찾는 만큼 행복해지는 방법이 보인답니다."
- p.290
어쩌면, 행복해지는 방법은 별 게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그것들 속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
"사람이 죽어 하늘나라로 가면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단다.
첫 번째는 "당신의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주었는가?"
- p.217 (영화 "버킷리스트"대사 중)
그래서 나는 또 행복한 글쓰기를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읽는 기쁨을 주려고 한다. 죽는 날까지 기쁠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그 순간이 나를 맞이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안겨주는 나무가 되어간다.
[인생문장] 사소한 행동 하나가.
[도서]인생 문장
권경자 저원앤원북스 | 2020년 07월
1.
내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
- p.49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문장, 나에게 정말 힘이 되어주는 문장들이 보이곤 한다. 그래서 어떤 문장들은 인생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장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인생문장』은 과연 그런 문장들일까? 이 책은 책 표지에 밝혀져 있듯, 나를 흔든 한 줄의 고전이다. 고전적인 문장들을 발췌한 것이다. 이 책은 주제별로 받아들임, 더 나은 관계, 말, 내면, 태도, 나아감, 리더십, 다스림의 8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주제에 맞게 또한 위와 같이 한 줄의 고전을 놓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저자의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위의 주제로는 무엇을 얘기했을까?
이 주제에서는 자포스의 경영 철학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다. 몸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구두를 구매한 딸이 신발을 신어보지도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쇼핑몰에서 구두를 잘 신고 있냐는 메일이 왔다고 한다. 딸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반품이 가능하냐는 말을 묻자, 이 쇼핑몰에서는 구두를 반납해 주었고 한 다발의 꽃과 위로카드까지 보내주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신발이 아닌 서비스를 파는 회사다” - p.50
자포스의 경영철학은 이랬고, 딸은 이 사연을 SNS에 올렸고, 자포스를 성찰시키는 기적이 되었다는 얘기.
자포스의 기적은 고객의 마음을 헤아린 작은 행동에서 출발되었습니다. - p.51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은 행동이 기적을 일으키곤 한다. 어떤 사연을 봐도, 크게 뭔가를 시작해서 크게 이루었다는 사연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것, 작은 것 하나에서 기적은 이루어진다.
2.
주어진 것이 많고 여건이 좋고 운이 좋아서 쉽게 꿈을 이루는 자도 있지만, 성실하지 않다면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도 잘못된 선택으로 한순간에 나락에 빠지는 사람이 그 증거죠. 쉼이 없는 성실은 그들을 그들답게 했습니다. 이처럼 성실은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귀한 선물입니다. - p.140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눈을 떠보니 스타가 된 것일까요? 그가 흘린 땀과 눈물과 쉼 없는 노력이 마침내 아침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겠죠. 사림아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그날을 위한 노력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운이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 p.168
『인생문장』은 에세이라고는 할 순 없겠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일과 사랑에 빠진 사람, 자신을 수련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내 마음을 잣대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등. 주제와 관련된 사람들이 나온다.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성실이다. 모든 성공의 기본조건이 성실이다. 받아들이고, 더 나은 관계를 지향하고, 말을 하고, 내면을 돌보며, 태도를 다스리고, 또한 더 높고 좋은 곳을 향해 나아가며, 현명한 리더십을 갖추고, 나를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 이 모든 것은 성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3.
장사가 안 된다고 계속 메뉴와 업종을 바꾸면 제대로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요? 외진 골목까지 손님이 찾도록 하려면 그들을 이끌 특별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 p.285
나를 이끄는 특별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것은 안 된다고 금방 포기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나의 지금을 갈고 닦아나가는 것.『인생문장』에서 건져 올린 특별한 힘은, 나에게 아주 급박하게 변하라고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 사소한 거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성실하게 내가 할 일을 해 나가는 것.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듯한 이 문장들을 되새고 되새기면, 나 역시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덕은 결코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 P.18
[걷는 사람 하정우] 조금이라도 걸어가다 보면
[도서]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저문학동네 | 2018년 11월
1.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그러니 도무지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아침엔 일단 일어나 한 발, 딱 한 발만 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한 걸음이 가장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온갖 고민과 핑계가 나를 주저앉히는 힘보다 내 몸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 p.160
나는 잘 걷지 않는다. 오래 전에는 걷는 것을 좋아했지만, 요즈음은 오래 걷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오래 걷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걸음걸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정우는 다르다. 그는 날마다 걷는다. 그의 걸음걸이는 고스란히 그의 인생이 되고, 그의 삶의 철학이 된다. 그는 날마다 걸을 것을 권한다. 한 발을 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걷기는 시작되고, 인생은 그때부터가 시작이 된다.
2.
1982년생인 추신수 선수는 2000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동안 마이너리그에서 절치부심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나 역시 그 무렵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내가 연기할 무대와 작품을 찾아다녔다.
- p.151
누구에게나 마이너시절은 있다. 그 시절을 어떻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가꾸어나가느냐에 따라, 이후의 인생은 달라지기도 한다. 하정우도 어느 날 갑자기 뻥 하고 터진 게 아니다. 그만큼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이 이야기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늘 내게 희망을 전달해준다. 수없이 실패한 많은 이들처럼 오늘의 작은 실패에 슬퍼하는 대신, 더 절치부심하고 더 전진하여, 오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뿐이다.
3.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마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 직접 요리해서 밥 먹기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내게 주어진 재능에 겸손하고, 이뤄낸 성과에 감사하자.
걸으며, 밥을 먹으며, 기도하며 나는 다짐해본다.
- p.292
나도 이제 걸으려 한다. 하루 단 30분이라도. 되도록이면 1시간 이상. 조금씩이라도 걷다 보면, 내 삶도 조금은 빛을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누군가 내가 가진 것을 빼앗을까봐 전전긍긍해 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더욱 훌륭하게 가다듬어 그 누구도 나의 것을 흉내 내지 못하도록, 16만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운 하정우의 어떤 친구처럼, 나는 독보적인 걸음을 걸어가 볼 것이라, 그런 결심을 해 본다.
4.
추워서 그랬는지,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어느 날, 배관을 수건으로 꽁꽁 감싸 매고 배관이 녹기만을 기다려본다. 이 기다림이 걷기의 행보만큼이나 느리더라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좋은 소식이 들려오겠지. 내게도 아주아주 따뜻한 어느 날이 다가오겠지. 그 희망에서 허우적대도 좋은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걷는 사람에 대해서 쓰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