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 -2 배티재 - 유왕골재
<배티재~서운산~엽돈재~부수문이~위레산~우물목~성거산~유왕골재>
◙ 일시 : 2007. 04. 15(일) 09:35 - 16:15(6시간40분)
◙ 날씨 : 가스로 시야가 좋지 않았으나 비는 맞지않음(남부지방 비)
◙ 참가인원 : 이한성대장 등 29명
◙ 거리 : 17.6km(탈출 0.6km포함 18.2km)
◙ 소요경비 : 30,000원
◙ 산 행
09:15 배티고개(350m)
313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마루에 이티재 이정표가 서있고 백곡면 생거진천 입석도 보입니다
♣生居 鎭川 ,死居 龍仁 (전설)
옛날 진천이 본가인 한 여자가 용인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 낳고 단란히 살다가 남편 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진천으로 개가하여 아들을 낳고 평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용인 아들이 성장하여 진천의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진천의 아들이 극구 반대하여 결국 관가에 소장(訴狀)을 내었는데 고을 원님은 “살아서는 진천아들이 모시고, 죽어서는 용인 아들이 모시라”고 판결을 해 주었습니다.
이런 명 판결 덕에 그 어머님은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으로 갔다는 전설인데 용인은 그 전설을 바탕으로 공원묘지와 함께 땅값이 많이 오르고 진천은 살기좋은 땅으로 “생거진천쌀”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배티고개는 이티(배티) 마을에서 안성시 서운면으로 가는 고개로 인근에는 한국천주교회의 대표적인 교우촌인 배티(이티)성지가 자리해 있습니다.
안성시 금광면과 진천군 백곡면의 경계를 따라 서운산으로 향하는 길은 깨끗이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이 즐겨찾는 산이어서인지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참고하기 좋습니다.
15분을 더 가면 나오는 무명순교자의 묘를 지나 5분을 더 가면 배티성지충정묘와 서운산으로 가는 갈림길에 닿습니다. 20분을 더 가면 '서운산 0.6km, 석남사 1.5km' 라고 적힌 이정표를 만납니다.
온 산이 잔달래로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배티재 들머리입니다
10:18 서운산(547.7m)6.8km
서운산(瑞雲山·547.7m) 정상의 삼각점을 확인하고 조금 더 오르자 서운산성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차령산맥에서 우뚝 솟아오른 서운산 언저리의 산봉우리를 둘러싼 토성이고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지고 임진왜란 때 洪季男장군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한 곳’이라는 큼직한 정상석과 표지목 그리고 안내판이 서있습니다. 이 표지판의 “금북정맥을 차령산맥이라고 하는 표현이 어색합니다. 그리 넓지 않은 정상은 사방 막혀있어 조망은 없습니다. 되돌아 와 다시 진행합니다.
♣ 서운산[瑞雲山 547m]과 서운산성
서운산은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금북정맥줄기를 이루는 산이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습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진 산입니다.
마루금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왔던 길로 되내려가 이정표의 좌성사, 청룡사 방면을 따라갑니다. 바로 나오는 헬기장에 당도하면 진행방향의 왼쪽(남쪽)으로 접어들어 내려갑니다. 잘못하면 오른쪽 좋은 길로 갈 염려가 많습니다. 약 8분을 더 가면 서운산과 청룡사가 나뉘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진행방향을 따라 직진합니다.
옆은 다빈이 입니다. 백두대 끝내고 정맥을 하는 다부진어린이입니다
11:36. 엽돈재(330m) : 충남 천안에 들어섬
34번 국도가 지나고 충청북도 표지판 아래 생거진천이라 새긴 입석이 보입니다 '엽둔고개 '율둔티' 라고도 불리는 엽돈재는 충남 천안시 입장면 가연리에서 충북 진천군 백곡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는 도둑이 많아서 엽전을 가진 사람들은 모조리 빼앗겨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엽돈재를 기점으로 충남 땅에 들어서서 절개지를 피해 왼쪽 진천쪽으로 돌아 바짝 오릅니다. 삼각점이 있는 459.1봉을 확인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오다 다시 왼쪽(남쪽)으로 내려오다 양지바른 묘지옆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12:30 - 12:50. 20분) 점심 후 잠깐 내려서면 부수문이 고개입니다.
오늘 제법 높은 산(서운산, 위례산, 성거산)세곳 중 한 곳을 넘고 다시 두 번째 산에 오릅니다.
엽돈재(충남 천안쪽입니다)
12:55 부수문이고개(279m)
1차선 포장로가 넘어가는 고개는 옛날부터 이 고개 마루턱에 서낭당이 있어 서낭댕이 고개라 하였으며, 부소문령 이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는 입장면 양대리에서 북면 운용리로 넘나들던 고개로 백제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했을 때 이곳에 부소문을 달았다고 하며 소나무산 고개의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나무로 된 위례성표지판을 보고 넓은 도로를 따라 오릅니다.
이곳 또한 백제의 성터가 아직 남아있는 위례산이 있어 등산로가 잘 나있다. 위례산은 해발 524m로 정상에는 위례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놓여 있습니다.
13:36 위례성(530m)
위례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퇴뫼식 산성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 백제의 도읍지로 보기도 하나 조사결과 국방을 위한 산성으로 보이며 쌓은 시기도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된다는 안내판과 역시 비스듬히 만든 작은 표지석이 있습니다
우리가 휴식하고 있는데 천안산꾼 세분이 올라와 이곳은 백제 온조의 위례산이 아니고 온조의위례산은 하남에 따로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 위례산[慰禮山 523m]과 위례산성
높이는 523m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직산위례성이라 부르며 검은산, 신산(神山)이라고도 한다. 금북정맥의 연봉을 이루며 북쪽 비탈면이 급경사를 이루어 천연성벽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산 정상의 위례성터에는 둘레 550m, 높이 약 3m의 흙으로 쌓은 산성을 비롯하여 식수로 사용한 듯한 우물 '용샘'과 문 받침돌로 여겨지는 큰 돌 반쪽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그동안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부정된 바 있었던 백제의 첫도읍지로, 최근에 와서 재조명되고 있는데 직산의 구호가 바로 위례성입니다
위례성은 백성들을 전란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한 산성으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만주지방의 고구려를 떠나 이곳 직산까지 와서 처음으로 도읍을 정하고 개국 한 곳이 현재의 직산면과 성환읍, 입장면, 성거읍지방이었고 위례산성은 그 때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산성과 마주하여 안성의 서운산성이 남향으로 축조되어 있는 것에 일부 학자는 서운산성은 고구려 장수왕 남쪽 끝 기지였고, 위례성은 백제 문주왕의 북쪽 끝 방어선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금북정맥 마루금은 내렸다가 다시 능선분기점에 오르면 성거산군사기지가 멀리보이며 '유성농장 입구 2.9km' 라고 적힌 이정표에서는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이내 우마차로가 나오며,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가 또다시 오르막을 오릅니다. 송전탑을 거쳐 10분을 가면 포장도로로 되어있는 우물목고개에 도착합니다. '정항령' 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입니다.
위례산(옆은 선배이신 채유석씨입니다)
14:18 우물목고개(339m)
고개 마루턱에 우물이 있어 우물목고개라 한다고합니다.
이 고개에서 날머리인 성거산 정상부까지는 차가 지나갈 수 있는 포장도가 잘 정비되어 있으나 정상부에 가까워지면 국가시설물로 인해 차량통행이 금지됩니다. 포장도로를 굽이굽이 오르는데는 힘이 듭니다. 정상부 근처에 가며 왼쪽에 성거산 성지가 있습니다. 많은 인천신도들이 순례를 마치고늦은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군부대 정문 근처에 가니까 “군부대로 접근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헌병이 지키는 정문앞에서 왼쪽 변압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 철조망을 끼고 부대를 돌아 다시 능선에 섭니다. 근방 성거산 정상석이 있는 능선에 도착합니다.
회원들이 “성거산은 군에 임대해 주고 주인은 이곳에 나와 산다” 등의 농담을 하면서 聖居山은 천주교 신유박해 때 박해를 피해 온 신도들이 전교활동을 했다는 표지로 보아 “성인이 거주하는 산, 성인이 살던 산” 이란 뜻인 것 같습니다.
성거산순교성지표지입니다
15:09 성거산(557m)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석천리소재인 성거산은 고려 태조가 일찍이 직산에 주둔하였을때 이 산위에 오색구름이 영롱한 것을 보고 신이 있다 하여 제를 올린 후 성거산이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이성계와 세종이 다녀갔다는 내용이 적힌 성거산 정상석은 557봉에 있음,
성거산[聖居山 579m]과 성거산성
높이는 579m이다. 천안 시가지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을 때 천안시 직산면 산헐원을 지나다가 동쪽의 이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면서 ‘성거산’이라고 부르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상에는 성거산성[聖居山城](충남문화재자료 263호)이 있는데, 지금은 군사 기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성곽이 많이 파괴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조금은 가파르게 내려서면 만일고개입니다.
성거산표지석입니다. 군사기지관계로 뒤로 밀려나 있습니다.
15:40 만일고개(365m)
오른쪽으로 만일사가는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영인지맥분기점(오른쪽), 만일사, 은행연수원, 좌불상 등 표지판이 있는 능선을 지나 내려가면 걸마고개입니다.
16:00 걸마고개(320m)
만일사, 계성군의 묘, 숙의 하씨의 묘등 표지판이 있습니다.
16: 15 유왕골고개(356m)
망향의동산, 용연저수지, 독립기념관이라 쓴 이정표에 산불조심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유왕골(留王洞)은 백제시조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봄, 가을 이 되면 이곳에 와서 머물면서 농사를 지었다고 목천읍지에 기록되어 있고, 고려 태조 왕건이 태조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이곳에서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넓은 삼거리 분기점인 377m봉에는 만일사, 호서대학 이정표와 벤취가 보입니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자가 어디있느냐고 묻고 직진해 내려가다 잠시 올라서면 큰 바위에 관음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갑니다.
정맥산행은 여기서 끝나고 각원사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데 바위에 새겨진 불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 태조산 각원사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으로 유량천, 산방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 오르면 천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산을 중심으로해서 군사 양병을 했다는 설에 인연하여 '태조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온다.대한불교 조계종 각원사는 남북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신도들과 많은 사람들의 정성어린 성금들에 의해 1977년 5월 9일 이곳 태조산 중봉에 봉안하였다. 청동대불은 높이15M, 둘레30M, 귀길이175cm, 손톱길이30cm, 무게 청동 60ton의 청동좌불은 태조산 주봉을 뒤로하여 서향을 바라보며 자비의 미소로 많은 중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좌불 좌측에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웅보전과 요사채를 비롯한 사찰건물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
재일교포 각열거사(覺列居士) 김영조(金永祚)의 시주로 1977년 5월에 세워졌으며,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에 자리잡고 있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사찰을 세우려 한 것이 발원의 본뜻이다.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大雄殿), 설법전, 관음전(觀音殿)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높이 12m, 둘레 30m, 무게 60t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아미타불상과, 엄청난 규모의 태양의 성종이 특히유명하다.
또한 1996년 10월 15일에 낙성된 대웅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 절의 언덕에는 203개의 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백팔번뇌와 관세음보살의 32화신, 아미타불의 48소원 및 12인연과 3보(寶) 등 불법과 관계있는 숫자를 합해서 정한 것이라 한다.
경주 불국사(佛國寺) 이래 최대의 사찰이며, 현재 각원사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각원사 좌불상입니다. 굉장히 큽니다.
첫댓글 유익한 천주교 성지(聖地)자료를 올려주어 감사합니다 가까운 시일에 한번 가보겠읍니다
중부고속도로 진천나들목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경치도 좋고 아주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