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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욱아빠의 평화강정! 스크랩 강정 구럼비 해안, 구럼비의 살이 깨어지다.(1)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49 12.04.04 10: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3월 6일. 구럼비 바위 발파가 곧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들렸고 서귀포경찰은 발파 허가를 내 주었다는 소식이 늦은 오후 들렸습니다.  활동가들과 마을 주민들은 서귀포 동광의 화약창고 진입로를 막고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죠.  강정은 밤이 깊어갈 수록 긴장감도 깊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졸이며 발파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트위터 역시 구럼비 발파여부에 대한 촉각이 곤두선 상태였습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늦은 밤의 집은 편안함이 아니라 가시방석 그 자체였습니다.  병원일과 출근을 해야한다는 핑계가 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새벽시간 강정행을 택했습니다.  새벽 4시, 무거운 마음을 안고 516도로를 넘어 강정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이었지만 마을쪽에서는 사이렌소리가 이어지고 있었고, 공사장 후문쪽에서는 마을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밤새 발파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밤은 얼마나 마음졸이고 답답한 밤이었을까요.  새벽 5시를 넘기는 시간, 피곤함과 긴장감이 사람들을 뒤덮고 있었으나 분위기만큼은 활발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집회장 곳곳에는 사복차림의 경찰들이 예의주시하며 집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집회장을 지나 마을쪽으로 걸어가 봅니다.  마을 한가운데의 사거리에 세워진 평화쉼터에는 피곤함을 잠시 달래고자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구럼비 발파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강정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거리의 공사장 쪽의 도로는 이렇게 마을 주민들의 차량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습니다.  이는 화약을 실은 차량이 공사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반대편 강정교에도 같은 방식으로 마을주민들의 차량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습니다.

  포구쪽으로 돌아 중덕삼거리를 거쳐 다시 집회장소로 갑니다.  가는 도중 만난 스피커에서는 계속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고 모두 모여달라는 마을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새벽 5시 반 경, 사이렌은 세시간 이상을 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사이렌 소리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있었습니다.  5년의 싸움에 지칠대로 지친 이들에게 최근의 상황은 마음을 할퀴고 비수를 꽂는 그 자체일 것입니다.  피로감은 극도의 상태입니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내가 있는 이 곳이 최남단의 한 마을인지, 휴전선을 마주한 접경지대 마을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완벽한 어둠이 지배하는 시골에서 그 어둠을 가르는 사이렌소리는 어울리지 않는 슬픔 그 자체였습니다.

  집회장소에 돌아와 보니 경찰병력의 소소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부대정도의 인원이 공사장 문을 통하여 공사장으로 들어갑니다.  경계를 서는 병력인원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월드컵 경기장쪽 법환부근 사거리에서는 차량통제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작은 실랑이들도 생깁니다.  활동가들은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경찰병력들에게 직접적인 호소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 1년여를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구럼비에 갈 때마다 만나 잠깐의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도 나누던 활동가가 있습니다.  강정마을관련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트윗에 수시로 소식을 올리던 그는 이날 새벽, 공사장 문을 두드리며 사람이 죽는다고 나오지 말라고 절규했습니다.  제게는 조금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순수하고 착해보이기만 하던 그가 그렇게 절규하며 직접적인 행동을 보이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날 저녁, 동광 화약고 앞에서 마늘밭을 망치며 철수하는 경찰차를 제지하다가 경찰차 바퀴에 발등을 깔려 깁스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들어가는 경찰병력에, 경계하는 전경에게 나오지 말라며, 이러지 말라며, 사람이 죽는다며 그만 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변화시켰을까요?  구럼비에 대한 애절함, 사람에 대한 애정은 미디어팀으로서의 지켜야 할 거리감을 상실케 했습니다.  그 모습은, 물리적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착잡함과 미안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여명이 밝아옵니다.  강정천의 모습도 점점 분명해집니다.  어둠속에서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피곤한 모습은 밝아지는 하늘만큼 긴장감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강정에 큰 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한라산은 그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날도 그랬습니다.  동이 터오르는 시간의 한라산은 구름한 점 없는 맨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방송 중계차도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밤새 저러고 대기하고 있었다는데, 아침방송 생방송을 준비중이라구요.  하지만, 이 날 생방송 분량은 30초가 될까말까 하는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밤새, 그리고 동이 트고서도 반나절을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지만, 방송분량은 대기시간이 아까울 만큼의 작은 분량이었습니다.  그게 왜 그런 건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동이 트자 경찰부대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수도 없는 전경버스가 들어오더니 강정교 바리케이드 앞에서 멈춰 병력을 쏟아냅니다.  병력들은 내리자마자 완전무장을 합니다.  활동가들과 마을주민들이 다가가 그러지 말고 돌아가라는 읍소를 하지만 그들은 말없이 진압을 준비할 뿐입니다.

  엄청난 수의 전경부대 앞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전경부대를 보다 돌아본 바리케이드에 사람들이 대치하며 서있지만 너무나 미약해보일 뿐입니다.  대치차량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엮어 묶고있는 여성활동가들, 깃발을 든 중년을 훌쩍 넘긴 마을주민들, 그리고 여성들..  그에 비하면 전경부대는 그냥 치안을 담당한다는 경찰이 아닌 이 마을을 접수하려는 점령군처럼 보였습니다.

  1001이라는 부대..  트윗을 하는 분들이라면 저 부대의 정체를 잘 아실 겁니다.  77일간의 쌍용차 파업을 폭력적 진압으로 마무리시킨 장본인들입니다.  공장 지붕에서 최루액을 살포하고 곤봉으로 무력화 상태로 쓰러져있는 노동자들을 내려치던 그들 말입니다.  그들이 지금 강정에 와서 초로의 마을노인들과 연약한 활동가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힘의 역학상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첨언하자면, 쌍용차 진압이후 지금까지 22명이 자살 및 후유증으로 인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사망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려 사회 각계에서 돌보고 있는 와중에도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파업진압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증명해주는 현상앞에서 경찰은 1001부대의 쌍용차 진압사태를 '자랑스런 우수진압 사례'로 선정했다는 소식입니다.  과연 경찰이라는 공권력은 국민을 보호하는 집단인지, 아니면 자본을 보호하는 집단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입니다.

  전경버스는 그 어느때보다도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쏟아져 나온 병력들은 곧바로 강정마을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진압을 대기하고 있는 전경부대 앞에서 해군기지의 부당성, 경찰의 인권적 부당함, 마을을 살려달라 읍소하며 열변을 토하던 한 젊은 마을주민은 결국 땅에 엎드려 절규하고 흐느꼈습니다.  거대한 공권력의 힘 앞에서 한없이 미약하기만 한 자신의 존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규와 읍소뿐이었습니다. 

  병력은 점점 쏟아져 나옵니다.  작은 마을에 모여있는 백여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을 진압하러 이렇게 많은 부대가 움직였습니다.  한가운데에서 물밀듯이 몰려오는 저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위압감이 느껴지고 마치 점령군이 다가오는 듯한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전경들은 바리케이드를 지나 공사장으로 향합니다.  막을수도 힘이 없어 막지도 못할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입니다.  차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은 이들과 지역 도의원, 정치인들이 앉아있지만 무력감 그 자체입니다.

  문정현 신부님도 밤을 꼬박 지새우셨는데, 여전히 호탕한 목소리로 지나가는 경찰들에게 호령을 합니다.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트윗을 하시며 호령하시는 그의 얼굴은 새벽바람에 벌개진 상태였습니다.


  전경부대원들은 공사장 앞을 밀어내고 방패벽을 쌓습니다.  더 이상 못들어가게 막아내는 앞에서 한 마을 주민이 방패에 매달린 채, 울음을 터뜨리며 '마을을 살려줍서..' 절규합니다.

 

  저는 이후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출근을 해야한다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때가 없었습니다.  자괴감으로 가득 한 아침이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도 출근을 염두에 두어야 했고, 전경부대가 몰려오자 주차된 차를 빼지 못할까봐 미리 안전한 곳에 옮겨두는 치밀함까지 가진 저의 마음은 자괴감 그 자체였습니다.  화약을 실은 차량은 중산간 도로에서 이동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마을 주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지키며 경찰병력과 대치를 시작했는데 저는 빠져나와야만 하는 무거움은, 차라리 이들과 함께 하며 싸우고 밟히고 맞으며 끌려가 연행되는 일이 차라리 맘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거대한 공권력은 결국 가볍게 바리케이드를 치웠고 화약은 육로운송 규정을 가볍게 무시한 채, 화순항을 통해 해상경로로 운반되어 해상에서 공사현장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6차례에 이르는 폭파작업으로 구럼비의 파괴는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단단한 무언가가 함께 파괴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바로 다시, 강정마을로 향합니다.  첫번째 발파작업이 끝나고 어둠이 내리자 집회현장과 공사장 입구는 이렇게 한산해졌습니다.  마음은 무너져내리고 구럼비는 화약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저 높은 펜스와 사라진 병력은 실감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한낮의 저항속에 발파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지고 좌절했을까요.  사람들이 모여 마무리하고 있다는 의례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마을회장님을 중심으로 경과 및 일정을 상의하고 있습니다.

 

  강동균 마을회장님..  제게는 응급실 납치사건으로 기억에 강렬히 남은 분이십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극도의 피로감에 얼굴은 거칠어지고 살이 조금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회의가 다 끝나고 문득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 악수를 청하니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십니다.  그저 몸 조심하시고 건강 잃지 마시라 했더니, 조금은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나 괜찮은데?' 하며 씨익 웃으십니다.  어떤 이의 말대로 그는 그저 순박하고 우직한 황소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투사가 되고 저항을 이끄는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가 원한 것도 아닌 싸움과 저항의 중심에 서서 그는 제 역할을 다합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지금 우리 모두가 보고 느끼고 겪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속속 내려옵니다.  한명숙 전 총리도 내려왔지만 30분의 체류속에 잠깐의 말만 건네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끝까지 남은 것은 정동영 의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답하는 모습에서 비록 정치인의 분위기가 물씬 나긴 했지만, 자신이 권력자의 위치에 있었을 시작한 일에 대해 반성하고 사태해결에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고 위안을 주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강남에 출마하여 선거운동에도 바쁠 그가 이렇게 강정까지 내려와 마을 주민들과 2박 3일을 함께 했다는 일은 현장을 중시하는 정치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모습이자, 강정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발파는 매일매일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항을 이어나갑니다.  이틀 후인 3월 9일 저녁 강정을 다시 찾았을 때엔 이렇게 사람들이 앉아 피켓을 들고 저항 중에 있었습니다.

  이 날엔 조금 늦은 시간까지 집회와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이날까지 벌어진 경찰들의 폭력진압과 불법 연행에 대해 항의를 이어갔습니다.  전경버스는 한 시위자의 팔을 바퀴로 밟고 지나가 심각한 부상을 입혔고 알게모르게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의 압권은 저녁 무렵, 경찰이 거리에 떨어뜨린 불법채증자료가 담긴 카메라를 한 시민이 줍는 순간, 무장한 전경이 달려와 이단옆차기로 안경낀 얼굴을 가격하여 쓰러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달려가 쓰러진 시민을 보호했고, 경찰은 설상가상으로 이 시민을 공무집행 방해라며 연행해가려 했습니다.  쓰러진 시민은 길가 나무 아래에서 보호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여서 불법연행을 저지하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가격당한 사람의 상태를 살펴보니 큰 상처는 없었지만, 우측 광대뼈 부위의 타박상과 통증, 그리고 우측 옆구리와 허리부위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사와 국가인권위들이 나서서 중재를 하였지만, 경찰의 자세는 고압적이고 막무가내였습니다.  강정은 이렇게 일방적인 탄압과 폭력속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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