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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번호:51
그를 만난 것은 우연히 회사에서 업무시간에 몰래 통신 대화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는 오늘이 통신 마지막이라고 말했고, 나와의 좋은 만남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많은 대화를 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난 그와 대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우연히 그와 나는 같은 전철역을 이용했고,
우린 같은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만으로도 더욱 서로에게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만 그와 인사를 해야했다.
그 때, 그가 말했다. 나의 주소를 알려주면 자기가 무언가를 보내겠다는 것이다
. 작은 선물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약간은 망설이던 나는 그에게 나의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와 안녕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때...
우리집 우편함에 내 앞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편지봉투를 받게 되었다.
그것을 뜯었을 때, 작은 사물함 열쇠같은 것이 떨어졌다.
그리고 짧은 편지가 있었다. "이런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관함 열쇠를 복사해서 보냅니다. 이 열쇠는 당신이 매일 이용하시는 전철역 보관함 열쇠입니다.
전 월요일, 그리고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
이렇게 격일로 그 사물함에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을 넣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은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당신의 선물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하냐구..의문이겠지요...
전 다만 그 때, 당신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렇다고 절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제의를 승낙하신다면 한가지 약속을 해주십시오. 나를 기다려서 나의 모습을 보지 않겠다고....
물론 저도 당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만 약속해주시면, 당신의 답장을 받는 그날부터 나는 당신에게 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fax번호가 적혀있었다.
난 보관함 열쇠를 들어 바라보았다.
51번.....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지만 -
사실 요즘 사회적 논란을 빗고 있는 스토커는 아닐까 고민도 했다.
-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와 대화방에서 대화했을 때의 그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더욱더....
사실 그 때, 이후로 대화방에 가서 몇몇 사람과 대화는 해보았지만,
그와같은 느낌의 사람은 찾을 수가 없어서 난 자료를 찾을 때을 제외하고는 통신을 하지 않고 있었다.
통신의 재미를 잃어버린 기분이였다
. 난 자기위해 침대에 누웠다가 손을 뻗쳐 침대옆에 놓여진 책상위에서 종이한장과 열쇠를 같이 집어 다시 내 눈 앞에 펼쳐보았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왜 이렇게 격일로 정했을 까...
그리고 삼일동안이나 선물을 보내겠다는 말일까?
장난이면 어떻하지?
에이...500원 낭비하는 셈치고.. 해볼까...
이 팩스번호는 어디쯤일까.. 여덟자 전화번호라 도저히 짐작을 할 수가없네....
난 그의 느낌을 믿기로 했다...
"전 당신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겠어요..
그래서 받아드리기로 했습니다.
" 난 짧은 문구로 fax를 보냈다. 우리 부실 fax번호도 적어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내 책상위에 팩스용지를 놓고 갔다.
"저의 뜻을 이해해주실 줄 믿었습니다..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당신의 보관함에 내 작은 선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나는 회사 퇴근시간만 기다렸다가 얼른 지하철로 가서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올라탔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쉴새없이 빠르게 뛰었다.
난 괜히 내 심장소리가 러시아워에 걸린 많은 인파들에게 들릴까봐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주위를 의식해서 두리번거렸다.
내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난 떨리는 발걸음으로 보관함으로 다가갔다.
51번....
왜 하필 이 많은 번호들 중에 그는 51번을 택했을 까..
난 여태 전철을 타고 오면서 주머니속에서 만지작거렸던 열쇠를 조심스럽게 꺼내 그 곳에 집어넣었다
.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연 순간, 난 고개를 그 가까이 접근시키면서 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바닥은 푹신해 보이는 잔디가 깔려 있었다
. 청명한 초록빛의 쿠션...
그리고 보관함 주위는 사각으로 크리스마스 전구같은 동그란 전구가 반짝이며 보관함안을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더 숙여 안을 들여다보니.. 저 안쪽 끝에 선을 연결해 놓은 건전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초록빛 쿠션위에는 너무나도 예쁜 10개의 향수 미니어처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옆에는 가져가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놓아진 듯한 작은 바구니가 있었다.
난 미니어처 옆에 세워놓은 메모를 집어들었다. "당신의 공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작은 천사들의 엄마는 빠른 시일내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토요일에....." 정말이였다..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던 그의 말은 진심이였고, 결코 장난이 아니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나는 그의 모습이 있을까..
하고 궁금증도 일으켜 보았지만, 그는 아마도 약속을 지킬 것이다..
나도 궁금증을 참기로 했다. 약속은 지킬려고 있는 것이잖는가...
. 난 그 작은 천사들을 조심스럽게 안아서 그 바구니 안에 놓았다. 바구니안에는 하얀색 천이 깔려 있었다.
정말 아기천사들을 모시고 가는 기분인걸...
나는 바구니를 들고 다시 보관함 문을 잠기고 집으로 향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계단으로 향하였다.
토요일 오후..
퇴근을 하고 나는 재빨리 그 곳으로 향하였다.
보관함 문을 여니, 안에는 그의 말대로 내가 목요일에 가져온 아기천사의 엄마가 쿠션위에 살포시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붉은 색의 장미꽃 한송이도...
난 그옆에 있는 메모를 집었다. "엄마의 이름은 오드 에덴입니다..
천국의 향기라고 말하더군요..." 난 그 병을 들어 코에 갖다대었다.
부드러우면서 달콤한 향기가 은은히 내 곁에 다가왔다.
난 주머니에서 내가 준비한 것을 살며시 쿠션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그를 주기 위해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였다.
난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한지 모르겠다.
남자에게 선물을 한 적이 없었을뿐더러 남자에게 무슨 선물이 좋을 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심플한 스타일의 다이어리를 샀다.
나에겐 그만한 낭만이 없었던 것 같다. 난 그 옆에 내 메모을 놓았다.
"당신이 보낸 천사들이 제게 행운을 줄 것 같아요.. 제 작은 성의입니다.
" 난 문을 닫았다.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저절로 경쾌해졌고
, 입에서는 저절로 콧노래 가 흘러나왔고, 내 손에는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살며시 안겨있었다.
난 그녀와의 약속을 깨고 있었다.
난 그녀가 보관함을 열어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나의 선물을 보고 작은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나의 입가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를 위해서 그녀도 내게 선물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보답이라고 하지만,
난 그녀의 그 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한 그녀의 마음을 ..... 그 때, 통신에서 대화를 하면서 그녀에게 느꼈던 것은 진실이였던 것이다..
나의 느낌을 놓치지 않은 나에게 난 감사를 한다.
난 오늘도 그녀가 올 시간을 기다린다.
어느새 내 화장대위에는 9개의 천사의 엄마가 모여있었다.
내 화장대 거울위에는 아홉송이의 붉은 장미가 매달려 있었다. 내일이면 10개가 되겠지....
그 이후에 그는 나와 안녕을 할까.. 아니길 바란다..
얼굴도 모르는 이지만, 난 어느새 그의 그런 아름다운 배려를 사랑하게 되었다.
특별히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난 그를 그릴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와 작은 메모지로 말을 하면서 난 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도 나를 그리워할까....
보관함 안에는 오늘도 내 마지막 천사의 엄마가 장미꽃과 함께 초록색 쿠션위에 반짝이는 조명을 받으며 나란히 놓여있었다.
"ETERNITY..... 영원..... 당신과 영원이라는 것을 느끼다면...
어느샌가 저는 이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바보같다는 것을 내 자신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저번에 물으셨던 것에 대해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보관함 번호를 택한 이유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이 번호가 유독 제 눈에 들어오는 느낌을 가져서였기 때문이였습니다
. 그리고 당신이 물으셨죠.. 왜 하필 자신을 택했냐구..
그건 당신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도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까...
우리는 아직 서로를 한번도 본 적도 없고, 목소리조차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어딘지 모르는 팩스번호 하나와 그의 단정한 글씨체 뿐인데...
당신이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신이였기 때문에 주소를 가르쳐준 건지도 모릅니다.....
나는 ETERNITY를 들고 내 작은 선물을 올려놓았다.
난 어제도 그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어느 가게 쇼윈도우에 걸린 스카프를 보고는 그의 이미지에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것을 샀었다.
그가 이 선물을 마음에 들어할까...
"당신에게 이 스카프가 어울리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제 작은 천사들의 엄마들이 모여있게 되었군요.
설마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겠죠... 마지막이라면 제가 당신을 잡고 싶습니다.
스카프옆에 단정하게 내 메모지를 내려놓고 보관함 문을 잠갔다.
장미꽃을 손에 든 채, 집에 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나는 보관함 앞에 있는 레코드가게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레코드가게를 본 김에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CD를 사기로 했다. 영화음악코너에 가서 둘러보던 나는 가게 주인에게 가서 물었다. "저기 바드다드카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없어요?"
"죄송합니다. 그것은 저의 가게에 없군요." "네.."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게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였다. 탐스러운 장미꽃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떨리는 기분으로 51번 보관함 앞에 섰다.
만약 그의 선물이 없다면...
선물이 없으면 쪽지라도 남겨주면 좋을텐데...
난 보관함 문을 열었다. CD........ 바그다드카페.....라고 써진 그 CD을 본 순간.
나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나의 가슴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메모지를 들었다.
"제가 먼저 제안했던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전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
다시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영원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나는 몸을 돌렸다.... 유리벽안에서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목에는 내가 선물했던 그 스카프가 깔끔하게 니트위에 앉아있었다.
어제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어제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알았어야 했다.
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그의 입가에서도 나를 향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는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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