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의 여러 전투들은 그 치열함과 거대함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름있는 전투는 바르바로사 작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 등 몇개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최근에야 바그라치온 작전이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요.)
그래서 생각해 본 끝에 짧은 실력으로나마 독소전 전투 하나에 대해 연재를 해보려 합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2차대전 최강의 명장이자 절대본좌라고 생각하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이름을 드높인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입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 사이에 끼어 있어서 번역된 2차대전 서적들은 항상 짤막하게 넘어가는 전투지만 만슈타인의 활약으로 인하여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소련군 쪽으로 기운 균형추가 원점으로 돌아왔으며 전투 결과 쿠르스크 돌출부가 형성됬기 때문에 반드시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하는 전투입니다.
최강의 본좌 만슈타인
만슈타인이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으로 명성을 드높였다는건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정작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 대해서는 포스팅이 많이 없어서 한번 시작해 봅니다.
1.1943년 1월, 스탈린그라드 이외의 카프카스 상황.
1942년 12월부터 1943년 3월까지의 동부전선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리는 붉은 군대에게는 희망을(화성작전의 재앙은 빼고) 독일 국방군에게는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직후 파울루스의 독일 제6군은 147,000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91,000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물론 소련군의 인적 손실은 훨씬 더 컸지만 양군이 모두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한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이 최후의 승자가 됬다는 것은 소련군에게 큰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반면 독일군의 사기를 심각하게 떨어트렸습니다.
고리 작전을 통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고 있던 돈 전선군 사령관 로코소프스키에게 항복하는 파울루스
스탈린그라드를 한참 포위하고 있던 1942년 12월,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 외곽의 독일군을 밀어붙입니다. 소(小) 토성 작전의 후속 작전으로 이어진 이 공세는 스탈린그라드 밖의 돈 집단군과 A 집단군 외에도 중부 집단군까지 목표로 한 대공세였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서쪽의 바투틴의 남서 전선군과 에레멘코의 남부 전선군은 기병과 전차 전력을 증상시켜 제1,2,3 근위군과 제51군을 선봉으로 겨울폭풍 작전의 목표 달성 실패와 소토성 작전으로 지쳐있던 만슈타인의 돈 집단군을 보로실로프그라드와 로스토프로 밀어붙입니다. 여기서의 소련군의 공세 목표는 돈 집단군과 후퇴 중이던 독일 A 집단군의 연결을 끊어 놓는 데에 있었습니다.
바투틴과 예레멘코. 소련 장군들이 다 그렇지만 참 오덕후덕하게 생겼습니다.
당시 만슈타인은 히틀러의 전략 예비대 투입 거부와 A 집단군 후방 엄호 필요가 맞물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히틀러는 돈 강 남안의 쿠반 반도에 집단군 급의 병력을 남겨 두기를 원했는데 이는 소련군이 카프카스 유전 지대에 대한 공세를 펼칠 경우 아조프 해의 유일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A집단군은 새로운 위협에 신속히 후퇴하지 못했고 만슈타인은 A 집단군의 사활이 걸린 보급 요충지인 로스토프를 사수해야 했습니다. 로스토프 사수를 위해 홀리트 분견군과 급조된 프레터-피코 분견군이 치르 강을 필사적으로 사수하려 했습니다.
(분견군은 군단과 야전군의 중간급 제대로서, 군단과 사령부가 확대되어 다른 이웃 군단글까지 지휘할 때 편제되는 임시 편제입니다. 대게 지휘관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견군의 양측은 지나치게 공백이 넓었습니다. 북쪽 측면으로 제1,3 근위군, 제5 전차군과 제5 충격군이 압박을 가해 왔고, 남쪽으로는 제2 근위군, 제51군, 제28군이 12월 24일에 시작된 반격을 기점으로 몰려왔습니다.
홀리트가 아무리 비범해도 저 상황은 힘들지 말입니다.
두 분견군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1월 3일까지 히틀러의 현지사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도네츠 강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사이 소련제51군의 제3 근위 기계화 군단으로 개칭된 제4 기계화 군단은 로스토프를 목표로 돈 강으로 나아갔습니다. 제4 기계화군단의 진격은 티거로 무장한 제503 중전차대대에 의해 간신히 저지되었습니다.
중전차 대대의 호랑이들은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물론 당시는 호랑이가 부족해서 503 중전차대대는 티거20대와 3호전차 31대로 혼성 편성되었습니다.
1월 7일에 지모프니키 일대에서 벌어진 503 중전차대대의 활약으로 18대의 T-34가 작전 불능이 됩니다. 반면, 티거의 손실은 1월 9일에 2대, 10일에 2대에 불과했습니다. 한편 양 군 모두 러시아의 겨울날씨에 작전을 방해받았습니다. 1월 24일에 일어난 짧은 해빙 때문에 도로에 웅덩이가 형성되었고 이 웅덩이가 26일의 강추위로 다시 결빙되는 바람에 기동이 지지부빈해저 버렸고 여기에다 3일간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몰아닥쳤습니다.
만슈타인은 이 소강상태를 틈타서 제1 기갑군을 로스토프 북쪽으로 이동시켜 홀리트 분견군을 지원하려 하고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주장에 따라 1월 27일에 제1 기갑군 사령부 및 예하 군단 사령부들을 로스토프 북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걸정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기갑군 전체가 이동한 거지 실제 이동한 병력은 1개 기갑사단과 1개 보병사단, 2개 보안사단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부대는 일시적으로 제17군과 함께 쿠반 교두보에서 수세로 돌아섰습니다. 만슈타인 입장에서는 무척 실망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로스토프 일대에서 공세가 계속되는 동안 골리코프의 보로네시 전선군은 1월 13일에서 27일 사이에 제40군, 제6군, 제3 전차군에 오스트로고시스크-로소시 작전을 발동시켜 돈 강 상류를 따라가며 이탈리아 제8군의 잔여 병력을 일소하며 진격로를 열어놓았습니다. 1월 24일에는 브랸스크 전선군의 제13군이 보로네시 전선군 소속의 제38군, 제60군, 제40군과 합류하여 보로네시 돌출부와 돈 강 상류를 방어하던 독일 제2군의 3개 군단 중 2개 군단을 포위했습니다.
보로네시 전선군 사령관 골리코프. 브랸스크 전선군의 공세 개시로 독일군의 상황은 계속 어려워졌습니다.
그 사이 갈로프 작전가 즈베브자 작전에서는 보로네시 전선군의 제40군, 제69군, 제3 전차군과 남서 전선군의 제6군, 제1 근위군, 제3 근위군이 포포프 기동 집단을 선봉으로 로스트포 북서쪽에서 쇄도해 옵니다. 만슈타인은 제 1기갑군 병력을 더 끌어오고 제4 기갑군 병력도 끌어와서 이 공세를 차단하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로스토프에 대한 압박을 풀기에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만본좌는 과연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요?
사진 출처들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6497&logId=4093882
http://ona.blog.so-net.ne.jp/2009-09-02
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17737&page=216
http://www.fprado.com/armorsite/tigers-02.htm
http://kr.blog.yahoo.com/stg442221/1084
참고문헌 및 사이트
데이비드 글랜츠 '독소전쟁사'
퍼싱의 전쟁영화 이야기
위키피디아 'The 3rd Battlel of Kharkov' 항목
그런데 이건 참고 수준이 아닌 거의 배낀것과 진배없어서 뻘글 소리 들을지도 ㅠㅠ
P.S 역개루 카페와 밀군카페에 올린것과 내용은 동일합니다.
첫댓글 엑박의 만슈타인.
전부 엑박 뜨나요? 복사+붙여넣기 해서 그런가요?
다운 받으셔서 직접 올리셔야 사진이 다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ㄷㄷㄷ
베낀 것이면 어떻습니까???
님께서 정리하셔서 힘들게 글 올리신 거면 되지요...
저도 2차대전사를 좋아해서 이런 글이 굉장히 반갑네요... ^^;;;;
흠...3차하리코프 공방전이라.... 님 말씀대로 쿠르스크 전투로 넘어가는 것을 설명하려면 이 전투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진짜 독소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
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한데요. 이 당시, 그러니까 독소전쟁2기 때부터 독일군은 이미 주어진 전선 유지하는데도 좀 버겁게 보입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전부 때려부웠는데 완전 좇망인 바람에.
그런데 사실, 모스크바 공세 당시에 이미 독일군이 많이 소모된 것처럼 보이구요.
-> 책들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뭐, 책들마다 조금씩 묘사하는 게 틀리긴한데
그런 걸 보면 페도르 폰 보크 원수였나!? 그 사람 주장처럼 모스크바 공세 이전에 전선을 축소시켰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무리봐도 청색작전이나 북아프리카 공세나 당시 독일군의 능력을 상회하는 작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울프팬저님//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 거 전부 따지면 아무래도 1940프랑스의 기적을 보고 너무 자기들을 과대평가해서 온 비극아닐까요???? 흠... 히틀러도 자기국가가 전쟁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짐작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책들 읽어보고 난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호스바흐메모' 보면 그 사람 결국 1945년에 독일이 전쟁을 할 능력이 될 때면 다른 국가는 독일보다 2~3배는 강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게 히틀러의 주된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서 프랑스, 영국과 전쟁을 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기도 했고.....쩝. 그런데 왜 소련의 역량은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서 결국 전쟁할 생각했는지??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보인 가갑부대의 완전한 승리덕이죠.거기다소련과 슬라브족을 상당히 경시하고 있었으니까요.덩치만큰 2류국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듯 합니다.
yuso님// 그러게요..
그 게 히틀러와 독일군부의 최대 실수 중 하나죠..
나치독일을 패전으로 몰아넣은... 다른 하나는, 미국에대한 성급한 선전포고?!!후후.
1차대전때 러시아제국이 1000천만대군의 스팀롤러를 가동시켯음에도 대패해서 우크라이나에서 리가까지 이르는 동부영토를 모조리 장악당해 항복조약한것이 아마 러시아를 깔보게된 원인이겟지요. 플러스로 겨울전쟁까지
스탈린이 얘기했듯이 "히틀러와 함께라면 우린 무적이었을텐데~~!!" 이 말이 전 빈 말로 와닿지가 않거든요.
사실, 독일이 꼭, 반드시 소련을 쳐야했던 당위성같은 것이 별로..
프랑스 먹고나서 여러가지로 선택할 대안이 많았을텐데요.
뭐, 실제 역사가 그렇게 전개되었다면 정말 섬뜩한 세계가 펼쳐지겠지만요. ㅎㄷㄷ.
-> 쓰고나니 나치를 찬양하는 글같기도 하군요.
절대 히틀러나 스탈린을 좋아한다는 게 아닙니다.
'supplying war'라, 혹시 한국어로 출판된 책인가요?? 원서라면 참 읽기 난감할텐데..... (못 읽을 건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아니니까요 ㅠㅠ;;)
예.. 알고 있습니다. '독소전쟁'은 어떤 식으로 봐도 히틀러의 개인정치성향에서 일어난 전쟁이란 것을요... 다른 책들을 봐도 독일군 지휘부도 영국, 프랑스 이 쪽보다 러시아 쪽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떨어졌으니까요.... ㅡ.ㅡ;;
하긴 '겨울전쟁'을 보면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죠..
그러고보면 다른 얘기로.
-> 채승병님이 워낙 글을 정독하시고 쓰시는 편이라 그러신가?? 2-3달 전에 제가 들어갔을 때 봤던 내용에서 새로 업데이트된 내용을 제가 못 찾았습니다.
울프팬저님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꾸벅.
martin L. von Creveld라,... 이 양반 정보를 검색해봐야겠군요..
진심으로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꾸벅.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보겠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독일만큼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한 곳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말살하고 싶었을 겁니다. 애초에 히틀러도 소련을 가장 먼저 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를 분할하여 소련과 국경을 가깝게 만들어 놓은거죠. 독소불가침 조약은 처음부터 기만으로 여겨집니다. 근데 영국과 프랑스가 대독일 선전포고를 하니까 히틀러의 계획이 틀어지게 된거죠.
당시 히틀러는 소련 감시를 등한시 했나 봅니다. 그동안 스탈린은 서부에 집중된 공업단지를 동부로 옮기고 있었거든요. 스탈린은 무엇이든 섞어 놓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나 봐요. 아니면 경제적 플랜으로 시설분산을 했는지도 모르죠. 아무튼 스탈린은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민족비율을 낮추기 위해 대대적인 강제 이주도 실시합니다. 이런걸로 봐서 스탈린은 칵테일 컴플렉스(?)를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히틀러가 한 눈을 판 사이 스탈린은 전쟁과 상관없이 공업단지를 분산시켜놨고, 히틀러는 소련의 서부만 제압하면 그들의 생산능력이 제로화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고 스탈린은 예기치않게 반격의 자원을 남겨두게 되죠. 여기까지가 제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