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의 주제가‘내 인생의 책 한 권’이다. 필부의 삶에서 엄지를 펴 이것이다 하고 내세울 수 있는 지침서를 소개하라는 의미인 듯 한데 내게 그런 책이 과연 있기는 하던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길을 가고 지하철을 타도 수저를 들며 생각해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벼랑에 막힌 듯 깜깜하다. 미적분 시험문제를 앞에 둔 그 때처럼 생각의 타래를 행주처럼 짜고 또 짠다.
어떻게 살았기에 일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까지 책 한 권 추천하지 못한담. 사십 년 가까이 곁에 둔「建築設計資料集成日本建築學會 編」을 꼽아볼까.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자식들 결혼 밑천까지 대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 로뎅의 조각처럼 턱을 고이고 책장에 꽂힌 책을 바라본다. 진중히 도열한 책의 뒷모습. 생각은 많으나 글이 나오지 않는다. 주제는 한 권이라 했거늘 저 책은 열두 권이잖아.
니체의「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떨까. 그것도 아니올시다. ‘신이란.’명제에 심히 고뇌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턱도 아니다. 무위하며 뭉그적거리던 중 읽었던 수필 한 편이 퍼뜩 생각나 다시 넘겼다.「어떤 전설」이란 제목이다. 작가의 고등학교 은사였던 조정래 선생의 38년 전 초기 작품집 이름이라는 작가의 설명이다.
첫장의 흑백사진은 언제 보아도 신선하다. 날렵한 턱 선, 이마를 멋스럽게 덮은
풍성한 곱슬머리, 흰색 셔츠에 니트 느낌의 세련된 스트라이프 타이. 엄지와
검지로 담배 한 개비를 잡고 있는 선생. 돌도 안 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꽃무
늬 홈드레스를 입은 아내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30대 초반 무렵의 선생.
내 눈에는 영락없이 영화〈라이언의 처녀〉에서 영국군 장교에 적역이었던 크리스
토프 존스다.
바다위로 날려가는 양산, 하얀 물보라와 바람, 모래톱을 녹일 것 같은 격렬한 키스. 그리고 숲 속의 정사. 거미줄. 내 회상의 창고 깊숙한 곳에 널빈지로 남은 그 장면이 보였다. 맥박이 뛰고 침이 고였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강렬한 그 빛은 번민으로 방황했던 내 청소년시절의 모상模相. 작은 몸집이었기에 조건반사로 더욱 강한 모습이 되어야 했던 또 다른 나의 이면이었다. 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검푸른 밤하늘에 소용돌이치는 별빛과 바람의 카오스에 숨어있던 책 한 권을 어렵지 않게 건졌다. 작가의 타임머신이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간 것이다.
혁명공약을 암송하던 그 때, 나는 만으로 해서 열다섯 살에 공업고등학교 건축과 학생이 되었다. 섣달 생일이라 올된 열네 살과 몇 개월 차이나지 않았다. 잦은 병치레에다 설익은 나이이니 앞자리는 늘 내 차지. 키순으로 3번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실습시간이었다. 처음 수업은 당연히 연장 손질하고 다루는 법에 대한 공부다. 제도 실습시간에는 연필 깎는 법, 목공시간에는 대팻날 가는 법, 톱날 갈기와 정렬하는 법 같은, 하찮고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연필 깎기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4B데생 연필부터 4H제도 연필까지 종류별로 예닐곱 자루 놓고 일분 내에 깎아 보면 알게 되리라.
대팻날 갈기는 연필 깎기와는 급이 다르다. 숫돌을 빙판 삼아 대팻날과 손가락이 함께 추는 아이스댄싱이랄까. 미끄러지면 돌아오고, 다시 밀어 미끄러지는 경쾌한 리듬 사분의 삼박자. 실습조교가 일갈했다.
“날을 너무 누르지 말고. 호흡에 맞춰 타원형으로 천천히 좌우교대로. 손가락에 힘들어 가면 안 돼. 팔꿈치가 리듬을 타도록.”
자그마한 몸을 웅크리고 날을 갈았다. 닳은 손가락 지문에 아른거리는 핏줄을 보고서도 마저작침磨杵作針 뒷날 앞날 모두 갈았다. 다음은 대패질이다. 대팻날이 군장이라면 대패질은 군인인 셈. 왼 팔꿈치를 몸통에 밀착시켜 몸 전체를 움직여야 힘이 덜 들고 고운 대팻밥을 얻는다. 잘못된 방법은 팔 힘만으로 하는 대패질이다. 이 요령으로 하고 있는데도 조교는 틀렸다며 자세를 다시 잡아줬다. 건너 편 급우는 종이처럼 얇은 대팻밥을 스르륵 토해내고 나의 대패는 거스러미가 일어 막히는 걸 보면 조교의 지적이 맞는 것 같다. 왜 안 될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를 고쳐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귀배괄모龜背刮毛의 허탈감이라니. 내 키에 비해 높은 작업대가 문제란 걸 모르고 대팻날에만 눈을 흘겼다. 발 디딤판을 해 달라든가 작업대를 낮춰 달라든가 했어야 하는데 그 때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뻔한 결과에 풍선 바람 새듯 의기소침해진 나는 목공시간이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소일했다. 쥘 베르느의「십오소년 표류기」를 만난 일도 그 무렵이었다.‘주인공 나이는 14세 이름은 브리안.’‘비교적 넓은 주택을 반나절 만에 완성하고, 추운겨울 강에서 파이프를 연결하여 동굴로 끌어왔어.’ 내 인생의 지침이 된,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는 문장이다.
“내 또래가 어떻게 집을 짓고 총까지 쏠 수 있냐.”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꽁꽁 언 땅을 어떻게 팠을까. 연장도 없이.”
기술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가 집을 짓고 수도 파이프를 설치했다는 내용이 준 충격은 컸다. 열네살의 정신연령은 내용의 일부가 허구라 하더라도 사실로 믿고 싶었을 터. 어떤 훈육선생님의 상담보다도 간단명료하게 삶의 방향을 일깨워 준 『십오소년 표류기』. 저절로 화두話頭가 나왔다.
“내 또래의 아이가 하는데 나는 왜 못해.”
절벽 끝자락에서 발견한 탈출구다. 나는 일제 타지마田島 장長 대패를 어렵사리 구해 손재주가 출중한 급우에게 선물했다. 그래서 방황의 늪을 빠져 나왔다. 책을 받았다. 눈에 익은 표지 51년만의 상봉이다. 빛바랜 갈잎 색 갱지에서 풍기는 냄새. 들일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 머리 수건 냄새. 2012. 11.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어림없을 그 나이에 선생님은 저보다도 훨씬 조숙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역시 추천도서....하면 떠오를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글을 접하고, 쓰고, 행복한것을...
글 자주 올려주시길..
부끄럽습니다. 초고라 앞뒤 연결 잘 안 되고 해서 다시 리모델링 작업 중입니다. 관심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글이네요. 이제부터 이건 어떨까요? 또래가 못해도 난 한다.ㅎㅎ
참 그렇네요. '또래가 못해도 난 한다' 좋은 데요. 그러나 소심해서 그 레벨까진 무리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