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원리 – 개념어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물음과 답지의 내용들은 모두 소설의 원리(개념어)와 관련되어 있다. 소설은 무엇이며 어떠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가. 또 소설은 어떻게 독자와 소통하는가 등을 중심으로 소설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소설 공부의 기초를 확실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이다.
소설은 흔히 ‘그럴 듯하게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그럴 듯하게 꾸민다’는 말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로 엮어낸다는 뜻이다. 이를 ‘개연성 있는 허구’라고 한다.
이러한 소설은 인물과 사건을 기본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를 취한다. 등장인물이 다른 등장인물들과 엮어가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건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인물과 인물, 또는 인물과 환경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통해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를 특정한 시점을 선택하여 서술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 창작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을 전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중심 내용이 바로 주제이다.
1. 서술자와 시점
(1) 소설의 서술자 : 서술자는 작품 속에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인물로,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서술자가 ‘나’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서술자와 작가를 동일한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시점의 의미 : 어떤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모양도 다르게 보이듯이, 소설도 서술자가 어떤 위치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거나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시점(視點 point of view)’이란 이처럼 서술자가 작품 속의 사실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관찰하고 전달하느냐에 관한 서술자의 위치를 말한다. 따라서 소설의 시점은 서술자가 소설 속에 있는지 소설 밖에 있는지, 서술자가 인물의 내면까지 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 시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술자가 ‘어떤 위치에서 사건을 보느냐(위치)’, ‘어느 인물에 초점을 맞추느냐(초점)’, ‘인물의 내면에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능력)’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2. 시점의 종류
1) 1인칭 주인공 시점(fist-person narration)
1인칭 주관적 시점이라고도 하며, ‘나’를 주체로 한다. 어떤 객관적인 진실을 그리는데 있어서 항상 ‘나’라는 한 개체의 주관을 통하여야 한다. 즉 ‘나’의 입을 통해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특색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자아 중심의 시점은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양식을 낳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우선 한 개인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서한체 소설, 이와 유사하면서도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일기체 소설이 있다. 이러한 일인칭 주인공 시점 서술은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서술하는데 적합한 방법이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어떠한 조건에 구애됨이 없이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견딜 수가 없어 문을 조금 열었더니 냉기가 파고들어 정수리를 때리니 조금은 가라앉는군요. 그런데 오죽했으면 섣달에 버스문을 열어놓겠느냐 양해를 해주면 좀 어때서 생기기는 이틀쯤 썩은 호박같이 생긴 여자가 그나마 잘생긴 오목눈으로 쌍심지를 돋울대로 돋우더니 열어놓은 창문을 신경질적으로 닫는 것 아닙니까. 무스탕깨나 입고 있으니 나 같은 혼방외투하고는 비교도 안되겠는데도 무엇이 그리 추운지 남의 속 타는 줄은 모르고 그렇게 샐쭉해가지고 문을 닫는답니까. 지지리도 박복한 여자라 버스창문조차도 맘대로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제 가슴까지 울렁거립니다.
위의 인용은 채희윤의 「버스 안에서」의 서두 부분이다. 고아출신의 ‘나’는 전교조에 가입한 양심적인 해직교사의 아내이며, 남편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남편이 무책임하게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매우 흥분한 상태이다. 이처럼 일인칭 주인공 시점은 주인공 ‘나’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고, 스토리가 진행되며,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나’의 심리나 판단, 설명에 그대로 동조하기 쉽고, 따라서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기 쉽다는 이점을 가진다.
나는 달빛 아래 엎드린 마을을 보았다. 개들이 이집 저집에서 악을 썼다. 나는 벌떡 일어나 두 주먹 불끈 쥐고 고향집을 노려보았다. 필생의 적이, 야수가 발톱과 송곳니를 숨기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꼈다. 오냐, 라고 나는 말했다. 오냐, 네 정체를, 네 심장을 꿰뚫어주마. 떨리진 않았다. 망설이지도 않았다. 아주 예전에도, 그리고 굴암산 외딴 오두막에 엎디어 홀로 있는 지금도, 젊은 날의 내 싸움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적확하게 보려는 것일 뿐, 나는 언제나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나는 고향집 그늘 속으로 내 시선의 화살을 먼저 쏘아보냈다. 놈이 거기 있었다.
위의 인용은 박범신의 「골방」의 일부분이다. ‘온갖 회한과 회의에 가득 차 스스로 골방’을 택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변화무쌍한 인생을 향해 ‘긴장감과 순결하고 정직한 직진의 감수성으로’ 달려나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내면이, 속도감 있는 전개와 교차를 통해 작품을 주도한다. 이처럼 일인칭 주인공 시점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반면,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개인적인 판단만을 독자에게 보여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요하는 단점이 있다. 즉 작자의 시점이 기본적으로 주관에 근거하고 ‘나’의 주관이 강해 편견에 빠지기 쉬우며, 사건의 내적 분석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건과 인물에 공평을 기하기 어렵다.
2) 1인칭 관찰자 시점(fist-person-observer narration)
1인칭 관찰자는 ‘나’ 자신이거나, ‘나’가 주인공이 아니라 해도 작품 진행에 있어 주인공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진 인물이다. 즉 조역 혹은 단역에 해당하는 인물이 스토리를 말하는 경우로, 이 유형의 시점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믿음이 가는 현실적인 글로 만들어주는 효과를 갖는다. 다만 작가의 전지적 능력의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화자의 관찰대상이 되는 주인공의 내면이나 사건의 심층, 주제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윤수가 좀 이상하다. 국어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실 적에 반대시위를 주동했다고 처벌받은 뒤부터 약간 그렇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더 말수가 적어지고 혼자만 있으려고 한다. 윤수가 시위를 주동했다는 말이 나왔을 때 윤수를 아는 애들은 모두 피식 웃었었는데, 그건 무엇보다도 윤수가 무얼 주동하고 어쩌고 할 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은 최시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일부분이다. 이 소설은 문학소년 ‘나(선재)’의 눈을 통해 말더듬이 윤수의 학교생활과, 중등교육의 현장을 섬세하게 추적한 ‘나’의 일기체 소설이면서도, 윤수에 대한 관찰기라고 할 만큼 소설 전반이 윤수의 행동에 대한 ‘나’의 목격과 추리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판단이라는 것은 윤수의 행동에 대한 ‘나’의 관찰자로서의 판단일 뿐, 그 행동의 원인이나 파급효과,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있지 못한다. 이처럼 관찰자 시점의 경우 서술자의 관찰 폭이 제한되어 관찰 대상이 되는 인물의 내면까지 들어갈 수 없기에,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적다. 전지적 시점에 비해 서술상의 한계는 있지만,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더 유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3) 3인칭 관찰자 시점(author-observer narration)
3인칭 제한적 시점이라고도 불리며, 작가가 외부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 서술한다. 해설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인물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얻는데 적합하다. 이 시점은 작가가 소설의 내부에 들어가 작중인물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하는 특색이 있다. 즉 작가의 시선이 어느 특정한 인물에만 집중되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들을 공평하게 기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물론 1인칭에 비해 사건과 인물을 취급하는 태도가 훨씬 객관적이라 하더라도, 서사 과정에 작가의 주관과 상상이 가미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의 개입을 되도록 배제하고, 끝까지 객관적인 태도로 기술함으로써 순객관적 시점을 지향한다.
2번 좌석의 일병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그는 통로 바닥에 떨어뜨렸던 모자를 집어 꾹 눌러썼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옆에서 쿨쩍거리고 있는 아가씨와, 그리고 운전사의 완강한 뒤통수를 번갈아 지켜보면서 무릎 위에 놓인 주먹을 불끈불끈 쥐어보고는 하였다. 저 중년여인의 낯빛은 온통 퍼렇게 죽어 있었다. 의자를 꽉 메운 채 출렁거리고 있는 몸뚱아리가 금새 바닥으로 쏟아질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쥐고서 아예 통로 바닥으로 내려앉은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위의 인용은 이동하의 「그는 화가 났던가?」의 일부분이다. 과거형의 정확한 문장이 심리적 유추라든가 의식의 과잉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까닭 없이 난폭운전을 하는 버스 속에서 일방적으로 공포를 강요당한 승객들의 급박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3인칭 관찰자 시점은 내용에 대한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진술로 추상적 관념에 떨어질 염려가 없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사건의 제시만을 할 뿐 해설이나 비판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지적 성찰 없이는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기 힘들 수도 있다.
4) 3인칭 전지적 시점(omniscient-author narration)
전지적 작가 서술, 3인칭 전지적 시점이라고도 하며, 작가가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인물의 심리 상태나 행동의 동기, 감정, 의욕 등을 서술한다. 작가가 작품에 가장 폭넓게 관여하는 시점으로 인물의 내면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유추와 판단, 그리고 작가의 의도까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는 박영일을 잊어야 했다. 그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의 죽음조차 잊어야 했다. 물론 처음부터 박영일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밤에 악몽을 자주 꾸었다. 아내는 전에 없던 헛소리를 한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박영일로부터 쉽게 해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으레 진통이 따르게 될 것이고, 그는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위의 인용은 정찬의 「새」의 일부분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에 투입되어, 대학생인 박영일을 가해한 ‘그(김장수)’는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살던 중에 우연히 박영일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되고, 이후 자신으로 인해 비극적 운명에 처해진 박영일에 대해 죄책감으로 번민하게 된다. 이처럼 전지적 시점은 작가에 의해 의도된 서사적 추이, 즉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설명이 주어지지 않는 한, 상황과 정황에 대한 독자 나름의 판단과 추리적 상상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작가 주도에 의한 관념적인 소설이나 심리 위주의 소설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3. 거리
거리(distance)는 서술자와 인물, 독자 사이에 가깝고 멀게 느끼는 심적 거리를 말한다. 소설에서 거리는 서술자의 위치나 서술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