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 위협
국가 안보 위기
왕위 상실 가능성
이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징조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출처 입력
(사 7:14)
입니다.
겉으로 보면 질문하신 것처럼
"전쟁 이야기인데 왜 갑자기 아이가 태어난다는 이야기인가?"
출처 입력
라는 느낌이 듭니다.
만약 군사적 위로가 목적이었다면?
사용자께서 언급하신 사례처럼
엘리사 의 종이 두려워할 때 하나님은
불말과 불병거
출처 입력
를 보여 주셨습니다(열왕기하 6장).
그런 표적은 즉각적이고 군사적입니다.
아하스 입장에서는
하늘의 군대
적군의 갑작스러운 패배
성벽 위의 기적
같은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쉬운 징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임마누엘을 말씀하셨을까?
핵심은 하나님께서 아하스의 문제를 아하스보다 더 깊게 보셨다는 것입니다.
아하스의 눈에는
"전쟁"
출처 입력
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윗 왕조가 계속될 것인가?"
출처 입력
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계획은 단순한 침공이 아니었습니다.
"다브엘의 아들을 세워 왕을 삼자"
출처 입력
(사 7:6)
즉, 다윗 왕조를 끊어 버리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 왕조는 끊어지지 않는다."
출처 입력
는 것을 보여 주는 징조를 주신 것입니다.
임마누엘 징조의 핵심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출처 입력
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아하스야, 네가 앗수르를 의지할지라도 내 언약은 무너지지 않는다."
출처 입력
"다윗 집은 보존될 것이다."
출처 입력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조의 초점은 군사력이 아니라 언약의 지속성에 있습니다.
이중적 성취로 보는 이유
많은 해석자들은 이사야 7:14가
당시 아하스 시대에 의미가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에게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하스는 "65년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의 위기에 대한 표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어떤 가까운 성취가 있었고, 동시에 더 먼 미래의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이라는 견해가 오래전부터 존재합니다.
아하스에게 위로가 된 이유는?
우리 눈에는
"적군이 몰려오는데 아기가 태어난다?"
출처 입력
가 동떨어져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군은 지나간다."
출처 입력
"그러나 다윗 왕조는 남는다."
출처 입력
를 말씀하십니다.
즉,
아하스는 "이번 전쟁"을 보고 있었고,
하나님은 "수백 년 뒤에도 이어질 언약"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천군천마가 더 위로가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더 근본적인 징조를 주셨습니다.
"적군이 물러간다"보다 더 큰 약속,
"하나님이 다윗 집과 함께 계시며, 결국 메시아까지 보내실 것이다"
출처 입력
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7장의 임마누엘 징조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의 표적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흔들리는 다윗 왕조에게 주어진 언약의 표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본문 전체의 흐름에 가장 가깝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