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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의 죽음 이야기
그날 우리는 죽탄에 쓸려 보낸 동료 셋을 장지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역 근처의 포장마차촌을 지나면서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주집으로 들어갔는데, 세 동료를 보낸 아픔을 술로 달랠 마음보다 그들이 없는 썰렁한 숙소로 돌아갈 일이 걱정스러웠던 탓의 행동 통일이었을 것입니다.
소주 몇 병에 오징어회 몇 접시로 우리는 늦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 좋은 진주댁은 우리의 기분이 밝지 않다는 것을 살피고 어묵 국물에 국수 말아 서비스를 해주었고, 그걸로 요기를 한 덕택에 뱃심이 생긴 우리는 정말로 날을 샐 요량으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우리의 취중 화제는 죽탄에 쓸려간 동료 때문에 죽음에 관한 것이 많았습니다. 죽탄이란 탄광의 갱도가 우연히 지하수맥과 맞뚫려 물과 석탄이 죽이 되어 흐르는 것을 말하는데, 그런 불운을 맞은 주인공은 제아무리 노련한 광부라고 하여도 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까닭에 평소의 우리라면 화제로 삼기조차 꺼렸을 것입니다마는, 그날의 우리는 그 경우로 죽은 동료들을 묻고 돌아온 길인지라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후련히 쏟아내지 못하면 새까만 석탄 늪 속에서 건져낸 죽은 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부러 생사에 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김가 놈, 진폐 몇 급인가 맞아서 보상 몇 백 나왔을 때 이 바닥 떠버리지 않고 퍼질러 있더니 그예 갔어.”
큰 키의 오씨가 한 말입니다. 그는 세 망자 중 한 사람과 무척 친했었습니다.
“그 알량한 보상금 갖고 대처에 전세방 하나 얻을 수 있을 줄 아쇼? 김씨 그 양반, 한 이삼 년 몸이 버틸 때까지 벌어서 나갈 생각이었답디다.”
우리 셋 중 막내격인 신가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신가도 오씨도, 말을 끝내고는 곧바로 잔을 훌쩍 비워서 자신들이 한 이야기를 되새길 여유를 없애고 있었습니다. 말로 만들기는 하였지만 생각으로 되새김하기는 싫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옆에는 대여섯 명의 술꾼들이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알맞게 술이 오른 얼굴들이었는데, 되도록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들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한잔 걸쳐본 적이 있으시면 아실 테지만, 술좌석에서는 무거운 화제를 들고 나온 사람에게 좌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상례인지라 우리는 진주집을 전세 낸 양 마음껏 죽은 동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막장 인생이라더니…… 죽음까지도 막장에서 맞았어. 김가 녀석, 살겠다고 버팀목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던 꼬락서닐 생각하면…”
“아서뿔쇼! 목숨 값 받아 자식 마누라 살 길 마련해 줄라고 바득바득 기어들어 간 양반 이야기는 뭘라꼬 계속해 싸쇼?”
“하도 기막혀서 안 그러나? 구조대가 갈 때까지 환기 파이프 옆에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것을 기어 나오기는 왜 기어 나오나? 남들은 잘도 살아있던데. 하기는 그 호구에서 생존자라고는 어떤 말뼉다귀인지 모르는 신참 외지인 한 사람뿐이더라마는…….”
오씨와 신가의 이야기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씨는 연장자라 되도록 감정을 죽인 목소리였습니다마는, 신가는 젊은 핑계로 못하는 전라 경상 사투리를 억지로 섞어가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무어라고 거들었을 것입니다마는, 취중에 자기가 한 말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참 취객일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아마 불쌍한 세 망자를 흉보는 일에 조력을 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진주집 텔레비전이 애국가를 끝으로 방송을 멈출 때까지 마시고 떠들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맞은편 구석에서 혼자 자작자음을 하던 우리 연배쯤의 사내 하나가 마시던 술병과 잔을 들고 우리 쪽으로 옮겨왔습니다. 어느새 다른 취객들은 모두 가고 포장마차 안에는 우리 셋과 그 사내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도 한자리 낍시다. 나도 얘기할 게 많아요!”
사내는 그렇게 수인사에 대신했습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의 강약으로 미루어 제법 만취에 육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난 말이오. 아주아주 서러운 죽음 이야기를 알고 있다오. 형씨들, 어떠시오? 내가 이야기할 테니 어지간하다 싶으면 내 술값 대신 내주지 않겠소?”
우리는 사내의 이 엉뚱한 제의에 동의했습니다. 술값이야 얼마가 들어가던지 우리에게는 날을 샐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숙소에 돌아가서 눈을 감으면 세 망자의 모습을 꿈속에서 보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나도 술값 정도는 이렇게 가지고 다니지만 이 핑계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꼭 털어놓고 싶어 청하는 것이라오.”
사내는 돈지갑을 꺼내어 속을 보이는 것으로 이야기의 서두를 삼았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머니의 급한 연락을 받고 고향행 열차 안에 있었습니다. “급히 오너라”하는 간단한 말씀만이 계셨기 때문에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해 보며 열차의 속도 늦음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청상이 되셔서 자식 하나만을 바라고 세파를 헤쳐 오신 여장부이셨으므로 예사로운 일로는 그런 유의 말씀을 내리실 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나는 도시에서 어머니가 보내 주는 돈으로 무위도식하고 있었습니다. 남만큼 배웠고 보시다시피 체격도 남에게 빠지지 않을 정도이면서도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한 성미 탓에 변변한 직장 하나 갖지 못한 채로 불쌍한 홀어머니의 고혈만 파먹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가뜩이나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던 내게 그날의 호출은 꾸지람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나는 걱정과 근심에 불안을 더한 기분으로 고향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고향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우리 집 또한 어디에나 흔한 중농 정도의 한옥입니다. 나는 저녁 무렵의 어둑어둑한 기운을 연막 삼아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새하얀 소복을 하시고 아버지의 위패 앞에 단정히 앉아 계셨습니다. 나는 “아차!” 싶었습니다. 홀로 되신 지 30년, 어머니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렇게 가신 이의 영전에 앉으셔서 생전의 남편을 대하듯 대화를 하시곤 하셨으므로 이건 분명 예사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버지의 영위를 뵈옵는 예를 마치고 물러앉자 근엄한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부모 두 몫을 혼자 하시며 자식을 길러 오신 분다운 흐트러짐이 없는 언행이셨습니다.
“돌연히 내려오라고 해서 놀랐을 줄 안다. 직접 물어볼 말이 있어서 불렀다.”
나는 무슨 꾸지람을 하실지 몰라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엄정한 말씀 끝에는 으레 자식의 못난 행동을 다스리는 꾸지람이 뒤따르곤 하였던 것이 어릴 때부터의 관행이었습니다.
“숨김없이 답해야 한다. 너, 웃말 당골네 딸 순정이와는 어떤 관계냐?”
나는 무슨 말씀인가 하고 어리둥절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당골네는 근동의 유일한 무당인데, 그녀의 딸 순정이는 나보다 7년이나 어린 처녀로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질문을 하신 후 잠시 자식의 기색을 살피시고 표정이 풀리셨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내 아들인데…”하시는 빛이셨습니다.
“물론 네게 무슨 실수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지만 꼭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맹랑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불렀다.”
그렇게 시작하신 어머니의 말씀은 나를 아연하게 하였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내가 떠나 있던 7년 사이에 고향 마을에서는 어머니의 말씀 그대로 맹랑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윗마을의 당골네는 근동 유일의 무당으로 용하다고 소문이 높은 만신이었습니다. 청룡도를 휘두르며 추는 강신무는 도의 무형 문화재 담당 공무원이 영상기기로 촬영해 갈 만큼 화려한 것이었습니다.
당골네에게는 아버지를 알 수 없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고교를 졸업하고 대도시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꼬마였는데, 그 꼬마가 예의 순정이였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순정이는 쌍갈래 머리를 단정히 땋아 내리고 화려한 색깔의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즐겨 입던 눈이 똥그랗고 볼이 빨간 꼬마 아가씨였습니다.
우리 마을과 윗마을은 동산을 하나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윗마을 뒤편의 악산 줄기를 달리는 고갯길을 넘어 읍내에 있는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히 나와 꼬마 순정이는 3년여 동안 같은 통학로를 함께 오가야 하였습니다. 겨울날 고갯길에서 미끄러져 울고 있는 순정이를 업어서 집에 데려다 주거나 사탕 따위의 먹을 것이 생길 때면 나누어주곤 했던 정도가 내가 가진 순정이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꼬마 순정이가 어느새 성숙한 처녀가 되었고, 보름 전에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난 7년 동안 나를 기다린 끝에 상사병으로 간장이 타서 죽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기막힌 것은 순정이의 어머니 당골네가 나와 자기 딸이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순정이가 죽은 것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심화병을 얻은 탓이라고 살을 붙여서 말입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부모 양쪽의 역할을 착실하게 해 오신 어머니가 나를 부르신 것은 당연한 처사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소문이 계속되면 자식의 앞길에 누가 될까봐 직접 해결하기를 바라시고 내려오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밤으로 나는 윗마을의 당골네를 찾아 나섰습니다. 어머니께서 이 밤 내로 소문을 불식시키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도시로 돌아가라고 엄명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윗마을로 향하는 작은 동산을 넘으면서 나는 순정이와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정이를 최후로 만난 건 그 아이가 아직 꼬마였을 때라고 단정하고 있었는데 동산을 지나며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작년 추석 무렵 명절을 쇠러 귀향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권주에 못 이겨 거나하게 취해 동산을 넘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처녀들이 명절옷 차림으로 맞은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술기운에 장난스런 기분이 들었던 나는 산길 주위에 곱게 핀 풀꽃을 한 줌 꺾어 그 중 가장 예뻐 보이는 처녀에게 불쑥 내밀었는데, 그 무심한 행동의 상대가 바로 순정이였던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꼬마도 7년 세월이면 성숙한 처녀로 변신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장난기가 빚은 유죄였습니다.
그렇다면 순정이는 그때의 내 무심한 장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말로 나를 기다리다 상사병에 걸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분이 되자 원래 익히 다니던 길이었으므로 평소 같으면 그렇지도 않았을 산길이 왠지 낯설어 보이며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디선가 순정이가 불쑥 나타나서 내게 받았던 풀꽃을 되돌려 주려고 할 것만 같아 나는 빠른 걸음으로 동산을 벗어났습니다.
순정이네 집은 마을 입구 성황당 옆에 있는 초가였습니다. 다른 집들과 훌쩍 떨어져 있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끝이라 음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날 꼬마 순정이의 하학 길을 배웅하려 들렀을 때 무심코 들여다보았던 당골네의 살림방을 겸한 신당에 늘어서 있던 신장과 부처들의 조각, 화상들이 또한 생각되어 음산한 기분은 더했습니다.
집 뒤의 토담 길을 지나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면서도 “계십니까?”의 수하가 나오지 않은 까닭은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신당 쪽으로 조심스레 걸었습니다. 불이 켜져 있었으므로 문 앞까지 다가가서 사람이 왔음을 알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신당의 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며 밖을 향해 우뚝 서있는 당골네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강신무를 출 때의 울긋불긋 요란스러운 복장을 한 당골네는 양손에 청룡도와 삼지창을 나누어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배시시 웃고 있었습니다.
당골네의 등 뒤로 보이는 신당 안은 세상의 풍경이 아닌 양 흉흉하기만 하였습니다. 수십 개의 촛불에 의해 비추어진 신장과 부처의 조각과 화상들은 서너 평 좁은 방안에 천상계와 지옥계를 연출하고 제각기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흠칫 한 발짝 물러선 것은 당연한 반사작용이었고, 뒤이어 인사말을 뇌까린 것은 도망칠 용기가 없었던 탓의 만용이었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순정이 어머니!”
참으로 분위기에 맞지 않는 인사말이었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운을 떼어놓으니 두려움도 한결 가셔서 다음 말은 쉽사리 이을 수 있었습니다.
“듣자하니 순정이에게 일이 있었다기에…”
마땅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 탓에 그렇게 말꼬리를 흐렸는데, 그게 적절한 표현이 된 듯 당골네는 몸을 비켜주며 들어오기를 청했습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순정이가 죽었다’의 소문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두어야 했으므로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골네의 방은 신당을 겸하고 있었는데, 방의 주인인 당골네는 모든 신에게 고루 충성을 바치는 공평무사한 신녀인 모양으로 옥황상제와 관왕이 각기 시종을 거느리고 전면에 자리 잡아 천상계와 인간계를 주재하고 있었고, 부처와 노군이 불과 선의 세계를, 염왕이 지옥계를 질타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관음보살과 성모 마리아의 흉상이 신당의 중앙에 위치한 제단 위에 세워져 있기도 하였는데, 두 성녀는 수고스럽게도 어떤 망인의 초상화를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무척이나 연약해 보이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예감이 들어 똑바로 보지 못하고 흘낏 훔쳐보았는데, 잠깐 본 기억만으로도 그녀가 순정이이고 생전의 모습이 어떠했으리라는 것까지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난삽한 신당 안의 풍경 덕택에 두려움이 한결 가셨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정식 조문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슬픔이 크셨겠습니다.”
그렇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끝내고 마주본 순간, 나는 당골네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신당 안의 온갖 신상들보다 더욱 흉흉한 표정을 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네 놈이 내 딸을…”
그런 뜻의 말을 들은 듯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당골네가 손에 든 삼지창을 휘둘러 내 등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당골네의 삼지창은 놋쇠로 만든 세 갈래 창날에 붉은 수실이 달린 단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골네의 삼지창은 예고 없이 휘둘러진 것이었으므로 나는 “앗!”하는 사이에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날이 무딘 무속용 창인지라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나는 등뼈가 부셔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고 당골네의 다음 공격을 피해 밖으로 내달았습니다.
당골네는 삼지창을 높이 쳐들고 뒤쫓아 왔습니다. 나는 창날의 위협에 밀려 집 뒤의 산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뒷산은 바위투성이의 악산이었으므로 전날 철부지 시절에도 출입을 꺼리던 곳이었는데 다급한 김에 뛰어오른 것입니다.
그 밤 따라 구름이 짙어 칠흑같이 어두운 바위산 속에서 나는 길을 더듬어 걷고 있었습니다. 산의 반대편으로 나가서 마을을 만나면 구조를 청할 심산이었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릅니다. 어두움이 가시고 동녘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올 무렵에야 나는 산과 산의 사이 분지에 있는 십여 채의 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곳에 닿았는지 설명할 길 없는 방황 끝에 마을을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아직 이랑 사이의 흙덩이가 구별될 만큼 밝지 않았는데도 마을 입구의 밭에서는 벌써 농부들이 나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괭이를 들고 밭을 갈고 있는 오십대 후반쯤의 농부에게 다가가서 길을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농부는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창백한 것을 보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데도 꼭두새벽부터 일을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돌려 지나쳤습니다.
마을 앞 길가에는 샘터가 있었는데, 댕기머리 처녀들이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나는 질그릇 물동이에 쪽박으로 물을 퍼 담고 있는 처녀들에게 다가가서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 마을 이름이 뭐지요?”
처녀들은 힐끔 돌아본 후 놀란 토끼 떼 마냥 다 차지 않은 물동이를 안고 자리를 피해 도망쳤습니다. 나는 처녀들의 얼굴빛이 백납처럼 하얀 데다 물동이를 안은 걸음걸이마저 너무 조용하여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외를 하는가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아직도 이런 구식 예절을 지키는 마을이 있구나’하고 감탄하며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나는 내가 지나온 샘터 가의 길로 삼지창을 높이 쳐든 당골네가 달려오고 있는 양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먼 거리이기는 하였지만 분명히 나를 발견한 듯한 추격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나는 ‘앗 뜨거라!’하고 황급히 마을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서 숨을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마을의 중심 공터에는 타작이 끝난 옥수수 줄기의 무더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노인 한 분이 한가로이 곰방대를 물고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당골네가 곧 따라올 것이 확실했으므로 다급해 있던 나는 노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쫓기고 있습니다. 숨을 곳이 없겠습니까?”
노인은 곰방대 끝으로 옥수수 무더기를 가리켰습니다. 나는 노인의 뜻을 짐작하고 옥수수 무더기 속으로 파들어 몸을 숨겼습니다.
얼굴까지 옥수수 무더기를 덮고 양손을 감추었을 때 당골네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옥수수 무더기의 틈으로 당골네가 주위를 살피고 있는 양을 관찰하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당골네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함부로 삼지창을 휘둘러 옥수수 무더기를 찔러댔습니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잔뜩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때에 내가 금세 얼굴을 찔러올 것만 같이 무차별 휘둘러진 삼지창의 공격으로부터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요행수에 힘입은 행운이었을 것입니다.
당골네의 그러한 횡포를 한참을 더 견딘 끝에 나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당골네는 옥수수 무더기 주위를 떠나갔고, 나는 몸을 일으켜 숨어 있던 곳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길게 심호흡을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당골네도 곰방대의 노인도 보이지 않고 하늘 또한 희끄무레한 그대로였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양으로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얼마쯤 산길을 걸었을 때 다시 마을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나는 이제야 집으로 가게 되었다고 안도했습니다. 우리 마을로 가는 길을 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낯익었습니다. 그것도 조금 전에 본 경치를 또 보는 것만 같은 상황이어서 도무지 이상하기만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은 조금 전에 떠나온 곳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나는 아둔하게도 길을 잘못 들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마을 중심의 옥수수 무더기를 확인하여 그 같은 사실을 확인한 나는 ‘밤새 당골네에게 쫓긴 탓에 어떻게 되었나보다’하고 씁쓰레하였습니다.
다시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에게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혼잣말 같은 인사까지 남기고 처음에 당골네에게 쫓겨 들어왔던 길로 접어든 터라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희끄무레한 새벽의 기운 그대로였지만 길을 잃을 정도로 어두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차분한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등성이 하나를 넘었습니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이제야 길을 찾았구나’하는 후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요. 분명 등성이를 넘어 새로운 마을을 찾았지 싶었는데 나는 같은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들에는 여전히 밭을 갈고 있는 농부가 있었고, 마을 입구의 샘터에서는 처녀들이 물을 긷고 있다가 내외를 하고 총총 달아났습니다. 마을 중심의 옥수수 무더기가 있는 마당까지 가볼 필요도 없이 나는 같은 곳으로 돌아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사실은 머리끝이 쭈뼛하는 공포를 느꼈습니다마는, 애써 ‘내가 길눈이 어두운 탓에 길을 잘못 든 것이다’라고 변명을 만들어 본 것입니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정확히 길을 더듬어 집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한 것은 물론입니다.
주위는 여전히 어둑했고 하늘은 희끄무레한 빛깔 그대로였습니다. 나는 그때서야 ‘이건 이상하다’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파하지 않는 잔치가 없고 새지 않는 밤이 없음은 코흘리개들도 알고 있는 상식인데, 나는 벌써 여러 시간 동안 새벽의 시간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때는 초여름이라 길게 자란 잡초가 이슬을 머금고 있어 바지 아래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고, 꼬박 밤을 새워 걸었는데도 피곤하지도 않았으며, 시장기가 느껴지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여간 두렵지가 않아 걸음의 속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겪어보신 분이 여러분 중에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마 어떤 강심장의 사람도 그러한 상황에 놓이면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확실히,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길을 더듬어 산길을 벗어난 곳에 또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애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을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나는 조금 전 떠나온 길을 통해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마을 앞 들판에서는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고, 마을 입구 샘터에서는 처녀들이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몸을 돌려 산길로 뛰어든 것은 두려움 때문에 이루어진 반사적인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마구 산길로 내달았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앞에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우뚝 달리던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앞을 막고 있는 마을이 또 떠나온 마을과 같은 경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 이해할 수 없는 함정은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마을의 반대편을 염두에 두고 계속 앞으로 달린 끝에 나는 내가 여전히 같은 마을의 앞 들판을 달리고 있음을 밭을 갈고 있는 농부로 인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맥이 탁 풀려서 털썩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하늘은 어슴푸레했고 주위는 어둑한 새벽의 기운 그대로인데, 나는 쓰러진 채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샘터에서 물을 긷던 처녀들 중의 하나가 내 쪽으로 달려오는 듯한 환상을 보면서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눈을 떴습니다. 주위의 웅성거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내가 전통 혼례복을 차려 입은 신랑이 되어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연지곤지를 곱게 바른 신부와 맞절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화들짝 놀라 “이럴 수는 없다!”고 외쳐 보았습니다-‘외치려고 해보았다’가 올바른 표현이겠습니다. 의욕은 있었지만 소리로 만들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나는 마약을 복용한 것과 같이 나른한 상태가 되어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마약의 위력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릅니다마는- 무기력하게 성혼의 예식을 치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신방에 들 때까지 나는 내내 같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신부며 하객들의 얼굴이 구름 속의 경치인 양 아른거리고 주위의 일 따위 다 귀찮으니 아무렇게나 되어도 좋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신부와 단둘이 앉아 초야의 밤을 보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모양이었습니다. 넋을 놓은 상태에서 벽에 기대어 있다가 흐릿한 채로 얼핏 잠이 들었나봅니다. 누군가 내 몸 위에 이불을 덮어 주고 있었습니다. 천근이나 되는 양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떠올려 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충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내 몸 위에 이불을 덮어 주고 있는 손길의 주인공인 신부의 얼굴을 비로소 보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 신부의 정체가 순정이였던 것입니다.
창백한 두 볼에 입술만 새빨간 순정이가 전통 혼례복 차림을 하고 내 몸을 원앙금침 속으로 파묻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공포의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어찌된 경과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순정이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순정이는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던 사람이었고, 그런데도 눈앞에 존재하여 나를 낭군으로 받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앞서 설명한 대로의 외모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 지나쳐서 소름이 끼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으므로, 내 혼돈은 공포와 환희의 경계선을 오락가락 하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순정이는 구석자리로 물러나 혼례복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조그맣게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 완전한 주관을 찾지 못한 상태였지만 내 신부-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는 어느새 순정이와 가시버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순정이에게 몇 마디 말을 물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죽었다더니, 죽지 않았었소?”
절반쯤의 경어를 써서 나는 그렇게 어렵사리 물었습니다. 순정이를 나와 동격의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였을 것입니다.
순정이는 대답 대신 직접 확인해 보라는 양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조금 전 소름이 끼치도록 아름답다고 표현한 그대로의 창백한 얼굴을 한 절세미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내게 속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간의 괴이한 경과를 망각하고 덥석 손을 잡았습니다.
다음 순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우리는 세상의 여느 신랑 신부가 치르는 그대로의 성스러운 의식을 거쳐 명실 공히 한 쌍의 부부가 되었습니다. 추호의 거리낌도 없는, 사랑만이 가득한 밤이었습니다.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예의 희끄무레한 밝음이 동창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요, 나는 아련한 꿈속에 있었습니다. 사랑을 나눈 후의 만족한 평화 속에서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귀에 익은 소리로 새겨듣고, 반사적으로 눈을 떴습니다.
“네 이년! 생사가 유별한데 감히 내 아들을!”
어머니의 노호였습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습니다.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순정이를 쫓고 있는 양이 보였습니다. 어느새 여염 아낙네의 차림으로 바꾸어 입은 내 아내 순정이가 남편의 아침상을 받쳐 들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어머니의 부지깽이 공격에 어깨를 얻어맞고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순정이는 어머니의 계속된 부지깽이 공격을 온몸에 받으며 가까스로 남편의 앞에 밥상을 내려놓은 후 뒷걸음질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한과 정이 어우러진 깊고 또 깊은 눈빛을 남편의 가슴속에 새겨 두고 아침의 기운 속으로 희석되어 사라져 갔습니다.
나는 순정이의 그림자를 잡으려고 허우적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노호는 여전하여 자식의 열망을 무위로 돌렸습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아내를 잃는 모습을 환상 속에서 지켜보며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눈을 떴습니다.
사내는 여기서 일단 이야기를 멈추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손에 잡힌 술잔에 소주를 채워 주었습니다. 어느새 사내의 이야기에 깊이 끌려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내는 한참 동안 망연한 눈빛으로 술잔을 들여다보고 있더니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로 물었습니다.
“재미있나요? 내 이야기?”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사내는 다시 물었습니다.
“거짓말 같지요? 그렇지만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내는 잔을 홀짝 비운 후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웃말의 당골네 집까지 오셨다가 뜻밖의 광경을 보셨다고 합니다. 아들이 죽은 처녀의 초상화 앞에 누워 있고 당골네는 아들과 망인의 모습을 흉내 낸 한 쌍의 제웅에 신랑 신부의 옷을 입혀 초야의 규방을 꾸며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뛰어들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살아보신 분은 짐작하셨겠지만 죽은 처녀와 산 총각을 결혼시켜 처녀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죽은 처녀와 결혼한 총각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는 전설이 또한 전승되고 있었던 터라 어머니가 당골네의 행사를 막으려 드신 것은 당연한 처사이셨습니다.
잠시, 두 어머니가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 어머니는 소문난 여장부이셨고 자식에 대한 사랑마저 당골네에 못하지 않아 마침내 제웅 부부를 떼어놓는 데 성공하셨는데, 그때에야 잠들어 있던 내가 깨어났다고 하였습니다.
방성대곡을 하는 당골네를 뒤로 하고 우리 모자가 웃말을 빠져 나올 때에 이번에야말로 환상이 아닌 진짜 새벽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노호에 쫓겨 그 길로 고향마을을 떠나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후 나는 되도록 고향마을에서의 괴이한 하룻밤을 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낮에는 어찌어찌 해서 시간을 보내지만 밤이 되어 눈을 감기만 하면 예의 마을에서 순정이가 나를 손짓해 부르는 꿈이 꾸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꿈은 반복과 중복이 심해 줄거리를 종잡기 힘들었지만 요점은 늘 내가 순정이가 있는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내용의 강조이곤 하였습니다. 그곳이 근심과 걱정이 없이 사랑만이 가득한 어떤 이상향이거나, 순정이 모녀의 원념에 감동한 온갖 신장들이 연합해 빚어낸 생사지간의 환경이거나, 순정이의 진정을 저버린 내 양심의 소리가 두뇌를 자극하여 조형해 낸 꿈속의 경치이거나, 나는 그곳에서 보낸 하룻밤이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나는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간열차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고향마을에 도착한 즉시 순정이의 무덤을 파헤쳤는데 열망이 절정에 달한 때문의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관을 열자 제 어머니 당골네의 정성으로 전통 혼례복을 곱게 차려 입은 순정이가 반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일으켜 안았습니다. 그 길로 우리는 산과 강과 또 산을 넘어 -우리가 그 밤에 어디를 어떻게 헤맸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정신이 들었을 때의 내가 무척 먼 곳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대단한 여행을 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연히 발견한 깊은 산속 약초 캐는 이들의 임시 거처인 오두막에 머물었습니다. 단둘만의 신방을 꾸밀 심산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날을 보냈습니다. 나는 순정이에게 사랑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가졌던 하룻밤의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내가 지껄여 댄 이야기의 후반부를 나는 더 옮길 수가 없습니다. 사내의 목소리와 행동, 눈빛에서 광기의 기미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대강만 간추려 보면 사내는 그렇게 시신과 부부생활을 하던 중에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사회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사내가 무덤을 파헤친 일은 범죄행위였지만 정신이 올바른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는 않고 오히려 공공의료기관의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어지간히 끝을 내자 우리는 새벽이 오고 있음을 핑계로 사내와의 자리를 끝내고 일어섰습니다. 사내는 만취가 되어 계속 지껄여 대고 있었지만 우리는 죽탄에 쓸려 보낸 세 망자의 기억을 떨치는 데 성공했으므로 -억지로나마 밤을 새웠으므로- 이제는 사내의 이야기로부터 달아나는 순서를 이행해야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주집의 문을 나서서 암갈색 먼지 길을 걸어 숙소로 향하고 있을 순간, 비틀걸음으로 뒤따라와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고 휘적휘적 걷던 사내가 갑자기 비명처럼 외쳐 댔습니다.
“여러분! 소녀의 첫사랑을 훔치지 마십시오! 나처럼 영원히 헤어나지 못합니다! 나는 말입니다! 순정이의 첫사랑을 훔친 죄로 이렇게 죽음을 찾아 막장에서 막장으로 떠돌고 있답니다!”
새벽의 기운이 가득한 거리에서 차츰 멀어져 가는 사내의 소리를 등 뒤로 흘리며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우리의 숙소인 ‘ㅇㅇ탄좌 기숙사’의 건물이 보일 무렵, 우리 중의 연장자인 오씨가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그 친구, 아직 병원에 있는 줄 알았더니…”
막내 신가가 되물었습니다.
“면식이 있는 사람인가요?”
오씨는 자신이 없는 말투로 답했습니다.
“아마 내가 말했을 걸. 신참 외지인이 한 사람 살아남았다고. 내 손으로 병원으로 옮겼으니 잘못 볼 리는 없겠지만…… 얼굴만 닮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지.”
먼 곳에서 기적소리가 울려왔습니다. 신가가 탄식하듯 한 마디 했습니다.
“세상 참 우습군요. 죽겠다는 사람은 살고 살겠다는 사람은 죽고…”
동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탄광도시의 주점가를 걸어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밤새 마셨지만 조금도 취기가 느껴지지 않는 새벽이었습니다. -예?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요? 글쎄요, 아마 나도 그 죽음을 찾아다닌다는 사내의 이야기에서처럼 어떤 소녀의 가슴에 첫사랑의 상처를 남기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책감을 덜어보려고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는 내 오랜 떠돌이의 경험에 의하면 반드시 우리처럼 막장인생이 아니더라도 무릇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한 줄기 슬픈 사랑이야기를 갖지 않은 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디다마는….
첫댓글 머물다 갑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털어내어 되새김질 하기 싫어 라는 대목 등에서
로스의 미로를 헤메듯 “그 친구, 아직 병원에 있는 줄 알았더니…”
중 실루엣 진 미진진한 소설이네요.
함께 안타까워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구요.
가만........ 그 김가랑 ....... 극지방 툰드라에서 아스트롤라베(사남)도 없이 다이
무궁무진한 밤을 새워 헤멘 사람이랑 동일인이라는 반전인가요
결론은 '소녀의 첫사랑은 훔치지 말라'...는 격언과 함께
이상 과하객 님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대위되어 탄생한 소설인가보네요.
이중
저 하늘에는 정해진 신부도 없고 신랑도 없다고 하니요.
이생에서 주어진 짝꿍이랑 여한없는 사랑을 나누시며 행복을 누리세요.
고맙습니다.
88년 태백시 황지에 있을 때 써 둔 소설입니다. 습작시절의 글이어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카론샘 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경험과 상통하는 데가 많아 애착이 가서 남겨 두었는데 요즘 태산 님의 소설과 이피터님의 시에서 자극을 받는 바람에 고백처럼 올리고 말았네요.
부끄러운 인생에 그나마 건진 게 추억뿐이라 댓글을 쓸 때마다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습니다. 언과기실로 보이시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방랑하는 마음에 들어와서 카론샘 님을 비롯한 좋은 분들의 글과 음악을 접한 덕택에 제대로 눈을 뜨고 있습니다. 충고해 주신대로 이제라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열심히 살아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처음으로 과하객 형님의 소설을 봅니다.
아직 소설이라는 장르를 써보진 못했으나
본 글의 내용이 매우
"그 다음은 어떻게 된거지,, 그 다음은 또,,
라고 되뇌이면서 주욱 읽어 내려가다 보니
저도 일본 가는 기내에서
어느 여고생과 다정하게게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는데
그 학생은 저를 끝내 못잊고
편지와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내온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수학여행 단체 여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사진을 촬영했는데
가까이 있던 그 여학생은
저를 남친으로 가슴에
품고있었던 모양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에게
다가갈땐 더욱 조심하게 되었지요.
아마 그녀와의 기억은
차후 단편소설을 쓸때
유용한 재료로 사용될 것 같습니다.
꿈 속에서
같은 길을 계속 반복하여 가고
같은 장면을 다시 대한다는
청년의 이야기는 남같지 않네요.
저도 가끔 어디에 외출했다가 귀가할때
집을 못찾아 같은 길을 반복하여
돌아다니는 꿈을 자주 꾼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88년 부끄러운 일이 있어 막장을 기웃거릴 때 얻어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엮어둔 것인데 달게 읽어 주셨네요. 우선 감사드립니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기고백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요. 아무리 픽션을 지칭해 보아도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실수한 일도 많지만 가장 큰 죄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걸로 꼽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나 나나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는 신세지만 한때 죄스러움 탓에 잠을 못이루고 아파한 적이 있습니다.
마음으로나마 끝없이 갚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소설 따위를 엮었습니다마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되더군요.
읽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터넷으로 읽는 글은 익숙지가 않습니다. 눈이 금방 피로하여 머리가 아프더군요...
그런데 이 소설은 단숨에 읽었습니다.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시지만...
쓰는 분의 기준이고... 읽는 사람의 기준으로는 몰입도가 아주 좋습니다.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 좋은 글이라는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라....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일 수 있다는데, 제가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이라서 쉽게 읽혔나 봅니다. 그 무렵 탄광지역에서는 사고도 많았거든요.
감사합니다.유용한 내용들이 참 많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방문해 주세요.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기고백이나 모순을 문자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깨고싶지 않은 꿈을 꾸는것 같은 소설 잘보았습니다.
이거 마음을 읽혀버린 모양입니다. 약간의 자기고백이 섞인 건데 여지없이 간파해 내셨네요. 고맙습니다.
흥미 진진하네요~이승과 저승의 중간에혼돈의 세계에서 있는 기분이네요~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곳 게시판은 과하객 님 전용 게시판인가요?
다른 글쓴이는 보이지 않는군요.
좌우지간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제 게시판입니다. 보리수 님이 만들어 주셨지요. 과분하지만 제 색깔대로 엮고 있는 중입니다.
방문해 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잘읽엇습니다
읽어 주셨군요.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엇습니다.
품기만 했었었던 첫사랑을 가져본 사람으로서 읽고 갑니다.
잘 보았습니다,, 참 긴글 이네요
묘하게 이야기속에 빠져들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고맙읍니다~~~~~~~~~~~
감사합니다
읽기 힘든 글은 그냥 인쇄활자로 주르륵 지나갑니다만 제게 좋은 글은 상황상황이 머리속에 영상으로 그려집니다.
읽은게 아니라 본것같은 느낌인거죠.. 잘 만들어진 단편 영화한편 본것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가벼운 마음 으로 시작했는데, 왠지 마음이...
잘읽고갑니다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