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順 慶 1940년 출생. 동아일보 기자. 「월간 자동차 생활」·「카 마스터」·「오토」·「경정비」 편집이사 역임. 저서로는 「베스트 드라이브코스 101선」, 「아름다운 그곳 언제 가면 딱 좋을까」, 「음식기행 사계절」, 「한국의 음식명가 1300집」 등이 있다.
| 봄이 왔다. 눈 가는 곳마다 꽃이다. 땅을 내려다보면 광대살이꽃, 노란 꽃다지꽃, 민들레꽃, 냉이꽃, 봄맞이꽃, 현호색꽃이 눈이 시리게 피어 있고, 산을 보면 복숭아꽃, 산벚꽃이 이마에 닿을 듯 하얗게 피어 있고, 참나무, 때죽나무, 느티나무의 새 이파리들이 꽃보다도 더 예쁘게 피어난다. 산과 들이 그러하니 물빛 또한 꽃빛으로 곱다. 섬진강 詩人 김용택씨의 산문집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창작과 비평사)의 책머리 앞부분이다. 〈섬진강 변의 봄빛은 이렇게 무르익는다. 「계절은 물길을 따라온다」는 옛 이야기처럼 봄은 하구의 동쪽 자락인 하동포구에서 구례 화엄사까지 100리 길을 따라 오르며, 눈 닿는 곳은 온통 꽃구름이고 발길 닿는 곳은 진진한 먹거리들로 채워놓는다. 스쳐가는 길목에는 작가 박경리씨의 작품 「토지」로 유명해진 평사리 마을이 있고 섬진나루와 화개장터가 이어지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풍물의 고장, 예와 문학의 고장으로 누구의 마음에 든 고향길같이 정겹게 와 닿는다. 하동유~화개나루 간 80리 꽃길은 아름드리로 굵어 꽃터널을 이뤘고, 화개장터~쌍계사 간 고목나무에 핀 벚꽃은 더욱 희고 화사한 모습으로 절경을 그려 낸다. 계곡 깊숙이 들어앉은 1000년 고찰의 햇살 가득한 토방에도 지는 꽃잎이 눈발처럼 날아든다. 섬진강 변의 봄빛은 이렇듯 눈길만 옮기기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과 파란 물빛도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생기 가득하고, 산비탈 녹차 밭에 찻잎을 따는 마을 아낙들의 원색 옷차림까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 다가온다. 우리 곁에 이처럼 눈부시게 맑은 봄기운을 맘껏 호흡할 수 있는 꽃길이 있는 것이 여간 자랑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별미산책」 연재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우리의 나들이 문화는 지나치게 볼거리에만 열을 올렸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좀더 많은 곳을 들러 보는 것으로 만족해 했다. 마치 경쟁이라도 벌이듯 숨가쁘게 달리며 여행 자체에만 열정을 쏟아 온 셈이다. 하지만 「별미산책」은 그와는 정반대로 엮어 나갈 예정이다. 진진한 먹거리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떠날 때부터 입 안에 군침을 삼키며, 금강산도 식후경으로 느긋하게 시간과 자연을 즐기며 꼭 보아야 할 것만 챙겨 건강하고 여유 있는 나들이를 제안할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박혀 있는 별미·진미를 찾아 맛과 운치를 즐기고 차분한 산책을 통해 심신이 건강해지는 기분을 실제로 체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자연과 하나 되어 맑고 청량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청정한 먹거리들을 섭취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는 사이 보약이 따로 없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다만 떠나기 전에 가족들은 물론 찾아가야 할 음식점과도 충분히 대화를 나눠 날짜와 도착시간을 꼼꼼히 챙겨 가기 바란다. ▣ 길의 흐름 구례 화엄사~개화마을~하동포구로 이어지는 꽃길은 40km 남짓한 100리 길이다. 길을 따라 물 흐르듯 내려가면 된다. 접근하는 방법도 어디서나 수월하다. 부산에서는 남해고속도로 하동IC를 거쳐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고, 대구와 영남내륙에서는 88고속도로 남장수IC에서 잠시 舊도로를 탄 뒤, 남원 고죽IC에서 구례·순천 방향으로 들어서면 하룻길로도 무리가 없다. 서울과 경인 지역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옮겨 타고 장수IC에서 벗어나, 장수~남원 간은 舊도로를 이용해 남원 외각인 고죽 교차로에서 다시 전주~순천 간 고속도로에 올라 구례까지 내려간다. 하동·구례 쪽 주민들이 서울로 오를 때 즐겨 택하는 코스다. 서울까지 대략 4시간~4시간30분이면 무난하다. 호남고속도로와 가깝게 이어지는 경기와 충청 지역에서는 옛 그대로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전주~남원~구례로 내려가면 되지만, 이 길 역시 全구간이 확장되어 예전보다 훨씬 편하다. 광주와 전주권에서는 사계절 당일로 오가는 길이다. 서울과 경인 지역은 금요일 저녁에 떠나 1박 또는 2박하면 더할 나위 없다. ◈ 발길 닿는 곳마다 별미세상 1) 지리산대통밥/물오른 참대나무에 지어 낸 별미밥 화엄사 입구의 「지리산대통밥」집은 올해 7년째를 맞고 있다. 녹찻물로 지은 대통밥에 죽염으로 간을 한 파란 나물들을 고루 갖춰 낸다. 주인 부부가 손수 체험을 통해 자신 있게 내놓는 공해 없는 정직한 음식이 자랑이다. 냉이와 달래, 쑥부쟁이, 돌미나리, 신선한 해조류, 죽순과 취나물 등 20가지의 반찬이 오르는 대통밥 정식이 1인분 1만~1만5000원, 아침식사로 내는 재첩국과 산채백반이 8000원. 주말이면 먼 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찾는 단골 고객들로 언제나 자리가 비좁다. 고객맞이도 다섯 딸들이 주축을 이루는데, 성장한 세 딸과 아직 초등하교 재학 중인 어린 딸들까지 주말이면 온 식구가 모여 각자 한몫을 담당해 낸다. 가족들의 열의만큼이나 정갈하고 친절한 분위기가 기억에 남을 만하다. 주소:구례군 마산면(화엄사 입구), 전화:061-783-0997~8 사진:20여 가지의 찬을 곁들인 대통밥 정식. 2) 섬지가든/황금빛 무늬가 눈부신 황어회와 참게탕 구례IC에서 11km 쯤, 물길을 따라 내려간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노송림이 군락을 이뤄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주인 강호열(44)씨는 지금의 터에서 17代를 이어 오는 토박이로, 섬진강에서 나는 물고기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계절에 따라 누치와 황어, 참게, 은어, 자연산 장어 등을 제때에 갖춰 낸다. 3월 중순부터 오르며 1년 중 가장 먹을 맛이 난다는 황어회와 산란을 앞둔 참게 암게로 끓여 내는 참게탕이 계절의 별미로 꼽힌다. 3) 쌍계수석원식당/돌솥밥에 곁들여진 들나물과 산채 「쌍계수석원식당」은 쌍계사 입구 쌍계교를 건너서면서 우측 도로변에 있다. 영양돌솥밥과 산채비빔밥 등, 절을 찾는 신도들을 主고객으로 상차림이 정갈하고 담백한 맛이 있다. 음식점을 연 지 10년째를 맞고 있는 주인 박동원(50)씨는 무엇보다 밥을 맛있게 짓는 방법을 계속 연구한 끝에 큼직한 돌솥을 사용해 밥물이 넘치지 않도록 해야 제맛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2인용 돌솥에 1인분 밥을 지어 내는데, 멥쌀과 찹쌀을 알맞게 섞고 빨간콩·검은콩·노란콩과 차조, 쑥쌀, 대추, 밤 등을 넣고 뜸을 푹 들인다. 육절판에 나물을 고루 얹고, 김치와 겉절이, 젓갈, 콩자반 등 밑반찬과 나물국을 곁들이고 밥을 비빌 수 있는 큼직한 그릇을 여분으로 놓아 준다. 1인분 7000원. 간편한 식사로 산채비빔밥이 5000원. 주소: 하동군 화개면 (쌍계교 앞), 전화: 055-883-1716 사진: 영양돌솥밥에 비빔 그릇이 갖춰 있다. 4) 강변할매재첩국/뽀얀 물안개 빛깔의 재첩국 맛의 신비 강변할매재첩국집은 하동IC에서 2.5km, 화개장터에서는 43km 내려간다. 83세인 임말봉 할머니와 며느리 이순자(60)씨가 30년 넘게 이어 온 재첩국 전문집이다. 최근 손자인 김현우(30)씨가 대물림 채비를 해 3代로 이어진다. 2년여간의 일식조리사 경험과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인 방법을 토대로 좀더 위생적이면서 담백한 맛을 내준다. 1년 중 4~5월이 가장 제맛이 난다는 재첩을 깔끔하게 처리해, 30년 전통이 밴 솜씨로 끓여 낸 재첩국은 뽀얗게 우러난 제 국물에 파란 정구지(부추)를 넣고, 한 차례 더 끓여 내는데 그대로 떠 마시면 일품 해장국이고, 밥을 말면 별미 제첩국밥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국물과 재첩알을 따로 담아 전국 어디든 택배도 가능해 서울과 부산은 물론 제주에서까지 주문이 이어진다. 재첩국 정식 5000원, 재첩국 4000원, 재첩덥밥 7000원,수제비 5000원. 주소: 하동군 고전면, 전화: 055-882-1369 사진: 뽀얀 국물에 하얀 조갯살 맛이 기막힌 재첩국. 5) 쌍계제다/선계의 향취나 다름없는 화개차의 은은하고 깊은 맛 「쌍계제다」 하면 쌍계사는 물론, 전국의 큰 절과 차인연합회 등 차 동호인들 사이에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차 공방이다. 주인 김동곤(56)씨는 화개면에서 12代를 살아오는 토박이로, 화개 녹차에 관해 누구보다 많은 지식과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이로 알려져 있다. 쌍계사 앞 차 시배지의 관리를 맡고 있고, 수만 평에 이르는 자신의 차밭을 갖고 있기도 해,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화개차의 대부분이 김씨의 차공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곳 차는 2001년 중국 황주와 일본에서 열린 세계차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했고, 2002년 부산에서 개최한 세계차대회에서는 금상을 받기도 했다. ◈눈가는 곳마다 볼거리 섬진강 변의 꽃구경은 3월에서 5월까지 이어진다. 그 안에 꽃축제만도 3개나 된다. 3월 중순 강 건너 다압마을의 매화축제부터, 3월 하순인 21~23일은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축제, 4월 6~10일에는 화개마을 벚꽃축제가 연이어 열린다. 때를 같이해 살구꽃과 물앵두꽃, 목련이 피어나 함께 어우러지고 4월 말이면 배꽃과 산벚꽃이 합세한다. 그리고 5월로 접어들면 차축제가 열리고 산자락마다 무성한 밤나무꽃이 피어나며 봄을 마감한다. 1) 산동마을 산수유꽃 산동마을은 구례읍에서 14km쯤 거리로 전국에서 첫손 꼽히는 산수유 산지다. 수령 100년을 헤아리는 아름드리 군락을 비롯해 1만여 주나 되는 산수유 나무들로 마을이 온통 샛노란 꽃 속에 파묻혀 있다. 산수유는 매 해 3월 하순에 만개해 20여 일간 지속되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3월 말~4월 초순으로 보고 있다. 제주도보다 돌이 많다는 하위마을은 돌담 위로 걸친 노란 산수유가 운치 있고, 상위마을은 개천가로 이어지는 황금빛 산수유 꽃구름이 장관이다. 지리산 온천 입구 교차로에서 3km 지점인 온천을 지나 2.5km 지점이 하위마을이고, 상위마을은 다시 1km 더 올라간다. 2) 봄기운 가득한 화엄사 화엄사는 구례IC에서 약 4km, 주차장에서 1km쯤 걸어 오른다. 기둥 밑부분을 몇 번씩 갈아 주며 수 백 년씩 이어 온 고색 짙은 절 집들의 그윽한 분위기가 이를 데 없다. 기왓골 위로 바라보이는 아름드리 관목림에 연한 초록빛 새순들이 투명하게 밝은 빛깔로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모습 또한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각황전과 그 뒤편 산중턱에 올라앉아 있는 4사자삼층석탑, 그리고 탑 주변에 아름드리 반송나무 네 그루는 눈여겨볼 만하다. 3) 화개마을 10리 벚꽃길 섬진강 벚꽃길은 화개~하동 간 40리 벚꽃길이 아름드리로 굵어 터널을 이루어 장관이고, 그 절정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오르는 10리 길에서 펼쳐진다. 100년 가까운 고목에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은 매화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봄을 그려 내고 있다. 벚꽃은 갓 피어나 반쯤 핀 봉오리들과 어우러지는 4월 5~6일과, 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기 시작하는 10~12일을 전후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4) 화개 녹차밭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 오르는 계곡 산자락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차밭은 대부분 야생의 상태로 1000년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4월 중순, 곡우를 전후해 따기 시작하는 찻잎은 처음 따내는 것이 우전차로 최상품에 속하고 연이어 세작과 중작으로 이어진다. 짧은 기간에 그날 따낸 찻잎은 시들기 전에 그날로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손길이 여간 바쁘지 않다. 줄잡아 200곳에 이른다는 차 공방들이 저마다 가꿔 내는 차들로 어디를 가나 차 인심은 후하다. 그러나 차 구입은 내력 있는 찻집을 찾아 차 맛을 확인하고 제맛이 나는 차를 마련해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섬진강 남도대교 벚꽃축제 때 임시 개통할 예정인 남도대교는 경남과 전남을 잇는 의미를 살려 다리 이름을 남도대교라 했다. 옛 섬진강 나루터 위를 둥근 아치형태로 가로지른 교량을 타고, 광양군 다압면 매화마을과 화개 벚꽃마을이 지척으로 오가게 됐다. ◈ 알맞은 잠자리 1) 지리산주택공원 산수유꽃이 만발한 하위마을에 수백 그루의 희귀한 정원수가 가꿔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8개의 방이 있다. 욕실이 갖춰져 있고 주방 이용이 가능하다. 방 크기에 따라 3만~7만원, 큰 방은 10명이 함께 잘 수 있다. 주소: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하위, 전화: 061-783-1178 2) 지리산황토방 화엄사 입구 「지리산대통밥」집 2층에 마련되어 있다. 방바닥과 벽에 황토를 그대로 노출시켜 심하게 보채던 아기들도 보채지 않고 잘 잔다고 할 정도로 몸이 개운하고 편안하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이야기다. 장급 여관 수준으로 정갈하고 욕실이 갖춰져 있다. 사용료는 2~4인용, 3만~5만원. 아침식사 가능하다. 주소: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전화: 061-783-0997 3) 보람산장 쌍계사 앞에서 500쯤, 언덕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어 분위기가 조용하고 무척 상쾌하다. 쌍계사까지 새벽 산책하기에 알맞은 거리다. 취사가 가능하고 「수석원식당」과도 2~3분 거리다. 사용료 3만~5만원. 주소: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전화: 055-88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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