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성당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변산면, 위도면 전역을 담당하고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본당입니다.
등용성당의 역사는 1900년대 초 김양배 요한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복자 김진후 비오(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의 직계 6대손으로 박해로 인해 1852년경에 충북 진천을 떠나 3년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다 1855년경에 부안군 변산면 불무동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김양배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담배농사를 하고 박해가 끝날 무렵에 등용리 일대에 토지를 사두었다가 박해가 완전히 끝나자 1890년경에 등용리로 이사를 나왔습니다. 그러나 1894년 동학혁명 일어나자 논산으로 얼마가 피난을 갔다가 다시 등용리로 돌아와서 친척과 교우들을 불러들여 개척하며 1903년에는 15가구 50여명의 신자가 거주하는 교우촌을 형성하였습니다.
1918년 8월 2일에는 20평의 성당과 8평의 사제관을 건축하고 그해 12월 11일에 드망즈 주교의 주례로 성모칠고를 주보로 모시고 성당 봉헌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양배와 신자들은 등용본당에 신부님이 파견되기를 염원하여 백방으로 노력하며 대구교구 주교관을 몇 번이나 왕래하고 1924년 11월 8일 드망즈 주교 재방문 시에는 본당신부를 임명해 주도록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마침내 1926년 5월 30일 대구교구 이기수(야고보)신부가 초대 신부로 파견되면서 등용본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김양배는 초대 본당 회장으로 그의 친척들을 모두 등용 본당 관할에서 살게 함으로써 더욱 신자수가 늘고 본당이 번창하여 신자수가 50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32년에는 등용성당 차원에서 4년제 간이학교인 '등용리 학술 교습소'를 설립하여 일본의 우민정책에 맞서 초등교육과 교리교육을 실시하여 60여명을 교육시켰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9년망에 폐교가 되었습니다.
1935년에는 이기수(야고보)신부가 교세확장을 위해 본당을 부안 읍내고 옮기게 되어 등용성당은 부안 성당의 공소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6·25전쟁 시에는 신앙과 동네를 지키기 위해 지하공작대를 조직하여 빨치산과 인민군에 대항하는 과정에 본당과 집이 불타고 4명의 동네 청년들이 순교(서상권 안드레아, 이정옥 파뜨리치오, 방극준 다미시오, 강서일 야고보)하였습니다.
1972년에는 낡은 공소 건물을 허물고 새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습니다. 2010년 1월 30일에 부안본당 소속 등용공소에서 다시 등용성당으로 승격하였고, 2018년에는 등용공소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였으며, 2019년에는 성당 리모델링과 교육관을 신축하였습니다.
등용성당은 규모가 작은 성당이지만 부안지역의 최초 본당이라는 자부심이 강합니다. 현재는 본당 신부님(신원철 안토니오)이 상주하면서 지역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매일 미사와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광객을 위해 매주 토요일 오후 8시에 격포 소노벨에서 특전 미사도 봉헌하고 있습니다.
등용성당 주임 신부님 신원철 안토니오
마포공소 : 등용성당 관할 공소 (변산면 마포로 230)
1960년대 카톨릭 구제회의 지원으로 부안성당의 관할구역 내의 간척사업이 시행되어 김제, 함열, 진안에서 이주해 온 12세대 20여명의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 마포공소의 시초입니다.1963년 부안성당에서 대지를 마련하고 1964년 3월 5일에 공소 건물을 축성하였습니다. 요즘들어 귀촌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활발한 전교 활동을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