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2초, 3초.
아이 한 명이 죽었다.
1초, 2초, 3초.
또 한 명이 죽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배부르게 먹지 못한 5세 미만의 아이들은 설사, 말라리아, 홍역 같은 병에 걸리면 너무나 쉽게 목숨을 잃는다. 이들을 살리는 건 복잡한 수술이나 비싼 약이 아니다. 설사에는 링거 한 병,말라리아에는 키니네 한 통, 홍역은 백신 한 병이면 된다. 약값은 1달러. 약 1500원이면 한 아이를 살려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나도 아프리카 오지여행 중 처음 알았다. 지독한 길치인 나는 그날도 길을 잘못 들어 오지마을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양실조로 바싹 말랐거나 배가 부어 있었지만,처음 보는 동양인이 신기한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사진을 짝으려면 10여 명이 일제히 분홍색 혓바닥을 내미는 게 너무나 귀여웠다. 나는 아이들을 '핑크 보이1,2,3이라고 부르며 삼색 볼펜으로 손목에는 시계를, 손가락에는 꽃반지를 그려주며 놀아주었다.
겨우 하룻밤 머물렀을 뿐인데 여행 내내 이 아들이 생각났다. 결국 여행 경로를 바꿔 다시 그 마을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른이 말없이 작은 무덤 두 개를 가리켰다. 내가 다녀간 직후 마을에 급성(수양성)설사가 돌아 핑크 보이 두 명이 죽었다고 했다. 너무나 가엾고 미안했다. 이 아이들은 1달러짜리 링거한 병이면 살 수 있었는데,내주머니에는 천 달러도 넘게 있었는데.
그날 밤, 여행 후 홍보회사에 복귀해 세계적인 홍보인이 되겠다는 계획은 어디가고 이런 기도가 나왔다. "하느님, 이 아이들을 살려주고 싶어요. 벼랑 끝에 매달린 아이들을 끌어올려 주고 싶어요. 세계 일주 끝나면 저를 이런 일 하는데 써주세요. 꼭이요!"
띄엄띄엄하던 이 기도를 매일 하게된 건아프가니스탄 난민촌 아이 덕분이었다.이란 국경도시 헤라트의 자생 난민촌 아이들은 감히 얼굴도 가리지 않는 채 배낭을 멘 여자를 경계와 호기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나라에도태권도가 인기라는 말을 들어서 기본동작 몇 개를 해 보이자,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한참을 놀다 돌아가려는데 한 여자아이가 수줍게 다가왔다.지뢰를 밟았는지 오른쪽 다리가 없어 목발을 짚은 아이가 내민 건 빵 한 조각! 난민촌에서 이 빵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헤일리 맘눈(고마워)"하고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와아!" 더 크게 환호하며 어깨춤까지 덩실덩실 추었다.
그날 저녁, 아프리카에서 했던 그 기도가 다시 튀어나왔고 그 후 매일밤, 같은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저 난민초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있는 힘을 다할게요. 꼭 시켜주세요. 꼭이요!" 그분이 길을 열어주신 게 분명하다. 6년간의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오자마자 국제 구호 개발 NGO 월드비전에서 특별 채용 제안이 들어왔고 입사 석 달 후, 긴급구호 팀장으로 첫 번재 파견된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였으니말이다.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지난25년간 구호 현장마다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