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 : 2005년 5월 5일 ~ 5월 6일 (1박2일)
◐날 씨 : 5월 5일- 안개 흐린 후 강한 비바람 5월 6일- 비 약간 후 흐림 안개
▶종주자 : 나 홀로
▶산행 코스 및 거리(km)
화엄사- (7.0 km) -노고단고개- (25.5 km) -천왕봉- (13.7 km) -대원사((Total:46.2km))
▶코스별 산행시간
◈5월 5일(목)◈
05 : 40 화엄사 출발 (())
06 : 08 연기암
06 : 56 중재
07 : 59 코재
08 : 10 노고단 대피소 (조식 및 휴식 :60분 소요)
09 : 20 노고단 고개
10 : 14 임걸령
10 : 46 노루목
11 : 35 화개재
12 : 11 토끼봉
13 : 24 연하천 대피소 (중식 및 휴식 :55분 소요)
15 : 53 벽소령 대피소 (강한 비바람으로 산행종료 1박 함)
◈5월 6일(금)◈
07 : 37 벽소령 대피소 출발
11 : 32 장터목 산장 (중식 및 휴식 :77분 소요)
13 : 37 천왕봉 (휴식 :22분 소요)
15 : 53 치밭목 산장 (휴식 :30분 소요)
16 : 58 삼거리
19 : 04 대원사
19 : 37 유평매표소 도착 (())
▶일정별 산행거리 및 시간
♧1일차♧
산행거리 (화엄사→벽소령): 21.1 km
산행 소요시간 (식사,휴식 포함): 10시간13분
실제 산행시간: 8시간18분
시간당 평균 산행거리: 2.54 km
♧2일차♧
산행거리 (벽소령→유평매표쇼): 25.1 km
산행 소요시간 (식사,휴식 포함): 12시간00분
실제 산행시간: 9시간 51분
시간당 평균 산행거리: 2.83 km
총 산행거리: 46.2km
총 산행 소요시간: 22시간13분
총 실제 산행시간:18시간09분 (지리산 관리소 평균 기준 :29시간20분)
총 시간당 평균 산행거리:2.55km (지리산 관리소 평균 기준 :1.58 km)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대원사까지 가야만 진정한 지리산 종주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라고 못 갈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진정한 코스로만 반드시 도전을 해보리라."
♤5월 5일(목) 1일차♤
잠을 설치며 04:00 기상하여 전날 챙긴 장비를 부지런히 이것저것 모두 배낭에 집어넣고
모든 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04:30 화엄사로 향한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집사람이 통째로 말아준 김밥을 입에 덥석 집어넣고 차장 밖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유리창에 달라붙는다. 오후부터 내일 오전까지 많은
강우량이 있을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이렇게 빨리도 정확히 맞추고 있을까. 빗나가지
않은 기상청 예보에 감탄할 뿐이다.
05:30 관리인 없는 화엄사 매표소를 입장료 없이 기분 좋게 통과하면서 잠시 혼자 뿌듯한
생각을 한다. "공짜는 부지런한 사람한테만 기회가 있는가 보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방울은 멎었다.
오늘도 남편 잘 만나 고생을 사서 하는 마누라는 화엄사 앞에 나만 홀로 남겨두고
유유히 떠나가 버렸다. 가볍게 5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 후, 05:40 화엄사의 새벽을 뚫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나의 인생 후반부를 향해 멋있게 살아나가야 한다."라는 비장한
각오도 했다.
등산로를 들어서면서 묵신 한 배낭의 무게를 먼저 느낀다. 얼마 전. 사전 답사차 이곳에
왔을 때 (화엄사->노고단고개) 무게와는 확연히 다르다. 조난, 일정연장 등을 대비하여
손이 큰 집사람이 먹을거리를 챙기면서 얼마나 쑤셔넣고 밀어 넣었는지 배낭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러나 비상시를 염두에 둔 지혜로운 마누라의 성의를 생각해서 탓할 수도
없고 무거운 고통 쯤은 참고 견디어 내야 한다.
연기암 갈림길을 지나고부터 등산로의 폭이 좁아지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나오며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등산로는 왼쪽으로 구부러져서 급경사의 돌계단을 통과하여 올라
차니 국수등이라.. 도착하자 이곳에서는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탁 트인 훤한 하늘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증을 물로 적셔가며 걷다 보니 중재에 도착한다.
중재를 지나고부터 등산로는 매우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산행속도는 점점 늦어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집선대의 이정표를 보며 계속 오른다.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나?
인생의 도전... 혁신학교에서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이행..
혁신학교에서 배운 모랄구호를 혼자 외쳐본다.
혁신은 실행이다! 해보자!
중단없는 전진 끝에 어느새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가끼히 들려왔다. 성삼재에서
도로를 따라 노고단을 가고 있는 사람들 인가 보다. 아~ 코재이구나.. 안개로 자욱한
코재는 하늘은 뚫렸지만 금세 차가운 기온이 땀에 젖은 몸을 움쭈리게 한다.
윈도-스톱 재킷을 걸치자.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겨우 틈을 찾아
배낭을 내려놓고 이것저것 마구 끄집어낸다. 빠른 동작으로 조식 후 다시 배낭을 챙기는
데까지 1시간은 아깝게 흘러가 버렸다.
지리산 관리사무소에서 노고단고개 능선 진입로 철문을 통제 후 다시 개방한 지가
오늘이 5일째 되는 날이다.
앞을 보니 안개로 시야 50~60m 가시거리이다.
짙은 안개 속을 걷기 때문에 주위를 바라봐도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등산로만
빠끔히 보일 뿐이었다.
노고단고개에서 1시간 남짓한 시간에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에 오니 모처럼 반대 방향에서
오고있는 반가운 등산객을 만난다.서로 인사를 나눈 후 내친김에 휴폰 카메라를 준다.
"한방만 찍어 주세요." 안내 표지판을 향하여 품을 잡았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 안내 표지판을 지나치면서 시간을 보니 12시10분이다. 4시간여 동안
바쁜 걸음으로 달려온 것 같다.
연하천을 향하면서 안개 사이로 하늘을 보니 검은 먹구름이 달려오고 있었다. 앞서 가던
몇몇 등산객과 인사를 나누니 먼저 가시라 잽싸게 길을 열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발길을 재촉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종주를 대비하여 구입한 방수용 모자 재킷
배낭커버로 무장하니 마음은 든든하다. 지난해 조계산 우중 산행을 자처한 경험이 있어
빗속을 거니는 것쯤은 장애로 보기보다는 먼저 낭만적임을 느낀다. 1시간여 동안 우중산행
끝에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대피소 취사장에는 먼저 온 등산객들로 붐빈다. 입식
콘크리트 비좁은 식탁에 배낭을 걸처 놓고 한 끼를 때우자.
굵어진 빗방울과 함께 세찬 비바람을 뚫고 연하천 대피소를 출발하여 1시간 반 정도 다시
우중 산행을 진행하니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한다. 하나밖에 없는 좁은 산장입구는 비에 젖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고 젖은 등산화들은 신장에 넘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장터목산장은
예약을 하였지만 이곳은 예약을 하지 않아 초조한 마음이다. 벽소령에서 1박 하기에는 너무
일찍 도착하지 않았나? 오면서 생각하기를 지리산 종주 도전 초보가 장터목까지 당일 간다는
것은 너무 무리라 판단하여 일찌감치 포기하고 세석까지 만이라도 가야할 욕심으로 대피소
관리인에게 물으니 "비바람이 이렇게 몰아치는데 위험하니 가지 말고 차라리 하산을 하십시오."
라 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만 하는 수 없어 남은 방 배정이라도 있으면 받을 생각으로
접수 후 기다리고 있으니 이름을 부른다.
숙소를 배정받은 후 먼저 집사람한테 휴폰을 연결하니 바로 받는다. "나, 비바람으로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산행을 포기하고 벽소령에서 머무르니 걱정하지 말라." 통화하는 시간 순천에도
많은 비가 오고 있단다. 대피소에 도착하여 여정을 푼다는 말에 근심하였던 집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녁 7시가 되자 피로에 지친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를 질러대니 숙소가 진동한다.
9시가 되자 숙소 전체를 소등하였다. 밖에는 아직도 비바람이 세차가 몰아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 이대로 계속비가 온다면 내일 산행도 물 건너간 것 아닐까." 힘들게 화엄사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 비야 제발 고만 좀 와라!"
잠이 안 와 뒤치닥 거리다 깜박 잠이 들고 깨어보니 새벽 2시였다. 한두 시간 잔 것 같았다.
내일 산행을 걱정하며 이때부터 계속 시계를 본다. 비몽사몽 간에 시계를 보니 06:30분 벌떡
일어나 짐을 꾸린다.
♤5월 6일(금) 2일차♤
07:37 안개 자욱한 벽소령을 가랑비를 맞으며 나간다! 이젠 세찬 비바람도 멎어 주었다.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하늘이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은 장터목산장까지 9.7km 정말 멀고도 지루한 길이 남아 있다. 오늘 1차
목표는 여기까지 가야만 한다. 자! 힘을 내자. 출발이다.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앞 만보고 걷고 또 걸으며 머릿속에는 오르지 장터목산장만 그린다.
가시거리도 어제보다 좋다. 옅은 안개로 시야 100~120m 정도이다. 터벅터벅 한참을 걷다 보니
가끔 안개 걷힌 맑은 하늘 사이로 저 밑의 녹색 짙은 아름다운 계곡 배경도 보인다.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앞서가던 등산객 2명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제 벽소령에서 같이 숙박한 사람들이다.
반가운 인사를 하며 앞서 나간다. 체력 보충을 위하여 걸으면서 오렌지를 까먹는다. 어느새
세석산장 안내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들리고 싶다, 하지만 시간을 소비할 수 없어 그냥
가야한다.
이제 장터목산장까지는 얼마 안 남은 것 같았다. 아껴둔 물 반 병을 입에 쏟아붓자. 저
멀리서 장터목산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가벼워짐을 느낀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여 평상에 배낭부터 내려놓고 취사장에 가보니 밥을 짓고 있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등산객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아저씨는 어디서 출발하여 오셨습니까? "
라 묻는다. 나는 "벽소령에서 7시37분에 출발하여 왔는데요." 일행들 모두 놀란 표정에
그중 한 사람이 "아저씨는 날라오셨군요." 자기들도 벽소령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서 조금전에 도착하였다 한다.
점심식사 후 치밭목 산장까지 가면서 마실 물을 물병 4개에 가득 채우고 간식도 꺼내기
쉬운 곳에 옮겨놓고 20분 정도 휴식을 통하여 힘을 충전하자.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산장 초입부터 급경사 벼랑길이다. 가파른 봉우리를
몇 개 넘어 철계단을 올라 통천문(通天門)에 이른다.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이다. 철계단이 없었던 예전에는 쉽게 오를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문을 통과
하며 인간세계에서 하늘에 오른다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것 같다.
500여 미터를 계속 올라차니 13:37분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이다.
아! 천왕봉......
이곳에서 세상의 찌든 탐욕과 고뇌를 모두 내려놓고 대자연의 순리를 체득하고 그 순리
따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멀리 화엄사에서 올랐던 노고단의 모습부터 나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 것 같은 봉우리들이
장대한 능선을 이루며 나의 발아래 펼쳐져 있다.
안개 속에 세찬 바람이 모자를 날리려 한다. 몸을 가누기가 조금 힘들 정도이다. 시야 20m
가시거리이다. 올라오면서 속옷은 땀으로 젖은 터라 한기를 몹시 느낀다. 바위 밑으로 대피
하여 잠시 간식 후 대원사 가는 등산로 지도를 보며 구간별, 종착까지 시간을 다시 계산해
본다. 아무리 내려가는 길이라 하지만 장장 13.7km의 길고 긴 여정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자! 또 간다.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는 한 번 와 본 길이지만 이제부터 대원사까지의 길은 초행길이다.
정상 바로 아래 대원사 방향의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내리막 길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중산리와 대원사로 길이 나누어진다. 중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초반부터 급경사 내리막길
이다. 중봉까지의 거리는 가까워 보였으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한참을 내려온 뒤
다시 한참을 올라간다. 급한 내리막길을 10여 분 내려가서 다시 급한 오르막 경사면을 20여
분간 올라가니 중봉 정상이다. 중봉(1,875m)은 지리산에 있는 많은 봉우리 중 천왕봉 다음
으로 높은 봉우리이다. 천왕봉에 가려 그 명성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절경을 잘 간직
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천왕봉이 남편이라면 마치 부인과 같은 모습으로 다소곳이 뒤에서
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의 모습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그 기상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중봉 정상에서 써리봉을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우측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
막 길이 한참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서 암릉을 돌아서니 높은 오르막이 시작되고, 이후로
철계단과 나무에 매여있는 밧줄들의 연속이다. 몇 개의 봉우리와 엄청나게 많은 철계단을
오르내린다. “에고! 죽겠구나.” 아무리 가도 써리봉은 나오지 않는다. 봉우리에 오를 때
마다 이곳이 써리봉인가? 하는 기대를 걸지만 계속 실망이다. 지나친 것은 아닌가?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근심 끝에 봉우리에서 써리봉 이정표를 만났다.
'대원사 9.5km, 천왕봉 2.2km'라 쓰여 있다.
써리봉을 내려서서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가파른 산길을 계속 내려간다. 산행길이 너무
호젓하다. 어제와 달리 천왕봉에서 이곳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대원사에서 천왕봉
코스는 사람들이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 하더니 역시 사람이 거의 없다. 하산까지 겨우 3명
만났을까? 부드러운 흙길을 한참 걸어 치밭목 산장에 도착한다. 치밭목 대피소는 써레봉과
1470봉 사이의 안부의 비교적 너른 지역에 위치한 대피소이다. 단층의 조그만 대피소이지만
사람들로 복잡한 주능선 상의 대피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치밭목 산장은
어찌나 앙증맞고 예쁘던지 샘터 가는 길도 좋더라. 민간이 경영하는 이곳 치밭목 산장은
멀리서 봤을 때와 달리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벤치에 앉아 초콜릿 하나를 먹으며 잠시 쉰다.
산장 앞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울창한 산죽 사이를 20여 분 내려오고 이어지는 나무계단과
너덜지대를 지나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간다. 숲 사이로 요란하게 들리는 물소리에
계곡 아래를 자세히 내려다보니 하얀 물거품을 남기며 흘러 내려가는 폭포가 멀리 보인다.
저곳이 무제치기 폭포인가? 나무계단 길을 조금 내려오자 ‘대원사 6.6km, 무제치기 폭포
0.1km'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무제치기 교를 건너 등산로는 컴컴한 산죽 길로 변하고 윗새재와 밤밭골로 갈라지는
새재 갈림길에 이른다.
대원사까지 앞으로 남은 거리 5.9km이다. 돌길의 등산로는 계속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진행한다. “어? 길이 이상하다.” 계곡을 따라가면 내려가야 하는 길
임에도 불구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며 계속 능선 쪽으로 올라간다. 다리는 점점 풀려오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갈 길은 멀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스틱을 짚으며 지금
당장은 길을 가야 하는데. 구시렁거리며 길을 재촉한다.
여러 번 계곡을 가로지르는 등산로는 어제부터 내린 비로 거의 물에 잠겨 돌출된 바위와
돌멩이를 밟고 건너갈 수 있었다. 비가 조금만 더 왔더라면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아찔하다. 지리산은 유난히 비가 많은 산이어서 해마다 인명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1998년 대원사계곡에서만 23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와
짙은 안개 하늘 높이 치솟은 원시림의 숲을 버석거리는 산죽(山竹) 소리를 들으며
스틱을 의지하여 내려갈 때의 약간의 공포감, 멀리서 여우만 울면 영락없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다.
지금 이 순간 검은 구름과 짙은 안개와 짙은 녹색 숲으로 등산로는 겨우 보일 정도인데
어둠마저 밀려오면 랜턴 불빛은 비 젖은 등산로에 흡수돼 길을 이탈할 위험이 크다.
아.! 어서 여길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하늘 가려진 길고 긴 대원사 계곡과 울창한 대나무숲은 귀신도 무서워 살 수 없을 것 같다.
침침한 이 길을 홀로 통과해 본 사람은 그 성취감을 알리라.
계곡길은 계속 올라 능선을 넘는다. 다시 새로운 계곡이 시작되며 이번에는 나무로 토사
흐름을 방지하기 위해 박아놓은 나무계단이다. 한걸음에 걷기 애매한 한 걸음 반 짜리
계단이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오르막, 길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평탄한 길을 조금 내려가 철망과 문을 지나 드디어 유평리 마을이다. 콘크리트길을 한참
내려오니 이정표에 ‘대원사 1.5km’라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아직도 이 시멘트 길을 1.5km나. 터벅터벅 걷는다.
마을을 지나 계속 간다. 아. 드디어 대원사! 이제 희망이 보인다.
“아.! 드디어 오리지날 지리산 종주를 끝냈구나.”
어둠이 밀려오는 한적한 길 따라 걸어 내려올 때 뒤에 오던 봉고차가 정지 후 창문을 열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아저씨 종점까지는 20분 정도 더 걸어야 하니 어서 차에 타세요." 뜻 밖의
호의에 너무 고마웠다. "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화엄사에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만
마지막까지 걷겠습니다. "아! 그러세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유평 매표소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진주 가는 시외버스 막차 시간은 (19:15분)지나가
버린 후 종점 유평 매표소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19시37분이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다가왔다.
"나미 아빠! 멀쩡하네요?" 아마 죽을듯한 표정을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었나 보다.
"그럼 멀쩡하지 않고서 하하하. 하여간 시간 맞추어서 잘 와 주었네."
산청군은 으슥한 곳이 많아 귀신이 나온다 하여 혼자 오기에 무서워 친한 언니와 동행하여
왔단다. "형수님! 이곳까지 와 주시고 고맙습니다."
안전산행을 위하여 출발 전 새벽 기도로 인도하여 주신 순천 예림교회 주정현 목사님과 사모님
께 감사를 드리고, 집사람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며,
무엇보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종주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끝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끝-
▼ 화엄사 출발_20050505053836
▼ 화개재에서_20050505113527
▼ 천왕봉 도착_20050506133728
▼ 치마목산장 도착_20050506155345
▒ 종주후기 ▒
산행 2일째는 출발하기전 부터 무리한 일정에 밤새내린 비로 인한 불어난 대원사 계곡물
상황을 염려하며 성공할 가능성을 30% 정도로 보았다.
아침 07:37분 벽소령을 출발하여 19:37분 유명매표소에 도착, 장장 12시간의 산행이었다.
대략 계획하였던 시간에서 별 차이 없이 무사히 도착하였다. 출발 전 구간별 산행시간을
계획하고 그 시간에 맞춰 산행을 진행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틀 동안, 22시간 13분, 46.2km 거리의 대장정을 모두 마쳤다.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고 많은 것을 보았다. 고통과 그에 대한 인내도 조금 맛보았다. 화엄사 계곡길,
임걸령, 토끼봉, 벽소령, 세석평전, 장터목,천왕봉,중봉,침침하고 긴 대원사 계곡 등.
무리수를 두지 말고 먼저 성삼재-노고단- 천왕봉까지 능선 종주를 경험한 후 도전해
보라는 주위의 조언도 있었고 혼자 가지 말고 동행하여 2박3일 일정으로 여유롭게 도전해
보라는 도움말도 있었다.
산행 시작 한지 이제 겨우 15개월 남짓한 햇병아리에 불가한 나는 그간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숨은 노력을 하여왔다. 랜턴 우의 없이 비 오는 날 한밤중 뒷산을 더듬거리며
나갈 때 천 동 소리와 함께한 번개 불빛은 잔디 벗겨진 흉악스런 공동묘지를 환하게
비추었다.누가 나의 이러한 모습을 목격하였다면 무장공비로 신고하였을 것이고 아니면
좀 돌았다고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개의치 않았고 남달리 담력은 큰 편이었지만
외로움 공포증 두려움을 없애고자 하는 훈련을 꾸준히 함으로 담력을 더 키웠고 야간 산행도
적응하여 나갔다.
가파른 등산로에서 중단없는 1시간 이상 속보 산행, 반드시 4시간 이상 산행 후 5분 만 쉬
기, 급경사로 등 꼭 필요한 장소 외에는 스틱 사용 않기, 경험자들의 종주 산행기 탐독과
부상 위급 조난 발생시 등을 대비한 필요한 약품 비품 장비 준비 및 상황별 대처요령과
긴급 연락처 숙지 등.
지난 3월 26일 동행자와 함께 11시간 백운산 당일 종주에 이어 지리산 줄기 남단 끝자락인
계족산 -깃대봉-갓걸이봉 7시간 단독 종주를 무난히 마치고 얼마 전 혁신학교 과정에서
'인간 한계극복 도전' 훈련인 6시간(29km) 철야 행군도 가볍게 모두 마쳤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지리산에 대한 막연한 연민과 동경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난 산을 그렇게 많이 오른 것도 아니고 겁 없이 늘 마음만 앞설 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지리산 종주에 도전장을 내고 준비하여 왔다.
지리산이 어떤 산인가?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한반도의 3대 영산으로 불리는 산. 동양
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길게 뻗은 능선, 그 사이에 20개가 넘는 봉우리와 그에 화합하는
깊은 골짜기들. 그 높고 깊은 굴곡 만큼이나 한반도의 고난의 역사를 온 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질곡의 산이 아닌가? 그 지리산을 다시 오르고 싶다. 온 몸으로 만나고 느끼고 싶다.
▒ 차후 산행 계획 ▒
1차 목표: 지리산 주능선 당일 단독종주 (성삼재-천왕봉-중산리)
2차 목표: 지리산 2대종주 왕복종주 (성삼재-천왕봉-성삼재)
3차 목표: 지리산 1대종주 무박 당일 역종주 (대원사-천왕봉-화엄사)
4차 목표: 지리산 3대종주 태극종주 (어천마을-동부능선-주능선-서북능선-인월마을)
5차 목표: 백두대간 종주 (퇴직 후)
▒ 이모저모 ▒
☆ 우천과 휴폰카메라, 홀로란 핑계로 시간 자료로 한 안내표지판 외에 아름다운 배경
하나 촬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에 남습니다.
★ 종주 산행기를 작성하는 것이 종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종주한
지가 벌써 3개월이 다 되었는데 또 미루다 보면 유효기간이 지날 것 같아 그간 집에서
틈틈이 작성하여 오던 것을 서둘러 마무리하게 되어 홀가분합니다.
◎ 노동절기념 족구대회에 대비하여 팀 선수를 선발하여 연습 후(5월4일) 저녁식사 시간에
제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내가 내일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여 성공한다면
우리 팀이 분명히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때 선수들은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 후 우리 팀은 결국 우승하였습니다.
◈ 종주 때 관심과 함께 성원해 주시며 격려와 함께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신 경남 아우님,
칠수 아우님, 옥율 형님, 영호 아우님 그리고 현정이 아빠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미흡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순정-
▶지리산 추천 산행 코스◀
▶뱀사골 코스
반선→탁룡소→뱀사골→화개재(9.2km, 왕복 9시간)
피서 산행지로 인기 높은 골짜기. 뛰어난 경관과 더불어 곳곳에 재미있는 전설이 등산에
잔재미를 더한다.
▶백무동 코스
①백무동→가내소폭포→한신폭포→세석평전(6.5km, 왕복 7시간 30분)
②백무동→하동바위→제석단→장터목대피소(5.8km, 왕복 6시간 20분)
경남 함양의 백무동 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 지리산 북쪽에서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르는 일반 코스다.
▶대원사 코스
대원사→유평→치밭목대피소→중봉→천왕봉(13.7km, 왕복 16시간)
주로 지리산 종주의 하산길로 많이 이용된다. 자연의 보존 상태가 좋고 사람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한 산행을 할 수 있다. 천왕봉까지는 매우 먼 길이므로 치밭목에서 1박을 해
야 한다.
▶중산리 코스
중산리→칼바위→법계사→천왕봉(5.5km, 왕복 7시간)
정상인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 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험해서 초보자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거림 코스
거림→세석평전(6km, 왕복 7시간 30분)
지리산의 주능선으로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 길도 순탄해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쌍계사 코스
쌍계사→불일폭포→삼신봉(6.5km, 왕복 8시간)
신라의 고찰인 쌍계사에서 지리산의 남쪽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 불일폭포까지는 길이 멀지
않고 평탄해서 쉽게 오를 수 있으나 삼신봉까지 계속된 오르막길이 다소 벅차다.
▶대성골 코스
대성교→대성골→벽소령(6.8km, 왕복 8시간 20분)
쌍계사 북쪽의 대성계곡을 따라 오르는 코스. 대성골은 수량이 넉넉하고 커다란 바위와 반석,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진 골짜기로 여름 피서산행지로 적격이다.
▶피아골 코스
연곡사→직전마을→피아골대피소→임걸령(5km, 왕복 6시간 40분)
연곡사를 기점으로 한 코스. 일반적으로 버스 종점인 직전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에 폭포가 많고 원시림이 우거져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특히 가을 단풍으로 잘 알려진
등산로다.
▶화엄사 코스
화엄사→참샘→집선대→무넹기→노고단(7km, 왕복 7시간)
지리산 종주 코스의 출발점. 계곡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성삼재에 도로가 생기면
서 등반객이 현저히 줄어들어 조용한 산행을 하기에 적합하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
지리산 종주산행기는 2005년 8월 okmountain.com 에서 추천글로 선정되었던 산행기 입니다.((책출간))
그곳은 산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사이트로 아래는 제가 작성한 산행기에 대하여 의견글을
주셨던 일부 분들 입니다.
*참고:okmountain.com 사이트에서 저의 닉네임은 순정입니다.
작성일 : 2005-08-14 08:58 | 조회수 : 3677 | 추천수 : 41
~~~~~~~~~~~~~~~~~~~~~~~~~~~~~~~~~~~~~~~~~~~~~~~~~~~~~~~~~~~~~~~~~~~~~~~~~~~~~~~~~~~~~~~~~~~~
여수맨: 비오는날 지리산 종주 고생 많이 했습니다 본인과의 싸움...
혹시 우리회사 분 같군요. 항상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하시길...
비오는날 지리산 종주 고생 많이 했습니다 본인과의 싸움...
항상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하시길...
05/08/15 15:52
머털: 화엄사-대원사, 1박 2일 주파에 금후의 계획은 더욱 도전적이군요. 무리가 통하면 도리는
물러서는 법이긴 합니다만, 또한 위험없이 성취 없는 법이기도 합니다만 모쪼록 단독산행에는
첫경험이 곧 마지막 경험이 될수 있는 위험 요소가 숨어 있음을 늘 염두에 두시길. 대단한
건각이십니다. 앞으로의 산행에도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05/08/18 23:53
유서연: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걸까요..정말 소박한 감동이 느껴지네요~
저도 용기내서 잘 다녀올께요~^^
05/08/23 18:38
혜리: 혼자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맘에 지리산 을 생각했습니다..
저또한 읽는 내내 코끝이 찡 한게
슬픈 일이 아닌데도 그러네요 ^^ 글 잘 읽었습니다. 부럽습니다.
버리고 올게 있을것 같았는데 담고 올것이 더 많을것 같네요..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항상 즐거운 산행 하십시요.
05/09/02 15:08
----------------------------------------------------------------------------------------
다음 산행기는 지리산 주능선 당일 종주 산행기입니다.
-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