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곡동에 1973년부터 살고 있다.
중곡동 일대가 지금의 반듯한 길과 주택가로 태어난 게, 1970년대 초에 진행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 동네가 논밭에서 마을로 몸을 바꾸던 바로 그 시기에, 부모님 등에 업혀 이곳에 자리 잡았다.
내가 아기일 때, 중곡동도 아기였던 셈이다.
그 시절 항공사진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반듯한 골목 대신 아직 여백이 더 많은 땅이 보인다. 벽돌집 몇 채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사이는 아직 흙바닥인 채로 남아 있다. 마을 위쪽으로는 지금은 복개돼 이름으로만 남은 긴고랑천이 구불구불 흐르고 있었다. 동일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논이 마을이 되어가는 그 어중간한 순간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30대 초반이셨던 우리 부모님은 왜 하필 1973년 중곡동에 자리를 잡았을까.
아버지 직장이 뚝섬역 인근이었으니 한강다리 건너 강남에 터를 잡으셨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욕심부리지 않고 직장 바로 옆 성수동이어도 좋았을 텐데. 거슬러 올라가면 할머니가 6.25 전쟁 전부터 신당동에 천 평 땅을 두고 주차장을 하셨다는데, 그것만 그대로 있었더라면 또 어땠을까.
아냐 아냐, 더 거슬러 올라가자. 할아버지 본적은 종로구 효제동 일대고, 할머니 쪽은 당산역 일대가 죄다 가문 땅이었다는데. 그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물론 다 지금 와서 결과를 알고 하는 소리다. 부모님에겐 부모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중곡동이 그때는 신도시였기 때문이다. 무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염두에 둔 종합운동장 부지로 개발되려던 곳이기도 했다. (이 얘기는 다음화에 따로 풀겠다.)
신도시에 자리 잡은 서른 몇 살의 부모님도, 지금 재개발을 앞둔 우리처럼 마음이 부풀어 계셨을 것이다. 그 기대는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1973년의 중곡동 254-15 일대에는 주택이 쉰 채 남짓밖에 없었다.
집을 고를 때 두 분의 생각은 갈렸다. 어머니는 나중에 값이 오르려면 대로변이어야 한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모름지기 집이란 조용해야 한다며 골목 안쪽을 고집하셨다. 그때는 아버지 뜻대로 됐다.
하지만 집안이 잘되려면 아내 말을 들어야 하는 법.
1978년, 어머니는 아버지 동의도 없이 과감하게 골목 탈출을 감행하셨다. 옮겨간 곳은 나와 유치원을 같이 다니던 영준이네 집. 겨우 옆집의 옆집이었지만, 어쨌든 도로변이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집이다.
덕분에 한동안 우리 집은 두 채가 되었고, 나는 우리가 부자가 된 줄 알았다.
영준이네는 그 무렵 개발이 막 시작된다는 소문이 돌던 여의도로 이사를 갔다. 영준이 엄마는 어머니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조용한 주택가를 고집하신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버지는 2006년 돌아가실 때까지 그 일로 원망을 들으셨다.
역시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중곡동은 신도시였던 덕에, 유치원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이미 유치원이 있었다. 1974년 우리 형은 대은유치원(대은성결교회 부속유치원)에 다녔고, 이듬해인 1975년에는 중곡동의 유일한 국민학교였던 용마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중곡초등학교는 이름과 달리 행정구역상 면목동에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이주해 오면서 중곡제일시장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시장과 유치원에 가려면 긴고랑천을 건너야 했다. 지금은 복개되어 흔적조차 없지만, 항공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때 다리가 어디쯤 놓여 있었는지 또렷하게 보인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이번 중곡동 254-15 일대 재개발에서 긴고랑천이 복원되는데, 설계자는 몰랐겠지만 마침 그 옛날 다리가 있던 자리에 맞춰 '학교 가는 길'이 조성된다.
반백 년 넘어,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건너던 그 자리에 다시 길이 놓이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 2026년. 중곡동은 다시 한번 논밭이던 시절만큼이나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번엔 토지구획정리가 아니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35층 아파트가 들어설 참이다.
오십여 년 전 이 동네가 처음 걸음마를 뗄 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업혀 있던 아기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나는 이제 이 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지켜보고, 목소리를 보탤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다. 중곡동도 나도, 다시 한번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분이 처음 이사왔을때 중곡동의 모습은 어땠나요?
댓글에 중곡동의 첫인상을 남겨주세요.
[1화] 내가 아기일 때, 중곡동도 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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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중곡동에 '올림픽종합운동장'과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질 뻔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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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서울시 최고의 '귀족 재개발' 중곡1동 A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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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중곡1동 A구역 (254-15 일대) 재개발, 아파트 급지표로 몇 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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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함께 중곡동에 관한 썰 담아보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