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은 곧 정당의 정체성이다. 이념이란 사회를 바라보는 신념 체계다. 가령 경제 문제에서 진보는 시장이 낳는 불평등을, 보수는 기업의 자율을 막는 규제를 문제 삼는다. 결국 정당이 어떤 정치를 펼칠지는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달라진다. 유권자는 이념을 보고 자신이 바라는 사회상에 맞는 정당을 고르고, 선거 이후에는 그 이념에 비추어 정당의 행동을 평가한다. 이념을 내건다는 것은 곧 유권자와의 약속이며, 대의민주주의는 이 약속 위에서 작동한다. 정치 세력을 이념 지향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으로 재규정돼야 한다. 87년 체제 이후 38년 가운데 민주당이 집권한 기간은 약 16년이다. 이들은 이미 국정을 운영해 온 주류 세력이다. 그사이 정책의 무게중심은 성장으로 옮겨 갔다. 메가특구특별법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하고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진보가 중시한 평등과 노동보다 보수가 강조한 성장에 방점을 둔 거다. 이를 두고 진보 군소 정당에서 노동권 퇴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는 발언은 이 같은 정체성을 인정한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 역할은 하지 않는 사이 진보 정치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다. 민주당의 온건 개혁이 진보의 기준선이 됐고, 거기서 한 발만 더 왼쪽으로 가면 색깔론이 따라붙었다. 최근 조국혁신당이 주도한 토지공개념 입법이 사회주의라 비난받는 것이 그 예다. 또 소선거구제에서 사표를 피하려는 진보 지지자들의 표는 민주당으로 쏠렸다. 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진보 군소 정당의 의석 수는 합쳐도 교섭단체 기준인 20석에도 못 미친다. 이들의 목소리가 제도로 관철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령 차별금지법은 진보 정당들이 주도해 발의했지만 정족수 10명을 채우기도 버거웠고,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치세력의 이념은 보수로 편향돼 있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한국 정치 구조를 ‘보수 양당제’라 지적했다. 이념이 비슷한 거대 양당은 정책으로 차이를 낼 수 없으니 진영 대립으로 차이를 만든다. 실제 메가특구특별법은 노동자와 기업 간 권리 충돌 논쟁이 아닌 지역 선점을 둘러싼 정쟁으로 흘렀다. 진영 대립으로는 제도를 가다듬고 발전시킬 수 없다. 따라서 민주당은 중도보수정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진보의 공백을 선거 제도 개혁 등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다양한 이념이 공존할 때 국회는 국민을 닮은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